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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타오르는 남자와 속만 태우는 남자 (6/26)

5. 불타오르는 남자와 속만 태우는 남자

레사를 만나려던 레이라는 아버지의 단호한 거절에 발걸음을 돌렸다. 신경을 끄고 싶어도 절로 그쪽으로 신경이 쓰이는 것이 싫었고 거부감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내쉬자 에틸이 가볍게 그녀의 입술을 두드렸다.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따로 만나 보는 게 어떻습니까.”

“…….”

“당신이 자꾸, 그 자식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아, 미안해. 에틸.”

레이라의 축 처진 눈꼬리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미안함을 머금은 미소는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에틸이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괜찮다는 말을 대신했다. 곧 제 품에 레이라를 가둬 안은 에틸이 그녀의 등을 작게 도닥였다.

“전에는 당신이 이렇게 우울해하고 울 때마다 안아 줄 수 없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

“그럴 때마다 저는 그 자식을 죽여 버릴까, 살려 둘까를 고민하곤 했습니다.”

킥킥대며 작게 웃는 소리가 에틸의 품 안에서 새어 나왔다. 죽일까 살릴까 고민했다는데 웃긴가? 그럼 죽여 버릴 걸 그랬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에틸이 그녀를 더 꽉 안아 주었다.

“당신의 행복이 그놈 곁에서 이루어지는 거라면 저는 보내 줄 겁니다. 레이라.”

“…….”

“지금은 당신이 내 것이니 보내 준다는 표현을 쓸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러기는 싫지만.”

“……내가 좋다면서, 나보고 가 버리라고 하는 거야?”

“그게 아닌 걸 알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작게 중얼거린 레이라가 에틸의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부드럽게 끌어당겨 안아 주고 더 토닥거려 주는 에틸의 손짓이 다정했다. 레이라는 제 마음속에 사는 작은 나비가 날갯짓을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간질간질했다.

오랜만이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외로움에 잔뜩 얼어 있던 꽃나무가, 시린 겨울을 지나 꽃망울을 틔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처럼 아껴 주는 이가 있는데, 저는 그저 누군가를 미워할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레이라는 에틸을 조금 더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그가 제게 하듯, 진심으로.

“안 갈 거야. 에틸이 내 연인이잖아.”

단호하게 속삭이는 작은 음성에, 도리어 위로를 받은 에틸이 작게 입을 벌렸다. 작은 손으로 저를 끌어당겨 마주 안아 오는 레이라의 몸짓이 사랑스러워서 에틸은 레이라의 정수리에 참지 못하고 잔 키스를 퍼부었다.

레이라와 에틸이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가운데에 놓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빈 주머니와 통통한 주머니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레이라는 에틸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러니까, 이걸 에틸이 가져다 놓은 게 아니란 거지?”

“아마도……. 남이 갖고 있는 상태로 일정 시간이 흐르면, 레이라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뭐지 이건…….”

“대체, 이건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얻은 게 아니라, 그냥 갑자기 나타났는데…….”

동그래진 에틸의 눈이 무엇인가 고민하듯 다시 가늘어졌다. 탁자를 비슷한 박자로 두드리던 에틸이 고개를 휙 돌렸다.

“혹시 레사 그자가 돌아오기 이틀쯤 전이었습니까?”

“……응. 밤중에 잠이 안 와서 뒹굴고 있는데, 갑자기 손에 따뜻하고 말캉한 게 잡히잖아. 놀라서 봤더니 이거였어.”

레이라가 말을 하면서 주머니를 툭 치자 주머니 안에 든 것이 놀랐는지 움찔 튀어 올랐다. 에틸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인상을 왈칵 구기더니 레이라의 손을 주머니 근처에서 멀리 떼어 놓았다.

“그럼, 그 마수가 저주라도 건 것은 아닐까 싶군요.”

“아, 저주. 저주가 있었구나.”

“한 번 알아봐야겠습니다. 혹시 저주라면 풀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네. 풀어 주기는 싫지만, 이딴 것을 계속 레이라가 들고 다니거나 근처에 둬야 하는데, 그게 더 싫을 것 같으니까요.”

“그래. 고마워, 에틸.”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주머니를 바라보는 에틸을 본 레이라가 참지 못하고 깔깔 웃었다. 에틸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에틸의 무릎 위에 앉게 된 레이라가 꼬물거리며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허리를 감고 있는 단단한 손과 제 몸을 받쳐 주고 있는 든든한 몸, 저를 바라봐 주는 따스한 눈빛은 레이라를 절로 흐물흐물하게 했다. 한 손으로 레이라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빙글빙글 돌리며 장난을 치던 에틸이 그녀의 목에 입술을 붙이며 말을 꺼냈다.

“이렇게 붙어 있다가 언제 잡아먹힐 줄 알고, 그렇게 편안하게 기대는 겁니까, 레이라?”

“지금은 낮인걸. 에틸은 밤에 오겠다고 했잖아.”

“커튼을 치면 밤이지, 누가 그딴 걸 구분하면서 섹스를 합니까.”

“아우, 정말! 말 좀! 그리고 목에다 대고 말하지 마! 간지럽잖아!”

