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 메리 (1)
“…왜, 왜 안왔어. 왜.”
메리가 나를 탓하듯 처량하게 중얼거린다.
주변에서의 웅성임이 퍼져나갔다. 나는 뒷목을 긁으며 메리의 앞으로 나갔다.
비밀 조항이 있어 인터넷 상으로 소문이 퍼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시선들은 거북하다.
“인간 주제에…. 왜 내 말을 안 들어.”
목소리가 울음에 가득 차 있다.
나는 별 감정 없는 눈으로 메리를 바라보았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무슨 얼굴을 해야할지 몰랐다. 표정을 고쳐야 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그래서인지 별 생각 없는 내 시선을 본 메리는 더욱 비통하게 어깨를 떨었다.
아마도 내가 메리에게 정을 완전히 떼낸지 오래라고. 메리는 그렇게 생각한 듯 싶다.
-뚝.
메리의 눈알에 습기가 차더니 왕방울만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 했으면 됐잖아….”
그렇게 말했다면 인간 새끼가 엄살도 피우냐며 아득바득 소리를 질렀겠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리의 성격은 그랬다.
틈만 나면 나를 불러대서, 마사지사에 뿌리 관리에 물 주기에 비료까지.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들을 나 혼자 떠맡았다.
모두 상당한 기술이 요해서, 잠재력이 높은 내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수십년의 경력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놈한테 너는 근성이 없다니, 이래서 인간이니 하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욕을 먹는 상황을 상정하고 나선다 하더라도 그렇다.
-뚝, 뚝.
바닥 타일에 떨어지는 눈물 방울들.
와중에도 나를 보는 눈빛은 기가 드셌다.
종종 돌보면서 메리는 예의를 밥 말아먹은 공주님같은 인상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머리 스타일이나 모습을 보면 정말로 그러했다.
상상 속의 메리를 직접 꺼내다가 구현시켜놓은 느낌이다.
“저 사람 누구야?”
“몰라? 이시헌. 엘 아카데미에서 정시우랑….”
일단은 소란을 잠재워야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도어락을 열어 비밀번호를 빠르게 입력한 뒤, 내 옆에서 빤히 나를 보고 있는 메리에게 말했다.
“일단, 들어가시죠 메리님.”
코를 쿨쩍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메리.
이게 나무인지 틈만 나면 울어대는 사촌 동생인지 모르겠다.
어쩐지 여유롭다 했어. 오늘 따라 아침밥이 입에 맞더라.
나는 한숨을 흘렸다.
*****
메리가 맨발로 거실 안에 들어오면 바닥에는 자그마한 발자국이 찍혔다.
눈 속에 강아지가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것처럼 작게 찍힌 발자국을 보니, 왜인지 귀엽다는 감상이 일었다.
흙 알갱이가 바닥 타일에 떨어진다.
새하얀 소복을 양 손에 말아쥔 채. 나를 따라오는 메리.
“옆에 소파에 앉아주세요. 금방 차를 타 갈 테니까요.”
“……응.”
코를 훌쩍이면서도 대접받는 게 당연한 듯 소파에 앉았다.
나는 찬장에서 고급 찻잎을 꺼내며 메리에게 말했다.
“그런데 인간화라니, 인간은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어쩌다 보니 비꼬는 것이 되었지만. 나로서는 순수한 물음이었다.
인간을 그토록 혐오하는 메리가 인간과 비슷한 몸을 가지는 걸 거리끼지 않을 줄이야.
“네가 안 오잖아. 계속 불렀는데. 전부 다 안 왔잖아.”
메리가 내 말의 의도를 잘못 해석했을까.
소파에 앉아 있는 메리의 얼굴이 다시 울상이 되었다.
-조르르륵.
찻잔에 차를 담으며 자꾸만 나를 흘기는 메리를 보니, 차마 말로 담을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저런 애한테 작업을 치려고 했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면서 내가 소녀 체형을 건드는 쓰레기가 된 것 같아 어지럽다.
물론 나이는 스물여덟으로 나보다 많다지만, 인상은 원래 생김새를 따르는 법이다.
나는 다 끓인 차와 다과를 메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소파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멀뚱멀뚱 서 있으니 메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야….”
“네.”
얇은 검지 손가락을 펴서, 자신의 앞쪽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는 메리.
“넌…안 앉아?”
그 메리가 앉는 걸 허락한다고?
10cm 이상 얼굴이 붙어 있을 때는 숨도 쉬지 말라고 하던 메리다.
뭐라고 했었나. 내가 뿜은 이산화탄소를 마시는 것조차 기분이 더럽다고 했던가.
