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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여기 왔는지 궁금하다고?”
자기 입이 무겁다는 걸 과시하려는지.
참피는 아랫입술을 손으로 두드리더니, 주변 벽에 등을 기대었다.
“알고 싶냐?”
참피. 내가 아는 그녀는 지극히 현실에 매몰된 목인이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손바닥 뒤집 듯 태도를 바꿀 수 있다.
그녀가 가장 우선하는 것은 자신의 안위.
강약약강.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참피에게 느낀 바는 그러했다.
“보나마나 산수유랑 관련된 거 아닙니까? 저도 찾고 있는 입장이니 정보 좀 나눠주십쇼.”
그렇다고 해도 고작 몇 번의 만남으로 함부로 사람을 재단할 수는 없다.
내 반응에 참피의 눈썹이 올라간다.
“야.”
“네.”
“너 담배 피냐?”
“끊은 지 많이 됐습니다.”
내 딸이 나무라서.
담배를 입에 대기라도 했다간 진달래한테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새끼. 내 앞에서 담배를 피해간다? 어림도 없지. 기다려 봐.”
참피는 벽에서 등을 떼더니 후드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케이스를 열었다.
“어!?”
그녀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아이씨 돛대네. 너 줄 것도 없겠다.”
“……됐으니까 맛있게 피십쇼. 그리고 무슨 한라산입니까. 노인도 아니고.”
“응 존나 달아. 인기도 없어서 나만 피울 수 있어~ 됐고 불이나 피워 봐.”
슬쩍 고개를 내밀길래 마법으로 가볍게 불을 붙여주었다.
참피는 담배를 물고 창가쪽으로 걸어가더니, 그곳에 걸쳐 앉아 연기를 뱉었다.
애같이 생긴 거에 비해 피우는 건 또 엄청 맛깔나게 핀다.
-후우욱.
아주 도넛까지 만들어가면서 즐기신다.
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참피의 등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헌 게이야.”
“예.”
“시대가 변하고 있다. 그것도 존나 빠르게.”
플라워와 세계수의 대립이 불이 붙으면서 민간인들의 불안도 극에 달하고 있다.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힘이 있는 헌터들은 전부 전선에 나가거나, 재단 등 세계수를 지키기 위한 장소에 파견된 지 오래.
순전히 헌터와 영웅만으로 시각을 좁혔을 때 그렇다는 거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면 더 심하다.
요동치는 주식 시장과 무너지는 경제.
플라워에 우호적인 정부들이 늘어나면서, 신앙과 종교는 완전히 부정되었다.
“니들 같은 신세대들이 아직 크고 있는데. 전쟁판이라…. 시이발. 애새끼들 마저 희생되게 생겼더라.”
산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나.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알 사람은 전부 알고 있다.
내가 눈썹을 기울이니, 그제서야 참피는 본론을 꺼냈다.
“산수유가 궁금한 거지? 코르너스 가문의 후계자 말이야.”
현재 모습을 감추고 잠적해버린 코르너스 가문.
“그러니까 어제… 아니 참, 어제도 아니지, 3시간 전에 세계수가 코르너스 가문 전체를 이단자로 낙인찍었다.”
“이단자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참피.
“시발.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아냐?”
“….”
“이제부터 어떤 새끼가 코르너스 가문원을 길가다 때려죽이든 강간하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개좆같은 악질적인 행위를 일삼든! 세계수나 정부는 아무런 죄도 묻지 않는다는 소리야. 이해했어?”
그 중엔 산수유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일이 거기에서 그치겠냐?”
참피는 씁쓸한 듯 혀를 차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가 순식간에 짧아진다. 타들어간 재와 불똥이 복도 바닥에 떨어졌다.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는데.”
참피도 나도, 성지호와 산수유도. 사건을 대충이나마 아는 녀석들은 전부 예상한 일이었다.
이단으로 찍히는 건 시간 문제다.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산수유가 이단자로 낙인찍혔다는 겁니까?”
“두 번 말하게 할래?”
펙트를 체크했을 뿐이다.
나는 말라가는 입술을 핥으며 생각을 이어갔다.
참피가 해준 말이 사실이라면, 이 여자는 왜 여기 온 걸까.
내 시선이 그녀를 향하기 무섭게 한 마디 말이 내리꽂혔다.
“야.”
살벌한 눈빛이 나를 내려다본다.
“조금이라도 코르너스에 협력한다면, 너도 같이 이단자 취급을 받게 될 거다.”
-탁, 타닥.
타들어가던 담배가 창가 너머로 떨어진다.
