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수를 따먹다-410화 (410/657)

세계수의 대리자는 신의 인격을 담아낼 수 있는 하나의 그릇이다.

혹독한 훈련에 걸쳐 완성된 가장 완벽한 생물.

뛰어난 잠재력을 바탕으로 세계수의 모든 지원을 받아 탄생한 전쟁 병기.

화신(花神).

-콰드드득!

“에, 에드워드님…?”

신을 받아들인 대리자의 힘은 경지와 흡사하다 전해진다.

물론 그들의 전투력이 천마와 검성에 필적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곤 하나, 세계수의 마지막 보루.

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경지에 올랐다 함은 즉 오대 세계수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라는 소리.

아무리 신을 받아들였다고 할지라도 어폐가 있다.

이들의 실질적인 전투력에 대한 평가는 삼재(三災)와 비슷하다.

수만 모인다면 천마와 검성조차 토벌할 수 있는 존재들. 목숨을 불사한다면 치명상을 입히는 것 또한 가능했다.

즉,

거의 적수가 없다 봐도 무방한 강자.

“……큭!?”

신에 가장 가까워야 할 사내가.

힘에 밀리고 있었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의 간극.

바닥이 마치 호수처럼 일렁이며, 샛노란 파문이 일어났다.

초저녁 풀벌레의 노랫소리처럼 퍼져나가는 물결.

옛 얘기보다 애달픈 자잘한 노란 꽃들이, 그 바닥 물결을 따라 고요히 퍼져나갔다.

-웅웅!

몸통 군데군데 썩어 흉한 상처가 거멓게 드러난 시체를 품에 안고.

상처를 동무하고, 들쳐진 살갗 위로 피어오른 갑피를 갑옷처럼 동여맸다.

수유나무에 대하여.

한 시의 구절을 아는가.

“…….”

도시 한 곳에 솟아오른 의문의 호수 위. 그녀를 상대하는 모든 이들의 발이 묶였다.

새빨갛게 붉게 물든 눈동자가 향하는 곳에 파문이 일었다.

-팍!

터져나가는 머리.

산수유의 발치에 이시헌의 시체가 있었다.

몸통 군데군데 썩어 흉한 상처가 거멓게 드러나고.

팔다리가 여기저기 잘려 문드러져, 온몸이 일그러지고 뒤틀린.

그녀가 몇 번이고 곱씹을 고난. 그렇게 피워낸 꽃잎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 해방 】

잔잔한 노랫소리 사이에, 간헐적으로 거친 음율이 매겨졌다.

숲이 분노해 길을 감추듯.

강이 분노해 여울이 범람하듯.

상대방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결계를 만들어 가두고, 그녀가 손에 감싼 형태 없는 검이 샛노란 빛을 발했다.

황금색의 마력은, ‘수호’.

자라난 나무가 산수유의 몸을 뒤덮더니, 꼭 중갑을 입은 기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흉터나 병약한 구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렇게 다다른 불멸.

【 석조(石棗) · 산수유 】

알알이 핀 붉은 겨레 · 호수의 악(嶽)

직선으로 뻗어나간 검격.

폭포처럼 한 곳에 쏘아진 투명한 검기가 에드워드의 신형을 집어삼켰다.

-쾅!

신의 힘을 사용하나, 역부족.

한 손으로 내리친 검이 나팔처럼 울리며 주변의 공기를 떨게 했다.

【 석조(石棗) 팔기나찰(八氣羅刹) 】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휘몰아치며, 가끔씩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방식의 코르너스 검술.

쾌(快)를 중시해야 할 검이, 단순무식한 힘으로 강인의 세계수를 집어삼켰다.

에드워드의 눈에서 새빨간 실선이 그어졌다.

쏟아진 마법들을 아무렇지 않게 흘리며, 산수유의 검이 에드워드의 갑옷의 심장부를 후려쳤다.

-콰직!

박살 나는 갑옷. 파편 사이로 핏물이 새어 나왔다.

