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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를 따먹다-230화 (230/657)

< 230화 > 티밍 (1)

주먹 한 방에 서 있는 나무의 몸통에 구멍이 뚫렸다.

구슬은 재빠르게 상대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려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아까 구슬이 생도들을 저격하던 자리, 나뭇가지 위에서 검은 피부의 여성이 그녀를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귀찮아졌는데.’

국목의 힘은 가늠이 불가하다.

각 국가나 나무의 재능에 따라 강함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S급에 달하는 인물부터 A급 언저리에 머무는 인물까지 다양하다.

구슬은 낙하하는 도중 착지자세를 잡았다.

‘도망치는 게 상책.’

국목들이 가진 능력은 개개인의 무력보다 그 가치가 뛰어나다.

벗어나야 한다.

눈앞의 여성은 떨어지는 구슬을 바라보다, 따라서 공중에 몸을 던졌다.

먼저 착지한 구슬이 뒤로 물러가며 활을 잡아당겼다.

손가락에 맺힌 마력을 팽창시킨다. 그대로 떨어지는 여성을 향해 조준했다.

-쿵!

“후우.”

여성이 이어 착지하자 일어나는 먼지바람.

흙안개가 가시자마자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활을 겨눈 구슬을 향해 눈가를 좁히는 여성.

생김새로 볼 때 아프리카의 국목이다.

대륙 하나가 나라 하나인, 그러나 국토의 대부분이 게이트로 유실되어 사용할 수 없는 국가.

그러나 마물과 교전하는 것이 일상이기에 그 전투 기술 하나만은 국목 중에서도 가장 윗줄로 친다.

“야.”

싸늘하게 내리꽂히는 말 한마디.

그녀가 거친 숨을 내쉴 때면 거대한 가슴이 흔들렸다.

“싸울 거냐?”

“……?”

“지금 사람 찾고 있어서. 그다지 싸움은 구미가 당기지 않는데.”

다행스럽게도 바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소문처럼 호전적이지 않았다.

광전사라 불리는 그녀가 싸움을 마다하다니. 그것대로 이상하지만.

구슬의 눈가가 비틀렸다.

[지잉~!]

주변의 카메라가 마치 영화처럼 공중을 돌며 둘의 사이를 찍는다. 바오는 구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엘 아카데미 같은데. 이시헌 어디 있는지 아냐?”

그녀의 입에서 한 남자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시헌?”

“엘 아카데미 이시헌. 그 옆에 네 얼굴도 본 거 같긴 한데. 알아?”

알다마다.

그 사람이 구슬의 표적이기도 했다.

구슬은 씨익 떨리는 입꼬리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글쎄. 내가 안다면?”

“말해줘.”

“프히히. 보통 거기선 이유 먼저 말해야 하지 않나. 왜 찾고 있는데?”

“개인적인 일이거든.”

구슬의 웃음이 거슬렸는지 그녀가 눈가를 좁힌다.

여유가 넘치는 자세, 계속해서 마력으로 신체 강화를 하고 있음에도 마력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이시헌을 노리려하는가.

구슬은 속으로 손익을 계산했다.

이시헌을 찾고자 하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티밍이 기본 전제로 깔린 시점에서, 자신의 팀을 찾을 수 있는 위치 추적 아티펙트는 가끔씩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던전이 3일차에 개방되기 때문에 2일차인 오늘 찾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어디보자.

계산을 마친 구슬은 희미하게 웃었다.

“못 알려줄 것 같은데?”

이시헌의 탈락은 구슬의 입장으로서도 바라는 게 아니다.

되도록 끝까지 살아남아야 했다 그 사람은.

“먼 길을 돌아가려고 하네.”

구슬의 말에 얼굴을 굳히는 바오.

양손에 짙은 붉은색의 마력이 감돈다. 아까보다 덩치가 약간 커진 것 같았다.

해방 없이, 아티펙트 없이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주변 카메라 때문에 본 실력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다.

구슬은 속으로 마법을 외우면서 당긴 시위를 놓았다.

동시에 바오가 몸을 움직였다.

플라워와 국목간의 대결.

숲에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

-뚜벅,뚜벅.

마로니에는 숲을 헤쳐가며 숨을 할딱였다.

전날 밤샘의 충격과 아직 남아 있는 쾌락의 여운에 아찔한 숨을 흩뿌리면서.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안되겠어….’

이시헌과 헤어진지 1시간이 넘었을 시각.

마로니에는 끝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곳에 커다란 교전이 발생하기라도 했는지. 카메라는 다행히 마로니에를 쫓아 오지 않았다.

