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수를 따먹다-650화 (650/657)

< 650화 > 아빠의 육아

아이들은 늘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고심한다.

부모의 관심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경의인 시절.

어린 시절의 나만 해도 그랬다. 학급 반장부터, 전교 회장, 착한 어린이 상, 국제 유아 올림피아드 등등. 아버지의 칭찬을 따내기 위해 안 해본 짓이 없었다.

‘이 나이 때는 그냥, 부모가 전부지.’

내가 그래서 알고 있다.

아버지만큼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위대했냐고 묻노라면, 지금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겠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의 꿈은 어떤 의미로는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중세나 고대의 사상에 이입해보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거룩한 업적을 이룬 지천의 왕이니까.

‘다만.’

위키의 행위는 다소 도를 넘었다.

아빠의 관심을 바라는 행위가 슬슬 자기파괴적으로 넘어간다?

나이를 먹으며 나아지면 모르겠지만, 육아 견문이 짧은 나로서는 어떤 돌발 상황으로 튀어갈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똑똑.

오늘도 느닷없이 열리는 문.

“아빠. 있잖아요.”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온 위키의 발등에 자그맣게 까진 상처가 보였다.

그저께는 무릎. 어제는 정강이. 오늘은 발등이다.

약간 아픈지 고개를 찡그린 위키가 은근히 신이 난 발걸음으로 방 안에 들어왔다.

상처가 더 잘 보이도록 곰돌이 잠옷이 아닌, 치마를 입고 온 게 압권.

위키는 발조리개 같은 양말을 들추며 반쯤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다쳤어요.”

이번엔 뭘 하다가?

IQ 추정불가, 위키의 자기변호 들어가신다.

“화장실 문 닫다가 문틈에 긁혔어요. 너무 아파요. 호 해줘요.”

겉으로 보나, 울먹이는 목소리로 보나. 보호욕이 들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부성애가 불타올라 화장실 벽을 콱 부수고픈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진정하자.’

다른 엄마 아빠들은 얄팍한 아이들의 수를 금방 알아차린다던데.

빈 말이 아니고 위키는 내 지갑에 손을 대도 평생 모를 것 같다.

얘는 너무 똑똑해.

이렇게 대놓고 여러번 다치지 않았다면 눈치 채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위키가 욕망에 약하다는 건 맞네. 알바가 그 욕망을 억누르려 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아.’

작정하고 아빠를 속이려 한다기엔, 그 횟수가 잦고 노골적이다.

아무리 똑똑한 위키라도 눈앞에 떡이 있다면 허술해질 수 있다는 거다.

“아빠아~ 빨리요. 호 해주면 안돼요?”

“그래 우리 사랑스러운 딸- 스읍.”

아니다.

하마터면 조르기에 넘어갈 뻔했다.

나는 즉시 상체를 숙여 위키와 눈높이를 수평으로 맞춘 뒤. 가볍게 위키의 상처를 두드렸다.

약간 벌겋게 달아오른 복숭아 뼈의 옆에 위치한 발등.

껍질이 떨어진 그 부위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빠?”

위키의 목소리에 위화감이 감돈다.

치료와는 전혀 다른 의도의 마력 발산 행위를 현자의 딸인 녀석이 모를 리 없었다.

-스윽.

살을 문대며 마력의 흔적을 찾자.

여러 고행을 파헤치며 기감을 키운 덕분에, 위키가 전력으로 감춘 마력의 자흔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상처는 의도된 게 맞았다.

“위키.”

“…네.”

들켰다는 사실을 내심 인지한 걸까.

위키는 다급하게 변명하기보단 차분하게 받아들이길 선택했다.

“이거, 일부러 다친 거지?”

손을 꼼지락대는 위키가 한 발자국 다가와 내 얼굴을 끌어안았다.

“호… 안 해줘요?”

더 밀어붙이려 한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아닌 건 아니라고 따끔하게 말해야 한다.

“위키. 아닌 건 아닌 거야.”

살짝 정색한 목소리로 몰아붙이자 위키가 나에게서 떨어졌다.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할 줄 몰랐는지. 충격 받은 두 눈이 사슴처럼 동그랗다.

어떻게 변명해도 통하지 않을 명백한 잘못.

자기 욕망을 그릇된 방식으로 채우려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 아빠.”

짧게 한숨을 내쉰 후, 가볍게 위키의 상처를 쓰다듬어 치료했다.

위키는 내 눈치를 보며 양 검지를 맞대어 두드렸다.

나는 다시 침대 위에 걸터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장고(長考)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행위를 다그쳐야 함은 맞지만, 인도가 잘못되면 다른 방식으로 파생될 수 있다.

특히 이런 자기파괴적인 행위는 처음에서 근절해야 했다.

내가 주는 관심의 부족인가?

솔직히 최근에는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주려고 한다.

위키는 거기서 늘 한술 더 뜨길 바란다. 솔직히 내 아이가 나에게서 어디까지 원하는지 예상이 가질 않았다.

“후우….”

한숨을 내쉬자, 다급해진 위키가 다가와 내 다리를 붙잡았다.

“죄, 죄송해요 아빠.”

