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Skyfall is where we start
노트에 글을 끄적이던 레이라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D-Day 3]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에 색이 있었다면 아마 레이라의 방은 온통 그 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 같았다. 3이라는 숫자에 동그라미를 몇 겹이나 연달아 그리던 그녀의 손이 만년필을 톡 떨어트렸다.
귀여운 분홍색 만년필이 책상 위를 데굴데굴 구르다 펜 뚜껑에 걸려 툭 멈추었다. 레이라는 가지런한 손톱을 세워 윤이 나는 책상 위를 톡톡 두드렸다. 그녀는 서랍을 열어 로이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꺼냈다.
묵직한 주머니를 풀어 로이를 꺼낸 레이라가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로이를 볼 때마다 음란한 기분이 들고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로이를 툭툭 건드려 보던 레이라는 그것이 제 몸을 키우려 하자 냉큼 손을 떼어 냈다. 앞으로 3일, 레이라는 아마 에틸, 나트하와 함께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30일 이내로 레이라를 사랑하는 다른 한 명의 남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이라는 33일 이내로 저를 사랑하는 남자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그녀의 머릿속에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레사 메르세데스였다.
덕분에 로이를 덩그러니 꺼내 놓았지만……. 레이라는 저를 모질게 버렸던 레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이건 아니지 싶어 한숨을 쉬기도 했고, 그래도 가장 빠르고 쉬운 선택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골몰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피오니안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레이라는 곧 지워 버렸다. 다시 한숨을 내뱉은 그녀는 제 팔에 얼굴을 가두며 책상 위로 푹 엎어졌다.
✲ ✲ ✲
검붉은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누군가를 몰래 지켜보고 있던 남자는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인지 남자의 관절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제 관절 소리에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허리를 톡톡 두드리며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스트레칭을 했다.
“하, 이제 늙긴 늙었나 보네. 겨우 이 정도 앉아 있었다고…….”
“웃기고 있군.”
등 뒤에서 툭 튀어나온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린 남자가 뒤를 휙 돌아보며 삿대질을 했다.
“뭐야!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지. 깜짝 놀랐잖아!”
“네가 못 느낀 것에 왜 자꾸 내 탓을 하는지 모르겠군.”
“하……. 됐다 됐어. 말을 말아야지. 아니, 근데 또 왜 왔어?”
“……그냥 왔다.”
딱 보니 뭔 일 있었군. 작게 중얼거린 남자가 후드를 뒤집어쓰며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검붉은 그림자가 일렁이는 공간에 찰떡같이 숨어든 남자의 형체가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저와 대화하던 중에 남자가 사라져 버렸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남자가 보석 같은 눈동자를 그림자에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더 하려는 거지?”
“……음, 그 레이라 녹스라는 아가씨를 꼬셔서 그 옆을 차지할 건데?”
“미친 건가?”
“그게 왜 미친 건데?”
“그녀의 저주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야 조건이 충족된다. 너 그녀를 사랑하나?”
“아, 그러네. 그 생각은 왜 못 했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림자와 하나가 된 남자를 바라보던 남자가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보기 좋게 꼬신 다음에 그놈한테 이죽거리는 게 내 계획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그림자에서 불쑥 솟아 나온 팔이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잡아 흔들며 좌절했다. 기막힌 풍경에 고개를 더 격렬하게 흔든 남자가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네 집으로 돌아가라. 카르도베르.”
“그건 안 되지. 내가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그냥 계획을 좀 뒤로 미뤄야겠어. 그녀의 곁에 세 명의 남자가 생긴 뒤에 다가가면 될 것 아냐?”
“……하.”
“벌써 두 사람을 구했던데, 곧 남은 한 사람도 생기겠지. 그게 저 녀석은 절대 아닐 것 같으니 안심이야.”
