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새벽의 실수 (2)
현자의 인간관계에 끝맺음은 언제나 좋지 못했다.
친분보다 우선시 되는 의무 탓에 오래전 현자는 그녀의 친구를 배신해야 했다.
능구렁이 같은 이미지와, 현자의 자리.
그녀와 친해지려는 사람은 언제나 속내에 시꺼먼 욕망을 감춘 이들뿐이었다.
좋은 인연이 생겨도 서로 가진 시간의 차이가 컸다.
아무리 절친한 이들이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수명의 차이도 상당해서, 오늘날에 이르러 현자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지고한 세월을 넘어왔으나. 외로웠다.
이성의 화신이라는 별칭이 부끄럽다.
현자는 그 감정을 언제나 술과 함께 털어내곤 했다.
아무도 없는 에덴에 앉아 쓸쓸히 잔을 기울이며, 오래전 옛 만남을 돌이키며 그리워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너는 절대 현자가 되지 마렴.
어머니의 충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게 문제였나.
-왜요 어머니?
너는 너무 유약해.
정이 많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소심하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선다.
마법을 배운다고 한들, 역대 모든 현자를 통틀어서 가장 약한 마법사가 될 것이고.
머리는 밝을지언정 그 지혜를 다른 곳에 쓰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현자는 기억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고, 세피로트가 그녀에게 제안했을 때. 그녀는 망설임 없이 현자를 잇겠노라 대답했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어머니를 내심 존경한 까닭이었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마따나 머리 하나만큼은 좋았으니까.
현자가 되었던 자신은 오늘까지 무난하게 에덴을 이끌어 왔다.
그래도 쌓여만가는 감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외롭다.
세피로트가 없었더라면 진즉 미쳐버렸을 정도로 사람과의 대화가 그녀에겐 그리웠다.
에덴에 세 명이 왔을 땐 잠시나마 즐거웠다.
마로니에와 산수유는, 다른 이들처럼 자신을 경계하지 않았으니까.
현자라는 존재는 믿을 수 없다. 눈 뜨고 코 베일 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자신에게 접근한다.
남들에게 순수한 호의를 받아본 기억이 얼마 만인지.
그러나 반대로 자신을 경계했던 이시헌에겐 심적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분으로선 당연한 일이었고 이해하며 공감하지만.
술을 마신 지금은 그 감정이 더더욱 커져 나갔다.
“…저도 사실, 당신에게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자신의 행동은 이시헌의 눈에 플라워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해야하는 일이었죠.”
그럴 필요가 있었다.
현자는 이시헌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음에도 그를 주시해야 했다.
그러나 그 일련의 과정이, 현자의 천성에는 잘 맞지 않았다.
사실 이런 말을 내뱉을 필요가 없었다.
주시 대상인 이시헌에게 왜 이런 말을 하겠는가.
술이 취한 까닭에, 내심 지니고 있던 죄책감과 외로움을 토로했던 것이다.
이시헌은 가만히 듣다가 대답했다.
“알아.”
아마도 그는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시헌은 잠들기 직전이었다.
술자리에서 친구의 투정을 들어주듯, 무조건적으로 수긍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만으로 약간의 외로움이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남들은 몰라도 현자는 소심하다.
고개를 앞뒤로. 천천히 꾸벅거리던 이시헌은 눈을 감았다.
졸음이 몰려온다.
자신도 한계까지 취해있던 터라, 푹신한 의자 위에서 서서히 고개를 떨구었다.
술을 마시며 가까워진 물리적인 거리. 현자가 조금씩 의자를 옆으로 옮긴 덕분이었다.
둘은 거의 동시에 잠들었다.
그의 어깨에 흰 머리카락이 얹어진다.
약간이나마 쏠린 무게, 그 탓인지. 멍하니 눈을 감은 이시헌의 몸이 기울어지면서 의자 옆으로 넘어간다.
그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현자의 몸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의자에서 벗어나 앞서 떨어진 시헌의 위로 떨어진 현자.
약간의 충격에 현자는 졸린 기운을 약간 쫓아내고 눈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왜… 누워 있지.’
눈앞, 맹하게 뜬 검은색 눈동자가 시야 안에 가득찼다.
‘어라.’
마치 꿈에 잠긴 듯한 얼굴이다. 그는 약간 찡그린 눈을 감았다 떴다.
