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화 > 마력의 형질
“사람에 따라 마력의 형질은 다르죠. 그것은 색, 재능, 신체 변화로 마력의 형질을 짐작할 수 있고. 같은 종의 목인이라도 개개인마다 형질이 다를 수 있어요.”
현자는 고개를 살짝 숙여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이 마력의 형질은 비슷할 순 있어도 완전히 같을 수 없어요. 마법을 사용한 뒤에는 언제나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죠. 억지로 형질을 뭉개거나 바꾸지 않는 이상, 그 형질을 따라가면 마력의 주인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요. 영화같은 곳에 보면 마법으로 범인을 쫓는 장면 많이 보죠? 그 원천이 이거에요.”
그리 말한 그녀는 손가락을 튕겨 우리 앞에 세 개의 돌을 가져다 주었다.
새파란 기하학적인 무늬가 각각 다르게 새겨진 돌덩어리.
“이 세 돌에는 각각 다른 형질의 마력이 들어있죠.”
그리 말한 현자는 이번에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다른 돌을 꺼내었다. 다른 돌과는 달리 문양이 없는 돌이었다.
물론 그 안의 돌에도 희미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마 이 세 개의 돌 중에서, 현자의 손아귀에 있는 돌과 같은 형질의 마력을 품은 돌을 골라보라는 것이겠지.
“마법사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계시겠죠?”
한 번 황도에게 들었던 이론이었다.
나와 마로니에는 거의 동시에 손을 뻗어 각자 자신의 테이블에 있는 돌을 가리켰다.
나는 첫 번째, 마로니에는 세 번째 돌이었다.
“두 분 다 정답이에요.”
현자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우리가 가리킨 돌에서 검은색 마력이 치솟았다.
“마력, 마나는 만물의 원형이죠. 이것이 선의 형태인가 입자의 형태인가는 논란이 많고, 세피로트님의 지식으로도 감히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마나 만으로 모든 걸 이룰 수 있죠. 전자기학. 양자중력. 시공간…. 쿼크. 그 모든 게 지금은 언제까지나 이론 마나학에 불과한 것들이에요.”
신체의 구성 역시 마력이다.
다르게 보자면 나나 세계수, 마로니에가 사용하는 권능 역시 마력의 일종이라 할 수 있었다.
어째서 마력으로 권능과 같은 힘을 내지 못하는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마나 중에서 인간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형질의 마력은 아주 극 소수에 불과하다고 하니까.
그야말로 미지의 힘인 것이다.
“그러니 한 사람의 학자로서 제가 가르친 지식조차 맹신하지는 마세요. 지식은 끝없는 탐구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마법은 하나의 현상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손끝이나 신체 부위 바깥으로 직접 현상을 일으키는 것.
그것을 이해하려면 수백 장의 종이만으론 부족하다.
나와 황도 같은 경우는 순전히 직감만으로 마법을 쓰는 쪽인지라,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비교적 마법을 일으키기 쉽다.
‘그렇다고 이론 공부를 안하는 건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마법을 일으키는 쪽이든, 하나하나 짜내어 일으키는 쪽이든 공부량은 비슷하다.
그저 적성의 차이일 뿐이다.
“이 형질은 제가 말했듯 사람마다 차이가 나죠. 과장을 좀 보태면 마력을 보면 그 인간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도 해요.”
“성격이요?”
“네. 물론 자기 만의 색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어요. 각성에 가까운… 특별한 태생, 혹은 특이한 기연이나 그럴만한 사건을 겪은 인물만이 가지는 게 마력의 ‘색’이니까요.”
현자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예컨대 이시헌님은 검은색.”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내 손 바깥으로 마력이 쭉 뽑혀나간다.
손톱 끝 부분에 검은색 마력이 실처럼 튀어나왔다.
“지배와, 억압, 자유. 그러한 열망이 구현된 독특한 마력이죠. 가장 가까운 과거의 인물로는 목령왕과 천마가 있겠네요.”
“…목, 목령왕이요?”
슬쩍 나를 보는 마로니에.
그리곤 다시 현자를 바라보았다.
“저기….”
목소리에는 살짝 불쾌함마저 어려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사람한테 그런 비유는 좀.”
“아.”
“저희 세대들은 민감해서요. 단순 비유를 하기 위함이라지만, 그 사람은…. 현자님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해요.”
“미안해요 마로니에. 이시헌님도 죄송해요.”
사과하는 현자가 나를 슬쩍 보았다.