툭 튀어나온 베르의 손이 검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남자를 척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레사를 바라보던 남자가 미간을 작게 구기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레사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왠지 그가 얄미웠고 몇 대 때려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계속 그렇게 변태처럼 저 녀석을 구경하고 있을 건가?”
“변태라니? 그 무슨 실례야.”
“그럼 그게 정상인가?”
“흐음, 너도 마찬가지잖아?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그녀의 곁에 찰싹 붙어서 지켜보는 것 아니었어? 대놓고 보는 너나 몰래 숨어서 보는 나나 뭐가 다른데?”
“……나는 그냥 돌아갈까 한다.”
갑작스러운 피오니안의 결정에 놀란 베르가 그림자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가 피오니안의 얼굴을 빤히,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네가 무슨 일이야? 재미있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그녀를 사랑하기라도 해? 곁에서 지켜보자니 막 질투가 끓어오른다든가.”
“…….”
피오니안은 귀 끝이 붉어진 것을 모르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빙글빙글 웃으며 그를 놀리려던 베르는 측은한 옆모습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정말이야? ……타이니아스가 사랑을, 한다고?”
“……아니다.”
“너 거짓말 못하잖아. 다 티 나는데?”
“…….”
베르는 입까지 쩍 벌린 채 붉어진 피오니안의 얼굴에 곡하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아이고 반복되는 소리에 피오니안의 아미가 왈칵 구겨졌다. 베르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말라며 제게 잔소리를 퍼붓던 그의 말이 귓가를 징징 울리는 것 같았다.
“……너 미쳤어?”
“미쳤냐니.”
“어쩌려고 그래? 아니, 은발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엄청난 미인이라고 했지? 토끼를 닮아서 그, 토끼를 대하는 마음이랑 착각하는 거 아냐?”
뭔 개소리를 하냐는 것처럼 피오니안의 눈가가 뾰족해졌다. 저도 그런 생각을 몇 날 며칠 했다는 것은 비밀에 부친 그가 괜스레 눈을 더 가늘게 접었다. 피오니안은 손가락을 들어 베르의 이마를 톡 튕겼다.
“으악!”
톡 때린 꿀밤치고는 돌로 내리친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는 제 이마를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뒹굴뒹굴 굴렀다. 불쌍하리만치 고통을 못 이기는 그의 안타까운 발버둥에도 피오니안은 그저 눈썹을 슥 올렸다 내리기만 했다.
“아무튼, 그것은 비밀로 해라. 너에게 좋을 것 없는 이야기이니.”
“그게 왜 나한테 좋을 거 없는 이야기야? 네가 빨리 그녀의 세 번째 남자가 된다면, 나는 내 계획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데!”
“만약 내가 그녀의 곁에 있게 된다면, 너 따위를 다가오게 할 것 같은가?”
“그건……. 또 그렇네.”
고개를 푹 숙인 베르는 대체 레이라 녹스가 어떤 여자이기에 피오니안이 사랑에 빠지게 된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흥미가 가득 담긴 시선으로 피오니안을 훑어보던 베르가 비릿한 미소를 띠웠다.
피오니안은 그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대번 인상을 구겼다. 그는 다시 레이라의 곁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피오니안은 그냥 이대로 레이라의 곁에서 사라진 뒤 나타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제가 괜히 베르의 호기심을 끌어 그녀에게 좋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저 무슨 짓을 하려는 지나 알아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피오니안은 베르를 찾아온 것이 후회됐다.
“내가 그녀의 곁에서, 너를 주시하겠다.”
“뭐야! 왜 마음이 바뀌는 건데?”
“그건, 내 마음이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쉰 피오니안이 다시 녹스가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제 뒤통수에 대고 뭐라 뭐라 열심히 중얼거리는 베르의 말을 대놓고 무시한 그는 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가출한 지 이틀 만의 일이었다.
✲ ✲ ✲
저녁을 깨작깨작 먹은 레이라는 에틸의 손을 마주 잡고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오늘 따라 더 반짝반짝한 그의 은빛 머리칼이 탐스러워 보였다. 만져 볼까 고민하던 레이라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틸도 앉아. 조금 앉아 있다 갈래.”
