< 198화 > 술과 섹스. 나무. (2)
“이시헌 너… 그러니까… 위험한 일 하지 말라고 말하자나….”
꽐라가 된 이세영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조졌네.’
힘들면 전화해서 술을 마시곤 하던 옛날 기억이 떠올라서.
진짜 부어라 마셔라 해버렸더니 이 사람이 정신 줄을 놔버렸다.
“선생님?”
“……그리고 그 시발 개같은 선생님 호칭은 언제까지 쓸 거야?”
그런 것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보구나.
선생님이 익숙해서 그대로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연인이자나…. 그럼 이름으로 부르는 게 맞는 거 아냐?”
“그쵸, 그쵸.”
“…씨발 존댓말!”
“그치.”
“그래. 그렇게 하라고. 나 불러봐.”
“세영아.”
“…응.”
너무 많이 마셨나.
나는 옆에 있는 소주병을 손으로 세어갔다.
이세영이 해치운 소주만 아홉 병. 마력을 거두고 마셨으니… 아무리 술이 강하다고 해도 이쯤 마시면 개가 되어 버린다.
그래… 개가 되어버렸다.
지금 이세영도 이렇게.
“……야아. 여기 보라고. 이시헌씨.”
퇴근한 집주인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말 그대로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마주 보고 앉았는데 어느새 옆 자리에서, 가슴을 붙이고 교태.
“내 과거 다 들었자나…. 알거 다 알잖아?”
“다 알지. 뭐가 또 불만이야?”
“나 외롭다고… 많이.”
지금까지 술을 마실 때는 조절도 했고. 취한다 한들 이렇게까지 속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정말 오늘 일로 마지막 일선을 넘어버린 듯했다.
“…진짜 좆같이 힘들었다고.”
“응응. 알지. 세영이 고생한거.”
“그래… 그렇게 해줘. 이상하다… 별이랑 마실 때도 이렇겐 안 마셨는데. 네 옆이라… 끄응.”
두통이 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나를 놓지는 않는다.
세영은 땀이 나는 것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더욱 자극적인 냄새가 내 코 안에 들어왔다.
“아빠 좆같애.”
“좆같지.”
“……니는 이런 일 없었냐?”
“많았지.”
“알아. 넌 그럴 것 같애.”
알면 왜 물어봐.
술에 제대로 취한 세영의 모습은 어른스럽고 터프했던 기존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주접 심해서 미안해. 집착하는 것도 보기 좀 그렇지.”
“언젠 안 그랬어요?”
“또 존대한다.”
“…안 그랬어?”
두 커다란 가슴이 꾸욱, 꾹 짓눌린다.
지금이라도 여기서 섹스를 하자고 바라는 것처럼. 심장 소리는 두근거린다.
반쯤 풀려, 졸린 듯한 이세영의 눈은 평소에는 부릅뜨고 다니던 그녀의 눈과 대조되어 더 음심을 불태웠다.
“야.”
“응.”
“나 너 좋아하는 거 알지.”
“알지.”
“…근데 왜 걔랑 사겼냐?”
“……사귀라고 한 건 너잖아.”
“그걸 알아도… 나만 사랑한다는 말 듣고 싶었는 걸.”
“너 만날 땐 너만 사랑할게.”
“우웩. 개느끼해.”
나 상처받는다.
얻어맞는 건 익숙한데 이렇게 두들겨 맞는 건 익숙하지가 않다.
내가 정신이 쏙 빠진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니 이세영은 내 얼굴에 손을 뻗었다.
“야….”
“응.”
“갑자기 내 앞에서 사라지면 안 댄다? 그냥 쭉… 내 옆에 있기만 해……. 어렵지 않잖아 같이 있는 거. 죽을 때도… 나 죽고 나서 한 시간 뒤에 죽어.”
“…알았다니까.”
“진짜야…. 누구 죽는 거 보기 싫어. 위험한 짓도 안 하게 하고 싶은데…. 네가 안 그러잖아.”
“알았어.”
“…흫. 그걸 다 들어준다고? 호구 병신.”
그래도 이렇게 보니까 다르게 예쁘긴 하다.
한 사람에 매력 포인트가 왜이렇게 많아?
