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수를 따먹다-325화 (325/657)

< 325화 > 요람의 붕괴 (10)

요람의 심층부.

대대적인 플라워의 침공이 시작되고, 많은 수목들이 생명을 잃었다.

“이런, 제기랄.”

대주교. 빈 마르크는 이를 갈며 꽉 쥔 양손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쾅!

대로하여 떨리는 두 주먹.

“당장, 모든 사제와 성기사들을 불러!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체 뭘 했던 거야!?”

“저기, 대주교님.”

“뭐!”

“호텔에 생도랑 국목들이….”

“지금 그게 중요해? 세계수님들이 돌아가실 마당에!? 다 무시하고 싹 다 오라 그래. 호텔에 있는 헌터들 싹 다 모아서 재단쪽으로 돌려 빨리!!”

-위잉.

소리치는 대주교와 쩔쩔매는 다른 주교들.

돌아가는 감시 카메라가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쾅!

-콰앙!

연속해서 들려오는 폭발음.

시스투스의 분신체가 자폭하며 요람의 중요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있다.

“씨발, 씨발….”

대주교가 이빨을 잘근잘근 씹으며 불안감을 표출했다.

-콰앙!

지금 이 순간에도 재가 되어가는 요람.

시스투스의 분신체는 대책이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하나하나가 충분한 실력을 가진 헌터와 동등하며, 자폭하는 그 순간의 위력은 대마법사가 일으키는 파괴 마법 이상이다.

여자아이를 빗댄 모습은 헌터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자폭에 휩쓸리면 100m 근방의 헌터들은 대부분 죽는다.

운 좋게 시스투스의 분신체를 죽인 헌터들조차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다가, 자살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플라워 전선의 악몽 그 자체.

그 시스투스가 작정하고 요람을 몰아붙였다.

계책이나 전술이 거의 없었던 플라워의 전쟁에, 지능적인 움직임을 부가시켰던 홍연 역시 이곳에 스멀스멀 손을 뻗어왔다.

‘……어떻게 하지?’

방안을 찾을 수 없다.

텅 빈 자리에서 대주교는 하염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가.

-저벅.

그의 등 뒤에 있던 로브를 입은 한 남성이 그에게 물었다.

“대주교님?”

아론 사제.

빈 마르크 대주교가 교단에서 득세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실력 좋은 전투 사제.

처음 그가 갑자기 다가와 협력을 제안했을 때. 마르크는 그것이 기회인 줄 몰랐다.

갑자기 나타난 놈팽이가 자만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아론 사제는 신박한 계책과, 힘을 보여주어. 얼마 가지 않아 빈 마르크가 대주교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해준 일등 공신이 되었다.

“아론 사제….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겠소?”

“고민이 많으시군요.”

위기는 지금껏 많았다.

그것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건 아론 사제의 번뜩이는 재치 덕분.

그는 병적으로 아론을 믿고 있었고. 그렇기에 아론은 싱긋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난 사제님을 믿소. 저 비열하고 간사한 플라워 놈들을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을. 어찌 찾을 수 있겠소?”

“그것은, 힘들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까?”

“무엇이든.”

언제나 그랬듯이.

아론은 공허한 눈으로 마르크의 얼굴을 훑었다.

검은 장갑을 쓴 그의 손이 마르크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렇습니까.”

아론은 손을 휘둘렀다.

-퍼억!

전등 아래 동그란 그림자가 공중 위에 비산했다.

바닥에 굴러떨어진 머리통은 죽음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대주교의 몸, 한 차례 경련하더니 목 위로 피를 뿜어대며 바닥에 쓰러진다.

아론은 로브를 벗었다.

피안화를 가져간 집 안에는 불이 난다고 하던가.

【플라워 제 6위 간부 :: 리코리스·라디아타】

【Lycoris·radiata】

【이명 :: 만주사화(曼珠沙華)】

세상에는 피안화로 알려진 존재.

잿빛 머리의 남성은 손을 뻗어 대주교의 시체를 감싸 쥐었다.

그 손가락이 근육 사이를 찢고 파고 들어가자. 안에 있던 핏물이 모조리 남성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놈이라도 마력 하나는 쓸모가 많으니.”

아무리 둔한 놈이지만, 대주교로서의 실력은 진짜다.

겁쟁이라도 직접 나서 마법을 쓰면 성가시다.

피안화는 다시 로브를 뒤집어쓰고는 문을 열었다.

이제 요람을 지킬 존재는 없다.

‘젊은 인재들이 많이 죽지 않았으면 하는데.’

호텔에 들어간 많은 국목들.