“알겠습니다.”
레이라는 눈치를 슬쩍 보더니 살금살금 손을 뻗어 제 옆에 나란히 앉은 에틸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녀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만족감을 표현했다.
에틸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저녁을 먹더니 이제는 제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헤벌쭉 웃는 레이라에 미묘한 눈을 했다. 그는 좋다는데 어쩌겠나 싶은 마음으로 제 머리를 만지기 쉽게 숙여 주었다.
‘또 무슨 고민을 하기에…….’
한숨을 삼킨 에틸은 고민이 있어도 저를 보고 또 만지며 귀여운 미소를 머금는 레이라가 안타깝고 사랑스러웠다. 간지럽게 머리칼을 헤집는 손짓이 작게 부는 바람 같았다. 그는 가만히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한참이나 에틸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던 레이라는 그의 머리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 소리를 듣던 에틸이 폭신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에틸, 내가 레사를 다시 만난다면 어떨 것 같아?”
“……음, 일단 머리부터 놔 주시겠습니까.”
옷 아래로 느껴지는 탱탱한 감촉에 에틸의 하체에 힘이 들어가려 했다. 그는 겨우 이 정도의 작은 접촉에도 반응이 오는 제 것이 당황스러웠다.
레이라는 제 가슴께에서 간질간질 움직이는 에틸의 입술을 느끼다가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그녀는 놓기 싫다는 것처럼 한참이나 뒤에 그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이제 됐지?”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신 것 맞습니까?”
“…….”
“만약, 당신을 사랑해 줄 남자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그를 만나겠다고 생각하신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남자는 발에 치이도록 많으니까요.”
입을 앙다문 레이라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아직, 해가 전부 지지 않은 하늘은 어둑어둑한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둠이 살금 내려앉은 정원에 마법 등이 하나둘 켜지는 것이 보였다.
레이라는 회색으로 물든 에틸을 향해 작게 웃었다. 그는 그 웃음이 어딘가 안쓰러웠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분명 당신께서는 그러셨죠. 평생을 함께 지낼 반려를 찾으시는 거라고. 그런데, 그저 시간이 촉박하다고 아직 앙금이 풀리지 않은 사람을 고를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
“물론, 당신께서 레사 메르세데스 소공자를 아직 마음에 두고 계신 거라면, 당장이라도 찾아 가 데려올 의향이 있습니다.”
올곧은 푸른 눈빛이 레이라를 향했다. 그녀는 에틸의 그 눈빛이 제게 처음 기사의 맹세를 하던 그때보다 더 짙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의 깊이만큼이나 농익은 눈빛이 아름다웠다. 불빛이 드문드문 비치는 광원이 그의 눈 안에 별무리를 가득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레이라는 에틸의 얼굴을 다시 끌어당겼다.
조금 전보다 더 세게 뛰는 심장이 마음에 들어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레이라를 들어 제 무릎 위에 앉힌 에틸이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뭐, 뭐야.”
“뭐긴요. 이러기를 원하신 것 아닙니까? 다시 안아 주십시오. 팔에서 힘 풀지 마시고.”
“…….”
더듬더듬 올라간 손이 다시 에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착 감겨오는 팔에 제 얼굴을 더 집요하게 문지르던 에틸이 옷 아래로 도드라진 유두를 찾아 입술을 오물거렸다.
“읏.”
단박에 유두를 깨물린 레이라가 몸을 흠칫거렸다. 에틸은 곱게 물들어 있을 그녀의 얼굴을 상상했다. 복숭아처럼 예쁜 뺨이 사과처럼 발갛게 익을 때면 절로 입을 맞추고 싶어진다.
