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수를 따먹다-331화 (331/657)

< 331화 > 흑백의 꽃 (2)

낙뢰(落雷).

우레처럼 쏟아진 창살이 남성의 신체를 관통한다.

-번쩍!

마기가 섞인 무수한 창대는 그 길이만으로 칠척을 거뜬히 뛰어넘었고.

매화의 몸에 검은색 자흔이 새겨진다.

-콰앙!

내리친다.

매화의 신체가 바닥으로 꺾이더니, 한 번 더 창이 내렸다.

그의 손이 바닥을 짚으면 다른 창대가 그 손등을 관통했다.

“끄읍, 크흐, 크흐흐흐!”

광기에 절인 웃음을 내뿜는 매화가 입가를 덜렁거리며 자신을 억누르는 힘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앞으로 한 발자국.

-콰앙!

쿵!

매화의 몸이 내려앉는다.

다시 내리친 창대가 그의 목을 관통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은 매화의 몸을 꿰뚫을 때마다 신체의 부위에 새까맣게 탄 흔적을 남겼다.

외상은 없으나 내상이 남는다.

어깨와 날개. 종아리. 발등. 머리와 왼쪽 눈.

내리친 낙뢰가 매화를 덮쳐오자 그의 눈가가 살벌하게 떨렸다.

-쿠구구구.

한 차례의 폭우가 그쳤다.

창이 전부 내려간 곳에는 흑색의 안개만이 주변을 부유했다.

‘안 끝났잖아.’

꿈틀.

안개 속에서 실루엣 하나가 움찔거린다.

-파확!

예상대로다. 안개 사이에서 매화의 몸이 튀어나왔다.

나를 향해 질주하는 매화. 차분히 양 손을 가로질러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는 넘어질 정도로 몸의 중심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새하얀 마력이 등 위로 균형있게 넘실거렸다.

-쿵!

흙발을 떼고. 앞으로 내딛는다.

그 일련의 과정을 반복했다.

-쾅!

“천양보(天壤補)”

거대한 마력의 움직임에 질주하던 매화의 신체가 다시 한번 무릎을 꿇었다.

세상을 발밑에 두는, 일생을 비틀어 짜낸 극비의 묘리.

백도가 사용하던 힘과는 다르다. 적어도 그 당시, 잠재력이 극에 달했던 내가 잠시나마 사용했던 신묘한 힘이었다.

하늘과 땅을 억지로 잡고 뒤집는다.

내 일신의 힘이 부족하여 쉽게 사용하지는 못했었다.

-쿠구구구구!

절정의 무공에 마기가 더해지며 본래의 힘을 되찾았음은 물론.

땅 전체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대지에 소음이 울린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매화의 신체가 점점 더 땅 안 속으로 파고들었다.

‘엘레오노르, 루시.’

<네 주인님.>

말 한마디에 차오르는 마력. 하나 둘씩 창대의 수가 늘어간다.

매화의 고개가 힘겹게 올라갔다. 그의 동공에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발사 해.’

한 방.

-파앙!

두 방.

-파앙!

‘계속해. 뼈도 안 남을 때까지.’

매화가 두른 신체의 강기가 흐트러진다. 멈추지 않고 풍련을 만들어 발사했다.

다섯. 여섯. 일곱.

열. 스물. 서른.

내 어깨에 앉은 루시와 엘레오노르의 입에서 지친 신음이 튀어나올 즈음. 나는 잠시 포격을 멈추고 발치에서 매화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안개가 개이고 그의 얼굴이 드러난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파직!

엎어져 있던 매화의 신체가 갑작스레 일어나 내 목을 노렸다.

아슬아슬하게 손톱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러섰다.

“…알고 있는 힘이야.”

쉰 목소리로 중얼 거리는 매화. 핏기가 가신 새파란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새하얀 치열이 그대로 드러났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 구멍난 혀 위로 머금고 있던 피가 턱에 질질 흘렀다.

“본 적이 있어. 그래, 그 날에-”

서서히 몸에 피어오르는 새하얀 광명. 등 뒤로 솟아난 마력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백도…. 너, 그 사람에게 배운 게 정말이구나?”

“……?”

“아- 그 사람 강하지. 아름답고… 누구보다 예쁘고. 크흐흐흐.”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을 열변하며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 매화.

손톱이 얼굴 피부에 파고들어 길쭉한 흉터를 남겼다.

-뚝, 뚝.

손에 맺힌 피가 떨어져 마른 땅을 적셨다.

그의 얼굴이 한 층 더 광기에 물들었다.

“…그 여자가 제자를 잃은 표정은 어떨까-”

말이 중간에 끊기며.

매화의 신체가 꺾이며 내 목을 취하기 위해 손을 뻗어온다.

겨우살이를 건틀릿의 형태로 바꾸어 막아냈다.

-쾅!

물러선 채로 풍련을 장전.

쏘아내려는 순간 매화가 눈에서 사라졌다. 아주 짧은 사이에. 내 눈에 차마 담지 못했을 정도로.

[주인님 뒤입니- 짹!?]