세계수를 배신하면서 큰 힘이 되어주었다.

요람이 부수어지고 있지만 호텔 쪽을 도울 수는 없었다.

대주교니, 사제니 하지만. 진짜는 세계수.

수목이 저항을 시작하는 순간 플라워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

그리운 꿈이다.

“오, 네가 프랑스 국목이야?”

어렸던 시절.

아직 자기보다 키가 작았던 두 사람이 마로니에를 보고 있다.

“잘 부탁해. 얘는 에이비고, 난 벨. 영국이랑 독일 국목이야. 너랑 똑같아!”

“…어, 응. 잘 부탁해.”

영국과 독일, 프랑스.

유럽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사실 옛날에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과거 목령왕의 전쟁이 일어났을 적. 독일은 목령왕의 편이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견제만 해댄 탓에 국민들의 정서가 반감을 사기 딱 좋았다.

“와, 머리색 진짜 예쁘다.”

“…그래?”

막 국목이 되어 방황하던 탓에 인간 관계도 소심했던 마로니에.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던 둘 덕분에 힘을 냈던 적도 많았다.

“오늘 훈련하는데 죽을 뻔했어. 넌?”

“난… 몰라. 연구소에서 공부만 해서.”

“마법사구나~ 캬. 그런 거 꿈에도 못 꿨는데. 맞아, 내가 엑스칼리버 보여줄까?”

천진난만하고 장난끼가 많았던 벨.

과묵하지만 놀 때는 놀았고. 아무리 시시한 농담이라도 성실하게 답변해주던 에이비.

그 셋의 이야기가 유럽 전체에 퍼지면서, 각국의 사이도 가까워졌다는 건 이미 교과서에도 실린 사례 중 하나다.

유럽의 외교 관계를 새로 구축하는데 일조했다.

세 명이 함께, 유럽 연합에서 내려준 평화상을 들고 찍은 사진은 마로니에의 일기장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 중 하나다.

‘…재밌네.’

좋은 사람.

가끔 장난이 심하긴 하지만 벨은 듬직했고.

에이비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할 서민의 음식 같은 것을 종종 가져왔다.

국목들이 처음 모습을 내보이는 숲지기 선발전.

셋의 사이에는 분명한 우정이 있었고.

즐거운 경험과 잊지 못할 기억이 많았다.

“그런데 왜.”

-번쩍!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기다란 속눈썹 위에 톡 떨어졌다.

“어, 일어났냐. 땅딸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며 폐가 수축한다.

“크흡, 콜록, 콜록!”

마력 수갑이 온몸을 결박한 채 건물 벽에 등을 기댄 마로니에.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확인한다.

거대한 건물이 마주본 장소.

중앙에는 분수가 위치해있다.

이곳에 온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처음 숲지기 선발전이 시작했을 때 모두가 모여 있던 장소.

덩굴과 나무가 솟아오른 대경기장.

어두워진 공간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벨과 에이비가 마로니에의 근처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

목이 매어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마로니에가 입을 꽉 깨무니 벨이 진중하게 목소리를 내렸다.

“잘 들어. 땅딸보. 너를 딱히 적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수갑. 풀어.”

“그건 불가능해. 조금만 기다려.”

“왜,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아무리 몸을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았다.

몸 안에 있는 마력 단전도 단단히 봉인되었다.

‘원탁’.

벨의 권능.

일정한 결계 내부의 마력을 완전히 통제한다.

물론 자신조차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이 존재하나.

상대를 압도할만큼의 신체 능력이 벨에겐 있었다.

“마로니에.”

벨이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자, 마로니에가 고통스럽게 눈가를 찡그렸다.

“이름 부르지 마.”

“너도 알 건 알아야지.”

“뭘 아는데? 네가… 날 배신한 거? 국목이…. 네가 불러올 일이 얼마나 큰지 아는 거야? 네 국가를 등진 주제에 할 말이 왜 이렇게 많은데?”

“등진 건 누구일까.”

벨은 고개를 기울여 마로니에에게 말했다.

“권위적인 통치는 이미 끝났어. 국내 여론도 완전히 기울여져 있고. 아무리 세계수에 의해 맡은 국목이라지만…. 우린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나무일 뿐이지.”

“…….”

“프랑스. 우리 사정은 너희랑은 좀 달라.”

“그래서 뭐.”

“잘 들어. 지금 교단은 완전히 개판이야. 한 국가의 주교 한 명이, 뒤쪽으로는 국가 수장만큼의 권한을 가진 게 말이 돼?”

전체적으로 잘 사는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은 무궁이라는 영웅이 있었다.