그런 신랄한 욕은 또 처음 들어봐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확실히, 태도가 많이 유해지긴 했네.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소파에 앉으며 가면을 내려두었다. 표정을 사근사근하게 풀어, 언제나 했던 것처럼 희미한 미소를 입에 띄웠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내 질문에 메리는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설마 목적 없이 그냥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에 온 건가.
그건 아닌 것같고, 아직 해야 할 말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뭐. 이런 애를 상대로 내가 뭘 하겠냐.
치유의 세계수로 담당 나무가 바뀌었으니 애 하나 어르고 달랜다는 생각으로 대해야지.
얌전히 앉아 웃음을 띄운 채 메리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오랫동안 느긋하게.
“너.”
손톱에 닿은 찻잔의 온도가 서서히 식어갈 무렵.
메리가 조심스럽게 제 입술을 떼어냈다.
“저번에 말한 거…. 무슨 의미였어?”
“저번에 말한 거요?”
“날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던 거….”
만족시킬 수 없다.
아마 내가 화난 척 메리의 방에서 뛰쳐나왔을 때 했던 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 그거요.”
사실은 연기였다.
그래야 좀 버릇이 고쳐질 것 같아서.
지금 상태에서 그 말을 내뱉으면 어떤 후폭풍이 밀어닥칠까.
나는 말을 아끼며 머리를 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만 하면서 대했던 녀석이다.
“…….”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덜덜.
꽉 쥔 두 주먹도 떨리고 있다.
인간이 되면서 감각부터 시작해 감정까지 제대로 조절이 안되는 모습이다.
인간화에는 이런 부작용도 따르는 건가.
마치 낯설고 무서운 장소에 데려놓은 강아지들이 보일 법한 증세다.
-깜빡.
저 붉은 눈은 또 왜 이렇게 순진해 보이는지. 주먹은 또 뭐 저렇게 귀엽게 쥐는지.
나무가 아니라 인간, 그것도 아이의 모습으로 오니까 흔들리게 된다.
나이가 많아도 애는 애다. 그리 생각한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메리에게 건넬 말을 찾아냈다.
어떻게 잘하면, 이 여자의 나무 우월주의를 떨쳐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감정에 쏠려 책망하는 짓은 되도록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해명 먼저.
“그러니까….”
메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혼을 듣는 아이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어선, 침을 삼킬줄도 모르고 입을 오물 거리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이 무엇일까.
말을 이으면서 꾸준히 생각했다.
“메리님이 절 싫어하니까. 제가 아무리 메리님께 무언갈 해드려도… 오히려 기분만 상하실 것 같아서.”
지금까지 내가 들은 욕은 날이 서다 못해, 인신공격까지 들어가 있었다.
“그럴 바에는 그냥 탈락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어요.”
내 말이 끝나는 즉시 메리가 말했다.
“…그럼, 왜 안왔는데. 내가 불렀는데 안 왔잖아….”
그것도 똑같다.
“괜히 제가 갔다간, 또 인간이라고…. 욕을 먹고, 메리님도 스트레스 받으니까.”
“내가. 내가, 스,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 했어? 그런 말 한 번도 안 했-”
“했었어요.”
“…….”
그것 뿐만이 아니다.
“저를 낳은 부모님 욕도 하셨고. 제 연인 될 사람에. 제 능력까지 전부.”
메리는 내게서 시선을 피했다.
앙 다문 입술은 떼를 쓴다기 보단 할 말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나.
항상 그렇게 입을 거칠게 쓰다보니, 어떻게 욕을 해야 더 상대를 골려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메리는 그런 나무였고. 욕을 하려고 머리만 굴리다보니 정작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건, 네가 인간이니까.”
아이같은 투정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당, 연한 건데…”
“메리님.”
“힉….”
왜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느냐.
다른 나무들에게 상식이 주입당한 것도 아니고. 혼자 상처란 상처는 다 받으면서도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내밀어오는걸 이해할 수 없었다.
메리는 다시 나를 보기를 포기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메리님.”
다시 그 이름을 부른다.
메리는 그제야 겨우 눈꺼풀을 올려서 내 눈을 바라보았다.
불규칙적으로 어깨가 움직이면서, 딸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긴장이 풀리지 않을까 걸어 다니는 페로몬도 발동한 상태.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아요.”
“뭐가….”
“메리님은 나무잖아요. 인간보다 더 위에 있는 계급.”
어느정도 메리의 말을 인정하는 듯한 말에 메리가 기세를 조금 회복해 말해왔다.
물론 아직도 목소리는 떨리는 상태였다.
“맞아, 내가 더 위에, 있으니까…. 당연한 거니까…. 내가 욕해도. 너도-”
“위에 있으니까?”
