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당신의 웃는 얼굴이 좋아요
블랙 시스루 소재의 브라렛은 크고 탐스러운 가슴과 얇디얇은 허리에 껍질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같은 디자인의 티 팬티는 양옆으로 앙증맞은 리본이 잘 매여 있어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풍겼다. 대충 어깨 위로 걸치고만 있는 하늘하늘한 시폰 소재의 나이트가운은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속이 훤히 비칠 것 같았다.
레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이나 제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입을 쭉 내민 레이라가 검은색 스타킹을 집어 들었다. 다리를 들어 올려 테이블 위로 척 걸쳐 놓은 그녀가 고양이처럼 몸을 굽힌 채 스타킹을 신었다. 같은 색 가터벨트까지 착용한 뒤 다시 거울을 바라본 레이라가 만족스레 입꼬리를 올렸다. 유혹할 용도로 속옷을 입은 건 처음이었으나 퍽 마음에 들었다.
방문을 열어 보려던 레이라가 멈칫거리다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 냈다. 폭신폭신한 여우 털 실내화는 이 복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모습 그대로 밖을 돌아다니다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그만큼 민망한 일도 없을 거였다. 지금 녹스 공작저 안에는 피오니안과 나트하까지 있었으니까.
바닥에 질질 끌리는 기다란 가운을 입고 블랙 색상의 하이힐까지 갖춰 신은 레이라가 만족스레 웃으며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까만 밤을 비추는 은은한 등 몇 개가 어둠에 휑뎅그렁 해진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레이라는 망설임 하나 없이 에틸의 방문 앞을 찾았다.
‘노크를 해야 하나? 문을 잠갔으려나?’
작은 고민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레이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박력 있게 문을 열어젖혔다.
쾅! 너무 박력 있었는지 문이 활짝 젖혀져 벽에 쿵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당당하게 문을 열었던 레이라는 살짝 머뭇거리다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방 안에는 하얀 목욕 가운을 입은 채 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섹시한 자세의 에틸과 나트하가……. 나트하?
“……레이라?”
“레이라……?”
“…….”
레이라는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는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지만 아무도 본 적 없겠지 싶은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할 말이 있어서 들렀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 중인 줄 몰랐어요. 그냥 내일 할게요.”
안타깝게도 레이라의 목소리는 몹시 떨렸으며, 당당하게 내민 발에는 하이힐과 스타킹이 빼꼼 드러나 있었다. 심지어 대충 동여맨 가운은 바람만 후 불어도 날아갈 것처럼 리본이 풀리고 있었으니.
아닌 밤중에 뚝 떨어진 천사를 보듯 눈을 동그랗게 뜬 두 남자는 이미 빛보다 빠르게 그녀의 전신을 훑어본 뒤였다.
어설프게 인사를 건네며 뒤돌아 나가려던 레이라는 길고 긴 가운의 끝자락을 지그시 밟아 버렸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달밤의 스트립쇼가 시작됐다.
툭, 허리 리본이 바닥을 향해 낙화하듯 떨어졌다. 옷이 찢어지기라도 하듯 놀란 레이라가 떨어지려는 매듭을 주우려 했다.
굽혀진 허리와 함께 동그랗고 소담한 어깨 위에 나붓이 앉아 있던 가운이 그녀의 어깨선을 타고 스르륵 흘러내렸다. 이어서 스스로 껍질을 벗은 것처럼 검은 나이트가운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트하의 딸꾹질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에틸이 제 입을 가리고 얕게 신음하는 소리도 들려온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절반만 내비치고 있는 모습은 이미 두 남자의 머릿속에 콱 박혀 버렸다. 나이트가운은 비교적 은은하던 레이라의 방 조명 아래서는 눈을 가늘게 떠야 속이 간신히 비춰 보였다. 대낮처럼 불이 훤한 에틸의 방에서는 그저 검고 투명한 장막일 뿐이었다.
두 남자는 시선을 곧게 고정하며 검은 장막에 쌓인 꽃잎처럼 야시시한 레이라의 모습을 두 눈에 박아 넣고 있었다. 황급히 가운 자락을 동여맨 레이라가 도망치듯 탈출을 시도했다. 순간 활짝 열려 있던 문이 쿵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
휙 불어닥친 바람에 전쟁을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며 흔드는 손수건처럼 가운 자락이 팔랑팔랑 흩날렸다. 레이라의 손에 살포시 앉은 그것이 바람을 타고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훌륭한 마무리였다.
멀리멀리 사라지는 빠른 발걸음 소리가 도망쳐 나간 나트하의 존재감을 일깨워 주었다. 착실하게 활짝 열어젖혔던 문까지 닫아 주고 사라진 나트하의 빈자리는 휑했다. 황당하다는 듯 어이없이 웃는 에틸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레이라의 사고는 이미 정지 상태였다. 에틸은 살며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문을 걸어 잠갔다.
전등? 대낮처럼 훤했다. 가운? 이미 다 까발려졌다. 문? 이미 닫혔다. 아니 잠기기까지 했다. 나트하? 이미 다 본 것 같고, 도망쳐 버렸다. 에틸? 하…….
레이라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처절한 표정을 지었다. 민망한 것도 민망한 것이지만, 저를 보며 쏜살같이 도망쳐 버린 나트하 때문에 더 부끄러웠다.
어디를 가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레이라가 제 얼굴을 가렸다. 앙증맞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다른 손으로 방문을 열어 보려 아등바등 허우적댔다. 망했다. 망해 버렸다. 이미 에틸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가운은 가엾은 인질처럼 힘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레이라, 벌써 연습을 하러 오신 겁니까?”
“…….”
“이리도 빠르게 그것도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는데…….”
조각 같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하던 에틸이 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마침,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일주일 남았으니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
레이라는 이미 눈이 돌아간 것처럼 맛이 가 버린 에틸의 표정이 무서웠다.
표정이 싹 사라진 그의 얼굴은 냉기가 퐁퐁 풍겨져 나오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으나 기이한 뜨거움이 자리해 있었다. 확연히 굳어 버린 표정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여, 연습이라니?”
“세 사람이 함께 섹스를 해야 하니까요.”
“…….”
“저도, 당신도, 나트하도 셋이서는 해 본 적이 없으니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빙긋 웃은 에틸이 레이라의 근처로 차분하게 다가와 나이트가운까지 벗겨 냈다. 정중한 그의 손길에도 파들파들 떨리는 레이라의 몸짓은 꼭 구석에 몰린 토끼 같았다. 붉은 입술을 느릿하게 핥은 에틸이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기분에 몸을 바르르 떨던 레이라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어차피 유혹하러 온 건데 이렇게 부끄러워할 일인가? 고개를 빳빳이 든 레이라가 부러 당당한 척 굴었다. 그녀의 작은 바동거림에 수긍하듯 에틸의 눈동자는 쉼 없이 움직이며 레이라의 온몸을 훑고 있었다.