술에 취하면서 멀어져 버린 현실감.
지금 꿈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현자는 이시헌의 본질이 목령왕인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불끈.
현자가 뭉개고 있던 이시헌의 팔에 힘이 들어가더니, 그래도 쭉. 힘을 주어 현자를 잡아당겼다.
“!?”
바닥에 누운 채 그대로 품 안에 쏙 들어가는 그녀. 술이 약간 깨면서 현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락!
“…시헌-”
술김에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손이 현자를 끌어안았다.
베개라도 된 것처럼 푹신한 그녀의 몸이 겹쳐지고. 손이 현자의 어깨와 허리에 각각 얹어졌다.
그래도 꽈악, 아플 정도로 껴안았다.
커다란 가슴이 맞닿아 절구에 찧어진 찹쌀떡처럼 뭉게졌다.
가슴골을 파고드는 콧잔등.
골 사이에 잔뜩 머금었던 땀의 향기를 부끄럽게도 맡아댄다.
현자는 이시헌을 밀어내려했다.
그러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근육질의 신체를 미약하게 꾹꾹 두드리는 것 뿐.
“잠시만 시헌씨. 일어나 보세요.”
자연스럽게 동작이 이어진다.
자신을 껴안은 손가락이 어깨에 올라온 브레지어의 끈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래도 튕- 팽팽하게 늘어났던 브레지어의 끈이 돌아오며 살에 찰싹 달라붙었다.
“읏”
깜짝 놀라 입을 벌린 현자.
가슴골 안으로 축축하고 말캉한 감촉이 뻗어나왔다.
내놓고 있는 윗가슴을 살살 핥으면서 빨아들였다.
다른 손은 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허리를 시작으로 치골. 엉덩이.
옷자락 너머로 느끼는 따뜻한 손길에 현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
애초에 몸을 허락할 사람도 없었기에.
지식만 알고 있을 뿐 어렴풋이밖에 느낌을 모르고 있다.
“…흐읏, 잠시만…. 시헌씨, 저한테 이러면. 저는 그 사람들이랑 달라요.”
이시헌의 여자관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술버릇은 그녀의 기억 속에 없었다.
황당함과, 약간의 흥분. 그리고 술기운과 몸 안에 가득찬 사람의 따스함.
품에 안긴 현자는 이도저도 못하고 눈동자만 빙그레 돌릴 뿐이었다.
어떻게 하는가.
생각이 이어지질 않았다.
무언가 수를 떠올리려고 해도 머리 안에 자욱한 안개 때문에 금방 잊혀져 버린다.
“…프흐.”
가슴 골 안에서 얼굴을 떼어낸 이시헌이 현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술에 잠겨, 자신이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얼굴이다.
그가 술을 마실 때면 항상 옆에는 연인이 있었다.
진달래와 이세영. 별과 황도.
몸에 익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까.
점차 그 고개가 다가왔다.
뜨거운 숨이 얼굴을 스치자 현자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어, 으, 잠깐. 시헌씨.”
볼을 잡고 밀어보려 해도 힘의 차이가 있다.
고개를 뒤로 내빼지만 단숨에 다가온 입술이 현자의 입에 마침내 닿았다.
“읍-”
입술을 열지 않고, 가볍게.
거칠거칠한 입술의 표면이 현자의 민감한 입술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녀의 감각이 서서히 예민해졌다.
술밖에 없었던 향이 자각된다.
남자의 향. 한 번도 가까이서 맡아본 적이 없는 향이다.
훈련소에 방문할 때 느껴지던 남자들의 야만적이고 얼굴이 찌푸려지는 냄새가 아니라.
관계를 나눌 때 여자를 홀리는 농후한 향.
그의 손이 현자의 등을 옭아맸다. 다른 한 손으로 살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붉은 카페트 위에서 떨어지는 땀방울. 눈을 질끈 감은 현자는 자신을 가득 채운 따스함에 점차 팔에 힘을 풀었다.
혀가 입술을 두드린다.
자신의 윗입술을 핥더니, 흥분한 콧김이 뿜어진다.
남들과의 대화로는 절대 충족할 수 없는 정분.
당황도 잠시 그녀의 가슴 속 외로움이 자그맣게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다.
‘이래선 안되는데.’
