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로니에 (2)
“여 에이비.”
영국 국목, 벨의 말에 에이비가 다가와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대충 알았어. 던전을 깨니 식량을 주던데.”
1일차에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이 넓은 던전에서, 마력감지도 제대로 되지 않는 통에 팀원을 모은다는 건 극악의 확률이었다.
“아티펙트도 있어.”
하여 던전을 클리어하며 아티펙트의 매물이 좀 풀린 뒤에야 팀원을 끌어모으는 것이 가능했다.
벨은 자신의 배낭에서 비스킷이나 치즈같은 각종 식량등을 꺼내보였다.
“괜찮네.”
물품들을 보며 끄덕이는 에이비.
이런 느낌으로 버텨나가면 일주일은 금방이다.
[지잉]
“여 C, 이거 보여? 이번 던전에서 얻어온 것들이야.”
“C? 그게 뭔데?”
“이 아티펙트의 이름이지.”
벨의 옆에 부유하며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웃이는 카메라.
벨은 그 카메라를, 헤드락을 걸 듯 끌어안더니 렌즈 위 머리부분을 쓰다듬으며 킥킥 웃었다.
방송으로 송출되는 카메라의 렌즈에 시원시원한 벨의 얼굴이 그대로 비추었다.
“이제 마로니에만 찾으면 되겠네.”
에이비는 자신의 배낭을 고쳐 매며 중얼거렸다.
“그 땅딸보는 어디서 뭘 하는거야?”
“거리가 멀면 만나기 힘들지도 몰라. 잘못하면 둘이서 계속 버텨야 할 수도 있어.”
“그럼 걔는 혼자 이 질퍽한 숲지역에서 살아남는 건가?”
애이비의 말에 낄낄 웃는 벨.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울상의 마로니에가 떠올랐다.
“…뭐, 그 대신 우리도 노려지면 힘들겠지만.”
진정하라는 듯 에이비가 벨의 망상에 초를 쳤다.
누가 뭐래도 숲지기 선발전은 국목들의 경쟁이다.
마로니에를 하루빨리 합류시키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그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었다.
“크흐흐. 옷에 진흙 묻는 게 싫고,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는 게 눈에 훤하구만 훤해.”
벨은 낄낄 웃으며 두 손을 모아 자신의 뒷머리에 가져다댔다.
마침 몰려드는 숲속의 마물들.
-휘리리리릭.
그의 입을 타고, 희미한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독성 있는 노래야.”
다른 건 몰라도 마로니에의 피리 소리는 끝내준다.
벨은 속으로 생각했다.
모든 건 전부 조잡하고, 마법 실력도 형편 없지만.
빨리 노래나 들었으면.
-쿵.
그의 두 주먹에 붉은색 마력이 모이고 있었다.
*****
“다리 아파.”
“…아니 뭐 얼마나 걸었다고.”
스태프로 콩콩, 흙길 위에 난 조약돌을 찧으면서 내 뒤를 따라오는 마로니에.
소녀는 헥헥 숨을 뱉으며 숲길을 파헤치고 있었다.
정작 긴 풀이랑 가지들을 헤치면서 길을 만드는 건 나인데, 왜 네가 더 힘들어 하냐.
따지고는 싶어도 마법 하나는 잘 쓰는 인간이다.
‘애초에 내가 역산할 수 없는 것부터…… s급 헌터 급이야.’
실력이 S급에 다다르냐고 묻느냐면 아직 애매해서 결론을 지을 수 없다.
그러나 마법을 일으키는 솜씨라던가, 그 난해한 술식을 보면 왜 이 여자가 국목 취급을 받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국목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 그건 위험하다.
“…하악. 하악.”
물론. 지금은 이 꼴이지만.
마로니에는 숨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마력을 아낀다고 그 흔한 신체 강화 마법도 걸지 않는 상태다.
마법 없는 마법사는 일반인에 불과하다.
마로니에같이 옷 위로 보기에도 자그마한 여자는 체력이 절망적이다.
“그냥 마법 쓰는 게 어때?”
“…윽.”
내 충고에 마로니에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력을 아낀다고는 하지만 체력이 그만큼 떨어져서야 무슨 소용이겠냐. 자가당착에 빠진듯한 모습이다.
“더 빠르게 움직일 거야.”
“오…맙소사.”
“그러다 던전 뺏기면 어쩌려고?”
“후우. 알았어. 그래야겠어.”
어쩔 수 없다는 듯. 스태프에 마력을 모으더니, 자신의 바닥을 가리키는 마로니에.