그는 톡 솟아오른 것이 느껴지는 작은 살덩어리를 입술로 꾹꾹 눌렀다. 뺨 대신 가슴에 입을 맞추는 거였다. 짙어진 제 눈동자를 숨기지 못한 그가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고개를 살짝 비틀어 에틸을 받아 준 레이라는 제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혀끝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달콤하게 맞물린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짙어진 숨이 새어 나왔다.
느긋하게 밀어붙여진 키스가 점점 더 진해졌다. 몽롱하게 풀린 레이라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속으로 사라졌다. 타액이 섞이고 또 섞였다. 혀를 전부 씹어 먹어 버릴 것처럼 거칠어진 키스에 달뜬 숨이 뱉어지려다 삼켜지기를 반복했다.
엉덩이 사이로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에 레이라는 자연스레 제 엉덩이를 비비적거렸다. 그녀는 뒤늦게 제 행동에 놀라 볼을 발갛게 붉혔다. 이제 와 부끄러워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우스웠다. 뻔뻔하게 아닌 척 굴기에도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어 보였다. 그녀는 제 엉덩이를 들어 에틸의 것을 문지르려는 어정쩡한 자세였다.
“왜, 도망가십니까? 더 야하게 문지르지 않고.”
“…….”
얼굴이 새빨개진 레이라의 엉덩이가 쭉 끌려갔다. 에틸은 그녀가 피할 겨를을 주지 않고 제 것을 바짝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진득한 몸짓에 그녀는 제 음부에서 애액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축축하게 젖었을 팬티를 떠올리자 다시 맞닿은 입술은 더 뜨겁게 느껴졌다.
에틸의 옷깃을 꽉 쥔 레이라의 손끝에 설렘이 묻어났다. 드레스 너머의 살결을 느끼듯 야릇해진 에틸의 손길이 가슴을 양껏 주물렀다. 부드럽게 때로는 사납게 느껴지는 커다란 손이 드레스 자락을 파고들어 맨가슴을 틀어쥐었다. 레이라는 맹수를 마주친 토끼처럼 놀라 입술을 떼어 냈다.
“아앗, 안 돼. 들어가서…….”
“알겠습니다.”
방금까지도 쪽쪽 빨리던 혀는 아릿아릿했고 콱 틀어쥐어졌던 가슴은 욱신거렸다. 레이라는 아직도 잔재가 남아 있는 자극에 멍한 눈을 했다.
에틸은 그녀의 엉덩이를 꽉 쥐며 유혹을 뿌리쳤다. 그는 홧홧하게 달아오른 그녀의 목덜미가 어여뻐, 그곳에 입을 쪽쪽 맞추었다. 가라앉은 그의 눈빛과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입맞춤이었다.
넋을 빼 버린 레이라의 옷깃을 빠르게 정리해 준 에틸이 그녀를 덥석 안아 들었다. 주위를 슥 둘러본 그는 살짝 열려 있는 2층 창문을 바라보곤 폴짝 뛰어올랐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레이라는 놀란 다람쥐처럼 눈동자를 떨었다. 그녀가 에틸의 옷깃을 도토리마냥 꽉 쥐고 그의 품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며 달랜 에틸이 날렵하게 창을 타고 넘어 저택 안을 유유히 걸어 다녔다.
그는 뛰는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레이라의 눈, 코, 이마, 볼, 귓가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요망한 손은 엉덩이를 음란하게 주물럭대기도 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레이라는 어색한 표정으로 얌전히 뺨을 붉혔다.
“사랑합니다.”
“…….”
“어째서, 이렇게 예쁠까요? 귀엽고, 사랑스럽고, 야하고.”
단단한 음성이 낮게 흘러나올 때마다 레이라의 피부는 붉게 타오르려 했다. 에틸은 그것도 귀엽고 예뻐 죽겠다며 다시 쪽쪽 입을 맞췄다.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레이라를 똑바로 세워 안았다. 빠른 손짓이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풀어 헤쳤다.