충격에 견디지 못해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보였다.

곧바로 재생해내긴 했지만, 화력을 무시할 수 없다.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에드워드님!”

“…물러서.”

갑자기 나타난 중갑의 여기사.

이름도, 모습도 알 수 없다.

“…저주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법도, 오히려 흡수해서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산수유의 약점이 보이질 않았다.

세계수의 권능이나 신묘한 힘으로 억눌러야 하지만.

신체가 어떠한 작용을 일으키는지. 까다로움을 넘어 상대를 못 할 정도로 특성이 기괴하다.

산수유는 검을 한 번 공중 위로 휘둘렀다.

주변 사제들이 한순간에 절명하며, 화살이나 총에 맞아 생긴 잔 상처들이 단숨에 복구되었다.

에드워드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맡지. 증원을 불러라. 최대한 민간 피해를 줄여…. 세계수님의 명령이시다.”

“네, 넵!”

“아무리 상황이 절망스러울지라도, 주변을 보살펴야 한다. 그걸 잃는 순간, 신앙은 끝이다.”

세계수의 힘은 받아들일수록 그릇에 부담이 된다.

그러나 때론 목숨마저 걸어야 하는 상황이 있는 법.

산수유를 둘러싼 주변에 무수한 민간인들이 숨죽여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괴물을 보는 시선이었지만, 무슨 상관일까.

그녀를 오늘날 검을 뽑게 만든 것은 결국 세계수의 과오였다.

에드워드는 손목을 감싼 금색의 팔찌를 깨부수었다. 그러자 붉은 색의 마력이 솟구치며, 이윽고 자세를 잡고 움직이니 산수유의 신체가 뒤로 꺾였다.

-쾅!

서로의 검이 맞물리자 주변에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 * * * * * * * * *

“목랑의 움직임이 사라졌습니다. 토벌은 실패했고, 놓친거라고 봐야겠죠.”

“괜찮다.”

정의의 세계수의 힘을 받아들인 안젤리카의 시선엔, 황도가 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저 년만 죽이면, 당장의 피해는 아무렇지도 않다.”

서울에 몰린 8할의 병력이 단 한 명을 향해 있었다.

현 시대의 천마.

그 이름이 우습지 않듯, 병력 전체를 상대로 압도하고는 있으나.

수의 폭력은 한 사람의 전력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진을 수십 차례 결집시켜 만든 광장 크기의 결계.

하물며 세계수의 신기(神氣)로 만들어진 종교의 기물들이 모두 그녀를 향해 있었다.

수십차례 약화된 몸과.

정신을 깎아내리는 저주.

“흑환영(黑桓楹), 오르비스의 영혼, 오환(烏桓)… 무수한 국보부터, 아스트라. 오호. 적요를 비롯한… 성유물까지. 모든 준비가 끝났다.”

목령왕과의 성전, 천마와의 일전으로 대다수가 소멸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아있는 신비한 힘을 지닌 보패.

아무리 일신의 힘이 강할지라도, 이곳에서 도망가는 건 불가능했다.

이시헌이라는 눈엣가시조차 제거했으니 수월하다.

“…….”

피에 흠뻑 젖은 황도의 한쪽 눈이 감겼다.

아찔한 듯 떨리는 동공.

“……흡!”

붉은 불꽃이 그녀의 몸을 감싸더니 한 차례 터졌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며 안젤리카의 옷자락이 휘날렸다.

“어떻게든, 동상만 빼내오면….”

상처에 포션을 들이부은 안젤리카는 그녀에게 외쳤다.

“네년의 제자를 말하는가?”

“…….”

“방금 소식이 들어왔지. 죽었다더군.”

검에 힘을 불어넣자 노란색의 마력이 검면에 떨어져 핏줄처럼 기괴하게 퍼져나가며 물들었다.

자신의 판단이 곧 세계수의 판단.

“질서를 위해서, 죽였다. 머리가 반으로 갈라져서 말이다.”