레이라의 말에 에틸은 오히려 입술을 목에 더 딱 붙이고 오물거렸다.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와 그녀가 제 품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틸은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아! 그럼 저거 만지는 건 어떻게 하지? 누굴 구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 그전에는 내가 만져 줘야 하나?”

“…….”

“아하하하! 장난이야, 이제 안 만질래. 에틸이 싫어하잖아. 연인이 싫어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레이라가 제 손만 주머니에 닿아도 몸서리치게 싫다는 듯 인상을 구기던 에틸의 표정을 떠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응? 의자가 왜 딱딱해졌지?’

엉덩이를 이리저리 옮겨 보던 그녀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몸을 딱 굳혔다. 끼긱끼긱,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천천히 돌아간 레이라의 고개가 어느새 말이 없어진 에틸을 향했다. 딱 마주친 눈에 가득 담긴 정염이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급하게 일어서려는 레이라를 품에 더 꽉 끌어안은 에틸이 제 하반신을 그녀에게 느긋하게 문질렀다.

“아까 하던 거나 마저 하시겠습니까? 연습은 됐고, 실전부터 들어가는 걸로.”

“아, 아니…….”

“어째서 거절을 하십니까, 당신은. 연습 따위는 필요조차 없어 보이던데.”

장난스럽게 목을 쪽쪽 대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레이라의 목을 타고 전해졌다. 느릿하게 핥고 아프지 않게 깨물어 오는 에틸의 입술은 분명 그녀를 애무하고 있었다.

곧 등 언저리에서 살근거리던 손길이 레이라의 가슴에 파고들어 맨 가슴을 틀어쥐었다. 탱글탱글하고 푹신한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짙고 색스러운 숨결을 뱉은 에틸이 그녀의 귓바퀴를 물고 혀를 내밀어 할짝댔다.

에틸은 레이라의 가슴을 둥글게 문지르면 한숨 같은 신음이, 세게 비틀어 쥐면 높은 교성이, 유두를 살짝살짝 매만지면 간지럽다는 듯 교태 섞인 신음이 튀어나오는 것이 꼭 그녀의 몸을 악기 삼아 자신이 연주라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만지면 만지는 대로 반응하며 느끼는 몸이 사랑스러웠다. 레이라를 번쩍 들어 올려 테이블 위에 앉혀 놓은 에틸이 입을 크게 벌려 그녀의 가슴을 베어 물었다.

검게 물든 눈이 레이라의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곱게 미소 지었다. 그 어여쁜 웃음과 달리, 색스럽게 제 유두를 핥고 있는 혀는 지독하게 야했다. 결국 레이라가 참지 못하고 에틸의 눈을 제 손으로 가렸다.

에틸은 어둠 속에서도 레이라의 가슴골을 찾아 핥고 앙가슴에 쪽쪽 입을 맞추고 유두를 찾아 물었다. 잘근잘근 아프지 않게 씹고 달래 주듯 뭉근하게 내리누르는 혀끝이 그녀에게 짙은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레이라가 저도 모르게 은빛 머리통을 껴안자 다시 빛을 되찾은 에틸이 능수능란하게 움직였다. 손톱으로 긁듯이 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에 허리가 튀었다. 바람에 차가워진 살결을 데우듯 옆구리를 문질러 줄 때는 더 해달라는 듯 허리가 비틀렸다.

“하앗, 하아……. 에틸.”

레이라의 엉덩이에 걸쳐져 있던 드레스 자락이 거슬리는지 에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동시에 바닥으로 툭 떨어진 드레스는 나풀나풀 바람을 타고 레이라처럼 하느작거렸다.

제게 다리를 감고 매달린 레이라를 보며 기분 좋게 웃은 에틸이 그녀를 끌어안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레이라는 금세 문 두 개를 지나 제 방 침대 위에 뉘어졌다. 그녀는 저를 곱게 눕혀 놓고 셔츠 단추를 톡톡 풀고 있는 에틸의 움직임을 눈으로만 쫓았다.

나붓이 깔린 은빛 속눈썹은 커튼이 드리워진 옅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마찬가지로 곱슬거리는 은빛 머리칼이 그의 이마를 간질였는지 에틸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것이 또 미치게 섹시해서 입을 딱 벌리고 감상하던 레이라가 에틸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렸다.

작게 웃은 에틸이 남은 셔츠 단추를 느긋이 풀기 시작했다.

레이라의 고개가 다시 에틸에게 돌아갔다.

저를 빤히 바라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에틸은 레이라가 편하게 저를 보도록 애써 시선을 아래로 고정시켰다.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낀 그녀가 에틸을 핥듯이 훑어보았다. 부러 천천히 풀어지는 단추는 더 야릇한 감성을 돋웠다. 물론 셔츠 안에 숨겨 놓았던 에틸의 몸이 더 색정적이었다.

잘 짜인 가슴 근육과 곳곳에 자리 잡은 잔 근육들은 그를 우락부락하지 않게 보여 줄 정도로만 잡혀 있어 딱 보기 좋았다. 날렵하게 느껴지는 몸에 선명하게 들어 있는 복근과 탄탄하게 딱 벌어진 어깨, 비가 오면 물이 고일 것처럼 패인 쇄골은 콱 깨물어 보고 싶은 충동을 일게 했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에틸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급하군요. 우리 아가씨.”