희미한 담배향이 코에 감돌았다. 자극적인 향이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야. 그나마 있던 것도, 복사나무 가문이었지.”
도원의 일이다.
얼굴 표면이 싸하게 굳어 들어간다. 참피는 나를 보며 주머니에서 꺼낸 단검을 빙빙 돌렸다.
“그래서, 그때 낙인 찍힌 애들이 저주를 받기 전에 뭘 당했는지 아냐?”
“……스승님 이야기입니까?”
“그 사람들은 빼야지. 뭐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몸만은 성했으니.”
-콱!
바닥에 내던지자 타일에 꽂히는 단검. 깨진 바닥 균열이 나에게까지 도달했다.
“노예, 성도구, 일부 수목들의 영양이 됐지. 네 스승님만 빼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
“네가 아는 애. 친한 애라는 건 알지. 걔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말이 참, 더럽네요.”
“씨발 더러운 건 세상이지. 나도 이딴 좆같은 짓 하고 싶어서 헌터가 된 줄 아냐.”
얼굴을 와락 구기며 미간을 짚는 참피. 손이 떨리고 있었다.
“토벌 명령이라고.”
“예?”
“토벌 명령이라고…. 토벌 명령이라고 토벌! 그 새끼들 전부. 내가 죽이거나, 아니면 다른 새끼들이 죽여야한다고. 이미 작업 들어갔어.”
눈동자가 수축되며 꽉 깨문 이 사이로 분통스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니는 손 떼라.”
명백한 경고의 표시.
“이미 끝났어. 왜 여기 있냐고 묻고 싶은 건 나야. 고작 몇 개월도 안 본 애새끼 한 명이잖아. 네가 여기까지 와서 조사할 이유가 어디있냐?”
“그러니까, 산수유를 죽인다고?”
“…….”
입꼬리가 올라간다. 비웃음을 당했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보내는 조소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럼. 네가 죽일래?”
으르렁거린다.
“죽이려면 깔끔하게 죽여라. 고통도 느끼지 못하게.”
목을 긁는 듯한, 듣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찌들었지만. 여전히 공허한 목소리다.
“아니면. 상황이 이렇게 개판이 됐는데 걔를 도울 생각이냐?”
“산수유 스승 된 사람이 할 말입니까.”
“스승은 씨발. 스승놀이지.”
여전히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나에게 칼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든지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가볍게 마력 회로를 정돈시켰다.
“…….”
“…….”
침묵이 길어진다.
산수유가 이단자가 되고, 토벌이 이어지려 한다.
도원에서 일어난 그 날처럼. 당연히 플라워는 나설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코르너스 가문이 몰락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그런 격동의 상황에, 고작해야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인연을 지킨답시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약간의 시간에 애착을 가진 별종이 아니고서야.
누구든 버릴 것이다.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미안하다. 조금 흥분했네. 생각할 게 많아서 요즘 좀 사는 게 좆같다.”
“그만 사는 것도 괜찮은 거 같은데.”
“즐.”
중지 손가락을 올리며 더운 숨을 뱉는 참피.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누님은….”
산수유를 적대할 생각이냐.
“그럴 것 같다.”
그리 물으려 했는데 다 말하기도 전에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눈가를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산수유가 살며 무슨 죄를 지었으면, 이 꼴인가.
어이 없어 내뱉으니 참피가 나를 비웃었다.
“우리가 언제 죄있는 애만 찾아 죽였냐?”
꼰대 기질이 다분한 그녀라지만, 그렇긴 하다.
우리라고 해서 뭐가 다른 건 아니니까.
“어쩔거냐 넌?”
참피의 물음에 나는 건조한 얼굴로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도 산수유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저버렸을 수도 있다.
숲지기 선발전에서 몇 번이나 그녀에게 말했었다.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도움을 줄 수 있다.
도와줘. 그 말.
그 한마디만 하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러했듯. 그리고 내 스승님이 나에게 베풀었듯. 내가 받은 은혜를 갚을 생각이 있었다.
그럼에도 산수유는 연락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
나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나야 모른다. 어쩌면 내가 귀찮아 밀어내려 했던 걸 수도 있고.
‘그놈의 비원이 뭔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나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뒤, 참피를 마주했다.
“내 좆대로 하렵니다.”
낙인을 찍힌 산수유를 돕는다.
세계수에게 노려지고, 무엇이 어떻게 되든. 내 방식대로. 신분을 잃고 노려진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냐.”
참피는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는 듯 후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척.
그녀의 품에서 단검이 튀어나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쨍!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여 단검의 면을 깨부순다.
전신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회오리치듯 참피의 팔에 휘감겼다.
