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0화 > 흑단나무 (1)
“랜턴 같은 건… 필요 없나. 마법으로 때우면 되니까.”
배낭 안에 삼일 치의 음식과 마도구를 집어넣으며, 던전 탐사의 준비를 마쳤다.
세력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던전.
대기업이라 부를만한 곳은 이미 산하의 길드로 하여금 던전 물자를 수급하도록 루트를 마련한지 오래다.
개개인인 헌터들에게도 던전은 일확천금의 위험한 기회.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적용될 일은 아니었다.
‘연옥이 특이케이스긴 했어.’
스승님조차 죽음을 면하지 못할 뻔했던 그 날.
만약 내가 상태창을 깨부수지 못했다면 스승님과 나는 이미 이승을 떠난 뒤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던전이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던전은 마물 토벌만으로도 값진 재화를 얻을 수 있다.
요즘같이 미확인 던전이 훨씬 많이 늘어난 지금은 더더욱. 헌터라는 직종의 가치가 오른다. 그렇기에 헌터의 시대였다.
“아. 이것도 챙겨야지.”
최근에 먹기 시작한 딱딱한 복숭아.
요즘들어 괜히 씹을 것이 필요했다.
며칠만에 던전 탐사가 가능한 나만이 할 수 있는 기행. 길게는 한 달을 잡고 가는 던전 탐사에 보통은 말린 과일이 선호되는 편이다.
“…?”
부시럭대는 소리가 너무 컸던 걸까. 눈을 뜬 깜둥이가 슬그머니 일어나 눈을 비볐다.
여전히 말을 잘 섞어주지는 않지만 예전과 달리 의사소통은 원활했다.
밥이나 물도 잘 먹고.
내가 던지는 농담에 조금은 반응을 하고 있다.
“일어났냐?”
내 물음에 깜둥이가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우리 일이나 하나 하자.”
깜둥이 제자 만들기 프로젝트.
검은 마력을 다루는 꼬마의 잠재력을 알아볼 겸, 이번 던전 탐사는 이 아이와 함께할 예정이었다.
*****
던전의 형태는 자그마한 게이트의 형식을 띄고 있다.
최근 발견된 일곱 개의 탑은 대지에서 우뚝 솟아있다고는 하지만, 던전의 대부분은 이렇게 공간에 균열이 나 있다.
“잘 봐. 이 게이트의 틈새에서 마물이 흘러나오는 거고, 여기가 던전의 초입으로 향하는 입구.”
깜둥이는 몸을 떨며 나를 불안한 듯 바라보았다.
갑자기 끌려와서 당황스럽겠지.
하지만 이 녀석에게는 삶의 원동력이나 동기가 필요했다.
“그 마을. 있잖냐.”
“…!”
그래서 말을 흘렸다.
“보아하니 세계수의 눈에 들어와서 망한 것 같던데. 맞지?”
깜둥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을 베베꼬는 동작이라거나, 어두운 얼굴로 볼 때 내 어림짐작이 정답인 모양이었다.
“거기서 친구를 잃었고.”
“….”
던전에 들어가기 전, 나는 깜둥이를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지금껏 내가 했던 모든 노력은 전부 필사적으로 임해야만 하는 동기가 있어서였다.
무작정 제자로 삼고 데려간다고, 이 녀석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는 없다.
그러니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대화를 나눠야 했다. 그걸 위해 한달간 함께 동침을 하기도 했으니까.
“아직 죽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
“설령 일이 잘못되었더라도, 복수할 여지는 있겠지.”
“…….”
깜둥이의 손이 떨렸다.
“무의미하게 죽고 싶어 하는 것보단 백배 나을 거다.”
말을 딱딱하게 굳혔다.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설득했다.
내가 지금껏 배워온 요령을 가르쳐 주겠다.
스승님이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베풀었듯.
힘이 필요한 적성자를 찾았다.
-스윽.
품에서 꺼낸 단검을 검집째로 넘긴다.
두꺼운 손에 꼭 잡은, 값어치와는 관계없이 내 나름의 존중을 담아, 어렵게 구한 칼이다.
“멋대로 데려온 건 미안하다.”
검을 뽑았다. 날 부분을 잡고 그녀에게 내민다.
깜둥이는 몇 주전만 해도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영양실조에 지독하게 시달려 왔고, 친구나 가족이라 부를만한 사람들을 모두 잊었으니까.
“해볼래?”
