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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
복도 안이 진동할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
-한 발자국이란 말이다!!
-쾅!
피투성이 손을 뻗어 자동문을 깨부순 채, 복도를 뛰었다.
-크읍, 카학…!!
등 뒤에서 쫓아오는 산혁원의 흉흉한 기세에 뇌가 지끈거려왔다.
-하찮은 인간이 방해할 숙명이!!!
마력을 최대한 퍼뜨려 상대를 찾는다.
연구실의 문이 아닌 벽을 팔로 꿰뚫어, 성인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틈을 만들었다.
‘시간….’
1초, 1초가 아깝다.
불타듯이 어지러운 머리를 계속해서 굴려. 틈 안으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그러자 동시에 이 장소까지 쫓아온 산혁원이 내게 소리쳐온다.
“멈춰라…….”
해방한 모습이 아닌, 인간 산혁원의 모습.
그는 나와 똑같이 피투성이에, 검은 반점으로 뒤덮여져 있었다.
맞붙는다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지금은 나도 내 상태를 모른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싸웠다간 자살 행위임이 분명했다.
잡히면 누구 한 명은 죽는다.
눈에 일직선의 좌표가 보였다.
-콰당!
“끄읍….”
피를 토해내며 바닥에 넘어진다.
발을 헛디딘 이상 걷는 건 포기했다.
그 대신 술식을 짜낸다.
극한까지 끌어 올려진 집중력에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뛰어가는 것은 느리다. 연구원들이 벙찐 얼굴로 나를 보고 있을 때. 나는 둔탁하게 땅을 두드리며 좌표를 외웠다.
뇌가 타들어간다. 아파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범인이 해낼 수 없는 경지, 넓었던 시야가 이동할 곳으로 좁혀졌다.
어두운 방 안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오듯. 오직 그 부분만이 밝아지며, 빠르게 읽어내린 좌표를 억지로 술식에 기입시킨다.
아티펙트의 방해를 계산에 넣고,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은 직접 모든 경우의 수를 대입하여 풀어헤친다.
무수한 미지수를 꿰뚫고, 머릿속에 넣어둔 마법의 이론과 형식을 최대한 일깨우고 뒤져가며,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머리 속이 탁 트였다.
‘…계산했다.’
-부웅!
공간을 접어, 신체가 사라졌다.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그 장소에 도달해, 수술 직전의 산수유의 몸을 내 손으로 덮었다.
점멸(點滅). 공간 마법의 극치.
몸이 연구원들 사이를 뚫고 산수유의 앞으로 이동한 나는 연구원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마력을 일으켰다.
아무런 표정도 말도 없다.
심절하여 탁해진 눈동자.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찢어진 배를 억지로 손으로 감싸 피를 멎게 한다.
오만 가지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만에 하나.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면. 내가 지금 이 죄책감을 벗어내는 게 가능할까.
걱정 속에서도, 다시 한번 더 쥐어짜낸 마법을 일으켰다.
“…이…시-”
무어라 소리치는 산혁원의 소리 뒤로 공간이 변했다.
-번쩍!
먼지 향이 퀴퀴하게 풍겨오는 침대 위로 나와 산수유의 두 신체가 강하게 엎어졌다.
-퍽!
불이 꺼져 앞이 보이지 않지만 산수유의 신체를 어떻게든 일으켰다.
“……야.”
목이 아파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산수유, 야!”
식어버린 피부를 끌어안고. 쥐뿔만큼 남은 치유의 권능을 일으키니, 온 몸의 생명력이 쭉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산수유의 외상이 치료되었다.
그럼에도 대답은 없었다.
힘없이 축 처진 산수유의 두 팔이 의지 없이 흔들거렸다.
마치 생명 없는 관절 인형처럼. 나는 불을 켠 즉시 그녀의 면면을 확인했다.
바싹 마른 입술 하며, 내 얼굴이 비치지 않는 눈동자와, 희게 바랜 머리카락과, 온기란 것이 느껴지지 않는 신체까지.
산수유의 볼에는 마른 샘처럼 자국이 남아버린 눈물 자국이 있었다.
“…….”
끝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머리가 멍멍해졌지만, 황망함 속에서도 나는 즉시 손을 움직였다.
심장은 뛰고 있다.
숨도 쉰다.
작게나마 손이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에게 하는 말인지, 이 녀석에게 하는 말인지.