갑자기 들려오지 않는 루시의 목소리. 딱따구리가 터지며 공중 위로 깃털이 흩날렸다.

풍련을 멈추고 등을 돌려 팔꿈치로 주먹을 막아낸다.

-파앙!

한 번의 부딪힘에 충격파가 일었다.

몸에 검은색의 강기를 두른 뒤, 나는 몇 번이고 매화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짹, 째액!?]

나무발바리, 엘레오노르가 게속되는 회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지금은 그녀의 사정을 봐줄 수 없다.

나타난 매화가 주먹을 휘둘렀다.

-꽈앙!

두 번의 부딪힘. 무릎과 팔꿈치를 일점에 모아 주먹을 막아냈다.

그럼에도 힘에서 잠시 밀린 탓에 내 몸이 뒤로 넘어갔다.

“약해빠졌어.”

날아가는 도중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낮잡아보며 비웃는 그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전황을 살핀다.

‘….’

-꽈득!

공격을 허락하자 강기를 최대한으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부러지는 갈비뼈.

그러나 파편째로 부러진 뼈가 순식간에 달라붙는다.

매화의 움직임을 길게 읽어 내린다.

“…이시헌!”

불규칙하고, 야만적이지만. 재능있고 자세가 잡혀있다.

아주 잠시나마 그의 움직임에 백도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하, 하하하!”

동경과 선망이 얼핏 보이는 격투 솜씨.

저 움직임을 알고 있다.

놈은 천마의 힘을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나와는 달리 마력의 형질도 백도와 비슷하니 복사하는 것이 편했겠지.

천마신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뒤바꾼다.

나도, 천도도, 백도도 한 번쯤은 거쳤을 구간을 매화 역시 함께 걸었다. 움직임에서 그게 보였다.

-파앙!

공격을 막아낸 팔이 얼얼하다. 멈춰선 매화가 내 안면을 살폈다. 나는 자세를 간편히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스으읍. 하아.”

주먹을 앞으로, 발을 옆으로.

매화의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한다.

“…….”

나를 바라보던 매화가 지겨운 듯 혀를 찼다.

“더 없어?”

-딸랑.

“아직-”

익숙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아주 잠시였다. 새하얀 꽃잎과 함께 공간이 접힌다.

“-많잖아!”

-콰아아아!

땅이 바다처럼 들썩인다. 점멸하듯 움직인 매화가 몇 차례나 가속하여 순식간에 속도를 곱절씩 드높였다.

일직선으로 매화의 꽃잎이 그려지며 내 팔 한쪽에 격렬한 통증이 일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이 모이기 시작한다.

매화의 눈이 찢어진다. 눈 앞쪽이 흐려지며 공간에 일직선의 복사꽃이 흔들렸다.

‘설마.’

오싹하는 감각. 정말. 거기까지 기술을 빼앗은 게 가능한 건가?

매화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기술을 펼쳐보였다.

“크흐흐흐.”

그가 중얼거렸다.

“백도(梅).”

-콰아아아아!

*****

매화에게 있어, 지루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반짝였던 건 자그마한 화면 속의 갓 성년이 된 소녀였다.

[이번 던전 격파에 있어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아무것도 없었어.]

언제나 도도하게 기자들의 인터뷰를 무시하고 뚜벅뚜벅 걸어나가던 백발의 여성.

가끔은 붉은 눈동자. 어쩔땐 푸른 눈동자.

그러나 확실히 기억했던 건, 자신이 보았던 그 어떤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다.

아마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첫눈에 반했다라고 표현하는 모양이었다.

‘닮고 싶다.’

미칠 정도로 닮고 싶었다.

‘주먹을 이렇게.’

‘발을 옆으로.’

피어나는 꽃은 백색의 꽃. 새하얀 마력에 복사꽃.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워 절대 꺾고 싶지 않았던 꽃.

하지만 한 번쯤은 꺾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꽃.

‘멋지다.’

노력의 이유였다. 닮아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재능은 언제나 충분했다. 누구보다도 높았던 잠재력은 매화를 금세 높은 자리까지 올려주었다.

C급 헌터에서 시작해. B급. A급 헌터.

이윽고 그걸 넘어 그 사람과 같은 S급까지.

매화의 권능은 그 어떤 수목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 지독했지만, 그를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처음 권능을 깨달은 것은 사소한 실수로 함정을 밟아 자신의 팀원들을 죽였을 때.

함정을 통해 팀원을 죽이는 방식이 몸에 익었을 즈음 매화의 몸은 그 어떤 누구보다 튼튼해져 있었다.

‘닮을 수 있어.’

방식은 중요치 않았다.

그곳에 닿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매화의 기대는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제 풀에 꺾이고 말았다.

[비켜.]

자신이 이기지 못한 상대를 한 주먹에 처리했을 때.

S급 헌터의 휘장을 받고 기고만장했던 매화는, 중국에서 일어난 재해에서 백도를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닮으려면, 더욱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노력해야 한다.

저 사람에게 닿고 싶다.