휙 집어던진 셔츠와 함께 찢듯이 벗어 던져 버린 바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브리프 차림의 에틸이 침대 위로 몸을 던지자 출렁출렁 움직이는 침대와 함께 레이라의 마음도 함께 술렁였다.

발긋해진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진 에틸이 레이라의 귓가에 입을 쪽 맞췄다. 간지러운지 웃음을 띤 그녀의 광대가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것이 귀여워 그는 그곳에도 입을 쪽쪽 맞췄다. 어쩌면 이리 예쁜 구석만 가득한지.

사랑스러운 얼굴을 두 손으로 쥔 에틸이 레이라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할짝할짝 아랫입술을 핥아오는 혀가 진득하게 그녀의 입술에 달라붙었다. 입을 살짝 벌려 준 레이라가 에틸의 목덜미에 손을 올려 감싸 안았다.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간 에틸이 작게 웃는 것이 레이라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따끈한 혀를 얽고 끈적이고 달콤한 타액을 나누어 마시는 키스에 그녀의 마음이 절로 들떠 올랐다. 고개를 비틀어 에틸의 입술을 더 짙게 받아들인 레이라는 에틸의 입 안 곳곳을 뛰어놀 듯 유영했다.

귀여운 혀 놀림이 마음에 드는지 에틸은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며 때때로 제 입 안 가득히 들어찬 레이라의 혀를 거세게 빨았다.

깨물리고, 깨물고. 핥아지고, 핥고. 주고받고 반복하듯 이어지는 키스에 넋을 뺀 레이라가 앙탈을 부리듯 제 가슴을 에틸에게 비볐다.

또 빙긋 웃은 에틸이 톡 튀어나온 붉은색 유두를 꼬집으며 레이라를 나무랐다. 우는소리를 낸 그녀가 처연한 눈빛으로 에틸을 바라봤다.

“참지도 못할 거면서……. 이렇게나 야한 주제에 거절이나 하고 말이죠.”

레이라의 목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깨문 에틸이 달래듯 그 자리를 핥았다. 부풀어 오르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가슴이 자꾸 에틸의 맨살에 닿았다 떨어지는 것이 야릇했다. 도드라진 유두가 제 살결을 스치고 지날 때마다 짜릿짜릿한 기분이 피어올랐다.

봉긋한 가슴에 손을 올린 에틸이 기다렸다는 듯 착 감겨 오는 살덩이를 콱 쥐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이 제가 만지는 대로 이지러지는 것이 퍽 만족스러웠다. 아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제 힘이 조금 과했는지 붉게 손자국이 난 것까지 전부, 사랑스러웠다.

목을 타고 내려온 에틸의 입술이 레이라의 쇄골 위에서 한참을 더 머물다 유두를 집어삼켰다. 높고 날렵한 콧대가 가슴에 폭 파묻혔다. 에틸은 뭉클한 느낌이 제 얼굴에 전해지는 것이 기꺼워 가슴에 기어이 뺨을 비비적댔다.

귀여워 죽겠다. 예뻐 죽겠다. 잡아먹을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에틸은 레이라의 젖가슴을 더 세게 앙 물었다. 혹시 상처라도 날까 싶은 걱정에 이로 무는 것처럼 입술로만 유두를 꽉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생소한 느낌에 그녀의 허리가 야하게 비틀리며 색스러운 신음이 가득 떠올랐다.

“아앗! 앙, 아아!”

유두를 할짝대는 에틸의 혀끝에서 짜릿한 전기가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레이라가 에틸의 머리를 감싸 안아 제 가슴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가슴을 만지고 깨물고 빨아 준 에틸이 레이라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겨우 남아 레이라의 몸을 가려 주던 손바닥보다 작은 속옷 한 장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에틸은 그녀의 음부 위를 살그머니 쓸었다. 속옷 위로 느껴지는 살결마저 부드러워 한동안 그것을 반복하던 에틸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레이라, 털이, 없…….”

“…….”

그러지 않아도 빨개진 레이라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그것에 재빨리 말을 끊어 낸 에틸은 목까지 내려온 그녀의 홍조가 귀여워 다시 목 근처에 입을 쪽쪽 맞추며 방긋 웃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젖었습니다.”

살갗에 척 달라붙어 있는 속옷이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부끄러운지 고개를 팩 돌리며 제 얼굴을 가린 레이라를 보며 에틸이 소리 내 웃었다.

“귀여워서, 사랑스러워서,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톡 끊어진 속옷이 나풀나풀 날아 어딘가에 떨어졌다. 레이라의 다리를 활짝 벌린 에틸이 그곳에 입을 쪽 맞추며 아직도 제 얼굴을 가린 그녀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털 한 올 없이 매끈매끈한 레이라의 음부는 액에 흠뻑 젖어 반질반질 윤이 났다. 귀엽게 톡 튀어나온 클리토리스는 앙증맞기 짝이 없었고 온통 붉은빛 일색인 속살마저 야했다. 에틸은 숨도 쉬지 않고 그것을 빤히 눈에 담았다.