전투의 흥분 때문에 거친 말이 튀어나온다. 가만 듣고 있던 황도가 입을 다물었다.

-번쩍!

갑자기 사라진 신형.

안젤리카의 코앞에 나타난 황도의 손이 거칠게 그녀의 목을 쥐어뜯으려 했다.

【 칠검(漆劍) 옻나무 】

안젤리카의 검과 황도의 손이 빗겨 나가듯 서로 맞물렸다.

-파확!

핏물이 튀며, 안젤리카의 안면이 불에 타 녹아내렸다.

황도는 양 손이 마비된 듯 떨며 죽일 듯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적요(赤搖)는… 상대의 마력을 봉인하는 성유물이지. 과거 선조의 힘을 상대로, 자유로이 움직일 거라 생각했나?”

오래 전에는 이보다 훨씬 더 무수한 강자가 있었다.

오대 세계수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세계수일 뿐. 현재의 신이 된 그들보다 더한 수목들이 목령왕에게 대항했었다.

방금 황도의 마력을 억누른 적요 역시. 그때 만들어진 비보 중 하나였다.

천도가 무력으로 세계수에게 저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

“그럼에도 공간 마법을 사용한다는 점만은, 인정해주지.”

“…….”

“현자조차 이 감옥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오래전 신과 자주 만남을 갖던 현자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이를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현자가 진심으로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했는지는 둘째로, 그 용도로 사용될 정도의 물건이라는 소리.

안젤리카는 도발했다.

“천마를 불러와라. 마법사인 네년이 나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무리 계산을 철저히 할지라도, 중첩된 저주 속에서는 무엇하나 할 수 없다.

충분히 버텼다. 이제 남은 건 두 사람.

그렇게 생각했을 때. 황도가 다시 움직였다.

【 점멸(點滅) 】

뇌를 과부화시켜 돌린 황도의 마법이 다시금 안젤리카의 목을 쥐어뜯으려 왔다.

커진 눈알은 오직 자신의 연인을 비웃은 안젤리카의 목을 향해 있었다.

그런 황도의 몸을 노인이 나타나 걷어차려했다.

-쾅!

순식간에 바뀌는 머리색, 희게 물든 백도가 끼어든 무궁의 일격을 막아내며 물러섰다.

“…자넨 부상을 입었을 텐데.”

“끌끌. 목숨을 살려줬더니, 그 흔한 인사 하나 없을꼬.”

안젤리카의 앞에 나서 백색의 검을 빼든 무궁이 눈가를 좁혔다.

“애송아. 분에 찬 자리에 앉으니 네가 뭐라도 된 것 같느냐?”

“…….”

“끌끌. 난 네년이 지금 이 땅을 밟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려. 차라리 천마가 낫지, 하다못해 신념이 있는 년이니.”

“…….”

“시시껄렁한 도발은 집에 가서나 하거라.”

머리를 풀어헤친 검성이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지금부턴 누가 죽어도 모르니.”

곱절로 커져 나간 살기. 이곳 모두가 자신의 터에서는 정점에 다다랐을 텐데, 놀랍게도 백도의 기상에 모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처음 황도가 힘을 썼을 때보다 더한 압력

-쿠구구구!

건물이 아래로 처박힌다.

이마에 선 새파란 핏줄. 정점에 올랐던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멍한 눈을 아래로 내린 백도는 양손에 주먹을 쥐어 아주 천천히 상대들을 내려다 보았다.

“터와 가문에, 이젠 삼등 제자마저 잃는다라.”

흥분한 듯 목소리는 떨렸지만 얼굴은 차갑다.

“……아버지의 말이 맞구나. 아주 꼭 들어맞아.”

깨달은 듯, 헛웃음을 내뱉더니 킥킥대기 시작한다.

광소에 가까운 웃음에 바짝 긴장하는 주변.

무궁 역시 마른 입술을 핥았다.

“처음부터, 이 세상은 무너지는 게 옳았다.”

-쿵.

백도의 말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 것은 기분 탓일까.