깜짝 놀란 레이라가 제 옷을 그러모아 쥐었다. 손을 달달 떨고 있을 때는, 이미 그녀의 방에 도착한 후였다.
“레이라, 오늘은 연습을 끝까지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 무슨 연습?”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여러 명이 함께 섹스하려면, 이쪽 구멍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제 엉덩이를 느리게 훑는 손이 뜨거워 레이라는 허리를 슬쩍 비틀었다. 뒤늦게 그의 말을 이해한 그녀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그게 싫으시면, 이쪽으로 두 개를…….”
“아냐! 그건 싫어!”
레이라는 발을 바동거리며 제 질구에 위치한 손을 털어 냈다. 그녀는 이미 다 벗겨지려는 드레스를 휙휙 집어 던지고 어느새 제 옷을 벗고 있는 에틸을 아연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엉덩이가 싫으면 질에 두 개를 넣어야 한다니! 에틸도 나트하도 절대 작지 않은 크기였다. 아니, 오히려 엄청나게 컸다. 그것을 어떻게 집어넣으라는 것인지!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하얗게 질린 레이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을 털어 냈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
에틸은 행동이 어찌나 빠른지 옷이 찢어지는 건지 벗겨지는 건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난잡하게 바닥을 뒹구는 옷가지에 레이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팬티까지 빠르게 탈의한 에틸이 레이라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거대하게 몸을 부풀린 짐승이 먹잇감을 서서히 옥죄듯 느긋하고 나른한 모습이었다.
“벌써, 빨아달라며 발딱 서 있는 이 야해 빠진 유두도 귀엽고.”
“으흣.”
가느다란 손길이 유두를 스치고 지나가자 레이라의 몸이 사르르 떨렸다. 야릇한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한 붉은 눈동자에 눈을 접어 웃은 에틸이 제 입술을 나른하게 핥았다.
“넣어 달라는 것처럼, 달콤한 애액을 질질 흘리는 보지도 귀엽습니다.”
배, 허리, 엉덩이를 스친 손길이 음부에 닿았다. 곧 찾아올 폭풍을 예고하듯 얌전한 손짓은 경건하기까지 했으나 에틸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 그런 말 좀!”
“제 본모습도 사랑해 주셔야죠. 요즘은 제법 얌전하게 지내지 않았습니까?”
에틸은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정원에서부터 계속 바라왔던 것을, 레이라의 가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붉게 솟아오른 유두와 백설처럼 뽀얗고 둥글게 솟은 가슴이 미치도록 탐스러웠다.
에틸은 입맛을 다시며 침을 꼴깍 삼켰다. 집요하게 바라보던 탐스러운 가슴을 베어 물었다. 상상했던 그대로의 맛은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숨을 집어삼킨 레이라는 저를 단단히 잡아 누른 채 덮쳐 오는 그의 입술을 느꼈다. 싫지 않았다. 그녀는 제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아 끌어당겼다. 에틸은 그녀도 저를 원한다는 것이 기꺼웠다. 제게 감겨오는 다리가 벅차오를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는 조금은 서늘한 종아리를 느릿하게 쓸어 올리며 제 허리에 단단하게 매달아 놓았다. 바르작거리는 상체를 꽉 틀어쥐고 집어삼켜 버릴 젓처럼 입을 커다랗게 벌려 가슴을 빨았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혀가 간지러워 레이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소소 돋아난 소름에 목덜미까지 짜릿짜릿한 느낌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혀끝이 유두를 녹여 버릴 것 같았다. 간지러워 미칠 것 같을 때마다 긁어 주듯 거세게 빨아 주는 애무가 황홀했다.