꽉 잡힌 탓에 꼼짝없이 활짝 다리를 벌린 채 눈을 꽉 감은 레이라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앙! 앗, 하아……. 아!”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듯 음부 전체를 살금살금 할짝대던 에틸이 클리토리스를 입술로 깨물었다.

“꺄읏, 흐응……. 앙! 안, 돼에……. 으읏.”

입술 사이에 클리토리스를 끼우고 혀로 핥아 대자 레이라가 더 크게 바동거렸다.

자극이 어마어마했다. 뜨겁고 말캉한 곳 사이에 끼어 있는 것만으로도 녹아 버릴 것 같은데 계속해서 자극당하니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폭죽이 팡팡 터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불쑥 찾아온 두려움을 느낀 그녀가 그를 떼어 내려 허리를 비틀고 엉덩이를 들었다.

에틸은 레이라를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혀를 문지르고 거친 숨을 토해 냈다.

하반신에 닿는 에틸의 숨결이 너무 뜨거웠다. 짜릿짜릿하고 간질간질한 감각이 한계치까지 채워져 몸이 절로 바들바들 떨려 왔다.

에틸은 레이라의 몸을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제 혀를 놀렸다.

가슴을 매만지던 손이 어느새 엉덩이를 꽉 틀어쥐었다. 남은 한 손은 한량처럼 그녀의 하체를 이곳저곳 떠돌았다. 커다랗고 차가운 손이 레이라의 뜨거운 피부 위를 쓸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따뜻하게 느껴지는 손이었는데, 어느새 이리 달아올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곧 질구를 만지작대는 손짓에 레이라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더한 자극을 줄 거라는 기대감과 이보다 더한 자극은 두려울 것 같다는 거부감이 함께 떠올랐다.

그런 레이라의 불안함을 캐치한 에틸이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곧 에틸의 검지가 레이라의 질구를 빙글빙글 떠돌다 미끄러지듯 안으로 파고들었다. 촉촉하게 젖은 탓에 부드럽게 파고든 손가락은 와락 조여드는 뜨거운 내벽에 깜짝 놀란 듯 움찔 댔다.

“으으응!”

“하.”

잠깐 터져 나온 감탄 같은 에틸의 신음 소리에 레이라의 좁은 입구가 더 바짝 조여졌다. 에틸은 아연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꽉 감았다 떴다.

너무 좁았다.

질구를 왕복하는 제 손가락이 가여울 정도였다. 손가락이 타 버릴 것처럼 뜨겁기도 했다. 레이라의 안은 침입자를 오물오물 씹어대는 돌기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에틸은 당장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점점 조여드는 감각에 잠깐 허리를 뒤로 물릴 정도로 주저되기도 했다. 이를 악문 에틸이 손가락을 하나 더 찔러 넣었다. 그렇게 비좁으면서도 반갑다는 듯 손가락을 꿀떡꿀떡 삼키는 것이 제 주인을 닮아 욕심쟁이가 따로 없었다.

레이라는 자신이 잘 느끼는 부위를 찰떡처럼 찾아내 매만져오는 손길에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커다란 북을 귓가에 찰싹 붙여 놓고 둥둥 치는 것처럼 심장 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클리토리스를 집요하게 애무하는 입술은 무자비할 정도의 자극을 낳았다. 게다가 손가락은 어찌나 스폿을 잘 찌르고 있는지, 에틸이 손을 한 번 쳐올릴 때마다 그녀의 엉덩이가 따라서 들썩이곤 했다.

간질간질한 오르가슴이 꼬리뼈를 타고 짜르르 전이되어 왔다. 가슴 가득 들어찬 희열과 함께 레이라의 허리가 물가에 나와 있는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튀었다.

“하아아앙!”

에틸은 그녀가 완벽하게 절정을 느낄 수 있도록 느긋하게 클리토리스를 핥아 주었다. 그는 어느새 제 손가락을 네 개나 집어먹은 레이라에게 감탄하며 자지러질 듯 몸을 휘고 있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누워 있어도 동그랗게 솟은 가슴 위에 비라도 내린 것처럼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은 새벽이슬을 맞은 꽃잎처럼 싱그럽기까지 했다.

에틸이 침을 꼴깍 삼켰다. 다디단 꿀이라도 빨아 마신 것처럼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간신히 입술을 떼어 낸 에틸은 버석해진 입술을 한 번 핥았다. 그는 다시 입을 가져다 붙이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인 작은 콩알을 문질렀다. 딱딱하게 서 있는 것이 앙큼하기 그지없었다.

한계를 느낀 그가 제 것을 브리프에서 꺼냈다. 마침 눈을 게슴츠레 뜨던 레이라가 그것과 딱 마주쳤다. 그녀는 전과는 다른 의미로 몸을 떨어야 했다.

에틸은 그 귀여운 눈빛에도 가지런히 웃어 주기만 했다. 그가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던 손을 떼고 제 것을 레이라의 음부 위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는 붉은 눈동자가 색스럽기도 했다. 겁에 질려 하면서도 무언가 기대하는 지긋한 눈빛이었다. 에틸은 레이라의 붉은 눈동자에 저를 맞추고 다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레이라는 혼란스러웠다. 에틸의 미소가 천사처럼 보였다. 평소에는 어딘가 악마처럼 느껴졌었는데. 가만 보니 그는 계속 웃고 있었는데 웃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 소름이 끼쳤다.