산수유를 꽉 끌어안은 나는 등을 몇 번이나 쓸어내리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여전히 차가운 그녀의 몸에 내 온기가 배어든다.
여름의 끈적하고 습한 공기는 산수유의 몸을 덥히지 못했다. 약물에 젖어 흰 물이 점액처럼 흘러내린다.
녹아내린 피부 살점들이 뚝뚝 떨어졌다.
권능과 마력이 돌아오는 대로
마력을 흡수하는 산수유의 특성상, 자신의 신체를 구성하는데에 마력이 큰 역할을 끼칠 것이다.
산혁원이 그러했으니까.
‘…포션.’
오래 전에 이세영과 진달래에게 건네받은 상질의 포션을 이곳에 옮겨둔 적이 있었다.
나는 산수유를 껴안은 채로 엉덩이를 받친 뒤, 살짝 일어났다.
산수유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미련한 새끼…. 그놈의 가문이 뭐라고.”
욕지꺼리, 불평불만 전부 내뱉으면서 산수유를 끌어안은 채 찬장에서 포션을 꺼내 전부 들이켰다.
그렇게 나온 모든 마력을 산수유에게 전달하고, 침대 위에 눕혔다.
“하아… 하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땀 방울이 산수유의 쇄골에 떨어졌다
생명체라면 가져야 할 신경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산수유.
이걸 살았다고 보는 게 옳을지. 누군가는 의문을 던질 터였으나 괜찮다.
-쿵, 쿵, 쿵.
심장이 떨렸다.
큰 동요에 몰려오는 스트레스와, 싸움의 후유증인지 코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뚝, 뚝.
“……괜찮아.”
손으로 코를 막고, 나는 1인용의 네모난 냉장고의 옆에 앉았다.
지금은 돌돌 말린 휴지를 풀 기운도 없었다.
-우우웅!
거미줄이 쳐진 싸구려 냉장고 뒤. 뜨거운 열기가 몰려오는 곳.
쇠로 된 부분에 고개를 내려놓았다.
아무도 옆에 없지만, 지금은 이 딱딱한 부분이 어느 누구의 어깨보다 편하게만 느껴졌다.
“해냈어.”
해냈다.
기존의 목적을 충실히 행했다.
산수유의 건강이 걱정되고, 아직 아오리와 태양을 이곳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맨 처음 세운 작전은 아슬아슬하게 통했다.
눈이 자꾸만 감기는 바람에 나는 손으로 뺨을 내리쳤다.
‘조금만.’
아주 조금의 마력만 모이면 바로 출발하자.
나는 맥아리 없는 눈으로 옆에 누운 산수유를 바라보았다.
녹아내리기 직전인 피부. 만져 보았을 때 근육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개복한 상처 부위에서는 장기들이 생각하지 못한 형식으로 꼬이고 얽혀 있었다.
거기서 점멸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산혁원에게 1초의 시간이라도 저지당했다면.
만약 여기에 포션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녀는 분명 이 세상에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괜찮아.”
나는 그녀에게 들으란 듯이 중얼거리며, 흐릿한 눈을 자꾸만 비벼 댔다.
수렁에 빠지는 의식을 억지로 일으켰다.
손에 괸 핏물을 바닥에 흘려 보내며, 느즈막히 몸을 일으킨 나는 비틀거리며 마지막으로 산수유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
아직 할 일이 남았다.
* * * * * * *
바닥에서 솟구친 맨발이 상대의 심장을 꿰뚫는다.
-콰직!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불쾌한 촉감에 미간을 와락 찌푸리는 아오리.
‘왕님 칭찬 들어야지.’
스물이 넘는 시체가 산이 되어, 그 산들이 모여 산맥을 이루었다.
마치 과시라도 하듯 그 산을 자신의 양옆에 둔 아오리는 관문을 지키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자신의 바지를 벗어버렸다.
“끈적거려.”
홀라당-
분홍 속옷과 상의만 겨우 입고. 신발도 벗자 피 묻은 허벅지와 발이 훤히 드러난다.
아오리는 그제야 히죽 웃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왕님은 잘 하고 있으려나.’
이시헌의 힘은 태양이나 아오리도 잘 아는 바이다.
다만 문제는 산혁원의 기량이 아직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것.
‘만약, 왕님이 그 사람을 잃으면… 낙심할 텐데.’
그 순간.