반면 다른 국가들의 실질적인 경제 지표는 참담하다.

수탈이 계속되고, 수목들의 사치는 하늘을 뚫는다.

국목 또한 그중에 하나.

세계수는 플라워와 목령왕을 경계하여 국목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냈으나.

그 국목조차 눈을 돌리는 현 세태다.

국목 하나를 만들어내는데 들이는 돈은 1년에 45조. 한 나라 국방부의 예산에 버금간다.

그러한 돈마저 목인의 가문과 인간들에게서 뽑아내는 마당에.

과연 불만이 생기지 않을 리가 있을까.

무엇보다 그러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접하는 존재가 벨과 에이비다.

“사람들은 지쳤어. 이젠.”

예시야 많다.

“……영국 켄트 주에 유전 지대가 하나 있지.”

“그게 갑자기 왜.”

“마력으로 생긴 거지. 그런데 그 지역은 목령왕의 손에 한 번 넘어간 장소였어. 알잖아?”

목령왕에게 넘어간 지역 일부는 개발할 수 없다.

거대한 유전 지대를 개발할 경우의 볼 수 있는 이득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

세계수의 독단적이고 자만적인 행보에 추산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고통받는다.

“그래서… 배신했다고?”

“알잖아. 갈수록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거.”

벨이 쓰게 웃었다.

항상 장난을 치던 벨의 슬픈 얼굴은 처음 보았다.

“그만 보고 싶어. 이젠.”

“…그렇다고 테러리스트에 합류해?”

에이비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차악을 고를 뿐이야.”

입을 다무는 마로니에.

아직 배신 당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아니,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유일하기까지 한 친구들에게 배신당한 현재.

“…….”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잘 생각해 마로니에.”

에이비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이 정직하게 마로니에의 눈을 마주쳤다.

마로니에는 그만 시선을 피했다.

“사상은 언제나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해 왔지. 결국 자리 싸움이고. 세상을 가꾸는 건 권력과 이익을 독점한 사람의 몫이야.”

플라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전쟁이 끝났을 때. 남는 게 상생인지 독재인지는 봐야만 알겠지.”

그러나 플라워는 현시대에 자리를 잡아 온 세계수의 권력에 도전하는 유일한 존재다.

국목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

에이비와 벨은 그 정신이 뿌리박힌 존재들이다.

“그 중간에 바로잡을 수 있어. 우리들이.”

“……그렇다고, 사람들을 죽여?”

“플라워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호텔 내부의 생도들은 민간인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앞으로 플라워에게 적이 될 인재와도 같다.

어쩔 수 없는 피해라고 에이비는 설명했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 알아. 네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한 번에 생각을 바꾸라고는 하지 않을게.”

에이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어온다.

마로니에는 불안했다. 이해하지만, 끔찍했다.

그냥 이 상황 모든게.

싸움으로 점철된 피 비린내 나는 이 상황이. 마로니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싸워야했고.

또 죽어야 하는가.

세력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뚝.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어지러운 두통을 깨는 에이비의 한 마디.

“아니면, 그 남자 때문이야?”

“……뭐?”

“이시헌. 아니지. 그렇게 부르는 건… 좀 그렇지.”

그가 작게 속삭였다.

“목령왕.”

머리에 순간 파고드는 그 한마디의 글자.

수많은 목인들이 두려워했고, 지금까지 공포의 상징으로 새겨졌으며, 귀족 가문에 태어난 마로니에에겐 어떤 누구보다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

-나 무 왕!

현자가 긴밀하게 접근하던 존재인 이시헌.

이상한 단어를 외치며 그를 따랐던 세피로트.

지금까진 별 일 아니라 여겼던 단어와 상황들이 한 줄기로 이어지며 마로니에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 그. 어?”

-쾅!

거대한 마력이 울려 퍼지는 소리.

에이비는 입을 닫곤 벨에게 중얼 거렸다.

“왔네. 준비해.”

벨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아들었다.

에이비는 등 뒤를 한 번 흘기곤 다시 마로니에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심연 안을 직접 들여다 본 감각.

“마로니에. 마지막으로 물을게.”

“…….”

“우리를 좀 도와줘.”

눈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다.

이 감각을,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다.

‘세뇌.’

이제는 저항할 수 있는 힘.

“……!”

짧은 두통이 가시며 마로니에가 몸을 떨었다.

정신은 말끔했으나, 뒤이은 공포에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에이비의 눈이 트인다.

“틀렸네.”

아쉽게 중얼거려오는 목소리.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는 순간이었다.

-콰지지직!

과거의 연이었던 세 명의 사이에, 검은 마력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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