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 바오밥나무 (2)
“형님.”
동쪽으로 걷기를 한참. 점심 식사겸 주변에서 물고기를 낚아 굽고 있으니 태양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바닥에서 떨어진 이파리를 들어 올리며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또 이상한 소리 할 거면 그만 둬라.”
“이건, 가르침입니다.”
가르칠 게 뭐 있어.
“자 보십쇼. 뭘로 보입니까?”
“평범한 나뭇잎같은데.”
“어허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나무애호가들은 이걸 나뭇잎이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왕 되실 분이 이러면 안되죠.”
얘가 또 정신이 나가가지고 미친소리를 하려는구나.
하도 듣다보니 이제는 좀 궁금해졌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생선 꼬리에서 기름이 떨어지는 걸 보다가, 태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사뭇 진지하게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었다.
이향은 그 뒤에서 우리들은 신경쓰지 않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형님, 이거 보십쇼. 야. 걸레.”
“응?”
나무에 기대 쉬고 있던 아오리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거 뭐로 보이냐.”
그가 손에 쥔 이파리를 보자, 아오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거만한 숨을 내뱉었다.
그는 검지와 엄지를 맞닿도록 대더니. 그것을 비비적거리며 피식 웃었다.
미치광이의 야릇한 손놀림이다.
“에이… 뭐긴 뭐야. 트리토리스지.”
“들으셨죠?”
“그거랑 이거랑 대체 뭔 관계인데.”
나무는 전신이 성감대인 야한 생명체입니다.
내게 최면이라도 걸 듯이 태양은 당연하게 속삭였다.
“잎의 구조는 간단해요. 이 전체 부분을 잎몸. 그리고 이 실 같은 부분을 잎맥. 가지와 이어주는 부분을 잎자루라 하죠.”
“그래서.”
“…사람의 몸과 같아요. 처음 가슴을 만질 때는 아무렇지 않지만, 점점 자극을 진행시켜나가면 개발이 되죠.”
태양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잎을 어루만졌다.
검지와 중지로 나뭇잎을 고정시키고 엄지로 젖꼭지를 문지르듯 살살.
-틱, 틱.
잎에 난 가장 중앙. 잎맥 중에서도 중심에 있는 주맥을 튕기듯이 어루만진다.
“평상적인 나무의 애무법입니다.”
“……이 이야기 그만하고 싶은데.”
“어허, 형님. 훌륭한 나무의 남편이 되고 싶다면 배워야죠.”
“여기 상식이니까 다른 말은 안하겠는데… 내 기준에선 좀 어지럽다 야.”
태양은 진지하게 말했다.
“이걸 오분간 유지시켜 주면, 옹이가 살살 젖어들 겁니다. 이때 경멸스럽게 ‘축축해졌네 이년. 살살 뿌리가 저려오지? 좋기는 한가 봐?’ 하고 외쳐주면 효과는 두 배입니다. 나무는 지배당하는 걸 좋아해요.”
“나무 옹이가 왜 젖는데.”
“그야… 느끼니까요?”
그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물론 나무마다 성감대는 달라서, 옹이 안인지, 나뭇잎인지 꽃잎인지는…. 형님이 직접 찾아가야 할 겁니다.”
“어, 응, 그래.”
“말이 좀 띠꺼우십니다. 형님.”
나는 뒷목을 긁적였다.
나무를 먹느니 뭐니, 그냥 한낱 자위 행위일 뿐 아닌가. 그리 생각했는데 태양이 내뱉는 소리는 상상 이상의 정신나간 말이었다.
이들은 나무에 진심이다.
천천히 애무부터 시작한다고 하니, 인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거 아닌가.
“그냥 냅다 박으면 안 돼?”
“…….”
태양은 헉 숨을 삼켰다.
“형님 뭘 좀 아시네요. 저도 짐승같은 거 좋아합니다. 원래 사람들이 경악할만한 행동이 쾌감은 좋은 법이죠.”
그게 짐승같은 행동이었구나.
일전에 만났던 치유의 세계수를 떠올린다.