손으로 볼을 만져주니, 강아지처럼 내 손에 볼을 비벼대며 교태를 부렸다.
어느새 신발까지 벗고 커다란 소파 위에 스타킹을 신은 다리까지 올려두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호구처럼 사니까… 나도 호구처럼 이렇게 있는 거야.”
“어….”
“니가 내 처녀 가져갔잖아…. 책임져야 하는 거 맞지?”
“어 그치.”
“그때 진짜 놀라고 아팠거든? 근데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왜 반항을 안했나 싶어. 강간당하는 거…… 상상은 해봤는데, 바라지는 않았거든.”
“……그래?”
“나도 뭔가 운명을 느낀 게 아닐까? 시발 맞다고 해.”
“…운명인가?”
말꼬리를 늘이니 이세영이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맞, 맞아… 맞지 맞고말고.”
“…그래 운명이야. 그런걸로 치자.”
세영의 속내, 내심의 바람.
그녀도 평범하게 만나서 평범하게 사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나와 같은 상상을 한 적이 있는 듯했다.
세영은 점점 거칠어져가는 숨을 그대로 나에게 내뿜었다.
입김에서 과일과 알코올 향이 진하게 났다.
“야.”
취중진담.
술기운이 있지만 진중한 목소리.
“…죽지 말고. 건강하고. 좋아만 해주면. 다 해줄게.”
-또르르.
세영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굴러 떨어졌다.
보석같이 생긴, 반짝이는 무언가 뚝- 뚝-
유약한 부분을 강제로 파헤쳐서인지 아니면 술이 속내를 들춰서인지.
세영이 눈물을 내 팔에 한 번 닦더니 약간 부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세계수 그 씨발연놈들. 플라워, 살아있을 필요도 없는 것들. 다 너 싫어해도. 알지?”
“알지. 다 알아.”
“…이쯤 말했으면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새꺄!”
세영이 덮치듯이 내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음에도 내 입에선 핏물 하나 나지 않았다.
취해서 그런가. 그 현상에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세영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내 위에 올라탔다.
소파에서 무너지듯 내려간 내 신체.
입을 거칠게 맞춰온 세영이 눈을 감고 내 입 안을 희롱했다.
“으음…츱. 응.”
볼에 물기가 느껴진다. 눈물이다.
취하고 말을 하는 모습에,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섹스나 몇 번 하고. 다시 헤어졌지.
사이가 조금 소원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정도로 우리는 잠시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물리적인 거리도 그렇고, 심리적인 거리도 그렇고.
-꽈악.
세영은 내 등을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처럼 꼭 쥐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이 안아서, 숨을 쉴 수 있나 걱정이 될 정도로 강하게 갈비뼈가 압박 된다.
그녀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호흡조차 아까운 듯, 내 입에서 공기와 체액을 빨아갔다.
거칠고 진한 키스.
키스만 계속. 몇 십분 동안.
나도 숨이 막혔는데. 이상하게도… 호흡을 하지 않아도 키스가 가능했다.
이번엔 내가 혀를 집어넣는다.
그것을 반갑게 맞이한다.
“헉… 헉.”
“하악… 흡.”
뒤늦게 혀를 빼낸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몽롱해진 시선을 교환했다.
“흑… 시발. 진짜 비참하네.”
세영의 눈은 눈물투성이였다.
“왜 그래.”
“몰라…. 이럴 생각 없었는데 진짜. 술만 안 마셨어도.”
“그래도 한 번 우니까 낫네. 이제 좀 진정성있게 들린다. 이리와 안아보자.”
“뭐래 시발.”
욕을 하면서도, 솔직하게 양 팔을 벌린다.
나는 세영을 품에 꼭 안았다. 그러면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듯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다리가 내 허리 옆에 오자, 스타킹의 감촉이 실감 나게 느껴졌다.
원숭이처럼 완전히 매달려 안고 있는 자세. 세영은 자신이 취하고 있는 자세도 알지 못한 채, 내 가슴에 눈물을 쏟아냈다.
“…흑.”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네 과거 다 알았고. 무슨 생각으로 나 만나는지 알았으니까. 울 거면 지금 다 울어.”
“안 울어….”