흰 머리카락이 붉게 물들더니, 손안에 칠흑색의 검이 들렸다.

분노는 고요했다. 이성을 잃는 일도 없었고, 그녀는 그저 담담히 자신의 힘을 조금씩 드러낼 뿐이었다.

“…….”

경지에 오른 자가, 한 번 더.

자신의 힘을 모두 꺼내놓는 목질화를 거쳐 가면 어떻게 될까.

인간에게 한계가 있듯, 목인에게도 한계란 존재한다.

경지를 넘어선 이후의 해방(解放).

목인이 해방을 거쳐갔을 때 엔트와 비슷한 형질의 힘을 사용한다면.

경지에 이른 자의 해방은 목귀(木鬼)와 비슷한 힘으로 변질된다.

그러나 경지의 힘은 아득히 멀고도 강해서.

사용자의 힘을 모조리 깎아버려 죽음에 다다르게 만든다.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한 존재는 목령왕의 힘을 받아낸 사람들뿐.

-자랑스런 제자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요.

“……나도. 묻고 싶구나.”

천도의 주변에 나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수십 km에 달하는 공간.

멸망한 도시에 식물이 자라듯. 나무의 뿌리가 솟아오르더니, 온 세상이 복사꽃으로 물들었다.

【 해방(解放) 】

천도의 흰자가 검게 물들었다. 붉어진 눈동자는 깨지기 직전의 보석처럼 흔들거렸다.

【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

오래전 도원향을 연상시키는, 온 길가에 난 복사나무.

지상만이 아니라 하늘까지 뻗어 나가 제 꽃잎을 흩뿌리더니, 잎새 하나마다 자아를 가진 듯, 수목들이 설움에 가득 차 흔들렸다.

-파라라라락!

천마를 토벌하기 위해 펼친 결계가 반대로 천마가 펼친 공간으로 뒤바뀌는 순간.

검성이라 불린 사내 역시, 죽음을 각오하고 검을 물들였다.

천도의 감긴 눈이 서서히 올라갔다.

“나는 너에게, 자랑스런 스승이었느냐?”

* * * * * * * *

바닥에 엎어진 사내의 시체가 발에 밟혀 터졌다.

죽은 에드워드의 시체를 빤히 바라보던 산수유는 호흡을 고르며 자신의 힘을 정돈했다.

아무리 속이 불편해도, 이미 끝났다.

팔과 다리가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잘려나가기도 어느 한순간.

전부 재생했지만 몸이 지쳐갔다.

산수유의 몸을 감싼 중갑이 무너지며 그녀의 주변 물길이 사라졌다.

“……시헌. 왜 혼자 간 거야.”

그녀는 쓸쓸히 중얼거렸다.

결국 코르너스 가문의 염원은 그녀의 대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던가.

가문의 비원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산수유는 이시헌의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형체도 남지 않고 녹고 잘린 시체들은, 방금 펼쳐진 전투에 의해 사지가 이곳저곳으로 뜯어져 흩어졌다.

왜 시헌이는 이런 선택을 한 걸까.

비탄 속에 의문을 품기 직전. 그녀의 등 뒤에서 알량한 목소리가 울렸다.

“멀리 떨어지시죠.”

-파앙!

일어난 마력이 산수유의 등을 점했다.

나타난 여인은 한 손에 들린 아티펙트로 산수유의 몸을 지정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에드워드와의 생사결로 지쳤지만 아직 싸울 수 있다.

산수유의 손에 다시 형태 없는 검이 만들어지려는 순간.

-움찔!

산수유의 발 밑에 있던 시체가 움직였고,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시헌?!-”

그러나 그녀의 말은 중간에 끊겨 사라졌다.

산수유가 사라진 도시에 남은 여인은 이시헌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이기적이라 불러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사르젠티가 이시헌의 옆에 서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3분. 그때까지 일어나지 못하면, 당신이 말한 대로… 그 힘은 제가 빼앗아서, 태양이나 다른 이들에게 넘길 거에요.”

