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 별따먹자 (7)
전 날 남편이 섹스를 잘하면 다음 날 아침에는 상다리가 부러진다던가.
아침은 아니지만, 새벽 밤참에도 별은 힘을 잔뜩 써주었다.
“파 다 썰었어?”
“응, 지금 넣을까?”
노란색 앞치마를 두른 채 고개를 끄덕이는 별이.
그 모습이 마치 다리가 짧은 병아리 같아,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시선을 눈치챈 그녀가 나를 향해 해맑게 웃어왔다.
“왜 봐? 나 예뻐?”
쇠 국자를 들고 그리 말하는 별의 모습.
키스마크가 진하게 남아있는 목덜미가 제법 야릇하다.
“……예쁘긴 해.”
솔직하게 답해주자 올라가는 입꼬리.
“……히히.”
저것 봐라. 음침하게 웃는 거.
감정에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것 아니냐.
“한 번만 더 해죠!”
“응 그래 사랑해.”
“야, 말에 감정이 없잖아! 제대로 합니다. 실시!”
“그래 사랑해.”
“씨잉.”
기계적으로 대답하자 별이 투정을 부리며 손으로 약하게 어깨를 톡 때려왔다.
기고만장한 그녀.
왜일까.
동창회 이후부터 별의 애정 행각이 더 적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나만한 사람 어디 없을걸?”
마치 결혼 적령기가 끝나고, 안달이 난 여성이 다급하게 매물 내놓듯 남성들을 유혹하는 그런 모습이다.
표현이 이상하긴 한데 느끼는 바가 그렇다.
“뭘 원해?”
“좀 사랑한다고 하고, 막, 이렇게 응? 국 끓이고 있으면 뒤에서 좀 안아주고! 키갈도 한 번 해주면 좋아 죽지!”
그렇게 말해도 나는 애정 표현이 서투르다.
최근에야 종종 하게 됐지 원래는 잘하지 못하니까.
“알았어 알았어.”
하는 수 없다.
나는 끓고 있는 김치찌개에 얇게 썬 파를 집어넣고, 별의 뒤로 이동해 백허그를 했다.
내가 입은 노란색 앞치마가 별의 등에 닿았다.
내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고, 나를 아래서 위로 올려다 보는 별이.
그녀의 눈동자에 애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좋다.”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별이의 기대어린 목소리.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 요리 좀 하지?”
“나랑 비슷하게 하네. 나도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했거든.”
“진짜? 우리 똑 닮았다. 게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자취했던 것도, 또 아카데미에서 재능있는 거에……으음. 아 맞아! 속궁합까지?”
그렇게 말하니까 닮은 구석이 많기는 하네.
별은 자신을 껴안고 있는 팔뚝에 고양이처럼 볼을 비벼댔다.
말랑한 볼과 오똑 솟은 코의 감촉이 피부를 타고 느껴진다.
“우리 잘 만난 거 같애.”
“만날 땐 어떻게 한 번 따먹으려고 만난 거였지만 말이야.”
“스으읍 어허, 세영이 강간보단 별이 소개팅이 백 배 낫다.”
“……할 말이 없게 만드네. 그리고 그거 세영이가 화간이래.”
“그래 걔는 그렇게 말하겠지. 아, 이거 세영쟝한테 말하면 안 된다? 나 뒤져 진짜!”
세영이 한 방 먹었다.
나중에 슬쩍 말해줘야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별의 요리는 끝이 났다.
“다 됐다.”
김치찌개의 맛을 한 번 보더니, 별은 내 팔을 잡고 포옹을 풀었다.
그리곤 국자로 국물을 떠 내게로 가져오더니.
“…어때?”
하며 입에 국자를 가져다댔다.
맛을 한 번 보니 제법 나쁘진 않았다.
알싸한 매콤함에 적당히 짠….
“다시다 맛. 맛있는데?”
“쇠고기 다시다 국룰. 우리 엄마도 다시다 왕창 넣었어.”
다 끓인 김치찌개를 식탁 중앙에 올려놓으니 제법 차린 밥상이 볼만했다.
계란말이와 김치찌개. 장조림이나 각종 나물. 귀리를 올린 갓 지은 밥.
양념을 아끼지 않고 비싼 재료를 써서 그런지 하나같이 퀄리티가 좋았다.
계란 한 알에 수만원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놀랐다.
-부협회장 달고 이런 거 안 먹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못 견뎌.
얼마나 협회의 일이 힘든 건지.