“에이 한 번 시원하게 울어야 이게 또 풀어진다.”
“아이씨… 진짜.”
“모텔 갈거야?”
“안 가면 죽일거야.”
살벌하네.
나는 속으로 술을 몇 번이나 마신것처럼 정신을 무장했다.
원래 술을 마신 사람을 대할 땐, 나도 술에 취하는 것이 예의다.
약간 취해있지만 조금 더.
세영을 안은 자세로 까진 술을 한 병 그대로 들이켰다.
“후우.”
술을 전부 비워내고. 마력을 가라앉혀 취기를 끌어 올린다.
그대로 세영을 마주보았다.
“세영아.”
“…응.”
“연인 맞지 우리.”
“응. 평생….”
“서로 믿어주는 게 어렵진 않잖아. 내가 위험한 건 맞는데. 네가 걱정하는 일은 절대 안 일어날 거야.”
“…….”
“바라는 거 있어?”
세영은 내 얼굴에 볼을 부볐다.
“…나 이거 끼고 있어.”
손을 펼쳐, 그녀가 반지를 보여준다.
분명 끼고 있을 때는 다른 쪽 손이었는데 왜인지 왼손 약지에 내가 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왼손 약지….
기혼이었나?
“……나중에 해줘.”
한창 거리감을 벌리던 이세영이, 왼쪽 약지에 낀 반지를 보며 그렇게 말해왔다.
그러니까. 프러포즈다.
예전에 차였던 이시헌이 맞나. 나 자신에게도 무언가 감동을 느꼈다.
파도치듯 드는 감정 속에, 이 사람도 굉장히 순정적인 부분이 있구나하는 걸 알았다.
“…왜 신기해?”
“조금.”
“티만 안 냈지 나 원래 이런 년이야. 니가 아는 것처럼…막 당차고 그런 년 아니라고.”
“다 좋지 뭐. 남자가 그렇게 복잡한 생물도 아니고. 집착하는 여자 인기 많을 걸요.”
“…사랑한다고 해 빨리”
“사랑해.”
“매일 아침 들었으면 좋겠다.”
내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욕 먼저 박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애써 무시하면서 나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만 그렇지. 너 위험하면… 나 또 막나가는 수가 있어.”
“그럴 거 같아.”
“그러니까 위험한 거… 전부 사전에 차단해. 일자리에서 네 이야기 들리기만 하면……그땐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세영은 그리 생각하나 보다.
최대한 조심하면서 행동해라.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 다해주면….”
세영은 내 품에 안겼다.
“나머진 다 네 마음대로 해도 돼.”
“…정말?”
“응.”
나는 이세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검지와 엄지를 펴서 만든 브이.
아까부터 강아지같은 모습을 보여서 한 번 해볼까 했던 충동을 직접 말해봤다.
“…여기 턱 얹어봐.”
“…….”
개 취급. 그러나 그러한 생각까지는 미처 닿지 못했는지, 그녀는 내 손 위에 턱을 올렸다.
검지와 엄지 손 끝에 그녀의 볼살이 밀려 올라간다.
-뿌.
하고 시바처럼 볼을 부풀린 양. 귀여운 강아지 모습.
세영은 두 눈을 깜빡이며 뭔짓을 하느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웃음이 튀어나온다.
“…왜 웃어?”
“귀여워서.”
“이제 스무살인 애한테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해?”
귀여운 걸 귀엽다고 하지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나.
나는 양 팔을 펼쳐 세영을 안아주었다. 아무런 저항없이 내 몸에 안긴다.
까도까도 새로운 사람.
입술을 부딪히면, 푹신한 감촉을 마음껏 즐기라는 듯 오리처럼 주둥이를 내밀어주고.
뺨을 어루만지면 즐거운지 볼을 비빈다.
“별이 왜 너랑 같이 다니는지 알겠다.”
“……뭐래.”
머리를 쓰다듬자 별 생각 없이 정수리를 만지도록 고개를 약간 아래로 내렸다.
이게… 이세영이 맞나?
술이 아주 큰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만큼 날 좋아했단 거지.
“나갈까?”
내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뜬 이세영은, 벌린 가랑이 쪽 치마를 살포시 누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텔이지?”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