이시헌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절대로 이 상황을 허락해선 안되는데.
‘그만….’
현자는 입을 열었다.
축축한 혀가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츱.
짧은 천박한 소리와 함께, 입안에 고여 있던 침을 그 사람이 가져간다.
덩달아 입 안으로 끈적하게 얽히고 있던 침이 들어왔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꿀꺽.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현자는 뒤늦게 밀어보려고 했으나 이시헌은 뒤로 내빼는 현자의 작고 귀여운 혀를 농락할 뿐이었다.
“…흐앗, 아… 츱.”
조금씩 알아가는 쾌락.
어지러워진 정신은 이제 이성을 되찾지 못한다.
지금은 이 포근함에 안겨있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현자는 눈을 감고 입술의 감촉에 집중했다.
거칠거칠했던 것이 이제는 또 부드러운 것 같고.
가슴의 압박감은 자신을 옭아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풀어헤치는 것 같았다.
다른 인간들이 절대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
현자의 몸을 취한다는 것.
끈질기게 달라붙어 혀를 뻗는 그의 움직임은 더없이 능숙해져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탄산이 터지듯 입에 떨어진 둘은 거친 숨을 교환하며 서로 볼을 비볐다.
“푸흡… 하아. 하아, 하아….”
저항은 없었다.
현자의 두 손이 이시헌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꽈아악.
포옹이 길게 이어졌다.
물리적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럼에도 현자의 입에서는 고통 보단 애달프기 짝이 없는 숨소리가 튀어나왔다.
“…앗. 아…앙.”
엉덩이의 아랫부분을 사뿐히 매만지고, 가슴의 고통에 입을 벌리면 다시 혀가 들어왔다.
온몸이 새하얗고 부드럽다.
손길에 따라 파동이 일어나 출렁이는 가슴.
한참이나 혀를 섞던 현자는 모아둔 신음을 아끼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등이 조금씩 배겨왔다.
“…침대.”
*****
중앙 놀이방에서 잠든 세피로트를 뒤로 하고 방에 들어온 둘.
비틀거리는 이시헌을 끌고 온 현자가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입을 맞추는 일이었다.
반짝이는 수정구에 먼저 담은 장면.
거의 쓰러뜨리듯 이시헌을 껴안고 그 입에 혀를 감싼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 뱉는 것 만으로도 술기운에 머리가 아팠으므로.
-츄릅, 츱.
드레스 위 치마를 걷자 보이는 아기자기한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속옷.
아직 젖지 않은 그곳을 지분대자 금방 젖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 개가 된 것처럼 아랫배가 두근거리고. 간지럽고. 거칠게 잡고 내려버린 탓에 몸매 보정 기구들은 고장이난 채 떨어져 나갔다.
“…흐읏, 흐읍.”
신음하며 혀를 섞었다.
새하얀 브레지어의 후크가 힘에 의해 뜯겨나가고, 그대로 침대에 어중간하게 걸쳐졌다.
그러나 그마저도 현자의 허벅지가 벌어지며 브레지어를 밀어 침대 아래로 넘어뜨렸다.
침 범벅이 된 입술을 벌리고, 약간 눈물진 눈으로 이시헌을 바라보는 현자.
애욕에 뒤엉킨 모습 아래에는 비교할 구석이 없을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 풍만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것을 손으로 쥐자, 다섯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오는 살덩어리.
색깔이 덜 여문 연한 분홍색의 젖꼭지.
그러나 피부가 워낙 하얀 탓에 그마저도 충분히 농염하게 익어 보였다.
침대에 누운 둘은 마음껏 상대방을 가지고 놀았다.
아니, 거의 일방적이었다.
현자는 남자가 주는 자극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할 줄 아는 것은 희미한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바르르 떠는 것뿐.
세우지 않고 손끝 살로 살살 팬티에 파묻힌 보지의 균열을 쓸어올리자, 현자가 손으로 다급하게 이시헌의 손을 잡았다.
뒤늦게라도 자각이 든 탓이다.
“하아… 하아.”
그러나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렵혀진 얼굴.
이시헌은 바지춤을 풀어헤치더니 그 안의 자지를 꺼내 보였다.
핏줄선 대물이 현자의 배꼽을 쿡쿡 찔렀다.
입안이 바싹 말라가는 기분.
이시헌의 손이 현자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