딱 달라붙은 브라렛 사이로 야릇하게 드러난 가슴의 굴곡.
동그랗게 솟은 가슴 사이에 폭 패인 골.
얇은 속옷에 톡 도드라진 유두.
털 한 올 없는 음부에 검은 줄 하나만 달랑 붙여 놓은 것처럼 야하기 짝이 없는 팬티.
광택이 흐르고 속살이 야릇하게 비춰 보이는 스타킹과 가터벨트.
평소에는 잘 신지도 않던 높은 하이힐까지 쭉 훑어본 에틸이 레이라의 목 언저리에 입술을 가져다 붙였다.
살짝 입을 가져다 대는 듯했던 뜨거운 입술이 슬며시 벌어졌다. 에틸은 레이라의 하얀 살결을 세게 빨아당겼다.
“흣.”
따끔한 자극에 떨리는 몸을 쓰다듬은 그가 붉어진 살갗을 느리게 문질렀다. 끈적하고 집요한 입술은 비교적 담백하게 레이라를 놓아주었다.
에틸은 동그랗게 물든 자국이 마음에 드는지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뒤따라 곱게 휜 눈웃음 사이로 묘하게 색스러운 눈빛이 피어났다. 그의 눈빛은 점점 더 강렬한 열기를 품고 레이라의 몸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레이라는 에틸의 눈빛이 제게 닿아 올 때마다 그 자리를 직접 만져지기라도 한 것처럼 화끈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그녀가 제 목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예쁩니다. 레이라.”
흘러내려 온 머리칼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 준 에틸이 그대로 그녀의 목을 끌어당겼다. 성급하게 느껴지는 몸짓은 그나마도 터져 버리려는 흥분을 꾹 눌러 참고 있는 것이었다.
거칠게 파고든 뜨거운 혀끝이 입 안을 샅샅이 훑어 냈다. 입천장을 느릿하게 문지르고 혀 아래까지 파고들었다.
에틸은 고개를 비틀어 더 깊이 입을 맞췄다. 그는 레이라의 목 안 깊숙이까지 닿도록 혀를 바짝 밀어 넣었다. 당연하게 맺힌 눈물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달래듯 살살 혀를 문질렀다.
“으으응, 으읍…….”
레이라의 턱 끝으로 투명한 침방울이 뚝 떨어졌다. 에틸은 그것을 문질러 닦고 레이라의 가슴을 쥐었다. 통통하게 부푼 가슴은 요란하게 맥박 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맺혔다.
보드랍지만 레이라의 살결보다는 못한 속옷이 연신 제 몸을 구겨갔다.
발딱 일어선 유두가 에틸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복수하듯 슬쩍 꼬집자 레이라의 입에서 한숨처럼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앗……. 하아…….”
입술을 떼어 낸 에틸이 레이라의 허벅지를 꽉 쥐고 번쩍 들어 올렸다. 그가 깊게 파인 가슴골 사이에 얼굴을 묻고 숨을 흠뻑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레이라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쪽쪽, 작게 입을 맞추던 소리가 질척하게 뒤바뀌었다.
레이라는 제게 찰싹 달라붙은 옷감이 질척하게 젖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꼴이 어떠할지 부끄럽다가도 에틸이 내뱉는 거친 숨결이 황홀해 금세 잊어버렸다.
에틸은 브라렛 아래 감춰진 유두를 크게 베어 물고 빨면서 레이라의 엉덩이를 실컷 주물렀다. 탱탱하고 말캉한 살덩어리가 주는 포근한 만족감에 그의 아래가 빠듯하게 차올랐다. 목욕가운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에틸의 물건이 레이라를 이리저리 찌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레이라는 에틸의 머리를 꽉 껴안고 흐느꼈다. 밝은 전등 아래에서 잔뜩 흐트러지고 있을 제 모습이 부끄러웠다. 보드라운 머리칼에 얼굴을 비비고 더운 숨을 뱉었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딱딱하고 뜨거운 무언가는 무럭무럭 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레이라는 되는대로 다리를 움직이며 에틸의 음경을 제 살결에 문질렀다.
큰 보폭으로 걸음을 옮긴 에틸이 침대 위로 레이라를 살포시 내려 주었다. 작게 불을 꺼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기도 해 빠르게 마법 등을 꺼버리고 레이라의 위로 올라탔다.
에틸은 그녀의 목 아래에 팔을 집어넣고 다시 입을 맞춰 왔다.
훨씬 부드러워진 입맞춤은 더 집요해졌다. 그는 다시는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혀를 얽고 달콤한 타액을 뺏어 마셨다. 꿀처럼 다디단 입 안은 그저 가만히 머금고 있기에는 안달이 날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자연히 가슴으로 향한 에틸의 손이 커다란 살덩이를 꽉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레이라는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감각에 신음을 터트렸다. 달래듯 부드럽게 가슴을 뭉그러트리는 손이 뜨거웠다.
순간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았다. 흠칫 놀란 레이라가 몸을 움츠릴 새도 없이 에틸이 브라렛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 크기만큼 유연하게 늘어난 옷감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손에 착착 감기는 살결을 음미하듯 에틸의 손이 진득하게 움직였다. 밑가슴을 받쳐 쥐고 눌러 올리듯 문지르고 유두를 살살 간질이기도 했다. 손이 딱 달라 붙어 버린 것처럼 가슴이 쉴 새 없이 뭉그러졌다.
“흐응, 으!”
몸을 움찔움찔 떠는 레이라가 귀여웠다. 에틸은 그녀의 입술을 놓아 주며 뺨, 귓가에 작은 키스를 흩뿌렸다. 그것도 간지럽기는 마찬가지라 레이라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야 했다.
벌써 잔뜩 흐트러진 신음을 노랫소리 삼은 그가 붉게 물든 귓바퀴를 살살 핥았다. 달콤한 향기에 취해 버린 것처럼 잇새가 사나워지면 귓불을 깨물기도 했다.
몽롱하게 풀린 레이라의 눈동자가 사랑스러워 그는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 귀를 물고 빨았다. 레이라는 심지가 딱딱하게 뭉친 에틸의 혀가 귓구멍을 파고들 때마다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곤 했다. 그러나 금세 쫓아온 입술은 바람을 불어넣고 진득하니 귓가를 쓸어내렸다.
귓바퀴를 잘근잘근 깨물린 레이라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하, 잡아먹어 버리고 싶습니다.”
“하으으……. 귀, 간지러워…….”
여전히 가슴을 뭉개고 있던 손이 어느새 그녀의 귀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자리를 바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에틸의 입은 레이라의 유두를 베어 물었다.