노곤하게 풀린 허리가 낭창하게 비틀리며 색스러운 숨을 뱉어 냈다. 에틸은 야릇해진 눈동자와 발긋한 눈가를 핥듯이 눈에 담았다. 가슴을 물고 빨던 그는 당장이라도 레이라의 안에 저를 쑤셔 박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제 것을 끊어 버릴 듯이 씹어 삼키는 레이라의 속살을 떠올렸다. 갈급함에 사나워진 잇새가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에틸은 달콤한 신음을 뱉어 내는 그녀의 입술에 제 손가락 하나를 물려 놓았다. 귀여운 혀를 굴려 제 손가락을 빨고 핥는 레이라를 전부 씹어 삼키고 싶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싶었다.
에틸은 레이라를 가졌으나 더 갖고 싶었다. 부족했다. 소금물을 마신 것처럼 갈증이 가시질 않고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기만 했다. 그녀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빼냈다.
저처럼 아쉬운 눈길로 제 손가락을 바라보는 레이라의 눈빛도 야릇했다. 레이라는 낮게 가라앉아 심연처럼 어두워진 에틸의 눈동자가 좋았다. 오롯이 저 하나만 가득 담긴 눈동자에 욕망이 넘실거리는 것도 좋았다. 뼈가지 발라먹어 버리겠다는 것처럼 거친 눈빛이지만 그 짐승 같은 점이 가장 좋았다.
그녀는 제 음부가 발름발름 떨리며 그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주는 쾌락이, 절정이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덧칠되는 기억은 온통 붉고 희고 검은 시야 사이로 보였던 흥분에 찬 그의 얼굴이었다. 조각 같은 코끝을 찡그리고 탁한 숨소리를 터트리며 힘이 잔뜩 들어간 턱, 나른하게 풀린 눈가. 안광이 서늘한 수컷의 표정.
돌연 레이라의 다리가 주체 없이 떨려 왔다.
그녀의 다리를 쓸던 에틸은 반짝반짝한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그는 질척하게 젖은 손가락을 액이 잔뜩 고인 질구에 대고 휘적거렸다. 미끈미끈해진 손가락에 에틸이 입꼬리를 늘어트렸다.
“하, 질질 새고 있습니다.”
“으으응, 아니야.”
“아니긴, 기대됩니까?”
“……흐읏.”
에틸의 입꼬리가 야살스레 휘어졌다. 여우처럼 접힌 눈꼬리에 홀린 레이라는 제 손을 당기는 그의 손아귀에 속절없이 끌려가 제 음부를 더듬거렸다.
그의 말대로 질질 새고 있는 애액이 손가락을 매끄럽게 미끄러트렸다. 에틸은 푸른빛 보석이 알알이 박힌 손톱이 끈적한 애액 속으로 파묻히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빨리 만져 달라는 것처럼 발딱 일어선 음핵을 만지작거렸다.
장난치는 것처럼 더듬더듬 훑고 꼬집듯이 비트는 감각은 또 생소한 것이었다. 레이라는 흐느적거리는 머릿속을 비우려 노력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였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린 긴 손가락이 귀엽게 솟은 음핵을 통, 튕겼다.
“아흐윽, 으으읏!”
자지러지듯 몸을 떤 레이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하, 그렇게 예쁘게 보면……. 뭐 어떡하라는 겁니까?”
빨아 주라는 건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린 에틸이 그녀의 음부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클리토리스를 다정하게 핥아 주다가도 장난치듯 깨물 거리는 탓에 레이라의 허리가 펄떡펄떡 튀어 올랐다.
평소 같았으면 질구를 깔짝거렸을 긴 손가락이 훨씬 아래쪽으로 미끄러졌다. 곱게 주름진 곳에 애액을 펴 바른 에틸이 허리를 곧게 세웠다. 레이라는 신음을 터트리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은 에틸이 그녀의 엉덩이를 그러쥐었다.
커다란 손에 뭉그러지는 엉덩이가 가여워 레이라가 눈꼬리를 축 내렸다. 토실토실하고 탱탱한 엉덩이를 욕심껏 주물럭대던 에틸이 힘을 주어 그녀의 하체를 휙 들어 올렸다. 손쉽게 허공에 떠버린 엉덩이가 그녀의 치부를 고스란히 내주었다.