무해하다는 것처럼 느른히 웃다가도 선득한 눈빛을 보면 짐승이 따로 없어 보였다. 나긋한 눈빛 뒤에 숨긴 섬광이 한 번씩 겉으로 태가 날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에틸은 질척이는 레이라의 비부에 계속해서 제 하반신을 문지르다 입을 열었다.

“겁이 납니까? 아니면, 기대가 되는 건가.”

“하아. 으응…….”

“이제 와 그러지는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싫으면 거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뒤로는 거부나 거절을 해도 물러설 일은 일절 없을 테니까.”

“흣. 빨리…….”

앙증맞은 입술을 핥으며 에틸을 향해 두 팔을 뻗은 레이라가 그를 향해 조르듯 허리를 흔들었다. 흉흉하게 일어서 꺼덕대는 에틸의 그것이 기분 좋다는 듯 질척한 구멍을 향해 제 몸을 비볐다.

“하, 이거 참.”

“으응. 완전, 커…….”

머리를 쓸어 올린 에틸이 한껏 달아올라 애달픈 레이라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저 귀여운 입에서 음란한 말이 나오도록 만들고 싶었다. 저를 더 원하도록. 저를 갖고 싶다 안달하도록.

정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레이라의 몸을 파고들어 반으로 쪼개 버릴 기세였다.

“자지, 넣어 달라고 말씀 하셔야죠. 레이라.”

제 것을 잡고 레이라의 입구에 뭉근히 문지르던 에틸이 그녀를 향해 턱짓했다. 화르르 타오를 듯 붉어진 낯으로 레이라가 입을 달싹였다.

한쪽 입꼬리만 비스듬히 올리고 있던 에틸이 제 귀두를 레이라의 질구에 대고 슬쩍 삽입했다 빼내길 반복했다. 귀두조차 제대로 집어넣지 않은 작은 움직임에도 허리가 달달 떨리는지 눈이 잔뜩 풀린 레이라가 그것을 더 받아들이려 낑낑댔다.

“빨리, 후우…….”

다시 문질러지는 것에 우는 듯한 콧소리를 낸 그녀가 애달픈 눈을 했다.

에틸은 제가 원하던 눈빛에 심장까지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이것이 꿈인가 싶다가도 닿아 오는 뜨거운 체온에 벅차도록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는 붉어진 얼굴에 고민이 새겨지는 것을 지켜보며 재촉하듯 제 것을 몇 번 더 움직였다.

“넣어 줘……, 자, 지…….”

작은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린 레이라가 고개를 휙 돌렸다.

“다시, 잘 안 들렸습니다. 아가씨.”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이럴 때만 아가씨라지. 입술을 깨문 레이라가 다시 에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더 야해 보인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깨물었다 놓은 탓인지 더 붉어진 레이라의 입술이 살그머니 열렸다.

“자지, 넣어 줘.”

레이라는 내친김에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유혹하듯 에틸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잘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종적인 시선에 빙긋 웃어 준 에틸이 제 허리를 콱 눌렀다. 순식간에 파고든 커다란 것에 눈을 꽉 감고 몸을 휜 레이라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악! 윽, 흐윽…….”

충격이 큰지 신음 소리마저 달달 떨리는 느낌이었다.

에틸은 레이라의 몸을 꽉 껴안았다. 제 것을 꽉 물어뜯는 질 내부는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자글대는 작은 돌기들이 제 것을 이리저리 핥는 느낌과 함께 쪽쪽 빨아대고 있는 것 같았다. 맹렬히 끓고 있는 것처럼 뜨거운 내부에 자지가 녹아 버릴 것 같았다.

강한 삽입과 동시에 눈이 탁 풀린 레이라가 다리로 에틸의 몸을 꽉 조이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후우……. 넣자마자 가 버리는 몸이면서. 왜 그렇게, 앙탈을 부리셨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가씨,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흐릿한 정신을 타고 들려왔다.

레이라는 누군가가 커다란 솜사탕으로 저를 후려갈긴 것 같았다. 충격적이지만 아프지 않았고, 행복했으며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가 달콤하기까지 했다. 폭력적이나 사랑스러운 쾌락이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

시트를 꽉 쥔 레이라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쥔 에틸이 그녀의 얼굴 이곳저곳에 키스 비를 뿌렸다. 더 붉어질 수 없을 것처럼 빨개진 볼에, 땀방울이 맺힌 동그란 이마에, 제 살결처럼 붉은 물이 든 속눈썹에, 앙증맞게 찌푸린 콧잔등에, 입을 맞춰도, 맞춰도 모자란 듯 갈구하게 되는 입술에.

에틸은 레이라의 안으로 더 깊게 파고들며 연신 키스를 퍼부었다. 포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느낀 에틸이 거칠게 허리를 털었다. 아직도 저를 꽉 조이고 있던 속살이 놓기 싫다는 듯 저를 꽉 물었다가 좋다는 듯 헐떡이며 저를 받아들였다. 아직 잔 떨림이 가시지 않은 질 안은 미칠 듯이 황홀했다. 꽉꽉 물고 씹어대는 통에 에틸의 것이 얼얼하기까지 했다.