윤리와 도덕의 관념과는 무관히. 그에게는 오롯이 백도 한 명뿐이었다.

.

.

.

.

.

.

.

“닿는다.”

구사했다.

손끝에서 퍼져나간 짜릿한 손맛에 매화의 움직임이 더욱 날렵해졌다.

“닿았다.”

-만첩백도(梅).

온몸의 마력이 기괴하게 변질된다. 두 수목의 특징을 그대로 담아 처음 보는 형태의 꽃잎이 피어났다.

괴물.

그가 어째서 국목의 거대한 일축을 담당했는가.

“드디어, 드디어!”

이시헌의 움직임이 계기였다.

어딘가 잘 풀리지 않는 구석을 끊임없이 탐구해 배껴내는데 성공했다.

매화의 목소리에 감격이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이 한층 더 단단해진다.

지금이라면 그 부분까지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경지.

정상에 이른 사람이 뼈를 깎고 죽음을 각오해야만 다다를 수 있다는 화경, 초월의 영역.

-파악!

만첩백도를 오롯이 허락한 이시헌의 팔이 멀쩡하게 살아나 매화의 목을 틀어잡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무거웠던 그의 주먹이다.

“약해빠졌어.”

지금은 앞선다.

아니.

이 상태에서마저 앞서는 것이다.

더 할 수 있다. 훨씬 더 강해지고. 다다르고. 백도의 경지를 얼핏 접할 수 있다.

-콰앙!

거대한 바위에 부딪힌 이시헌의 신체가 크게 꺾였다.

핏물 범벅인 얼굴로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

마치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표정이다.

우습다.

자기는 이 짧은 순간, 얼마나 많은 벽을 뛰어넘었는데.

그 ‘백도의 제자’가. 자신의 공격을 맞더니 풀썩 주저앉아 버린단 말인가.

“크, 크흐흐흐흐.”

광기어린 웃음이 거짓된 복사꽃과 함께 피어난다.

“크하하하하하하하! 놀랍지 않나?”

웃음이 실실 튀어나왔다.

움직임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따라잡지 못한다.

국목이라 날고 기었던 수연과 사쿠, 아프리카의 바오조차도 넘볼 수 없을 지경이다.

저질스러운 비웃음조차 쉽사리 넘겨 들을 수 없다.

목소리에 담긴 무게가 남다르다. 모두의 신체에 식은땀이 흐른다.

같은 편인 하쿠조차 전의를 상실해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

이래서는 정말로, 경지에 오르기 직전인 사람같지 않는가.

“이시헌. 고맙다. 네 덕분에 여기까지 오를 수 있었어.”

시헌의 눈가가 찌푸려진다. 아랑곳 하지 않았다.

힘도, 속도도. 무공조차도. 어차피 모든 건 자신이 우위에 있었으니까.

“네놈을 죽이고.”

손가락이 이시헌의 심장을 가리켰다. 머릿속에 스치는 동경하던 사람의 실루엣.

“그 다음은. 백도. 그 년을 죽인다.”

“…….”

“아니. 그냥 죽이지 않지. 천천히, 음미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하면서. 그것이 동경하던 사람을 죽일 때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입을 틀어막고 범하면서! 그 사람이 우는 꼴을 직접 본 후에 목을 자를 거다.”

“……뭐?”

“우선 네 목을 그 여자에게 가져다주어야지. 제자의 목을 볼 때의 얼굴이, 참 재밌을 것 같지 않나?”

묵직한 음성이 귀에 울린다.

방금까지만 해도 신경질적이었던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마지막을 불태우는 꼴을 보는 것도 재밌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새하얀 피부. 투명한 그 피부를. 크흐, 흐흐흐.”

어느새 크게 솟아오른 바지의 중심.

매화는 마지막으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끝을 보겠다. 주먹에 맺힌 두 꽃잎이 이시헌의 미간을 향해 내리 꽂혔다.

-쾅!

-삐이이이!

‘끝이다.’

귀에 울리는 이명.

번쩍-

짧은 순간이었다.

그의 귀에서 소리가 사라지며 꽃잎과 마력이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시야가 갑자기 기운다. 좌우로 기울었다. 하늘에 뜬 달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엎어진 천장에 흙바닥을 구르는 동공. 주먹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

죽었다.

그런 착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몸이 현실을 자각한다.

새하얀 마력이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천천히 조각조각 잘라내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들리지 않는 귀에 손을 뻗어 본다.

오른쪽 귀가 잘려나가 있었다.

-쿵! 쿵! 쿵! 쿵!

심장 소리. 핏줄이 다급히 회전하며 근육이 수축한다.

천적을 만났을 때의 긴장감. 흑색의 꽃잎이 발치에 떨어졌다.

-저벅.

온몸을 불태운 남성이 한 발자국씩 걸어온다.

-저벅.

그의 팔목에 걸려 있던 검은색의 액체가 금세 옷을 만들어내더니, 피는 증발하여 창백한 얼굴을 드러냈고. 그는 자신을 경멸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야.’

-쿵, 쿵.

죽는다.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진 순간만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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