크게 벌어진 입은 욕심도 많게 유두와 가슴을 전부 집어삼키려 했다.
에틸은 능수능란하게 혀를 움직이며 그녀의 가슴을 핥고 빨았다. 보드라운 레이스 자락이 잔뜩 젖어 유두를 간질였다. 뜨거운 혀끝은 그것을 긁어 주듯 느릿하게 움직이면서도 거칠게 문질렀다.
매끈하고 가녀린 목선, 쇄골, 어깨를 스쳐 온 커다란 손이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은 에틸이 그것을 한데 모아 붉게 달아오른 유두 한 쌍을 한꺼번에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하으응! 아아…… 하.”
질척이는 야한 소리가 끊임없이 레이라의 귓가에 들려왔다. 가끔 한 번씩 참다못해 터져 나오는 것처럼 뜨겁게 내뱉어진 에틸의 신음은 그녀의 흥분을 돋우었다. 질척이는 소리는 짙은 잔상을 남겼다.
입술로 가만가만 유두를 깨물며 가지고 놀던 에틸이 브라렛을 손쉽게 찢어 버렸다. 통 튕겨 나오듯 쏟아진 레이라의 가슴이 탐스럽게도 보였다.
느리게 제 입술을 문지르며 그것을 황홀하다는 듯 바라본 에틸이 다시 제 얼굴을 가슴에 묻었다. 잔뜩 비비적거리고 핥아오는 통에 간지러움을 참지 못한 레이라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하얗고 윤기 나는 피부를 거친 손이 쓰다듬고 지나갔다. 납작한 배, 모양 좋은 배꼽을 지나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팬티 끈을 풀어낸다.
나풀나풀 나비처럼 날아간 야릇한 모양의 티 팬티는 끈적이는 애액에 흠뻑 젖어 금세 바닥으로 추락했다.
에틸이 제 입술을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커다란 손이 지난 자리를 더듬듯 따라간 입술이 그녀의 밀지를 향해 뿌리를 내렸다. 에틸은 레이라의 미끈한 다리를 제 어깨에 척 걸쳐 놓고 그녀의 음부에 코를 처박았다.
그는 시큼하지만 달달한 액을 마음껏 들이켰다. 음부를 크게 위아래로 핥아 올리고 음핵을 빙글빙글 굴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파르르 떨리는 다리가 제 얼굴을 꽉 옥죄었으나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레이라는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묘한 만족감을 느낀 에틸이 혀끝에 힘을 꽉 주고 질구를 파고들었다. 앙탈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침입을 거부하던 질구는 몇 번 간지럽게 핥아 주는 것만으로도 애액을 왈칵 터트리며 자리를 내주었다.
에틸은 제 것을 넣었다 빼는 것처럼 힘차게 혀를 박아 넣었다.
엄지로 문지르는 클리토리스는 이미 붉게 충혈된 채 탱탱하게 부풀어 있었다. 동그랗게 혀를 말아 흘러나오는 애액을 전부 빨아 마시면서 계속 혀를 놀리자 레이라의 다리가 덜덜 떨려 왔다. 그는 레이라의 음부에서 입을 떼고 클리토리스만 느긋하게 문질렀다.
“이렇게 빨리 가 버리시면 안 되죠. 또 금세 쓰러져 버릴 것 아닙니까.”
“아흐으으, 빨리이…….”
“안 됩니다.”
제법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은 에틸이 한 손으로 제 가운을 활짝 열어젖히고 훌러덩 벗어 던졌다. 여전히 문질러지고 있는 클리토리스는 미약한 자극에 발발 떨고 있었다.
레이라는 아양이라도 떠는 것처럼 엉덩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에틸의 손에 제 음부를 비비적거리기 위해 노력했다.
땀에 젖은 은빛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긴 에틸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흉흉하게 일어선 남근을 두어 번 쓸고는 레이라의 음부에 대고 문지르려 했다. 스프링에 튕기듯 발딱 일어난 레이라가 그의 남근을 한 입에 물어 삼키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거였다.
“읏. 레이, 라?”
레이라는 입을 벌려 귀두를 머금고 혀끝으로 요도를 살살 핥았다. 간지럽히듯 살살 문지르고 조르듯 혀를 굴렸다. 에틸은 제 것을 착 감싸는 뜨거운 혀를 느끼며 더운 숨을 뱉어 냈다. 레이라의 머리 위에 자연스레 올라간 그의 손은 당장 그녀의 얼굴을 제 몸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러나 에틸은 그저 레이라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거칠게 빚어진 제 욕망을 참아 냈다.
레이라는 제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 손길에 눈꼬리를 곱게 접어 웃었다. 마주한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유혹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에틸은 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 정염이 넘쳐버릴 것 같았다. 레이라의 얼굴만 보아도 바짝 서 버리는 하반신은 야릇한 광경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조금 더 크기를 키운 남근에 턱이 뻐근할 정도였다. 입에 넣기 벅찰 정도였으나 레이라는 로이를 가지고 놀던 것을 떠올렸다.
지독하게도 야한 혀끝이 선단을 살금살금 노닐다 페니스를 깊숙이 물어왔다. 레이라는 깊이, 목구멍 안쪽으로 더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아니, 삼켰다. 꾸역꾸역 속살을 밀고 들어오는 살덩어리는 울퉁불퉁한 핏줄이 툭 불거져 절로 눈물이 솟았다.
자극에 파르르 떨리는 선단이 레이라에게 짜릿함을 선사했다. 그녀는 그가 저로 인해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 즐거웠다.
에틸은 레이라의 목구멍을 스치고 들어가는 느낌에 그녀의 머리채를 꾹 쥐었다.
“하……, 으윽.”
마치 그녀의 질 안을 비집고 들어갈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싫다는 것처럼 밀어내다가도 꿀떡꿀떡 집어삼키고, 끊어 먹을 듯 조여드는 감각이었다. 에틸은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발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아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레이라의 머리를 움켜쥐고 마음 가는대로 허리를 놀리고 싶었다. 하나 그래서는 안 됐다. 그는 다시 한번 제 욕망을 참아 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작은 머리가 분홍빛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왕복 운동을 시작했다. 핏줄이 불거진 남근이 레이라의 입천장, 목구멍 어딘가를 스치고 지날 때마다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차가운 빗줄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른 몸을 내리치듯 기이한 쾌감이 일었다.
레이라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눈물이 그득히 고인 눈동자로, 여전히 에틸을 바라보고 있었다. 땀에 젖어 뒤로 넘겨 놓은 머리카락 덕분에 드러난 매끈한 이마가 조각 같았다. 이슬처럼 달라붙은 땀방울과 주름이 생긴 미간이 나른하게 풀린 것에 묘한 충족감이 일었다.