“아앗! 앙! 하윽, 천, 으응, 천천히…….”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면서 신음은 착착 내뱉은 레이라가 어여쁘다는 듯 꽉 감싸 안은 에틸이 그녀의 귓가를 핥으며 허리를 부드럽게 돌렸다. 질척이는 내벽이 그것을 환영하며 꽉 조였다가 풀어 주기를 반복했다.

“하아…….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보지길래 하, 먹여 주고 먹여 줘도 모자라다고만 합니까?”

“아아……, 아, 니야……. 으응, 좋아.”

에틸의 목을 꽉 끌어안은 레이라가 그의 목에 제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잔망 덩어리가 따로 없다며 혀를 쯧쯧 찬 에틸이 그녀를 소중히 품에 안고 허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도톰하게 솟은 에틸의 엉덩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에틸의 머리에서 톡 떨어진 땀방울이 쩍 갈라진 등골 옆으로 타고 내려가 우물처럼 팬 보조개 위로 톡 떨어졌다.

레이라가 지금 에틸의 뒷모습을 봤다면 또 침을 꼴깍 삼켰으리라.

“으으응, 하읏……. 아앙.”

서서히 전해지는 쾌감은 에틸의 성기 모양을 고스란히 그려 낼 수 있을 정도로 느긋하고 길게 이어졌다. 레이라는 강렬하게 전해지는 오르가슴이 아닌 서서히 제 몸을 타고 내리는 잔잔한 오르가슴을 처음 느꼈다. 가려워 미칠 것 같은 부분을 날카로운 무언가로 꾹 눌렀다가 천천히 떼어 내는 이상한 감각이었다.

“하아앗, 으응……. 흐으…….”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린 레이라의 눈빛이 야릇했다. 허리를 돌리던 에틸은 질 내부가 서서히 수축했다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가 또 절정에 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보석보다 아름다웠다.

마치 후희를 즐기듯 더 천천히 움직여 주는 통에 레이라의 오르가슴은 생각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은은하지만 잔인하기까지 한 쾌감이었다. 그녀는 제가 슬라임처럼 녹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에 정신이 확 들었다. 반짝 뜨인 붉은 눈동자에 눈을 맞춘 에틸이 빙긋 웃으며 뒤로 벌렁 누웠다.

“직접, 움직여 보시죠, 레이라.”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봉긋한 가슴과 낭창한 허리, 붉게 익은 머리칼을 풍경 감상하듯 올려다본 에틸이 제 입술을 핥았다. 미친 듯이 허리를 놀리고 싶은 것을 얼마나 참고 있는지, 저 야해 빠진 여자는 모르겠지.

레이라가 제 몸을 가누려 에틸의 복근 위로 제 손을 올리며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다시 꽉 조여진 내부에 숨을 집어삼킨 에틸이 허리를 쳐올렸다.

“아흣!”

“후우…….”

몸을 파드득 떤 레이라가 눈을 반만 뜨고 에틸을 내려다보았다. 곧 배시시 웃음 짓는 귀여운 얼굴에 에틸은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에틸, 너무 좋아.”

“좋습니까?”

“으으응, 으읏…….”

레이라의 허리를 콱 움켜쥔 에틸이 그녀를 날려 버릴 기세로 허리를 찧어 댔다. 팡팡 소리를 내며 맞부딪치는 살결이 떨어지기 싫은 것처럼 서로의 몸에 찰싹찰싹 붙었다. 어느새 뒤로 폭 넘어가 버린 그녀의 몸이 그래도 계속하고 싶다는 듯 뒤를 짚으며 버티고 섰다. 에틸은 놀란 것을 숨긴 채, 더 세게 허리를 밀어붙였다.

결합부가 고스란히 보이는 탓에 시선이 절로 향했는지 에틸이 액을 퐁퐁 튀기면서도 저를 열렬히 집어삼키는 레이라의 음부를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어쩐지 품고 있는 것이 더 커진 듯한 기분에 신음을 내지른 그녀가 에틸의 움직임에 저를 맞춰 보려 몸을 바르작거렸다.

야해 빠진 낭창한 허리가 저를 유혹하듯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에 에틸의 눈이 휙 뒤집혔다. 놓아주었던 허리를 다시 꽉 붙잡고 거세게 허리를 튕기는 에틸이 버거운지 레이라의 팔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에틸은 쓰러지려는 레이라를 딱 붙잡아 껴안고 거세게 허리를 놀렸다. 제 귓가를 파고드는 거친 숨소리와 신음에 절로 사정감이 일었다. 에틸은 턱에 힘을 꽉 주고 레이라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고양이처럼 제 품을 파고드는 레이라의 움직임이 바르작바르작 애처로웠다. 곧 그녀가 에틸의 목을 조르듯 꽉 껴안고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 늘어진 주제에 어찌나 저를 꽉 물고 절정을 느끼는 건지. 에틸이 사정감을 참지 못하고 레이라의 안에 저를 전부 쏟아 냈다.