“왜 그랬어.”

“그게…. 아빠가 호 해주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랬어요.”

이해한다.

나도 어린 아이인 시절이 있었으니까.

유치한 생각이지만, 자기희생으로 누군가의 우정이나 애정을 더 바랐던 적도 분명히 있었다.

아카데미 시절 달래의 경우가 그러했고. 심지어 그때의 나는 성인이었다.

‘이게, 입장이 바뀌니까 다르네.’

시점을 달리하니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잘 알겠다.

부모가 되면 철 없는 남자는 서서히 바뀐다고 하던가.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

아버지의 의무를 알고 있다.

더 사랑을 줘야하고,

의심하지 않게 우리 아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빠가 미안.”

위키가 이토록 집착하게 된 건 내 잘못이 맞았다.

마음이 아팠고, 죄책감도 들었다.

이런 행위까지 초래하게 된 건 내 무관심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증폭되어서.

약간 너덜너덜한 목소리마저 튀어나왔다.

얼마나 사랑이 고팠으면 이런 행동까지 할까.

스스로 짓이긴 상처를 보여주는 아이의 모습 자체만으로 가슴에 대못을 박는 듯했다.

아빠가 미안하다.

약해진 한 마디에, 가만 듣고 있던 위키의 입꼬리가 떨려왔다.

-움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위키의 몸짓.

동글동글하고 커다란 곰같은 눈동자가 어쩐지 희열에 가득 차 있었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죄책감 어린 나를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뭔가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을 잡고 휘두르며 거기서 약간의 즐거움을 얻는 알바.

예전에 보았던 그녀의 나쁜 버릇이 위키에게 보이는 순간.

나는 잠시 내 아이에게서 약간의 뒤틀림을 보았다.

위키는 내가 보여주는 어느 모습이든 포용하고 사랑하리라.

내가 좋은 아버지이기를 주춤한 순간, 나를 지배해서라도 어떻게든 나를 끌어안겠다는 마음.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식간에 눈이 뒤집혔다.

“위키, 거기 무릎 꿇고 있어.”

나는 회초리를 꺼내 들기로 했다.

*****

체벌은 학대인가.

불거지는 논란이 참으로 많고, 여러 전문가도 폭력이 뒤섞인 훈육 하면 학을 떼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한 교정은 확실히 필요하다.

“……읏.”

“위키.”

죄책감때문이라도 절대 권위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런 마음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잘못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아이 교육이라는 알바의 언질.

위키의 지나친 질투, 아빠에 대한 애정.

아이의 감정을 배신했다는 건 마음이 아프지만…. 역시 이건 아니다.

-똑.

위키의 눈망울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나왔다.

마음이 채찍처럼 갈래갈래 찢어지는 느낌이다.

딱 세 대. 긴 막대로 두드린 것뿐인데, 반응이 안타깝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맞을 줄은 몰랐는지 금세 유약해진 위키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흑, 흐윽…. 안 하께요….”

“아빠가 다쳤을 때 위키는 어땠었어.”

“마음이 아팠어요…. 흑. 시러하지 마요. 아빠아.”

역지사지.

시바랑 똑같은 반응이었다.

무릎을 꿇고 빨개진 손바닥을 하늘에 번쩍. 코를 훌쩍이는 위키의 모습이 안타까워 나는 그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숨소리에 위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체벌을 택할 줄은 상상도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위키는, 엄마는 엄하고 아빠는 다정하다는 인식이 머리에 박혀 있었으니까. 조금은 아빠에겐 막대해도 된다는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위키가 날 막대하는 거?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자해로 이어지면 안되는 거지.

“…손 내려. 이리와.”

“흐으윽, 아빠아아….”

얼굴을 좀 풀자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한테 안기는 위키.

“미아내요….”

“절대 이런 짓은 하지 마. 알았어?”

“네, 네에. 안 하께요. 흑.”

나도 많이 놀랐다.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졌을 때는 더더욱.

내가 경계했던 알바의 얄궂은 태도가 위키에게서 보였을 때는…. 살짝 긴장까지 했었다.

아픈 위키의 손을 주물러주며 달래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서 문이 열렸다.

“삐이.”

시바다.

갑작스레 우는 소리가 들려서 많이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빠아, 위끼 울어요…?”

“어쩌다 보니.”

조심스레 묻는 시바의 눈망울에도 눈물이 약간 올라차있다.

아이들의 공감 능력은 무시할 게 못된다. 게다가 여자아이라면 더더욱.

다른 사람이 우는 것만 봐도 눈물이 차오르는 건, 시바라도 어쩔 수 없는 걸까.

“위끼 울지 마.”

죄책감이 두 배다.

다신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시바가 양팔을 벌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안아달라는 표시임을 자각한 내가 시바를 안아들었고, 시바는 나에게 안겨 조심스레 위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위끼….”

손을 뻗어 위키의 머리를 쓰다듬는 시바.

요 며칠간 언니 노릇을 해서, 책임감이 굳어진 걸까.

“언니가 있자나. 울지 마. 삐….”

“흑, 흑.”

위키의 귀에는 아마 들리지 않겠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뿌듯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위키의 잘못은 굳이 말할 필요 없을까.’