욕정이 들끓는 뜨거운 눈동자와 색스럽게 물들어 야한 숨을 내뱉는 입술이 섹시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속으로만 감탄을 내뱉던 레이라의 목구멍이 순식간에 콱 조여들었다. 에틸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하으, 하…….”
레이라는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남근을 느끼며 움직임을 조금 빠르게 했다. 여전히 요망한 눈동자는 그의 전부를 알고 싶다는 것처럼 반짝였다. 톡 도드라진 목울대는 신음을 목 안으로 삼킬 때마다 꿀렁거렸고 잔뜩 화가 나 있는 근육들은 연신 꿈틀거리며 무언가를 참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칼로 조각해 놓은 것처럼 선명한 복근이 가장 힘들어 보였고, 가장 섹시했다.
레이라는 참지 않고 손을 뻗어 에틸의 몸을 더듬었다. 짙은 색 유두를 문지르고, 가슴 근육을 매만지고, 비단이 스치듯 손을 놀려 복근을 쓰다듬었다. 레이라의 남은 손은 남근을 향했다. 그녀의 입 안으로 들락거리는 성기를 따라 뿌리 부근을 움켜쥔 손이 몸을 흔들었다. 메아리 같은 쾌감은 흩어지지 못하고 에틸의 곁을 크게 맴돌았다.
도톰한 아랫입술을 짓씹은 에틸이 거칠게 신음을 삼켰다.
“크윽, 하…….”
눈을 반짝인 레이라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대롱대롱 매달린 눈물이 애처롭게도 흔들렸다. 에틸은 레이라를 제 하반신에서 떼어 내려 했다. 그러나 애교를 피우듯 어깨를 흔들며 눈을 반짝이는 레이라를 바라보자 절로 손이 멈칫거렸다.
“레이라.”
고개를 작게 끄덕거린 레이라가 혀를 더 진득하게 놀리며 귀두 끝을 비벼왔다. 아련한 손짓으로 그녀를 말리려던 에틸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레이라의 고개를 꽉 쥐고 제 샅을 향해 문질렀다. 낮고 섹시한 신음과 함께 정액이 왈칵 터져 나왔다.
“흐읏…….”
꼴깍꼴깍, 뱉어 내는 족족 레이라에게 삼켜진 정액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전부 그녀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가 이처럼 음란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고 있던 짐승의 고삐를 놓아 버린 에틸이 레이라를 거칠게 떼어 내 끌어안았다. 이미 액이 뚝뚝 흐르고 있는 음부를 손가락으로 몇 번 휘저은 에틸이 거침없이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하아앙!”
“하…….”
오늘따라 반갑게도 맞아 주는 질 안은 잔뜩 울렁이며 에틸의 자지를 꼭꼭 씹어 삼켰다. 에틸은 제 허리를 끝까지 처박아 넣고 뭉근히 허리를 돌렸다. 꺽꺽대며 숨넘어가는 소리가 안정될 때까지 그것을 반복하던 에틸이 거칠게 삽입을 시작했다.
퍽퍽, 살과 살이 맞닿은 소리치고는 퍽 질펀한 소음이 침대 위를 떠돌기 시작했다. 앙증맞게 에틸의 것을 집어삼킨 질은 계속해서 수축을 반복하고 있었다.
에틸은 정말 제 것을 끊어 먹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허리 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레이라를 제대로 눕힌 뒤, 느릿하게 제 것을 밀어 넣고 빼내며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베어 물었다. 달래 주는 것처럼 간절한 몸짓이었다. 노곤하게 풀린 레이라의 몸은 에틸의 남근을 막힘없이, 꿀떡꿀떡 집어삼켰다.
부드럽게 자지를 감싸고 있는 레이라의 질 벽은 미칠 듯이 황홀했다. 뜨겁고 미끈한 그곳이 에틸을 더없이 환영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허리 짓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빠르고, 강하게 찔러 넣고 있는 성기는 이미 터질 듯 불거진 모양새였다.
“아앙! 하읏, 아아아!”
한없이 흔들리는 어깨를 꽉 틀어쥔 에틸이 레이라의 가슴을 깨물었다 놓아주었다. 잇자국이 옅게 생긴 붉은 유두는 한계까지 부풀어 올라 그의 가슴팍을 간질였다.
에틸은 쾌감에 발발 떨리는 가녀린 몸을 꽉 껴안고 미친 사람처럼 자지를 처박았다. 그의 눈동자는 검은 욕망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는 레이라는 이 폭풍 같은 정사에 혼을 팔아 버린 것 같았다.
질 벽을 거칠게 긁고 빠져나가는 핏줄과 자두 같은 귀두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 애액을 밀어 냈다. 젖다 못해 흐르고 있는 애액은 에틸의 거친 움직임을 한껏 부드럽게 바꾸었고 그저 짜릿한 자극만을 남겨 주었다.
레이라는 번쩍번쩍하게 눈앞을 수놓는 벼락을 고스란히 얻어맞으며 짙은 쾌락 속을 헤엄쳤다. 발끝이 불에 닿은 천 쪼가리처럼 오그라들었다. 활대처럼 휜 허리는 크게 비틀렸다.
꽉 안고 있던 레이라의 몸이 뒤로 넘어갈 듯 휘어지자, 에틸이 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더 빠르게 허리를 털었다. 딱 달라붙어 있던 것보다 깊어진 삽입감에 몸을 달달 떨던 레이라가 에틸의 등에 손톱을 콱 박아 넣었다.
“흐아앗! 아아앙!”
마법 장치라도 해 놓은 것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레이라의 내부는 에틸의 자지를 꽉 물었다가 놓으며 귀두 끄트머리를 문질렀다. 흠칫거린 에틸이 허리를 길게 빼냈다가 다시 깊게 처박았다. 느긋하게 그것을 반복하자 레이라의 절정이 더 깊고 진득하게 이어졌다.
에틸은 아직도 떨리고 있는 레이라의 몸을 휙 뒤집었다. 그녀는 절정 속에서도 제 몸 안에서 빠져나간 남근의 빈자리를 아쉽게 여겼다. 그것도 잠시, 레이라는 제 허리를 세우지도 않고 엎드린 그대로 밀고 들어온 에틸의 것을 느끼며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삽입은 얕았지만 평소와 다른 곳을 긁어 대는 귀두가 뭉근한 자극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시트를 꽉 쥔 레이라의 손도 그녀의 질처럼 파르르 떨렸다.
에틸이 허리를 세워 몸을 일으키며 다리를 벌리고 그녀의 위에 걸터앉았다. 아픈 곳을 문지르듯 천천히 또 꼼꼼하게 허리를 놀리던 에틸이 양손을 들어 올려 레이라의 엉덩이를 쫙 벌렸다. 민망함에 소리를 지른 레이라가 재차 고개를 파묻었다. 작게 웃는 에틸의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았다.