그 녀석은 애무는커녕 냅다 내 그곳을 자신의 옹이에 냅다 넣고 봤었다.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까 뿌리랑 가지로 내 몸을 더듬었잖아?’
그게 제 딴에는 애무가 아니었을까?
치유의 세계수. 생각할수록 두려운 나무다.
지금 뭘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다른 남자들한테 트라우마를 심어주지만 않았으면 한다.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부르르.
몸이 공포심에 떨렸다. 목간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유용할 겁니다. 이번엔 꽃을 애무하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우선 코 먼저 박는 게 예의인데….”
“오늘은 그만하자.”
연속적으로 떠들어대니 실감이 날래야 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정말 목령왕의 힘을 이어받긴 했구나.
그리고 언젠가는 옹이에 자위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실감.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음란마귀의 인도.
마뜩찮다. 아무리 내가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 ‘순결의 세계수’가 화를 냅니다! 】
그리 생각하니 머릿속에서 순결의 세계수가 나를 욕해왔다. 이젠 이모티콘까지 쓸 줄 안다.
나이가 좀 되어 보이는데. 그런데 왜 인간은 되고 나무는 안 되냐.
얘도 참 이상한 놈이다.
“니들 말 들으니까 쌔하긴 하다. 진짜 내가-”
“형님.”
내 말을 끊고 태양이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희미한 마력의 흔적.
“지금 누구 오는 것 같습니다.”
이곳을 향해 누군가 달려오고 있다.
기습.
아무리 그래도 네 명이 모이는 곳을 습격하려는 생도들은 많이 없을 텐데.
약탈이라도 하러 온 것일까.
-스스스.
저 멀리서 풀숲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을 구르면서, 넝쿨과 가지를 통째로 끊어내는 소리다.
즉시 마력을 넓혀 상대의 움직임을 꿰뚫어본다.
사람은 한 명. 이곳으로 쇄도하고 있다.
“형님.”
“준비해.”
나는 즉시 바닥에 내버려 두었던 스태프를 내 손안으로 불러왔다.
태양은 숨을 참으며 마력을 신체에 얇게 두른 뒤, 등 뒤에 있는 두 명에게 소리쳤다.
“누구 온다!”
즉시 긴장하는 아오리와 이향.
“아, 알았어요!”
“향이 너는 아직 회복 덜 됐으니까 뒤로 빠져있고. 니는 빨리 여기로 와. 형님 지켜.”
“응.”
이향은 양손 검, 태양과 아오리는 나와 비슷하게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 격투가다.
때때로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 관계를 나눈 목인이나 나무의 힘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무기든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나는 손가락 마디를 움직여 등 뒤에 얇게 저며낸 윈드 커터를 만들었다.
-우우우웅!
마력이 떨리면서 나타나는 반월의 마법.
-드득!
가지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아오리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커다란 건틀렛을 양손에 꾹 쥐어, 내 앞에 섰다.
지금은 마법사다. 제 본분을 다하기 위해 한 발자국 물러선다.
마력을 퍼뜨려 적이 올만 한 곳에 하나씩 마법을 깔기 시작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새. 높다란 나무의 가지 위. 혹은 풀숲의 아래.
상대가 침투할 수 있는 장소에는 전부 하나씩 마법을 깔아두었다.
밟으면 바닥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종류의 함정. 스태프의 효과가 좋아 마력 소모도 적다.
“버틸 수 있겠어?”
3초.
그쯤이면 도착한다.
마법을 발동 직전까지 놔둔 뒤 태양에게 물었다.
“에이 형님. 제가 그렇게 약한 놈으로 보입니까. 이래 보여도 어지간한 국목 정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태양.
저거 믿어도 되는 걸까.
-쿵!
그 순간, 태양의 앞에 있던 나무의 몸체가 박살났다.
-우지지지직!
갈갈이 찢긴 나무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우리의 반대편으로 넘어간다. 나무의 파편이 튀었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검은색의 주먹, 손가락 마디의 위로 붉은 마력이 용솟음친다.
파편 사이로 희번뜩이는 노란 눈동자.
“찾았다.”