레이라는 제 안에 뿌려지는 뜨겁고 몽글몽글한 것을 느끼며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까맣게 타버린 시야에 에틸처럼 은빛 섬광이 내리쳤다.

왜 눈을 감았는데도 눈앞이 반짝반짝한 것인지 작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거센 파도처럼 밀려온 절정이 레이라의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마다 검게 물든 꽃잎이 뿌려진 것처럼 깊은 꽃향기가 풍겨오는 것 같기도 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직도 울컥울컥 쏟아지는 정액은 활화산처럼 뜨거웠다. 레이라는 은빛으로 뒤덮인 시야에 에틸의 얼굴이 비치자, 배시시 웃으며 정신을 놓아 버렸다.

✲ ✲ ✲

나트하는 하루 새에 죽상을 하고 앉아 있는 제 친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반짝거리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넋을 죄 빼다 버린 듯한 꼴을 한 레사는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누가 영혼을 쫙 뽑아 간 것처럼 넋이 나갔네…….”

나트하의 말대로 레사는 딱 그런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녹스 공작의 말이 백번 맞았다. 자신은 천하의 쓰레기요, 양아치요, 개새끼였다. 아, 개새끼는 취소 그냥 개였다.

“그래, 내가 병신이었지…….”

중얼중얼 제 욕을 줄줄이 입에 담은 레사는 그러는 제 꼴을 미친놈 보듯 하는 제 친우를 아직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트하가 레사의 눈앞에 커다란 폭탄을 펑 터트렸다.

“악!”

환각 마법이 사라지자, 제정신으로 돌아온 레사가 나트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뭘 그렇게 봐? 내가 몇 번 부른 줄은 알고 있어? 인사는 또 얼마나 열심히 했다고!”

“하아, 오늘 일은 내일로 좀 미루자.”

“그래, 그러자. 대신 네 이야기를 좀 해 봐. 상태가 왜 그래? 더 나빠지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너무 나빠졌잖아? 무슨 일 있었어? 실연이라도 당한 기세인데. 이미 헤어진 연인에게 또 차인 건 아닐 테고.”

“…….”

저 자식은 왜 항상 맞는 말만 해서 제 입을 다물게 하는지. 불시에 뼈를 맞은 레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탁 뱉었다. 그 기가 막힌 꼴에 나트하의 눈이 샐쭉해졌다.

“진짜야? 너 어제 녹스 공작저에 찾아가기라도 했어?”

“……그래.”

“욕만 먹고 나왔구나? 그러게 내가 뭐랬어. 나중에 후회한다고 했지?”

얄밉게 잔소리를 늘어놓은 나트하가 제 친우의 안색이 점점 더 하얗게 바래기 시작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거 아무래도 잘못 건든 것 같다.

“괘, 괜찮아?”

“괜찮아 보이나?”

“……아니.”

머리를 긁적인 나트하가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의자에 폭삭 주저앉았다. 레사가 한숨을 내쉬자 그의 입에서도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그,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신경을 그쪽으로 돌리면 좀 낫지 않을까?”

“하아…….”

더 깊어진 레사의 한숨 소리에 다시 뒷머리를 긁적인 나트하가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왜 더 착잡해하지? 아, 혹시?

“혹시 네 걸 가지고 있는 여자가, 레이라 녹스야?”

“…….”

“세상에.”

나트하의 예쁘장한 얼굴이 허탈감과 당황스러움에 젖어 드는 것을 보며 레사가 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레사는 딱 돌아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라, 오롯이 제 탓만 가득한 일이라 더 답답했다. 레이라를 놔주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떨어져 버린 제 남근은 둘째 치고, 그저 레이라를 다시 제 품에 가두고 싶었다.

아무리 제 잘못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것이 맞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그래 그럴 만하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은 레사를 죄책감이라는 굴레에 빠지게 만들었다.

“병신 새끼. 하아…….”

“녹스 영애는 뭐라고 하는데?”

“약혼자가 생겼다. 말도 못 붙여 봤어.”

“그, 그래? 그래. 그럼 붙이면 안 되지. 그래. 큰일이네…….”

레사와 비슷한 표정이 된 나트하가 안쓰러운 제 친우를 향해 눈꼬리를 축 내렸다. 그러니까 저 바보가 헤어지겠다 다짐했을 때, 그냥 그녀에게 다 설명하고 이해를 바라는 것이 낫지 않느냐 그리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트하가 보기에 레사는 레이라를 너무나 사랑했다. 아무리 사랑을 모르는 그라 해도 그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제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런 최악의 수를 두었던 거겠지만.

다시 한숨을 푹푹 내쉰 나트하가 저라도 그녀를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 좋을 게 뭔가 이럴 때라도 나서 줘야지. 주먹을 불끈 말아 쥔 나트하가 제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고 있는 친우를 향해 팔랑팔랑 인사를 건넸다.

한층 더 측은해진 나트하의 시선이 레사를 훑고 지나갔다. 그는 그저 멍하니 앉아 애꿎은 제 머리만 쥐어뜯고 있었다. 나트하가 나타나기 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 ✲ ✲

한낮에 뜬 샛별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하늘을 쩍 가르고 날아왔다.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기사들을 피해 연무장 한가운데로 뚝 떨어진 무언가는 작열하는 태양처럼 뜨거웠다.