“레이라, 여러 명이서……, 후우. 하려면 이곳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미끈하게 젖은 엉덩이를 몇 번 쓰다듬은 에틸이 그녀의 애널을 손끝으로 스치며 말했다. 바르르 몸을 떠는 엉덩이가 싫다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거렸다. 나직하게 소리 내 웃은 에틸이 그녀의 요염하고 앙큼한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
끈적한 땀방울에 젖어 있던 살갗은 작은 터치에도 큰 소리를 냈다.
레이라는 엄살을 부리며 제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시무룩하게 처진 눈꼬리는 퍽 애처로웠다. 레이라의 손을 애무하듯 매만지던 에틸이 그녀의 몸 안에 박혀 있는 제 것을 힘주어 치댔다. 레이라는 손바닥 대신 자지로 얻어맞는 것 같아 우는 시늉을 했다.
“으으응! 히잇, 흐이, 읏!”
“이렇게 오물오물 잘 드시니 이쪽 구멍도……, 후우, 그렇지 않을까요?”
길고 곧은 검지에 흘러나온 애액을 잔뜩 묻힌 에틸이 레이라의 엉덩이를 다시 잡아 벌렸다. 아직도 제 안을 드나들고 있는 남근에 자지러질 듯 몸을 휘청이고 있는 레이라는 에틸이 뭘 하려는 건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에틸은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처럼 분홍빛으로 고운 물이 들어 있는 주름을 매만지며 미끈미끈한 애액을 펴 발랐다. 그는 레이라 몰래 살그머니 검지를 밀어 넣었다.
“힉, 흐으응!”
오히려 질 입구보다 손쉽게 손가락을 삼켜 버린 엉덩이는 그저 집어넣기만 했는데도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자극적인 광경에 에틸은 달콤한 꿀을 쫓는 벌처럼 집요하게 구멍을 드나들었다. 거친 허리 짓과 손가락을 동시에 움직이는 에틸 덕분인지 레이라는 그저 앙앙대며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뭔가를 집어넣어 볼 생각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밀지에 박혀 있는 손가락은 이상한 고통과 자극을 동시에 주고 있었다. 싫은 것 같기도 했고 좋은 것 같기도 했다. 레이라는 미처 거부하지도 못한 채 에틸의 손가락을 두 개째 집어삼켰다.
“으읏! 아앙……, 시러어!”
“그런 것치고는……, 후. 꽤나, 느끼시는 것 같은데 말이죠.”
콧소리를 내며 우는 척하는 레이라를 힐책하듯 혀를 찬 에틸이 손가락을 깊숙이 넣었다가 휙 빼냈다. 파들파들 떨던 엉덩이가 거절의 몸짓을 여실히 전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나 싫다니 어쩌겠나. 일단,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야 했다. 입맛을 다신 에틸이 레이라의 엉덩이를 아쉽다는 듯 바라보았다.
에틸보다 더 아쉬워하고 있는 구멍은 오물오물, 입구를 금세 꽉 메웠다. 그는 언제 뚫려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춘 구멍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가느다란 허리를 가득 붙잡은 에틸이 레이라의 허리를 꽉 끌어당기며 제 것을 더 깊이 박아 넣었다.
레이라는 무릎을 세우고 엉덩이를 들어 올린 자세로 쾅쾅 내리치는 쾌감을 받아들였다. 요염한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허리를 꺾어 에틸을 받고 있는 레이라는 시트 자락을 찢어질 듯 그러쥐고 베갯잇에 얼굴을 문질렀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오르가슴은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분명 사정을 한 것 같은데도 에틸의 움직임은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레이라는 어느새 벽에 착 달라붙어 엉덩이만 내민 자세였다. 그녀는 걸음마를 못 뗀 아이처럼 발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콱 주며 버텼다.
“하아앙, 아앗! 아앙!”
허리를 감은 에틸의 손이 레이라의 가슴을 감싸왔다. 아플 것처럼 꽉 쥐는데도 이상하게 쾌감만이 느껴졌다. 유두는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 손바닥에 스치기만 해도 아릿아릿했다.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지 에틸은 레이라의 가슴을 부드러이 매만지다 움켜쥐기를 반복했다.
“하, 힘듭니까?”
“으으응. 더, 더해 줘.”
에틸은 못을 때려 박는 망치처럼 거세게 움직였다. 고환까지 안으로 파고들 기세로 허리를 찍어넣은 그가 다시 레이라의 허리를 붙잡았다.
손자국이 벌겋게 난 허리에 미안함도 잠시, 에틸은 빠르게 안을 쑤셨다. 굵은 자지에 밀려 나온 정액이 바닥에 툭툭 떨어져 동그란 자국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등허리에 흐르는 땀방울도, 탁하게 새어 나오는 신음도, 방 안 가득 차 있는 성교의 냄새도 전부.
레이라와 에틸은 온갖 신경 세포가 음부에만 집중된 것처럼 움직였다. 척척 달라붙던 살결은 땀에 흠뻑 젖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동이 터오는 새벽녘까지, 미친 듯 내달리는 명마처럼 움직이던 두 사람은 죽은 것처럼 서로를 껴안고 꿀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들기 직전, 레이라는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달콤한 목소리를 들었다.
레이라는 잠결에도 베개가 왜 이렇게 딱딱할까 생각했다. 그래도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기에 뺨을 비볐다. 딱딱하지만 보드라운 느낌에 퍼뜩 이상함을 느낀 그녀가 놀란 얼굴로 눈을 떴다가 해사하게 웃는 에틸과 딱 마주했다.
“왜 벌써 일어나십니까.”
“아, 에틸이었구나.”
배시시 미소 지은 레이라가 에틸의 목을 감싸 안고 다시 몸을 엎드렸다.
‘응? 뭐지? 어제 너무 오래 했나?’
아직도 배 속에 느껴지는 이물감이 의아해 레이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여운 몸짓에 크게 부풀던 에틸의 것이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뭐야. 왜 아직도 넣고 있…….”
풍만한 가슴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던 에틸이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대로 잠들었으니, 그보다 자꾸 움직이시면…….”
곤란하다는 듯 엉덩이를 슬쩍 뒤로 물린 에틸이 미간을 작게 구겼다. 코앞에서 바라보는 섹시한 표정에 홀린 듯 엉덩이를 내린 레이라가 신음을 뱉었다.
“흐응…….”
“하.”
고이 품고 있던 정액 덕분인지 출입이 수월했다. 매끄럽게 들어온 남근이 우연하게도 레이라가 가장 잘 느끼는 곳을 정확하게 찍어 올리며 질 벽을 긁었다. 요정의 날개처럼 몸을 떨던 레이라는 제 머릿속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온 것처럼 흥분이 빠르게 치솟는 것을 느꼈다.