내 말에 입을 다무는 메리.
“메리님.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
끄덕.
“지금까지 메리님을 만난 인간은 어떤 식으로 반응했죠?”
어린애를 살살 다루듯이.
목소리는 최대한 나긋하게, 편해질 수 있도록.
마력을 살짝 주변에 흘려 방 공기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비위를 맞추려고 했어.”
“그게 당연하니까?”
“응.”
“하지만 끝은 어땠죠?”
“뒤에서 날 욕하거나, 도망쳤어.”
이번에는 다소 질문을 다르게 바꿔본다.
“저는 어땠어요?”
“…너도, 똑같아.”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
“너는 그 녀석이랑 다르게 욕도 안 했고…. 그냥, 미안하다고 했잖아. 사실 미안할 거 없는데….”
잘 알고 있네.
자기가 인간에게 짓궂게 굴고 있다는 건 메리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
그걸 알면서까지 인간을 몰아붙이는 이유가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그것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눠야만 알 수 있다.
질문이 끝나고. 나는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저 지긋하게 메리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한참을 벌벌 떨었다. 정신이 산만한 듯 이 자리를 피하려는 낌새도 보였고, 시선을 최대한 돌려 내 눈을 보지 않으려고도 했다.
“왜… 아무 말 안해?”
“왜일까요.”
질문에 질문을 던진다.
한참을 기다렸다. 시계의 분침이 몇 번이나 움직였다.
최대한 메리가 감정적으로 내게 말을 꺼내놓을수 있도록.
그 판을 최대한 깔아주었다.
“…너도.”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너도 내가 싫어?”
나는 단답했다.
“싫어요.”
쿵. 가슴이 철렁이는 소리.
찢어질 듯 아픈 가슴을 쥐고, 메리가 눈을 깜빡였다.
젖은 눈을 말리려고 할수록 오히려 눈물은 터질 듯이 새어나와서, 소파의 면 위로 뚝뚝 떨어졌다.
“아마 인간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죠.”
“…읏. 읍.”
세계수 이새끼들은 애 하나 교육 안 시키고 뭐하냐.
인간 없으면 지들 명예나 권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다름아닌 나무의 요람인 이 곳에서 인간을 떨어진 쓰레기나 주워먹는 개취급을 해버리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
…아니면.
메리가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시원찮은 나무라거나.
치유의 세계수는 이곳에 도착한 뒤로 많은 교육과 지도를 받았었다.
그러니까 메리 얘는 그런 셈이다.
귀족 중에서도 변두리 쪽에 있는 녀석들.
잘난 구석은 없어서, 그렇게 생긴 열등감을 남을 까내리는 것으로 채우는 족속.
“…흑, 으으.”
메리는 울음을 최대한 참고 있었다.
방울진 눈물이 계속해서 바닥에 떨어졌다.
“다… 똑같아….”
“네?”
“…나만, 나만 가지고 그래….”
또 투정이다.
나는 지겨운 마음을 감추며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했다.
그래, 나무니까.
정신 연령이 남들보다 좀 어릴 수도 있지.
“나는 방출할 거라고…. 맨날, 맨날, 욕하고….”
“그런가요.”
“세계수가 못되고… 성장이 미숙하니까 항상….”
이거 어쩌나.
충격을 주려고 했는데 너무 치명타가 들어갔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하지.
시바나 사촌 동생을 달랠 땐 안아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말없이 일어나 메리에게 다가갔다.
메리는 내가 오는지도 모르고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정신이 무너졌을 땐 대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잘못을 계속해서 몰아붙이거나.
아니면 최대한 공감해주면서 일단 달랜 뒤에, 천천히 설득하거나.
메리에게 무엇이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음이 가는데로 손을 움직였다.
“제 말 아직 다 안끝났잖아요.”
무릎을 꿇어서 메리를 안았다.
조금 도망치려고 하는데, 이윽고 품에 안겨서 눈물을 계속해서 짜냈다.
“힘든 거 알죠. 남들이 다 욕하니까 메리님도 욕하게 되고. 그런데 그렇다고 보는 사람마다 항상 욕하면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죠.”
“…흑, 읍, 으아아앙.”
에휴, 이젠 대답도 못한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계속 메리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니까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게, 메리님이 손을 내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내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머릿속에 박아 놓으면 한 차례 태도가 유해지겠지.
메리를 벌레 보듯 하는 인간들도 몇 명 정도는 그녀의 변화에, 보는 눈을 고칠지도 모른다.
“으아아앙… 흑, 끄흡, 흑.”
언제 그치냐 이거.
아주 예전에 느꼈었던, 고된 애 달래기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