마력을 넓혀 주변 기척을 찾는다.

100m 근방에 사람, 아무도 없어보인다.

마로니에는 곧장 숲 나무 언저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으아…아으.”

치마 아래로 손을 넣어 속바지를 만져 본다.

그녀의 아랫도리는 끈적한 수액으로 흥건했다.

“진짜 싫어…. 짜증나.”

마법으로 아랫도리를 말리기도 잠시. 마로니에는 손가락으로 그곳을 훑으며 아찔한 숨을 뱉었다.

아직, 그때의 일이 선명했다.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어찌나 그 충격이 심했으면… 그 남자의 옆에 앉아서 한참을 같이 다니자고 말할까 고민했겠는가.

나무에 앉아 다리를 벌린 채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니삭스는 이미 찢어져 사용할 수 없었기에 벗었고. 그 때문에 새하얗고 가녀린 다리나 허벅지가 그대로 밖에 나왔다.

마로니에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팔을 깨물었다.

그대로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하면서, 경련하듯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나서 그런 걸 거야.’

마로니에는 그때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한다. 어제의 일을 돌이키며 그녀는 후회감에 수액을 흘렸다.

-…블랑쉬… 조아여…. 평새… 평생 해죠….

아아아아아아아악! 시발!

아무리 경황이 없었다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가.

그에 대한 이시헌의 대답은 또 가관이었다.

-그럼 넌 오늘부터 내 나무다. 알아 들었어?

-네헤.

그 사람은 기억 못하겠지만.

“꺄흐으…아앙!”

-핏, 피잇.

물을 뱉곤 마법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머리가 청명해진다.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때 기억이 불쾌하기 그지없었지만, 시원해진 상태에서 떨쳐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현실을 알아라.

자신은 국목이다.

프랑스의 기둥이자 앞으로 성장한다면 최고의 권력가가 될 수도 있는 목인이다.

고작 이런 일에 한눈을 팔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마로니에는 속으로 옹이로 몇 번씩이나 되뇌었다.

-뻐금, 뻐끔.

간지러운 블랑쉬의 좁은 옹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부스럭!

그때 들려온 풀숲 흔들리는 소리.

“…히이익!”

깜짝 놀란 마로니에가 더듬더듬 자신의 새하얀 팬티를 끌어 올렸다.

너무 오랫동안 즐겨버렸다.

마력까지 사용해 전광석화로 착의를 마친 마로니에.

딸국질을 하며 풀 숲을 응시하자, 그 안에서 붉은 머리를 한 귀여운 여성이 튀어나왔다.

“야한 냄새!”

이상한 소리를 하며 머리에 나뭇잎을 묻히고 나타난 여자.

마로니에는 잔뜩 놀라 팔로 자신의 가슴께를 가렸다.

상기된 그녀의 볼이 붉어졌다.

“……뭐야 남자가 아니잖아.”

붉은 머리의 여자, 아오리는 잔뜩 실망해선 볼을 부풀렸다.

“틀림 없이 그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뭐, 뭐야 너.”

영문 없이 야한 냄새라고 소리치더니. 갑자기 자기 혼자 실망한다.

마로니에는 손아귀에 마력을 응축시켰다.

아무리 정신이 흐트러진들 이정도 쯤은 할 수 있었다.

던전 안에서처럼 공포심과 쾌락에 덜덜 떨때면 모를까. 팔 한짝이 떨어져나가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이 마로니에다.

아오리는 마로니에의 마력을 보곤 슬며시 풀 숲 안으로 들어갔다.

싸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마로니에도 이 이상의 마력 소모는 바라지 않는다.

-스슥.

재차 나타난 아오리.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

“…….”

“…….”

마로니에, 아오리, 태양.

왜인지 자신을 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아, 마로니에는 슬쩍 자신의 고유 능력을 발동시켜 그들의 속을 읽었다.

그리고 곧 이어 펼쳐지는 머릿속의 단편적인 광경.

이전처럼 실감나게 소리까지 울려 퍼지지는 않았지만, 소리가 꺼진 TV 화면처럼 그들의 상상이 장면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의 머릿속에 펼쳐진 건. 난잡하고 질펀한 남녀의 사정.

물론 그 안에 마로니에는 있지 않았다.

그냥 생각 자체가 야한 것으로 꽉 찬 연놈이다.

‘…….’

마로니에는 얼굴을 붉히며 정색했다.

‘왜, 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이렇지…?’

서민들은 다들 야한 생각이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는 걸까.

나만 비정상이었어?

다, 다들 일상적으로 그런 섹스를 하는 거야?