참피는 발을 뒤로 빼고, 등에서 새로 뽑아 든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심상찮은 마력이 단검에서 뿜어졌다.
나는 주먹을 바로 쥐어 앞으로 뻗었다.
-쾅!!
복도에 피가 일직선으로 길게 튀었다.
단 한 번의 교환. 나도 참피도 상대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크흐흐…흡. 터프하네.”
걸죽하게 웃으며 내 주먹에 눌려 바닥에 누운 참피.
힘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걸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날 찌르려니 했던 참피의 단검은, 왜인지 모르게.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고 있었고.
잘린 혈관에서 튀어나온 피가 그녀의 허벅지에서 울컥이고 있었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그깟 애새끼 한 명이 뭐가 대수라고 그러냐? 가슴이냐? 가슴 커서 홀딱 빠졌냐?”
“목숨을 빚져서요.”
“너랑 걔 사이에 그런 일이 있던가.”
“아마, 나만 아는 일이죠.”
“그래, 그러냐……. 야…. 스읍. 이정도면 전치 몇 주는 받을 수 있겠냐.”
부숴진 마력회로랑, 스스로 작살낸 허벅지를 생각하면.
참피가 치명상을 유도했다.
“2주 정도.”
“하아. 씨이벌.”
참피는 고통을 참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팔로 자신의 미간을 덮었다.
“…야.”
“예.”
“어설프게 들키지 마라.”
자신의 허벅지에서 검을 뽑은 참피가, 이번에는 제 옆구리를 쑤셨다.
-콰악!
그녀의 눈에 핏발이 섰다. 한참을 콜록이다가, 겨우 진정한 채로 나에게 말했다.
“뒤처리는 내가 해놓을 테니 꺼져. 난 플라워한테 습격받은 거고.”
“뭐. 산수유 적대한다며요?”
“크흐흐. 씨발. 명령이라고. 어겼다간 배교자는 내가 될걸?”
참피는 입꼬리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나는 니처럼 대단하지도 않고 쫄보라, 그러니까 수유 좀 부탁하자 응?”
“…….”
“그 새끼… 둔하고 착해빠져서. 그리고 생긴 것도 반반하지 않냐. 잡혔다간 뭔 일을 당할지 몰라.”
고통이 심해서 그런가 얼굴이 창백해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참피는 도원의 멸망을 직접 보아온 인물이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최악의 순간엔 그냥…. 날 불러. 원망도 내가 받고 말게. 알았냐?”
“생각 좀 해보고요.”
“크흐흐, 좆같은 새끼.”
배를 가른 곳에서 상상 이상으로 피가 많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작정한 모양이다. 살 방도가 있으니 이런 짓을 저지른 거겠지.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저택에서 빠져나왔다.
등 뒤로 참피의 자그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오 담배 말리네.”
나도 그렇다.
* * * * * * * *
산수유가 이단자가 되었다.
불과 어제 새벽에 알아낸 정보이기도 했고, 세상에는 아직 공표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면 그래도 며칠부터 몇 주까지는 걸릴 것이었고. 최대한 그 전까지는 나 역시 준비를 해야했다.
아니. 준비라기 보단 곧장 실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돕는 건 어디까지나 산수유이지, 코르너스 가문이 아니다.
그조차도 쉬운 편은 아니라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 정체와 과거를 전부 알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
동료라는 느낌보단 부하인 태양이 앉은뱅이책상에 둘러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말 듣고 있냐.”
“…예. 뭐.”
내가 살던 곳보다 더 썩어빠진 원룸.
사는 장소가 개판이 따로 없다.
청소도 제대로 안해서 주변에 휴지 덩어리들이 굴러다니고, 아까 화장실에 가보니 하수구도 막히기 직전이더라.
가난한 삶을 살았다는 게 정말인지. 적당한 집으로 이사라도 시켜줘야 하나.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근데 형님.”
태양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어.”
“개인 프라이버시는 저기, 지켜줘아하는 거 아닙니까? 이것도 나름 돈벌이인데.”
이 방에 아오리는 없지만, 여자는 한 명 있다.
그것도 꽤나 젊은 처자 한 명이 헐벗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마사지. 저게 태양의 돈벌이 수단이라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애초에 마사지를 자기 자취방에서 한다는 것부터가 음습함이 가득하다.
“언제든지 오라고 한 건 너 아니냐.”
“근데 이게 이렇게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죠.”
“…….”
침대에 누워 이불을 감싸 안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태양을 번갈아 보는 여성.
그 여자의 눈빛에 불쾌함이 스쳤을 즈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30분 뒤에 올 테니 끝내 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