돈 벌이도 장난이 아니게 많은 모양이다.
“먹자!”
섹스 후, 배가 고파 먹는 집밥. 맛 없을 리가 없다.
“잘 먹을게요.”
“맛있게 먹어.”
우선 밥을 한술 뜨고 계란말이를 입에 집어넣는다.
“와….”
재료가 깡패다.
비싼 계란이라 그런지 풍미부터가 달랐다.
다른 반찬도 이럴까, 장조림을 하나 집어넣으니 소고기의 결이 쫙쫙 갈라지면서 맛간장의 풍미가 코를 팍 찔렀다.
대충 먹어도 상관 없다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
요리 실력은 엇비슷해도 음식의 질이 다르다는 게 놀라웠다.
-허겁지겁.
정신 놓고 음식을 먹다 보니, 앞쪽에서 별의 뿌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맛있어?”
뒤늦게 앞을 보자 꽃받침을 한 별이 나를 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안 먹어?”
“그냥 보고 있는데 기분이 좋아서.”
아직 밥 한 술도 제대로 뜨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식사를 도중에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니, 별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이다가 피식 웃었다.
“먹여주게?”
놀리는 듯한 표현이지만 아마도 그걸 바라고 있겠지.
나는 계란말이 하나를 젓가락으로 콕 찍어 별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웅-”
계란말이의 절반을 문 별이.
물고만 있고, 젓가락을 쥔 내 손을 보며 킥킥 웃는다.
그렇게 한참을 간을 보다가 한 입. 계란말이의 절반을 먹곤 행복하게 웃었다.
참 웃음이 많아. 그게 부럽기도 하고.
나는 남아있는 계란말이의 반쪽을 먹으며 싱겁게 웃었다.
부디 저 미소를 계속 볼 수 있길 바란다.
*****
식사를 끝내니, 남은 밤은 화끈한 일밖에 남지 않았다.
게임.
섹스.
게임.
섹스.
섹스.
이른바 겜섹겜섹섹이 반복되다 보니, 욕망대로 살아가는 짐승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말이 게임이지 게임을 할 때도 우리는 서로 붙어 있었다.
-츄릅.
“맛있어?”
초콜릿이나 과자를 입에 넣고 키스.
서로 컨트롤러를 계속해서 움직이나 스킨십을 멈추진 않는다.
“더 먹을래?”
다시 초콜릿을 왕창 입에 물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나를 덮치듯 누른다.
서로의 혀가 마중이 나오며 녹아내린 초콜릿이 달콤하게 감싼다.
“달다….”
초콜릿의 맛에 감탄하며, 다시 달라붙어 게임을 한다.
RPG같은 반복 노동이라 그런지 애정 행각이 점점 진해졌다.
허벅지를 내 배 위에 올려둔다던가. 발로 내 정강이를 쓰다듬는다던가.
날 더러 새우깡으로 빼빼로 게임을 하자고 했을 땐. 그냥 키스하지 뭘 그런 걸 하냐고 되물었다가 낭만이 없다며 혼이 나버렸다.
그러다가 스위치가 돌면 한 시간 내내 키스를 진하게 나눈다.
도중에 꼴리면, 그대로 옷을 내리고 박는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후우… 후우.”
별은 자신의 음부에서 쏟아지는 정액을 손가락으로 긁어 안으로 집어 넣었다.
커텐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
아침이 왔으니, 잠시나마 별과 헤어질 시간이다.
그래도 밤새 애정을 주입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예전에 딱 한 번 관계를 나누었을 때와는 달리, 별의 몸이 갈수록 야해지고 능숙해진다는 게 느껴졌다.
“…안아줘.”
서로 알몸이 된 채 껴안는다.
별은 내 품에서 기분 좋게 몸을 떨며, 아찔한 숨을 뱉었다.
“평생 이렇게 있고 싶다.”
“그렇게 내가 좋아?”
“히히 조아. 항상 내 집은 차가웠는데… 너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따뜻해지네.”
자취방. 혼자 사는 집.
아싸라고 외로움에 면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집에 돌아오면 싸늘한 공기밖에 없는데. 거기서 잠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극심히 우울해질 때가 있다.
방 안의 온도가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전혀 들지 않는 그런 차가운 자취방.
거기서 수년을 썩다보면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부모를 잃었으니 기댈 구석이 없었던 별이다.
나도 어느정도 비슷한 처지에 있어 이해한다.
나중에는 꼭 같이 살아야지.
내 물음에 별은 기분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헌이는 여자가 많잖아.”