젠장. 마로니에 너는 쓸데없이 착해서.
내가 그 목령왕인데 뭐라 반응하기가 쉽지 않다.
“기분 풀어….”
내 표정이 살짝 미묘한 걸 알아챘는지 마로니에가 손끝으로 내 팔을 콕 집었다.
“아니야. 됐어. 계속 설명하세요.”
목령왕과 천마.
말이 그렇지만 사실 검은색 마력은 상당수 존재 해왔다.
천도가 검은색 마력을 찾아다니면서 내게 기술을 이어준 것은, 천마의 무술이 검은색 마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져서 그런 거고.
그 위력과 압박감 때문에 검은색 마력은 천마의 증거. 그렇게 여겨져 온 것이다.
……다만 과거에서 배운 마기는 조금 다르다.
그건 ‘색이 다르다.’라고 표현하기로는 부족한 게 많다.
기괴하고 흉포한, 마력이라고 부르기도 거리껴질 힘이다.
‘애매했던 흑도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준 능력이니.’
흑도.
그 시작은 아카데미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발현된 검은색 마력이었다.
생도들의 훈련을 지켜보다 처음 발현되었었나.
진달래의 양아버지, 이성한과 싸울 때에는 그것을 투기의 극치라고 여겼다.
실제로 검은색 마력은 몸에 두르면 기초의 마력과는 전혀 다른 성능을 보여주었으니까.
그 검은색 마력에서 시작된 흑도는 연옥에서 처음 제 모습을 갖춰나갔다.
당시 흑도의 힘 또한 자각하지 않고 발현해낸 미약한 마기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지금 기준에선 우습다.
중간고사에서도 사용했으나 완성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힘이었다.
흑도가 완성된 건 천도와 백도가 끝끝내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여덟 번째 초식.
과거에 가서 천마가 직접 나에게 전수한, 지금으로서는 들킬 위험 때문에 바깥에 내보이기도 쉽지 않은 힘.
거기서 마지막 모습을 갖추었다.
본래 있던 힘을 더 끌어 올렸으니, 흑도 제 2의 형이라고도 불러야 하나 싶지만. 딱히 호칭에 목을 매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에는 조금 힘이 부족하다 싶으면 바로 검은색 마력을 끌어내는 수준에 이르렀으니까.
“이시헌님?”
“네?”
“잠시 멍을 때리시길래…. 집중이 안된다면 잠시 휴식을 가질까요?”
잠시 생각이 다른 곳에 빠졌다.
나는 두 손을 저었다.
“아뇨 계속 해주세요. 그런데 다른 마력의 형질도 궁금하네요. 현자님은 어떤 형질입니까?”
“어머, 그렇군요. 제 마력의 형질은…. 그래. 우선 블랑쉬님의 마력 먼저 볼까요?”
“제, 제 마력이요?”
현자가 손을 뻗자 마로니에의 몸에서 희미한 하늘색 마력이 흘러나왔다.
새하얀 물감에 아주 옅게 파랑색을 섞은 색깔.
“조금 특이해요. 마력은 성질이 정해져 있고, 후천적으로 변화한다고 해도 두 성질을 가지는 경우는 없는데. 가끔씩 두 경우로 갈라질 가능성이 있는 마력이 있거든요.”
백색과 푸른색의 마력.
“보통 이건 다른 사람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축복받은 신체라 부르죠. 정령에게 사랑받고, 마나의 신에게 허락된…… 마도의 천무지체라 할 수 있겠네요.”
“네, 네에?”
당황하는 마로니에, 자신도 몰랐다는 반응이다.
“한 세기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한 수준이에요. 블랑쉬님이 프랑스 국목이 되신 이유도 분명, 이런 부분에 있겠죠.”
“…아, 그, 저기.”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한다.
확실히 두 형질의 마력을 가지는 건 드문 일인가.
마로니에가 마법사들 사이에선 굉장한 천재에 속한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현자는 먼저 파란색 마력을 가리켰다.
목인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푸른색 마력보다 더 진하고 청명한 색의 마력이다.
“파란 마력은 낭만과 갈망. 선망하는 무언가를 쫒고자 하는 바람이 있을 때 발현되는 마력이네요.”
“……지금 뭐 관상 봐요?”
“대개 그런 경우가 많다는 소리죠. 꼭 들어맞진 않아요.”
이 마력을 품은 사람은 대개 이렇니.
마법사 계의 MBTI를 보는 느낌이다.