서슬퍼런 목소리로 말해온 여자의 뒤로, 수십의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지이이이잉!]
각양각색. 각자의 렌즈를 확대 시키며 우리를 영상 안에 찍어 담아내는 재빠른 카메라들.
철새처럼 지나간 카메라들이 우리를 원형으로 둘러 싼다.
-쾅!
나무를 뚫고 들어온 여자가 손을 뻗었다.
보기 힘든 속도.
태양이 급하게 양팔을 뻗어 자세를 잡았으나, 그보다 더 빠르게 그의 손목을 채간 그녀가 그대로 냅다 태양을 던져버렸다.
“읏, 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 번의 신음만을 남기고 내던져진 태양.
나무에 부딪히지도 않고 멀리 날아간다.
“…저 병신.”
사라진 태양을 보며 아오리가 중얼 거린다.
-툭.
헤진 신발로 흙길을 밟으며 얼굴에 묻은 나무의 파편을 닦아내는 여자.
그녀는 호승심 가득한 얼굴로 내 가면을 바라보았다.
“이시헌.”
길게 찢어진 입꼬리. 붉은 마력.
자신의 마음대로 찢어발겨 자기 대륙의 의상처럼 맞춘 노출 많은 의상.
배 부분과 양팔 부위의 천을 찢어 윗 가슴과 밑가슴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검고도 갈색이 뒤섞인 피부.
“드디어 찾았-”
나를 보는 그녀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 전이었다.
“아오리, 비켜.”
“응.”
즉시 물러선 아오리를 확인한 후 바로 마법을 쏟아부었다.
하늘에 쟁여둔 윈드 커터를 스무발.
여성이 서 있던 자리에 수십의 마법이 비처럼 쏟아졌다.
땅고르기를 하듯 풀과 가지들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바닥에는 호를 그린 윈드 커터의 자국이 남았다.
-콰가가가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마법을 발동시켰다.
함정으로 설치해둔 마법을 즉석으로 궤도를 바꿔, 여성에게 날아가도록 설정했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잎사귀 따위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먼지 폭풍이 주변을 감돌 무렵. 나는 탄막을 멈추고 스태프를 거두었다.
머지않아 드러나는 여성의 실루엣.
“후우….”
역시 멀쩡한가.
구 형태의 방어막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상급 마법. 나이테.
국목이나 귀족들 사이에 극비로 다루어지기에, 마법 주문과 이론은 생도들이 알 수 없는 마법.
그 효용성은 마법사에게 있어 예비 목숨과도 같다 한다.
띠 형태의 갈색 원이 그녀를 중심으로 훌라후프 하듯 돌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국목, 바오밥나무. 그 입가에는 웃음이 만연하다.
‘무슨……. 국목이 여길 노릴 이유가 어디에 있어?’
나를 드디어 찾았다고 말했다.
안면을 튼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또 나를 찾아왔다.
아오리나 태양을 이어서. 설마하지만 이 새끼도 목령왕의 후손이라던가, 그런 것은 아닐 터다.
“…인사 한 번 거칠게 구네.”
여유는 없다.
한 번 거두었던 스태프를 다시 바오에게로 뻗었다.
등 뒤에는 혹시 몰라 양손검을 들고 있는 이향이 있다.
아오리 역시 아끼지 않고 마력을 표출한 상태다.
그리고 태양은….
-쿵!
이곳으로 다시 날아오고 있다.
-콰앙!
쇄도한 태양의 주먹이 바오의 나이테를 두드렸다.
큰 굉음과 함께 방어막에 금이 가며, 그의 주먹이 바오의 신체를 향해 쏘아졌다.
물론 목인의 힘은 쓰지 않는다.
방송에 목귀의 힘이 나타나기라도 했다간 바로 표적이 되어 처리당할 테니까.
구도는 난전이었다.
나이테를 깨부숨과 동시에 상대의 카운터를 막아내고, 무릎을 치켜든 태양.
그런 태양을 향해 반격하려하지만, 아오리가 중간에 끼어들어 바오를 덮쳤다.
손가락을 펼쳐 마력을 끌어모은다.