“역시, 예쁩니다.”
“……그, 그게 뭐가 예뻐, 부끄러우니까 내려 주면 안 돼?”
“그럼 엎드려 주시겠습니까?”
“…….”
그게 더 싫다. 레이라는 눈을 질끈 감는 것도 모자랐는지 제 손으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그래 봐야 얼굴이 가려지지 비부가 가려지는 것이 아닐 텐데.
레이라가 하는 짓이 귀여워 작게 웃은 에틸이 국화꽃처럼 피어 있는 주름을 스윽 핥았다. 생소한 자극에 파드득 튀는 허리 짓과 바동거리는 다리가 퍽 앙증맞았으나 그의 얼굴은 더 깊숙이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혀끝에 힘을 주고 파고들 듯 할짝대자 레이라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흣, 싫어어. 더러워, 앙대에…….”
아무 말 없이 혀를 미끄러트리던 에틸이 침대 위에 던져 놓았던 작은 캡슐을 입에 넣고 깨물었다. 금빛이 사르르 내려앉은 혀끝으로 다시 주름을 핥고 찌르는 행동이 재빠르게 이루어졌다. 나트하가 만든 세정 캡슐이 레이라만 모르게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흐아아, 아앙……. 싫어, 이상해……. 흐윽.”
향긋한 냄새가 나는 주름을 샅샅이 핥은 에틸이 그곳에 제 손가락 하나를 살며시 밀어 넣었다. 꾹 조여드는 입구가 손가락을 날름 잡아먹었다. 느긋하게 입술을 핥은 그가 다시 그녀의 음핵을 혀로 굴리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들쑤시는 손가락은 이상한 고통과 어색한 쾌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싫은데 또 좋기도 한 기이한 느낌에 정신이 오락가락해진 레이라가 눈물방울을 흩뿌렸다. 그 와중에도 클리토리스에서 느껴지는 자극이 그녀가 느낄 거부감을 앗아 가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발기한 물건이 꺼덕거리며 선액을 토해 냈다. 흉흉하게 일어선 제 것을 흘깃 바라본 에틸이 이를 악물었다. 아까부터 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질구를 느리게 핥으며 혀를 문지른 에틸이 그녀를 놓아주며 몸을 휙 뒤집었다.
아직 엉덩이에 박혀 있던 손가락이 비틀리며 가해진 자극에 레이라는 제 얼굴을 시트에 파묻으며 하느작거렸다.
“하으윽.”
엉덩이를 높게 치켜든 레이라는 부끄러움에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평소에는 같은 자세도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번도 성교의 의미로 사용해 보지 못한 곳을 드나드는 손가락과 혀끝이 민망함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붉어진 눈가를 숨기려 레이라는 고개를 푹 꺼트린 채 시트에 문질렀다.
에틸은 어느새 그녀의 앞뒤로 손가락을 꽂아 넣고 있었다. 스치듯이 한 번씩 닿아 오는 혀끝마저 뜨겁고 자극적이었다. 발발 떨리는 허리가 자꾸만 자세를 무너트렸다. 엄지로 느긋하게 문지르는 클리토리스와 제가 느끼는 곳만 집요하게 찌르는 손가락, 생소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는 자극까지.
레이라는 핑핑 도는 시야에 동아줄처럼 보이는 시트 자락을 손에 틀어쥐고 숨을 할딱였다.
“하으으, 아앙! 흐읏.”
빠르게 찾아온 절정에 애액이 왈칵 터져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핥아 마신 에틸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자지를 입구에 대고 살살 문지른 그가 그대로 레이라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질에 콱 틀어박힌 음경이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절정과 함께 박혀 든 남근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레이라가 질을 꽉 조였다.
“하……. 힘을, 풀어요. 레이라.”
“하아, 하.”