지금껏 나를 계속해서 무시해온 깜둥이는 눈동자를 절고 있었다.
“안 해도 돼.”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
나에게는 후계자가 필요했고, 그게 내 딸들일 수는 없다.
“사정을 말하자면. 나는 제자가 필요하거든.”
그걸 설명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라서, 천마의 힘이나. 왕의 인자라거나…. 그걸 넘겨줄 녀석이 필요해.”
“…….”
내가 너에게 힘을 전수하는 대신, 네가 복수를 할 마음을 다잡고 움직일 원동력을 내가 넣어줄 테니.
한 번 손이나 잡아보지 않겠냐.
케케묵은 구원 서사 따위가 아니다.
필요에 따른 관계.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을 위해 조금 더 먼 사람의 목을 찔러넣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깜둥이는 고민했다.
고민하는 눈치란 걸 척 보기에도 알 수 있었다.
뒷걸음질을 쳤다가, 한 발자국 다가왔다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곤 그게 무서운지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
조약돌만한 손이 내 칼을 쥐려고 뻗어 왔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 녀석이 제 나름대로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나는 이 녀석을 노예로서 돌봐준 게 아니다.
사사로운 정은 없었다.
오래 기다렸으니, 이제는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떻게, 알았어요?”
깜둥이가 내게 말했다. 아주 가끔씩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친구….”
“네가 말했잖아.”
“…복수…할 수 있어요?”
복수라는 단어에 자극을 받은 걸까.
“어.”
좋은 동기는 아니지만 그만큼 확실한 동기도 없다.
“그럼….”
-툭.
깜둥이의 조심스런 손이 내가 든 칼을 맞잡았다.
“제자…할…래요.”
하나의 이어진 검날로, 차가운 쇠의 냉기가 짜릿하게 손을 타고 퍼져나간다.
“그래.”
아직 마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검으로서는 이어졌다.
“오늘부터 내가 네 스승이다.”
우리는 만난 시간이 너무도 짧다.
심신이 미약한 탓에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다만,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널 이끌어 주겠다.
“들어가자.”
*****
“처음은 간단해. 방패랑 검 쥐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워보자.”
만류귀종이란 말이 있다.
검이 되었든 무공이 되었든 결국 하나로 이어지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첫싸움에는 무기가 있는 편이 좋다. 나는 깜둥이의 손을 부여잡고 조금씩 가르쳤다.
“손에 힘 풀고, 옳지. 이렇게 찌르는 거야.”
깜둥이는 거의 무(無)의 상태라 보아도 무방했다.
기술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던전 초입 부분. 동굴을 걸어가며 도중에 멈춰서 자세를 가르쳤다.
“발 펴고, 다리 사이 공간은 한 이정도.”
허벅지와 무릎을 만져가며 교정한 뒤. 내가 처음 배웠던 그대로 가르쳤다.
나와 접촉하는 걸 극도로 꺼려했던 깜둥이는 조금씩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크르륵.
저 앞쪽에서 들려오는 동굴 고블린의 울음소리.
나는 내 몫의 단검과 방패를 꺼내들며 깜둥이에게 말했다.
“예시를 보여줄 게.”
-크륵?!
마침 나를 본 고블린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한 마리인 줄 알았더니 세 마리다.
깜둥이에게 알려주었던 자세를 취한 뒤, 방패를 가슴보다 조금 높게 들어 검을 꼬나쥐었다.
“끼리릭?!”
불쾌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고블린. 녀석이 든 녹슨 검이 나를 노려왔다.
-쾅!
몸을 앞으로 부딪혀 방패로 고블린을 밀친다.
“고블린은 방패를 뚫을 힘이 없어. C급 헌터들 대부분도 고블린이랑 비슷해.”
검이 날아오는 각도를 맞춰 정각도로.
굳이 이 녀석에게 방패를 들게 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충격을 흘려보내기 쉽다거나, 안전하다거나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방패란 사용자의 위축된 심리를 크게 안정시킨다.
이로 인해 더욱 공격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쿵!
고블린을 방패로 밀쳐내며, 다음 고블린의 공격을 흘린다.
죽이지 않고 방어만을 계속하자 고블린들이 헥헥대며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는 발로 고블린을 걷어찬 뒤 깜둥이에게 말했다.
“해봐.”
“…….”
마물을 상대한 경험은 있을까.
사람을 상대로 검을 휘두른 것은 본적이 있다. 살해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깜둥이는 의외로 침착하게 방패를 꺼내들어 내 자세를 잡았다.