탄탄하고 미끈한 에틸의 어깨를 짚은 레이라가 허리를 세웠다. 요염하게 그의 위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느릿하게 돌리는 폼이 아침부터 한 번 더 해 달라는 것 같아 에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침 저도 하고 싶어졌으니까, 딱 좋았다.
에틸이 낭창한 허리를 꽉 붙잡았다. 그는 레이라가 엉덩이를 들었다 내릴 때에 맞춰 저를 그녀에게 딱 붙이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차지게 부딪치는 접합부에서 정액이 이리저리 새어 나왔다. 하얗게 거품이 일어난 매끈한 음부를 바라보며 입술을 핥은 에틸이 침을 꼴깍 삼켰다.
“하앗! 아아앙!”
탄력적이고 음란한 엉덩이와 꽉 쥐면 바스라질 것 같은 허리. 흥분제나 다름없이 자극적인 가슴, 잘 익은 백도처럼 발긋하게 익은 어여쁜 얼굴을 차례로 바라본 에틸이 숨을 거칠게 쉬었다.
아침 햇살에 찬란하게도 빛나는 머리칼은 꼭 레이라를 여신처럼 보이게 했다. 가슴이 꽉 찬 것처럼 뻐근한 감정이 차올랐다. 미칠 듯이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에틸은 제 것을 더 깊게 박아 넣기 위해 몸을 위아래로 튕겼다. 그렇게 해 댔는데도 단단하게 일어선 남근은 레이라의 안을 거칠게 헤집었다. 질 벽을 닥닥 긁던 귀두가 질구에 걸칠 때까지 빠져나갔다가 다시 힘차게 찔러 왔다.
고개를 흔들며 쾌감에 찬 신음을 토해 낸 레이라가 판 초콜릿 같은 에틸의 복근을 쓰다듬었다. 울퉁불퉁한 것이 마음에 드는지 그녀는 어제부터 계속 습관처럼 그의 배를 매만지고 있었다.
에틸에게는 꽤 난감한 일이었다. 힘을 꽉 주고 사정을 참곤 했는데 레이라의 손이 닿을 때마다 힘이 탁 풀려 버리는 탓이었다. 덕분에 그녀의 안에 저를 파묻은 자지가 움찔거리며 반응을 대신했다.
“으으응! 하아, 하앙!”
“후우…….”
에틸은 제 눈앞에서 살랑살랑, 유혹하듯 위아래로 움직이는 가슴을 덥석 물었다. 평소보다 붉게 물든 유두는 혀를 굴리자 파르르 떨려 왔다. 아픔과 쾌감을 동시에 느낀 레이라는 에틸이 제 가슴을 놔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더 세게 빨아 줬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차오르는 감각에 아무런 표현도 할 수 없었다.
빨라진 움직임이 레이라의 숨을 더 할딱이게 했다. 거의 앉은 것처럼 허리를 세운 에틸이 레이라의 몸을 꽉 껴안고 허리를 빠르게 털었다.
잘근잘근 깨물린 유두는 거의 터질 것처럼 부어올랐다. 레이라는 아프다고 칭얼거리면서도 에틸의 머리를 꼭 껴안았다. 온몸이 간지러운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녀는 제 가슴에 그의 얼굴을 더 문지르지 못해 안타까운 것처럼 굴고 있었다.
아기가 젖을 빠는 것처럼 쪽쪽거리며 유두를 괴롭히던 에틸이 가슴골에 얼굴을 부비며 레이라의 체향을 들이마셨다.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향기에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보드라운 살갗을 깨물고 빨아들이며 제 자취를 새겨 넣은 에틸이 만족스레 입꼬리를 올렸다. 제 속도를 못 이기면서도 연신 몸을 흔들고 있는 레이라는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리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레이라, 하……, 어제보다, 으윽, 더 사랑합니다.”
나직한 음성이 꿀처럼 다디단 말을 뱉어 냈다. 레이라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에틸의 것이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로 자지의 주름 하나하나 불거진 핏줄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도 느껴졌다. 움직임이 확 느려지자 레이라는 대답을 하려 애썼다.
“하앗, 으응……, 나도, 아아앙!”
“후우. 그만 좀, 조여……, 하…….”
말을 다 잇지 못한 에틸이 뭉근하게 문지르던 허리 짓을 때려치우고 다시 미친 듯이 허리를 처박기 시작했다. 더 커진 것 같은 남근에 새된 비명을 내뱉으며 그의 속도를 따라가려 노력하는 레이라의 몸짓이 애처로웠다.
절정에 달했는지 바들바들 떨리는 질 내부가 에틸의 자지를 잡아먹을 것처럼 조여 왔다. 레이라의 허리가 뒤로 꺾이려 하자 에틸은 그녀를 단단히 잡아 눕혔다. 허벅지 한쪽을 깔고 앉으며 길게 뻗은 날씬한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제 것을 자비 없이 밀어 넣었다.
레이라는 폭포수 바로 아래에 서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치받는 흉흉한 물건이 쾌감을 어마어마하게 증폭시키고 있었다. 레이라는 악 소리도 못 내고 쏟아지듯 내리꽂히는 절정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몸이 달달 떨렸고 숨이 콱 막혔다.
밀려오는 사정감을 참느라 잇새를 깨문 에틸이 레이라의 클리토리스를 엄지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주무르고 허리 짓은 멈추지 않았다.
레이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명을 들은 것 같았다. 삐 소리와 함께 모든 감각이 차단되는 것처럼 암전이 찾아왔다.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땀이 맺힌 투명한 살갗이 떨리는 모양은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도록 야릇했다.
에틸이 레이라의 모든 것을 눈에 담는 동안 그녀가 움직임을 탁 멈췄다. 호흡까지 멈춰 버린 탓에 에틸은 심히 놀랐으나 그녀의 안이 전에 없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눈을 번뜩였다. 그가 오히려 허리를 더 빠르게 짓찧었다.
“아흐! 하앗! 아!”
“핫, 후우…….”
제법 관능적으로 익은 클리토리스는 만지면 만질수록 손에 착착 감겼다. 가슴은 당장 입에 넣고 싶은데도 자세가 허락지 못했다. 에틸은 아쉬운 대로 그녀의 다리를 핥고 빨았다. 모양 좋은 종아리를 베어 물고 무릎 뒤 여린 살갗을 빨아 당겼다.
에틸이 바쁘게 움직이며 제 무게를 실어 허리를 쾅쾅 찍어댔다. 레이라는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는 빛줄기를 느꼈다. 온몸이 타 버릴 것처럼 뜨겁고 당장 미쳐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쾌락이 밀려들어 왔다.