“골렘. 비쥬(Bisou)”
그녀의 발밑에서 거대한 스톤 골렘이 나타났다.
2m 50cm정도 되어 보이는 몸집. 등을 굽힌 돌로 깎은 킹콩 동상 같은 모습이다.
그 어깨에 올라탄 그녀의 얼굴이 한층 해맑아 보인다.
어깨위 고양이? 그런 느낌이다.
“골렘 이름이 뽀뽀야?”
“…그, 그게 뭐?”
내 물음에 가시처럼 쏘아붙이는 마로니에.
비쥬(Bisou)의 해석은 뽀뽀. 내 번역기에는 그렇게 들린다.
귀여운 걸 좋아하나 보네.
그리 생각하며 나는 부지런히 팔을 움직였다.
그렇게 조금 앞으로 나아가니. 아까부터 조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던 마로니에가 내게 물어왔다.
“이제 길 만드는 건 내가 할까? 비쥬도 소환했는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아서라.”
“……너 마법사 맞아?”
마법사.
마로니에가 벌벌 떠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랑 싸웠던 그때 그 모습을 되새기는 모양이다.
“근접 전투를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도 그만큼 신체 능력이 좋지는 않은데.”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노골적인 시선에 마로니에가 쓰윽 눈을 피했다.
“펴,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혹시, 국목이야?”
“엘 아카데미 생도.”
내 말에 마로니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넌?”
“너, 나 몰라?”
“모르는데.”
“으, 으음 그래? 흐음…… 나, 나는. 멘헤튼 아카데미.”
국목이라고 말하는 건 자존심이 구기는 건가, 2위 아카데미를 들먹이며 마로니에가 휘파람을 불었다.
괜히 거짓말을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텐데.
고집이 있는 모양이다.
“이름은 뭔데?”
“보통은…네 이름 먼저 말하지 않나?”
“이시헌.”
“마… 로니에야 로니에.”
-휘 휘이.
재차 부는 휘파람. 의외로 휘파람 소리가 듣기 좋다. 목소리 음색이 워낙 좋아서 그런가.
인터넷 영상에 올리면 조회수 좀 잘 나올 듯하다.
나는 숲을 여전히 헤쳐나가며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했다.
-후웅!
마지막 긴 풀을 젖히자 답답한 시야가 확 트였다.
드디어 맞아보는 시원한 바람. 눈앞에 커다란 폭포와 너른 호수가 눈 안에 가득찼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차가운 물 냄새. 눈처럼 내리는 물보라.
-솨아아아.
그리고 저 폭포 안에 느껴지는 희미한 마력의 흔적은 당연히.
“찾았다.”
던전이다.
굳이 구태여 마로니에를 끌고 온 이유.
내 마력량 자체는 국목들에 비하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마력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던전을 클리어하면 무언가 보상이 주어질 테고. 이런 곳에서 던전의 보상은 넉넉하다고 이미 엘 아카데미에서 가르친 지 오래다.
둘이 나눠 갖기엔 충분하리라.
[지잉]
[이잉]
던전에 가까워져서 그런지 주위에서 카메라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에 마로니에의 얼굴이 난처해졌다. 국목이 일개 생도랑 함께 다니고 있으니, 부끄러울 수 있다. 어쩌면 지금쯤 기사가 떴을지도 모른다. 상상하면 재밌다.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흥미진진 할 테다.
“지, 지금 바로 갈 거야?”
마로니에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들고 있는 스태프로 폭포 안을 가리켰다.
“……이번 한 번만이라고 말했지? 이번 한 번만, 던전 같이 깨면 끝이라고.”
“어.”
“후우, 알았어.”
자신의 스태프를 들어 마력을 일으키는 마로니에.
그녀의 몸이 들리자, 내 몸도 함께 공중에 떠올랐다.
공중에 일어난 구체의 공기막이 우리를 감쌌다. 그것은 비눗방울처럼 하늘을 날아 서서히 폭포를 향해 다가갔다.
점차 커져가는 우레같은 폭포 소리. 카메라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렌즈 안에 우리 둘을 바쁘게 담았다.
-솨아아아아!
물이 갈라지며 폭포 안으로.
다행히도 던전의 내부까지는 카메라가 쫓아오지 않는다.
던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촬영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뚝.
들어온 폭포 안은 조용했다. 종유석의 아래로 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느긋하게 울렸다.
던전의 안은 거대한 동굴이다. 자그마한 마법진으로 입구가 봉인된 숨겨진 던전.