-콰앙!
저 멀리서 느껴진 충격파에 아오리의 머리카락이 우뚝 섰다.
‘왕님. 싸워?’
심상치 않은 기운에 아오리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력을 부딪힌다. 딱 그 느낌이다.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질척한 기운의 정체는 분명 왕님이 사용하던 마기.
아오리는 약속도 잊고 관문을 열어 쏜살같이 달려갔다.
‘왕님!’
주변 복도에 시체가 널려 있다.
부수어진 검. 꺾인 날개. 마법의 흔적. 중화된 독.
그리고 이를 이어 길게 뻗어있는 피로 된 복도.
-찰박, 찰박.
발이 피범벅이 되어가면서도 고개를 빙빙 돌리며 양손에 주먹을 쥔다.
마기가 느껴지는 곳. 자신의 옹이가 부르짖는 곳!
아오리의 발이 멈춘 곳은, 반쯤 부수어진 문 앞이었다.
‘이 안이다.’
판단이 섰으나. 아오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저벅.
바로 들려오는 등 뒤의 발 소리.
고개과 돌아감과 즉시에, 아오리의 얼굴이 싸하게 굳어 들어갔다.
-저벅.
발걸음에 파문이 일었다.
핏물로 이루어진 개울이 떨려, 삶을 갈구하는 본능에 저절로 뒷걸음질을 치게 만든다.
본래였다면 실력의 차이를 체감하지도 못했을 상대.
아오리는 빠진 곳 하나 없이 뛰어났고, 뛰어났기에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이 인간을 보면 바로 도망쳐.
태양의 말에 합응하는 노인.
무궁이 아무런 말도 없이 시체 사이를 걸어오고 있었다.
-쿵, 쿵.
떨어질 뻔한 심장. 아오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왕님이 저기 있다. 이 문 너머에 가까이.
선택의 기로에서 아오리는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올렸다.
“…오호.”
아오리를 마주친 무궁이 눈썹을 좁힌다.
“짐승 새끼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군.”
“…….”
“니 주인은 어디로 도망쳤지?”
아마도, 태양을 말하는 것이다.
수왕의 존재는 협회를 비롯한 교단에게도 알려진 바. 재해 등급이 설정된 아오리역시 무궁은 알고 있다.
아니, 이미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죽을 고지를 넘어서 그렇지.
“…여기. 못 들어가.”
두 다리를 벌리고 달려들 태세를 한 아오리가 숨을 들이마셨다.
허리춤에 찬 녹슨검 하나를 쥔 노인이 경계하며 검을 쥐었다.
“네년이 상대라면, 봐줄 필요도 없겠군.”
“…….”
“삼재(三災)가 기어들어 온다니, 놀라워. 썩은 뿌리인 가문에게도 숨은 패가 있었구나.”
거대한 체구로 도시를 무너뜨린 전적이나, 그럴 힘이 있는 존재.
일찍이 아오리는 그런 재해로서 지정이 된 바 있다.
그만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경지에 달한 이들을 상대로도 도망치는 것이 가능하다.
“왜.”
무궁이 의문을 품는다.
“왜 가만히 있는 게지?”
이마에 맺혀 떨어진 땀이 아오리의 정신을 일깨웠다.
무너질 생각은 없다. 충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신하는….”
아오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아귀가 마치 거수경례를 하듯, 길게 뻗어졌다.
“왕을 믿고, 섬기는 것.”
“호오.”
“…왕의 눈앞이 아닌 곳에선, 절대 죽지 않는 것.”
온몸이 크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수목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아오리의 몸을 집어삼키듯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 두 명을 겹쳐놓은 듯한 수목의 주먹.
타이즈처럼 감싼 다리의 나뭇가지.
등과 치골에서 뻗어나온 수백 갈래의 촉수.
“…신하란!”
태양에게 배운 말을 내뱉으며 아오리가 호기롭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군주의 검과, 방패!!”
“……군주라.”
찢어진 촉수가 순식간에 무궁을 향해 달려든다.
바닥에서 솟구친 기울어진 달이 그 촉수를 전부 잘라내 버렸다.
-번쩍!
몸이 사라지며, 무궁의 코앞에 도달한 아오리.
검게 물든 눈동자가 기괴하게 찢어졌다.
“───!”
그녀의 입 바깥으로, 도저히 생명체라고 불리기 힘든 목소리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