솜털 하나하나까지 올올이 일어서는 짜릿한 느낌과 함께 척추를 타고 내리는 전기에 온몸이 지져지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치가 떨리도록 잔인한 쾌감을 받아들이던 레이라의 아래에서 투명한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하으으응! 하앗, 아앙! 어떡, 해……. 으앗.”
울먹임이 담뿍 배인 신음을 내지르며 고개를 이불 속으로 파묻은 레이라가 허리를 배배 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와중에도 느끼는지 엉덩이가 파르르 떨렸고 발끝이 동그랗게 곱아져 있었다.
“하…….”
“으으응! 하앙.”
분수처럼 시원하게 뻗어 나오는 물줄기를 고스란히 맞고 있던 에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묘한 만족감과 함께 정복감까지 들었다. 놀랐는지 허리 짓을 딱 멈춘 에틸은 여전히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있었다. 끈질기다 해야 할지 덕분에 더 쾌감을 느껴 좋다고 해야 할지, 레이라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퐁퐁 쏟아 냈다.
잠시 넋을 빼앗겼다가 되찾은 에틸이 부드럽게 웃으며 레이라를 껴안았다. 그가 살살 달래 주듯 매만지는 등 언저리마다 꽃잎을 문지르는 것처럼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레이라는 에틸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응석을 부렸다.
달콤한 꿀을 받아 마시듯 레이라의 눈물을 핥아 먹은 에틸이 다시금 허리를 문질렀다. 야릇한 교성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기까지는 금방이었다.
✲ ✲ ✲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는 청량했고 앙증맞았다. 푸르른 잎사귀들은 새벽이슬을 맞아 반짝였고 꽃은 싱그럽게 피어났다. 눈부신 햇살을 기분 좋게 맞은 피오니안이 창가에 고정되어 있던 눈을 떼어 냈다. 우울한 낯을 한 녹스 공작이 우려낸 차 향기는 낯빛과 달리 아주 향긋했다.
달콤한 꽃, 상큼한 과일, 푸르른 잎사귀, 딱딱한 나무를 한데 모아 향기를 맡는 것처럼 풍성한 자연의 냄새가 나는 차였다. 오렌지 빛이 나는 수색을 물끄러미 바라본 피오니안이 찻잔을 집어 들며 녹스 공작을 바라보았다. 당장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시작하라는 무언의 압박 비슷한 것이 느껴졌기에 녹스 공작은 냉큼 입을 열었다.
“이리 나타나셨다는 것은 비밀리에 잘 감추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황제께는 알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알아서 해도 된다.”
“그럼…….”
“사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더라도 상관없다. 다만, 나는 누군가가 쓸데없는 이유를 들먹이며 나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이 싫고, 갖은 이유를 들먹이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것을 들어줄 생각도 없고.”
녹스 공작은 피오니안의 말을 네가 방금 얘기한 황제한테도 인사는커녕 뭣도 없으니 알아서 처신 잘하라는 말로 들었다. 물론, 잘 알아들은 것이 맞았다. 녹스 공작이 냉큼 고개를 주억였다. 사실 이것은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밑밥일 뿐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피오니안이 저런 태도로 온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만물이 다 아는 이야기였으니까.
“아. 잘 알아들었습니다.”
“할 이야기가 그것인가? 아닐 것 같았는데…….”
찻잔을 집어 들려던 녹스 공작이 그것을 황급히 내려놓았다. 평소라면 들리지 않았을 청명한 다기 소리가 녹스 공작이 당황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레이라의 저주는…….”
“출처가 궁금한가?”
“저주의 자세한 내용도 궁금하지만, 그저 말씀하신 대로만 알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갑자기 제 딸아이가 저주에 걸렸다는 것인지는 이해하기가 힘들군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도통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거의 공작저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았는데…….”
‘그럴 만도 할 테지.’
고개를 끄덕인 피오니안이 눈을 가늘게 접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생각에 잠긴 피오니안을 더욱 신비로워 보이게 했다. 마지막 남은 악마이자 뱀파이어가 저지른 일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고…….
“레사 메르세데스. 그자가 토벌하러 찾아갔던 마수가, 그에게 저주를 걸었지.”
“…….”
“저주 속의 저주라는 말 들어 보았는가?”
찻잔을 얌전히 내려놓은 피오니안이 다리를 척 꼬았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발끝이 해도 될 말과 안 되는 말을 고르고 있었으나 이미 폭탄은 던져 버린 후였다.
안색이 몹시 흉흉해진 녹스 공작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글이글 끓어 넘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언짢음이 배어 나오는 몸짓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으나 오늘 따라 눈치를 차에 말아 먹어 버린 피오니안은 분위기 파악은 전혀 못 한 채, 말을 술술 내뱉고 있었다.
눈처럼 쌓인 분노 위로 다시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 ✲ ✲
눈을 뜨자마자 미남이 보인다는 것은 몹시 행복한 일이었다.
바보처럼 웃는 나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도 간지럽지만 그만큼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것 같았다. 부스스 일어나면서도 눈을 마주하니 빙긋 웃는 얼굴이 어쩜 저리 어여쁜지 모르겠다.
결 좋은 은발은 그가 머리를 몇 번 털자 언제 헝클어졌냐는 듯 잠잠하게 가라앉는 것이 제 주인을 꼭 닮았다. 나는 느릿하게 침대 위에서 일어서는 그를 가만가만 바라본다. 내 시선을 눈치채고 웃어 준 그가 귓가에 깃털 같은 작은 키스를 남겨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레이라.”
페로몬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는 너무 치명적이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좋은 아침이라며 대답하고 그의 벗은 몸을 다시 훔쳐보았다. 얼굴이 절로 달아올랐다. 그러나 홧홧해진 뺨에 차가운 손을 올려 식히면서도 잘 빠진 근육 감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곤 했다. 그것이 나를 배려해서인지 아니면 그가 내 시선을 즐기고 있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그가 나를 유혹하는 방법의 하나였다는 것을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다.
얼굴, 몸, 눈웃음, 목소리.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전부 가진 그는 그것을 활용하면서 무궁한 발전을 해 나가는 중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는 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붉은 혀끝을 내밀어 입술을 느리게 핥았다. 순간, 나는 저 야한 입술이 주는 쾌감을 떠올리고 말았다.
얄밉게 그의 입 안으로 쏙 사라져 버린 혀끝을 아쉽게 바라보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멀리 돌렸다.
그러자 그는 내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분명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저렇게 웃을 때마다 나는 다디단 꽃잎을 입에 물고 있는 것처럼 입 안이 달았다. 마음속에서는 나비가 날개를 팔랑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를 대할 때만 저렇게 웃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저 표정 없이 사는 그가 내게만 저리 환하게 웃어 주는 것이 좋아서 그런 걸까? 아무튼, 나는 그의 생각보다 더 그에게 빠져 버린 것 같다.