“지금 그 말해도 돼?”
“응 괜찮아. 충분히 행복해. 그건 그거고… 내가 생각한 게 있거든?”
별은 내 품에서 내 체향을 느끼며, 손으로는 내 등을 어루만졌다.
손길과 몸짓 하나하나가 애정이 어려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진달래? 라는 애도 그렇고…. 세영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다 하나씩…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들이거든,”
“별이도?”
“응응 별이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한계였는 걸. 매번 일이 있고… 사람 죽이고. 엄마아빠 죽고 나서 열심히 살았는데…… 힘든 일만 하고 있으니까. 사실 많이 힘들었어.”
별은 말을 이었다.
“너도… 되게 이상해.”
“앗.”
“별 건 아니고. 하나같이 결함이 있기 때문에 알아서 도태했을 우리들이 만난 게 사실 정말 운명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
운명이라.
시간의 세계수 때도 그랬지만 좋아하는 말은 아니다.
“과거에는, 정말 그 운명을 정하는 권능을 가진 세계수도 존재 했어서. 이상할 건 없거든.”
“뭐야 그게?”
“계속 너한테 꼬이는 여자도 어느정도 결핍이 있다면 아마 내 가설은 맞지 않을까?”
별이 내놓은 음모론에 나는 내가 만난 여자들을 떠올렸다.
백도와 황도, 천도. 산수유. 등등.
절대 정상은 아닌 여자들이다.
결핍도 다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산수유는 감정이 없다시피하고, 백도와 황도, 천도는 세계수의 저주를 받아 기억마저 온전치 못하다.
별의 현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인가?
‘스으으읍.’
갑자기 뒷골이 땡기는데.
내 표정이 굳어가는 걸 느꼈는지 별은 잽싸게 주제를 돌렸다.
“아, 확신은 아니야! 만약 그렇다고 해도, 응? 어떤 싸가지 없는 놈이 강제로 우리를 이었다고 해도 별은 평생 시헌이 좋아해요! 하트 뿅뿅!”
-쪽, 쪽.
내 볼에 키스를 갈기는 별이.
필사적인 애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 만약 그렇다고 해도 애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크흐흐.”
내 웃음을 보고 겨우 안도한 별은, 마저 내 온기를 느끼며 웃었다.
그 이상한 음모론은 다시 그녀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은 지금 일에 집중할 타이밍이야.”
“그렇지.”
“숲지기 선발전 때 일은 잘 부탁해. 플라워를 몰아내는 것도, 네 일이긴 하지만 헌터 협회의 일이기도 하니까.”
헌터 협회는 마음에 들지 않을지언정 별은 그렇지 않다.
서로의 뜻은 같았다.
숲지기 선발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휴일.
“맞아.”
별은 잠시 내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화장대 쪽으로 기어가 그곳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번에 밝혀진 플라워 기지. 극비야.”
“기지?”
“응. 저번 테러에서… 운 좋게 몇 명을 사로 잡아서 정보를 얻어냈거든. 그중에서 뻔한 거짓말 걸러내고 가능성이 좀 있다 싶은 것들만 골라 놨어.”
나는 파일을 건네받았다.
어림잡아 스무 곳. 앞으로 아카데미를 병행하면서 새벽에 일을 하면 될 것 같았다.
‘오지도 않는 잠 자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제는 다시 밤을 새가며 움직일 수 있겠다.
내가 희미하게 웃자, 별은 반쯤 걱정된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런 거 알려준 게 문제는 되지만. 악용은 하지 않을 거라 믿어.”
“알아.”
“공과 사는 명확히. 알지?”
별은 게임을 좋아하고 너드미가 폴폴 풍기지만… 괜히 부협회장직을 단게 아니다.
“나는 너를 믿었고. 고용한 셈이야.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면 뭐든지 해줄 수 있어. 단, 너도 너무 위험한 짓은 하면 안 돼.”
“걱정이 심한 것 아니야?”
내 되물음에 별은 진지하게 말했다.
“내 사람이니까.”
“고용당한 거네 그럼? 이제 월급도 받으면 되나?”
“…내 몸이라도 줘?”
“그건 이미 내꺼고.”
“헤헤…. 코건 맞지~”
진지한 분위기가 풀린 별이 헤프게 웃었다.
프로페셔널 별이보단 역시 이 별이가 마음에 든다.
나는 앉아 있는 별이를 껴안으며 입술을 맞춰주었다.
“좋아?”
“조아!”
애교 섞인 조아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