콰아앙- 쿠쿵!

땅이 쩌렁쩌렁 울리며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에 간 떨어지게 놀란 기사들이 입을 쩍 벌리다 먼지를 가득 들이마셨다.

표정 없이 서 있던 나트하가 작게 기침을 두어 번 했다. 얌전히 목을 풀고 끝낸 나트하와는 달리 주변에 서 있던 기사들은 허리를 푹 숙인 채 연신 기침을 콜록대고 있었다.

나트하는 고요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무장에 놓여 있던 나무 허수아비 몇 개가 불시에 찾아온 재앙을 맞아 잿더미로 변해 사라지고 없었다. 자글자글 끓고 있던 운석이 충돌한 흙바닥은 한여름 뙤약볕에 익은 것보다 더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이글이글 이지러지는 시야에 끓다 못해 꺼멓게 변해 녹아 버린 모래알들이 뒤엉킨 바닥이 보였다.

기사 하나가 놀란 채 부여잡고 있던 허수아비마저 스르륵 바스러졌다. 허수아비의 팔만 손에 쥔 기사가 허탈한 표정으로 제 손을 바라보았다.

머쓱하게 제 뒤통수를 긁적인 나트하가 속으로만 하하 웃었다.

‘조금 더 작은 것으로 던질 걸 그랬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기사들은 넋을 빼고 있었다. 곧 그들이 미어캣처럼 꺼멓게 익은 모랫바닥과 나트하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휙휙 돌렸다. 떨어진 허수아비의 팔을 멍하니 들고 있던 기사가 나트하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부단장님?”

“이런, 사고를 쳐 버렸네요. 미안해요, 제이데닌. 제가 요즘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아서요.”

“예? 예, 예에 그러시군요.”

뭐 기분이 얼마나 안 좋아야 메테오로 황성 흙바닥을 후려칠 수 있단 말인가. 제이데닌의 얼굴은 나트하의 변명을 듣기 전보다 더 질려 있었다. 다시 까만 바닥을 바라본 제이데닌이 어색하게 웃으며 나트하에게서 한 걸음 멀리 떨어져 섰다.

작은 사이즈였지만 메테오였다. 다시 떠올린 조금 전의 참사에, 안심이 되지 않는지 양 손바닥을 들어 올려 나트하의 시야 근처에 대고 항복의 의지를 표현한 그가 침음을 삼켰다. 제이데닌이 본 나트하의 눈빛이 전에 없이 차가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들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저는 뒷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궁금하다고 직속상관의, 그것도 최고 상관의 뒷이야기를 나불거리는 기사가 있어야 할까요?”

한창 레사의 일로 입을 놀리고 있던 기사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열 받은 나트하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기사들도 많았다. 평소 헤헤 웃기만 하는 부단장이 풍기는 짙은 살기에 잔뜩 쪼그라든 기사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욕을 한 것도 아닌데, 약간 억울하기도 했다.

“알아들은 걸로 알게요. 그래도 되겠죠?”

대답도 못 한 채 고개가 떨어져라 끄덕이고 있는 기사들을 훑어본 나트하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진 표정이 된 나트하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찬란한 태양을 등진 천사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으나 제이데닌은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남모르게 쓰다듬었다.

“훈련도 좋지만, 식사도 잘 챙기세요.”

언제 살벌하게 눈을 빛냈냐는 듯 방실거리는 모습이 천사는커녕 악마가 따로 없어 보였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고개를 주억이는 기사들에게 빙긋 웃어 보인 나트하가 가던 길을 떠났다.

싸한 분위기와 달리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 나트하가 날려 보낸 작은 메테오가 마치 경고하듯 존재감을 열심히 뿜고 있었다. 기사들은 저마다 부단장에게 절대 깝죽거리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아로새겼다.

퇴궁을 하던 나트하는 골이 빠개져라 레이라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뭐, 중간에 들려온 레사의 뒷얘기에 그것을 잊고 약간 짜증을 내기도 했다. 황성에 떨어진 메테오 때문에 놀란 황제의 꾸지람도 들어야 했고, 위험한 사람을 여러 번 구하기도 했다. 길을 잃은 사람을 안내해 주기도 했고, 다친 동물 몇 마리를 치료해 주기도 했지만, 다시 레이라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친우를 도와야겠다고 쉽게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나트하는 레이라와의 접점이 전혀 없었다. 그는 레이라의 치마 끝자락도 못 본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친우의 연인이었다는 점을 뺀다면 두 사람은 그냥 남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냥 남이었기에 다가갈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아……. 사실 저 관계가 문제인 것 같기도 했다. 나트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없던 사교성이 갑자기 생길 리도 없고, 전에 없던 연고가 생길 리도 없으니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원래도 인간관계에 한에서는 그 누구보다 취약한 나트하에게 기발한 방법이 떠오를 리 만무했다. 발치에 닿은 돌멩이를 살며시 들어 올려 풀밭으로 얌전히 치워 보낸 나트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갈 곳 없이 떠도는 나트하의 발걸음은 그저 앞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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