나를 만져 주지 않는다고 몰래 찾아와 그를 유혹할 만큼. 그리고 그가 내게 웃어 주는 웃음이 더없이 소중해진 만큼. 음, 어쩌면……. 그것보다 더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그의 행동과 습관들을 확인하게 되고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연스레 외우게 되니까.
어째서 에틸을 먼저 사랑하지 못했을까. 왜, 레사와 먼저 사랑에 빠졌을까. 요즘 들어 그런 생각들을 자꾸만 떠올리곤 한다.
물론 그것이 내 욕심이라는 것도 안다.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그에게 미안한 일인 것도 안다.
그러나 한없이 퍼부어도 그만큼 더 남은 것 같은 그의 애정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레사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더라면 지금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에틸이 듬뿍 퍼부어 주는 애정이 사랑이라는 것도 몰랐을 테니까. 가랑비에 옷이 다 젖어 버리는 것처럼 이미 그가 주는 애정에 푹 적셔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
다정하게 늦은 아침 인사를 건네는 그가. 사랑스럽다는 듯 뺨을 맞대고 비밀을 속삭이듯 다디단 말을 속삭여 주는 그가. 항상 나를 기다려 온 것처럼 바라보면 단숨에 눈을 마주치는 그가. 내가 주는 작은 키스에도 세상 모든 행복을 껴안은 것처럼 웃는 그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몰랐을 테니까.
에틸, 그가 내 곁에 있어 주어서 온갖 힘든 일에도 웃을 수 있다. 모른 체하지 않고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고 함께 앞날을 그린다는 게…….
좋다. 정말 고마워서, 마음이 아프다.
아마 그가 들었더라면 빙긋 웃었을 내 속마음들은 오늘도 입 밖으로 나서지 못한 채 삼켜졌다. 그리고 대신 튀어나온 말은 그것과는 영 딴판인 이야기였다.
“에틸, 너는 정말 괜찮아?”
나도 모르게 뱉어 버린 질문에 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 것이 보였다. 셔츠 단추를 잠그다 말고 나를 내려다본 그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어떤 것이 괜찮은지 물으시는 겁니까?”
정중하게 나온 그의 말에 나는 같은 말을 또 한다.
“정말로 내가 나트하를 만나는 게 괜찮아?”
분명 그에게서 답을 들은 이야기인데, 나는 또 묻고 있다. 내가 그였더라면 괜찮을 수가 없을 것 같았으니까……. 절로 불안해진 내 마음이 눈빛에 드러날까 싶어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내 눈빛만 보아도 내 마음을 마법처럼 술술 읽어 버리는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는지 고민을 하는 것처럼 잘생긴 턱 아래에 손가락을 걸치고 있던 그가 장난스레 웃었다. 아, 저 웃음도 좋다.
“괜찮습니다. 이상한 놈을 데리고 오시는 것만 아니라면.”
말문이 막혀 버린 내 표정이 이상했을까? 그가 도리어 내게 물었다.
“레이라, 당신은 괜찮은 것이 맞습니까?”
글쎄……. 내가 괜찮은 걸까? 되돌아온 질문에 괜스레 귀를 긁적여 보던 나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괜찮지는 않아. 그런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마 나보다 더 힘든 건 에틸이랑 나트하일 것 같아서…….”
말을 하면 할수록 풀칠이라도 된 것처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또 목소리는 기운이 점점 빠져나가듯이 작아져 버렸다. 한숨을 폭 내쉰 나는 버릇처럼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자 그의 다정한 손길이 입술을 쫓아와 질책하듯 톡톡 두드린다.
그의 손길에 입술을 괴롭히던 것을 그만두고 붉어져 있을 입술을 매만지며 그의 표정을 살펴봤다. 다정한 얼굴 그대로 눈꼬리를 휘어 옅은 웃음을 매단 그가 말했다.
“레이라. 저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를 전부 꺼내 보자면……, 저나 나트하를 사랑,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을, 애정을 이용해 당장의 위기를 넘기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당신의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말문이 막힌 나는 멍하니 그의 해사한 얼굴을 바라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 좋자고 누군가의 마음을 이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는 꼭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대답했다.
“물론, 당신이 그렇지 못할 거라는 것 압니다. 그러니 더 사랑스럽고 안타까운 것이겠죠. 저와 나트하의 마음이 온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그도 저도 당신의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작게 돋아난 새싹을 피해 움직이듯 조심조심 내게 다가온 그가, 나를 포근히 안아 주었다. 세게 끌어안으면 망가져 버릴 무언가를 껴안듯 조심스러운 손길과 신중한 다독임은 익숙했고 따스했다.
“당신은 저와 나트하가 불행하기를 원하지 않으실 테죠. 곁에 남아 힘들까 걱정되고, 이게 맞는 행동인가 의심하고 계실 거라는 것 압니다. 그러나 힘든 일이 생긴다면 어떻고, 불행해진다 한들 어떻습니까. 어차피, 인생은 늘 달콤하지만은 않은 것인데요.”
나는 그를 더 꽉 껴안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의 말처럼 늘 행복한 일생만을 살다 죽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들어 할 것이 못 견디게 무서운 거였다. 서늘한 바람을 닮은 체취를 아무리 들이마셔도 어수선한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작게 고개를 흔드는 내게 그의 다정한 손길이 흠뻑 쏟아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마 당신 곁에 머물 수 있어서 행복할 날들이 더 많을 겁니다. 지난번에 그러셨잖습니까. 꼭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당신이 저와 나트하의 행복을 바라는데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 보다, 당신이 저의, 나트하의 행복을 바라는 이유가 미안해서 혹은 고마워서가 아닌, 사랑해서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 먼저겠지만요.”
사실 저는 이미 그렇게 만든 것도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내 귓가에 딱 붙어 있는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나는 얼굴은 둘째 치고 귀까지 새빨개졌을 내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져 그에게 얼굴을 더 깊이 파묻어야 했다.
다정하게 흘러나오는 말들이 좋다.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할 거라는 그의 말을 그저 올곧이 믿고 싶어진다. 바보같이 또 울어 버리는 내게 쏟아지는 당신의 관심과 애정이 버거울 정도로 커다랗다는 것이 좋으면서 슬프기도 하다.
내가 온전히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이제 와서야 생기는 아쉬운 마음들을 꼭꼭 씹어 삼켰다.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들을 곱게 접어 쫙쫙 찢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괜찮을 거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게 만들 거라 속삭이는 말이 아프지만 또 따뜻해서.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 기분보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보다, 매순간마다 드는 회의감보다는 당신을, 또 생길 내 사람을 더 사랑해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