나는 슬쩍 마로니에의 마력을 바라보았다.
하늘색의 끝자락에 갈라진 파란색과 흰색의 마력. 그 마력에는 상당한 기운이 압축되어 있었다.
나와 싸울 때는 쓰지 않았던 마력이다.
확실히 첫 번째 시련에는 대부분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그럼 흰색은요?”
내 물음에 현자가 손뼉을 쳤다.
“맞아요. 제 마력의 형질을 지금 말씀드리려고 했죠. 저 역시 흰색의 마력이에요.”
현자는 즉시 자기 손에서 새하얀 마력 구슬을 만들어 보였다.
마로니에의 빛이 순식간에 감춰질 정도로 눈 부신 마력의 색이었다.
밝기부터가 남다르다. 그 안에 깃든 힘도 규격 외였고.
“다만, 이 흰 마력에는 의미가 좀 많아요.”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흰 마력을 썼던 이들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꽤 있다.
백도와 매화. 한 명은 스승님이고 한 명은 첫 번째 시련의 막바지에 만났던 싸움 좋아하는 짱깨 국목이다.
그리고 천마와 양대산맥을 달렸다던 무궁 역시 흰 마력의 소유자로 알고 있었다.
‘……스읍.’
이상하게 나랑 흰색 마력이랑 잘 안 맞는 거 같은데.
뭐지. 진짜인가?
마력 MBTI 믿어도 되는 걸까?
과학적으로는 전혀 증명되지 않은 테스트같은 게 이상하게 설득력이 좋은 질문이 많다.
사실 어지간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들이라 그럴 듯 하다고 느끼는데.
현자의 눈웃음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의미가 있죠?”
“순수. 아무런 변화도 없이 백색의 색 그대로. 좋게 말하면 지금 이대로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발현되거나, 자신의 의지를 그대로 실천하고 전혀 바뀌지 않는 인물들이 이런 마력을 지니죠.”
지좆대로 스타일이라는 거구만.
딱 백도가 그렇다. 성격 진짜 더러워서 자기 고집은 절대 꺾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의 백도도 그랬다.
그 녀석은 도원이 절대 바뀌지 않기를 바랬다. 천도가 소천마의 자리에 위협을 느꼈을 때, 자신이 알던 세계가 무너질까 덜덜 떨었던 녀석이었으니까.
“나쁘게 말하면요?”
현자는 낮게 뇌까렸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단점임을 인정하듯이, 자신을 학대하는 것처럼.
“보수(保守).”
“흐음.”
“정하려고 했을 때는 급진적이며 행동파이나, 한 번 정해졌다면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죠. 아집이나 고집, 초연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순수는 꼭 좋은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혁명가의 색이기도 하죠.”
혁명가의 색.
그 말에 마로니에가 갑자기 몸을 떨었다.
“….”
“왜 그래? 아.”
묻고 나서야 깨달았다. 마로니에는 혁명가의 집안이다.
왕비를 끌어내 죽인 일당의 중심에 서 있던 목인이었고 그렇게 해먹으며 모두의 머리 위에 섰으니, 그야말로 현재 마로니에의 가문을 칭하는 말이다.
대충 감은 잡히겠다.
하얀놈들은 약간씩 맛이 간 건 맞다.
반대로 나같은 깜둥이들도 제정신인 놈은 본 적이 없다.
예외가 있다면 그나마 천도?
우리 귀여운 스승님은 마력과는 전혀 상관없지.
‘…그럼, 산수유는 어떨까.’
노란색의 마력.
색에 대한 이야기가 들을만 하다 보니 궁금증이 돌았다.
“노란색 마력은 어떤 형질입니까?”
“노란색….”
현자는 내 의도를 깨달은 건지 입매에 초승달을 그렸다.
“보호. 무언가를 지키고자 할 때 발현되는 색이에요.”
지킨다. 대체 무엇을?
흰색의 마력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라 생각했었다.
다만 노란색 마력의 설명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산수유.
그 천하태평한 녀석이 무언가를 지키려 한다니.
지금 이대로를 지키고 싶다? 그건 너무 넘겨짚는 것일 터다.
“그런가요?”
“네. 다른 색도 설명해드릴까요?”
“…나중에 차차 듣도록 하죠.”
듣다 보니 마력mbti에 빠져드는 기분이네.
나는 생각을 멈추고 바로 다음 수업으로 넘어갔다.
수업은 저녁이 지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