미소 없이 시간을 재며 눈을 감는다.

이시헌의 시체는 차가웠다.

“…….”

1분.

“…아마 지금 일어나면, 적어도 몇 년은 연인들을 못 만나게 될 거에요. 당신 계획이 그랬으니까.”

2분.

사르젠티는 새처럼 조잘대며 도로변에 무릎을 꿇었다.

“흰개미는 당신이 말한 대로 모두 일상으로 되돌아갔어요. 전부 고아였고, 슬픈 인생을 살았는데. 덕분에 제 삶을 찾았다고 봐도 무방하죠. 흰개미가 무너지면, 세계수랑 플라워는 이제 정말 목령왕이 죽었다 생각하겠죠. 일타쌍피에요.”

-철컥.

주변의 시야가 암전되어 차단된다. 사르젠티만이 이시헌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율리는 태양과 아오리의 품으로 들어갔어요. 어떻게 태양이를 꼬실지 참 기대되는데. 뭐 그건 둘째치고.”

“이세영이랑, 별? 그 두 사람은 문제없어요. 한국의 사법권은 세계수의 손이 뻗지 못하는 곳에 있거든요. 좌지우지하는 건 무궁 그 노인네인데……. 융통성이 없지는 않아서, 해코지는 못하겠죠. 오히려 별을 다음 협회장 감으로 보고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아느냐, 아마 이시헌은 이쯤되면 그렇게 물어보지 않을까.

사르젠티는 이에 답하지 않았다. 늘 얄궂은 그녀다.

“당신이 죽으면서, 던전에 게이트가 터졌죠. 당신은 제가 어디서 왔는지를 궁금해 했는데. 그 던전이에요 사실.”

“그러니 당신의 힘을 빼갈 수 있는 거고. 제가 당신의 계획을 도울 수 있었죠. 도운 이유야 뭐……. 저도 태양이처럼 당신을 좀 긍정적으로 보고 있거든요. 다른 신하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3분이 지나기 직전.

사르젠티는 타이머에 1분을 늘렸다.

“잠시만요 시간 좀 늘리고… 오케이. 당신은 그 사람이랑 꽤 닮았어요. 멍청한 것도 그렇고. 뭐 이것저것.”

목령왕의 후계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로인해 무수한 던전의 게이트가 터짐으로써, 전쟁은 종막을 맞이할 것이었다.

플라워든 세계수든 할 것 없이 던전의 진정에 큰 힘을 쏟을 거고.

그 던전 안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는다면 전쟁을 그만두고 던전 공략에 힘쓸 테다.

아주 옛날, 헌터의 세상이 돌아오는 것이다.

“왕님 계획대로 애인들은 다 살았죠. 아니… 세 명은 좀 위태로운가. 바보 같은 계획이라, 벌써 흠이 났죠?”

사르젠티가 그를 비웃었다.

“이제 일어나야겠네~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스승님들이 위험하니까.”

-움찔.

다시 한 번 맥박친 시체에, 나뭇가지가 자라났다.

잘린 머리를 꽉 채우는 잔뿌리들.

“…….”

이시헌의 심장을 가져가려던 사르젠티의 손이 멈추었다.

4분째.

그녀는 눈을 감았다.

【 숙명 】

“…역시나. 그럴 줄 알았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봐온대로다.

“미련한 사람이라니까.”

이시헌의 팔이 올라가더니 사르젠티의 가슴을 꿰뚫었다.

바닥면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사르젠티의 생명력을 그대로 뽑아 가며, 줄어들었던 그의 몸이 팽창했다.

“저, 너무 쓰기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 자서전에는 어떻게 기록될지 모르겠네.”

“…….”

“갑자기 나타난 단역 정도일까…… 근데, 그거 알아요? 절 보낸 게 당신이랑 밀접한 세계수인거.”

-꾸득, 꾸드득!

“아무튼.”

이시헌의 몸에서 자란 나무가 사르젠티의 신체를 삼켰다.

“무운을 빕니다. 왕이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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