한국인 같은데. 저 나라 서민들이 이상하다.

3명을 만났는데 3명 다 저 모양이다.

-덜덜덜덜.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일인데도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질 때문이라기 보단 그때 그 날 새김 당했던 트라우마가 재발하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쾌락의 황홀함이 새겨짐과 동시에 공포도 느끼고 있었으니.

마로니에는 속으로 연신 되새겼다.

저 여자와 남자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크고 기다란 무언가. 자신의 상상에 보이는 것은 바게트 빵이다. 방금 막 오븐에서 꺼내서 보드라운 바게트빵.

그러며 야한 생각을 다잡았다.

…그런데. 그 사람 꺼 보단 작은 것 같은데.

그게 너무 큰 거였구나.

‘읏. 바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콰지지지직!

마로니에의 손에서 거친 전기다발이 뻗어나갔다.

“힉!”

놀란 아오리와 태양은 쥐새끼처럼 도망갔고. 마로니에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뽀뽀(비쥬). 나 더 이상 못 움직이겠어.”

바닥에서 골렘이 일어나자, 그 골렘이 마로니에를 어깨에 태웠다.

마로니에의 말랑 하면서도, 약간 붉은 손 자국이 있는 엉덩이가 골렘의 어깨 위에 놓였다.

이제 좀 편한 기분이었다.

그 시각. 아오리와 태양.

“아니 미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국목 있는 곳을 데려가면 어떻게 해?”

“하지만, 익숙한 냄새가 났는 걸.”

“익숙한 무슨 냄새.”

정액 냄새. 그것도 정액 절임 냄새. 마법으로 아주 잘 처리했어도 알 수밖에 없다.

목령왕의 후손이라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아오리는 그리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가끔 여자의 비밀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얼마 안 가서 만날 거야.”

그 남자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아오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만나면 뭐 어쩔건데. 다시 말하지만 여기선 섹스 못한다니까?”

태양은 염세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아오리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던전안이라도 데려가서 하지 뭐.”

“뭐? 던전 안에서 덮치겠다고?”

태양은 반문하려다 말을 잃더니, 이내 진지하게 턱을 짚었다.

“……천잰데?”

의외로 괜찮은 방법이었다.

*****

산수유가 있는 곳까지 뛴다.

거리는 상당히 먼 것 같다.

이 던전을 한 방향으로 횡단하려면 3일은 꼬박 뛰어야 한다니. 잘못하면 며칠 동안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걔가 자기 몸 하나 못 챙길 애는 아니니까.’

국목급은 아니더래도 엘 아카데미의 차석이다. 정상급 아카데미의 가장 윗줄 취급 받는 인재인데 설마 당하겠는가.

전혀 걱정이 없다. 걱정이 있다면 모유 단지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것 정도. 이것도 상당히 큰 일이긴 했다.

‘빨리 산수유를 만나서. 집이라도 지어야지.’

카메라는 확인하지 못 하는 사각이 막힌 텐트 말이다.

그 안이라면 걱정 없이 산수유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

겸사겸사 권능으로 치료도 해주고..

‘옆에 있으면 손이 많이 가는 사촌 여동생 같네.’

갑자기 찾아와 애 좀 돌 봐 달라. 나는 그냥 TV나 몇 편 보고 말면 되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손이 굉장히 많이 갔었다.

걔는 지금쯤 잘 지내려나.

가족 걱정을 해봐야 소용없다.

-부스럭!

그때 마력 감지에 누군가 걸렸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숲 속 근처에 가만히 있는 인기척을 주시했다.

기척은 둘이었다.

사람이 둘이 아니라 사람과 마물이 각각 하나. 지금 막 대치중인 것 같은데, 사람 쪽이 밀리는 것 같다.

나는 숲을 헤쳐 그곳으로 다가갔다.

머지않아 발견한 사람은 방금 막 늑대에게 당하기 직전이었다.

검은색 긴 생머리에 공포에 질린 얼굴.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듯한 순한 인상이다.

“하아, 하아.”

검사인 것 같은데 지쳐 보인다. 마력 통도 텅텅 비어 보였고.

여자는 늑대랑 대치하다 나를 발견하곤 다급히 소리쳤다.

“아! 도, 도와주세요!”

도와 달라니. 엄연한 대회인데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배낭을 매고 있는 걸 보아 던전을 깬 것 같은데. 운 좋으면 아티펙트를 하나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침 밥 때이기도 했다.

나는 스태프도 들지 않고 손으로 전기를 일으켰다.

그 순간 내 눈에 비친 여성 목인의 나무 이름.

[개벚지나무]

이것 또 이상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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