시바는 나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위끼 왜 울어요?”

“아빠가 잘못 한 거야.”

“빠아가요? 으응…. 사이좋게 지내요 빠아.”

시바의 간언에 웃음이 피어났다.

“그래, 그래야지.”

누군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 살고싶으랴.

나는 시바를 한참 쓰다듬다가, 위키와 내가 땀을 많이 흘렸다는 걸 깨닫곤 가볍게 물었다.

“목욕할까?”

“삐? 조아요.”

위키도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

-풍덩.

성인 한 명과 아이 둘이 들어가기엔 충분히 커다란 욕조.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시바가 샴푸통을 들고 위키의 머리를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위끼 가만히 있어~!”

“…아빠가 좋은데.”

울긴 울어도 여전히 날 찾는다. 무겁고 고마운 아이의 사랑에 헛웃음마저 튀어나왔다.

“빠아, 위끼는 머리카락이 두 개야!”

“시바야. 말은 바로해야지. 머리카락이 두 개가 아니라, 머리색이 두 개란다.”

머리카락이 두 개면 그건 대머리에요 대머리.

탈모약을 먹든 안 먹든 막기 힘든거란다.

“신기해?”

“씽기해!”

햐~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감겨주는 언니.

부쩍 늘은 동생 사랑이 귀엽기만 하다.

시바는 손에 치덕치덕 묻힌 샴푸로 위키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흰 머리가 좀 늘었나?’

스트레스 때문은 아닐 거고, 아마 알바의 머리색이 더 진하게 유전된 모양.

어떤 쪽의 위키든 사랑스러우니 그렇겠거니 했다.

흑곰과 북극곰.

어느쪽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북극곰이 좀 더 대중적이긴 하지.

위키가 또 콜라 하면 환장하지 않는가.

“빠아!”

“아빠…!”

눈이 살짝 퉁퉁 부은 위키와 시바가 낑낑대며 욕조에 올라선다.

부드러운 아이의 살결이 부딪히며, 품에 꼭 안기자 몰려오는 행복감.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이뻤다.

-풍덩.

“흐으으…! 따뜻해.”

물장구를 치며 꺅꺅대는 시바, 내 가슴에 찰싹 달라붙은 위키.

흔들리는 수위를 타고 오리배가 꽥꽥거리고, 아기곰 장난감이 둥실둥실 떠오르자, 위키의 눈이 그쪽을 향했다.

“흐아….”

피로가 싹 가신다.

언제 한 번쯤은 연인들과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수영장을 통째로 빌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얼마만이지.’

바깥 생활과 완전히 단절되어 한 달 가까이 지나니, 슬슬 이런 일상적인 생각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세영이한테 이런 말을 꺼내면 얻어터질까?

그러면 별이나 홍연, 마로니에한테 도움을 청해보는 것도 좋을지도.

-첨벙, 첨벙.

“삐히히~!”

“언니, 물 튀겨요… 그만.”

“위끼~! 받앗! 삐잇!!”

“으으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된다.

마약을 왜 찾나? 내 아이랑 목욕하면 그게 최고의 쾌락이지.

나는 몰래 챙겨온 살얼음낀 음료들을 꺼내, 물이 닿지 않는 곳에 두었다.

“엄마 없을 때 이런 걸 또 해보는 게 좋은 거야.”

“삐?”

“뭘요?”

목욕하면서, 바나나 우유 마시기.

위키가 좋아하는 단지맛 우유다!

“허어억!”

“삐이이!!!”

눈이 돌아가선 양 팔을 벌리고 야단법썩을 떠는 아이들.

시바와 위키에게 단지 하나씩 쥐여주고, 나 역시 바나나 우유 뚜껑을 열어 한 번에 들이켰다.

-꼴깍.

뜨거운 욕조에 잠겨 마시는 차갑게 얼린 바나나 우유.

목젖을 타고 흘러갈 때마다 달달함과 퍼지는 바나나 향에 없던 기쁨도 몰려올 지경이었다.

-꼴깍.

시바나 위키도 뺨이 빨개져선 행복함 만땅.

우리 부녀는 거의 동시에 뚜껑에서 입을 떼어냈다.

“캬~!”

“뺘~!”

“햐~!”

동시에 터지는 청량감!

욕조에서 흘러나오는 수증기가 싹 가시는 착각이 든다.

해선 안되는 나쁜 짓이 있고, 엄마 몰래 해도 되는 나쁜 짓이 있다.

오늘 저지른 위키의 행위가 용납할 수 없는 나쁜 짓이라면, 해도 되는 나쁜 짓은 이거.

“짠.”

나는 킥킥대며 미리 만들어 놓은 우유 빙수를 꺼냈다.

심지어 연유와 팥도 잔뜩.

그릇 하나에 미어터지게 담았다. 흘러 넘쳐서 욕조에 빠지면 엄마들의 한숨이 늘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빙수 먹을 나무?”

“삥수!! 빠아! 나, 나요!”

“좋아요!! 곰 젤리도 넣어주는 거예요?! 꺄악!”

이게 아빠의 육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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