‘바로 따라하네.’
스승으로서 흐뭇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지만, 조금 아쉽다.
고블린을 하나하나 마크해나가는 깜둥이.
방패를 정각도로 쥐고 있는 내가 가르친 자세는 엄연히 틀린 자세다.
-키이이익!
달려드는 고블린을 향해 깜둥이가 방패를 치켜들었다.
한 쪽을 막으니 다른 한 쪽이 그녀를 덮쳤다.
“…읏!”
양각에 잡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난 깜둥이가 삐질 땀을 흘렸다.
공격에 대한 반응이 늦다. 아니, 늦을 수밖에 없는 자세다.
방패의 장점이 말한 대로라면, 단점은 사용자의 시야를 크게 가린다는 거다.
궁수를 상대로라면 효과적이겠으나 이렇게 각이 넓은 다수와의 싸움에서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힘으로 밀친다면 모르겠지만….
“캬아아아악!”
“읍….”
기어코 공격을 허락해 어깨에 상처를 입은 깜둥의 태세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아, 흣….”
그녀의 피부 위로 새까만 마력이 암영처럼 흐르듯 튀어나왔다.
힘으로 밀어부칠 생각인가.
-번쩍!
앞으로 튀어나간 깜둥이의 방패가 고블린의 가슴을 후려쳤다.
시야가 방해된다는 걸 깨달았는 지 공격적인 자세로 치환했다.
비스듬히 든 방패를 운용하는데 제법 테가 났다.
-서걱!
첫 번째 고블린의 목을 벤 뒤 방패를 들어 두 번째 고블린의 공격을 막았다.
차례차례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처음 보여준 자세를 완벽히 교정하지는 못했지만, 대단하다.
-툭!
마지막 고블린이 목이 떨어지자 깜둥이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헉, 헉.”
숨을 몰아 쉬며 덜덜 떠는 깜둥이.
여기서 벌써 지치면 안된다. 앞으로 해야할 일도 많고 교정할 것도 많다.
“잘했어.”
깜둥이에게 접근해 치유의 권능으로 어깨를 쓸어내렸다.
“읏!”
고통에 질려 내 손길에 거칠게 떼어 내려던 깜둥이가, 바로 새살이 돋아나는 어깨를 보더니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고통에는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몸이 굳은 깜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머릿결을 쓸어내리며 챙겨온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한층 움직이기 편할 거다. 가자.”
등을 두드린 뒤 던전의 안쪽을 향했다.
미확인 던전이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최대한 경계하며 깜둥이에게 최대한의 전투를 맡겼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깜둥이의 움직임도 점차 나아지더니, 이제는 고블린 정도는 무난하게 잡아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확실히….’
성장이 빠르긴 하다.
점점 무기가 손에 익는 게 눈에 보일 정도.
다른 사람들을 최소 몇 달에 걸쳐 배우는 기본기를 몇 분만에 감을 잡더니, 슬슬 기본기만은 통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무기술이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하면, 무서울 정도.
‘내가 한창 배울 때, 나를 보는 스승님이 이런 기분이었나?’
잠재력의 끝판왕을 내지르던 아카데미 시절의 활약보다 조금 못하지만, 대단하다.
그마저도 상태창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낸 성과임을 생각하면, 깜둥이의 잠재력은 개개인으로서는 최고가 아닐까.
-서걱!
군인으로 치면 병장쯤 되어보이는 고블린을 처리한 깜둥이가 힘겹게 다가왔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동굴의 끝에 보이는 균열을 확인했다.
‘이건, 복층 구조네.’
단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던전의 크기가 중형 정도는 되는 듯하다.
이 경우에는 함정에 바로 떨어지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들어가자.”
“….”
기왕 여기까지 온 거, 깜둥이의 잠재력을 더 확인하고 가야겠다.
균열에 손을 뻗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몸이 이동했다.
깜둥이와 손을 잡고 다음 층으로.
-쿵!
싸늘한 공기가 허릿춤을 파고들었다.
“후우….”
다행히 마물은 없다. 벽돌로 지어진 긴 통로가 나를 반겼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손아귀를 확인한 나는 피식 웃었다.
하필 나올 수 있는 모든 함정 중 최악이 걸리고 말았다.
“……빠르게 움직여야겠네.”
식량 가방이랑 마도구 일부는 깜둥이에게 넘기긴 했지만, 불안하다.
깜둥이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