녹이 슬어있는 큼지막한 철제문에 손을 뻗자 밀어내는 힘이 전해져왔다.
“…이건 풀려면 마력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때? 네가 풀 거야? 아니면 반씩 나눠?”
마로니에가 등 뒤에서 다가와 내게 물었다.
확실히.
이 정도로 견고한 마법진이 던전 문을 지키고 있을 줄이야.
이 마법진을 풀어 헤치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 건가. 상당히 마법술식이 지독해서, 오랫동안 마력을 불어넣지 않으면 푸는 건 힘들었다.
“네가 풀어. 로니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마로니에가 벙쪄 되물었다.
“엥, 뭐라고?”
“싫어?”
“다, 당연히 싫지! 너 바보야? 아니면 멍청이야? 앞으로 일주일을 살아남아야 하는데, 여기서 20% 정도 되는 마력을 쓰라고?”
“그럼 굶을 거야? 배고파 보이던데. 클리어는 내가 할게.”
“배고파 보이다니…!”
-꼬르륵.
마로니에가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배를 감쌌다.
“거 봐.”
“아, 아무튼. 고작 던전 하나 때문에 이 정도 마력을 쓰는 건 손해야.”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이만한 마법 술식을 걸어둔 거겠지. 고진감래 몰라?”
“아무리 비 온 뒤에 날씨가 좋다지만(Apres la pluie, le beau temps)…… 그래도 이건 좀. 비슷한 아카데미 생도끼리 분담하는 건 어때? 구, 국목이랑 만나면 어쩔 거야?”
마력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듯한 마로니에.
나는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
심상치 않은 반응에 그녀의 어깨가 호달달 떨렸다.
“그, 그냥 내가 하까…?”
아니 됐다.
그렇게 마력을 쓰기 싫으시다는데 원.
“그럼 내가 이걸 뚫을게. 클리어는 네가 할래?”
역할을 바꿔서 얘기하자, 마로니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표정이 다 말해줘서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로니에에게 등을 보였다. 스태프를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 정도 마법 술식이면.’
어차피 이곳을 보는 카메라도 없으니까.
-스멀스멀.
내 어깨를 타고 검은색 마력이 기어나왔다. 뱀처럼 기어오른 자기만의 색깔. 약간의 적색이 감도는 칠흑색의 마력.
“네가 해주면 나야 좋지. 던전 클리어는 나한테 맡겨주면 정말 잘 할 수 있……잠깐, 잠깐만. 너. 뭘… 하려는 거야?”
나는 스태프를 올려 그대로 문짝을 내려 찍었다.
-콰아아앙!
볼에 나사가 튀었다.
“히약!”
깜짝 놀란 마로니에가 고양이처럼 발을 내뺐다.
동굴 안에 메아리치는 문짝의 비명 소리.
-끼이이익~, 끼이익.
살려달라고 단말마를 내지르는 것마냥 구멍 난 문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스태프를 그대로 다시 내려찍었다.
-콰앙! 콰아앙!!
스태프를 곡괭이처럼 내려찍기를 다섯 번. 한 번 한 번에 구부러진 문짝이 드디어 박살이 났다.
반쯤 부셔진 문짝을 발로 걷어찬다.
-콰당 탕탕!
박살난 문 사이로 짙은 음기가 피어오른다. 문에 걸린 마법진은 서서히 자신의 기운을 죽여가더니, 곧 수호의 목적을 상실하고 저물어갔다.
“……어버, 어버버.”
동그란 눈을 감았다 뜨며, 깜빡이는 마로니에.
나는 문턱에 발을 내딛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들어와. 네가 깬다며?”
마로니에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내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곤 부랴부랴 스태프를 챙겨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녹색의 이끼 낀 석재 벽돌로 만들어진 던전의 초입.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벽에 걸린 횃불은 꺼질 듯 말 듯 숨이 죽어가고 있었다.
“…독한 냄새.”
앞장선 마로니에가 주변을 둘러보며 코를 찡그렸다.
석회질. 알코올. 물과 피비린내. 이런저런 독한 향이 뒤엉켜 역하다.
우리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덜컹.
갑자기 아래에서 튀어나오듯 올라온 표지판.
“기, 기질?”
표지판의 글귀를 읽은 마로니에가 고개를 갸웃였다.
무슨 글이 적혀 있길래 저런 반응인가.
그녀를 따라 등 뒤에서 표지판을 읽어내리니, 그것을 다 읽음과 동시에 내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기질, 고유 특성이 강화됩니다.]
기질.
난데없는 효과가 내 등골을 오싹하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