‘……어차피 내가 아는 마법 중에 국목을 조질만한 마법은 없고.’
회오리치듯 손 안에서 팽창하는 순수한 마력 구슬.
물론 그 안에 담아내는 것은 바람의 기운이다.
내가 아는 최상급 마법은 이 상황에선 쓸 수가 없다.
공격 마법이 많기는 하지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는 없는 상황.
손 안에 있는 마력을 길게 늘어뜨린다.
기다랗게. 푸른 창을 만든다.
공명하듯 일어난 창 같은 화살이 내 손 안에서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쓸만한 마법이 없으면 직접 만든다.’
휘리리릭. 회전하는 바람 화살이 위험한 소리를 내며 주변 공기를 빨아들였다.
완전한 내 창조는 아니고, 본디 있던 마법들을 조금씩 변형시켜 합친 마법.
그것도 파괴력에 치중하여 만들었다. 위력은 상급에 다다른다.
-쿵!
그때 태양이 바오의 힘에 밀려나듯 내 앞에 섰다.
“형님….”
“어.”
“시발 보통 국목은 아닌 것 같은데요.”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이다.
“몇 번 정도 주먹을 나눠 봤는데. 뼈가 울립니다. 아오리 쟤도 몇 초 못 버텨요.”
시선을 앞으로 돌리니 격하게 몸을 꺾으며 고진분투하는 아오리가 보였다.
자그마한 몸집으로 민첩하게 바닥에 달라붙듯이 싸우는 고양이 같은 자세.
나는 그 둘 사이에 장전한 창을 날려 보냈다.
이름은…….
[상급 ? 풍련(風蓮)]
회전하는 바람의 창이, 마치 연잎처럼 흔적을 흩뿌리며 아오리와 바오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콰앙!
귀청을 뜯는 소리와 함께 앞에 있던 나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주변 풀숲을 흔들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아오리와 바오는 침묵을 유지한 채 거리를 벌렸다.
“협상.”
내가 먼저 운을 띄었다.
“굳이 여기서 소모전을 할 필요는 없잖아.”
마로니에와 비슷한 방식의 거래. 고작해야 3일째다.
바오는 내쪽을 흘기며 미소를 지었다.
“글쎄……. 나는 아무 상관 없는데? 이시헌. 맞지?”
“어.”
“너만 있으면 돼. 이시헌.”
묵직한 선고. 바오의 손가락이 나를 향한다.
그리고 즉시 그녀의 정강이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순간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그녀의 뒤편에서 나타난 듯 했다.
[바오밥나무]
알고 있다. 그 나무인 거.
국목 중에서도 전투 능력만큼은 상한가를 찌른다는 그 년이 아닌가.
-번쩍!
숨이 한 번 쉬어질 타이밍.
태양과 아오리가 잠시 긴장을 풀자. 상대가 먼저 움직였다.
내 머리를 바오의 손이 낚아챘다.
거대한 손이다. 깨닫고 보면, 상대의 몸집이 상상 이상으로 커져있었다.
마치 거인이라도 되는 듯하다.
2m 70cm.
그쯤 되기라도 하나.
등골이 오싹하며 내 몸이 하늘로 띄워졌다.
손바닥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채.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쿵!
-삐이이이이이.
귀에서 울리는 이명.
나무의 몸통에 뒤통수를 부딪혀서 그런지 눈앞이 아찔하다.
나는 여성의 손가락 틈새 사이로 바오를 바라보았다.
내 배 위에 앉은 거대한 여자.
길게 쭉 뻗은 허벅지가 m자로 벌려져 내 몸통 위에 앉아있다.
숲지기 선발전의 옷인데, 허벅지 부근도 찢어버려 사타구니가 희미하게 보였다.
속옷도 입지 않았나.
“…….”
-지끈.
머리가 아프다.
“너…. 도원향에서 왔지?”
아오리나 태양, 깨닫고 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얼굴을 잡힌 채 먼 거리를 날려 보내진 모양이다.
바오는 내 몸 위에 앉아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밥.”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
“그 새끼 어디 있는지 말해.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