머릿속까지 가득 찬 절정이 제 몸을 팡팡 터트리고 있었다. 듣기 좋은 에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오물오물 씹다 못해 발발 떨리는 내부에 그녀가 또 절정에 달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에틸이 허리를 뭉근하게 치댔다. 시트 위에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에틸은 흐트러진 레이라의 머리칼을 살살 쓸어 곱게 넘겨 주었다. 삐죽 솟은 땀방울도 다정히 닦아주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그녀의 목이며 깊게 파인 등골, 엉덩이를 차례로 쓸어내렸다.
포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붉은 눈동자를 드러냈다. 기민하게 그것을 느낀 에틸이 제 것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세게 들이받았다.
“하아악! 흐으…….”
“미쳐 버릴 것, 후우……. 같으니까. 그만 조여요, 레이라.”
보기 좋게 솟은 엉덩이를 찰싹찰싹 내려친 에틸이 발긋해진 살결을 살살 쓰다듬었다. 절정에 달한 것처럼 속살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까지 떨려 왔다. 쫀득한 육벽에 아무것도 못 하고 사정을 할 뻔했다.
에틸은 그녀의 허리를 콱 틀어쥐며 허리를 거세게 치대기 시작했다. 이미 흥건한 애액 때문에 척척, 살이 달라붙는 소리가 음란했다. 에틸은 흘레붙은 짐승처럼 허리를 난잡하게 흔들어 댔다. 그에 좋아 죽겠다는 것처럼 교성을 내지르는 레이라의 모습이 발정기를 나는 짐승 같았다.
그는 격렬하게 허리를 튕기면서도 그녀의 애널에 꽂아 넣은 손가락을 잊지 않고 문질렀다. 그의 집요함이 결국 레이라의 극점을 찾아냈다.
“하으응!”
긴 손가락을 끝까지 집어넣어서야 잡히는 스팟을 짓뭉개듯 긁어 댄다.
허리를 뭉개듯 들이받은 에틸이 남은 손으로 레이라의 허리를 쥐었다. 한 줌에 잡힐 것 같은 가냘픈 허리에 또 손자국이 새겨질 것 같았다.
“안 돼! 또, 하으응!”
“또, 하……. 갈 것 같습니까?”
위아래로 끄덕이는 고갯짓에 시트가 나풀나풀 흐느꼈다. 짙게 미소 지은 에틸이 엉덩이에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흐읏, 왜……. 왜, 아앙!”
“그럼, 보내 드려야죠.”
오물오물 조여드는 작은 구멍에 박힌 손가락에 자지가 드나드는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에틸이 미간을 좁힌 채 허리를 찧어 넣으며 손가락을 휘저었다.
레이라는 덫에 걸린 토끼처럼 몸을 바동거리며 다가올 자극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를 전부 뒤덮어 버린 절정을 깨달았다. 달밤에 귀신을 마주한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쳐왔다. 검게 이지러지는 시야에 붉은 폭죽이 펑펑 터졌다.
“하으으윽, 흐응!”
위아래로 조여드는 감각은 아찔한 것이었다. 에틸은 제 허리를 깊숙이 처박고 정액을 쏟아 냈다. 꿀렁꿀렁 쏟아지는 정액이 질 벽을 강하게 내리쳤다. 짐승처럼 부푼 귀두가 뭉근하게 몸을 놀리며 레이라의 절정을 도왔다.
폭죽이 터지던 머릿속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훅 꺼졌다. 숨도 쉬어지지 않고 앞도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서 레이라는 더 가라앉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가도 이것보다 더 황홀할 수 없을 정도로 고양감에 취한 머릿속이 간지럽기도 했다.
파들파들 떨리는 레이라를 품에 안고 잘게 허리를 쳐올리던 에틸이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추었다.
“야합니다, 레이라.”
왜, 어째서 그 말이 단어 하나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자세히 들려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레이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레이라는 에틸의 목소리에 깊은 수면 아래에서 끌어 올려진 것처럼 숨을 거칠게 터트렸다. 그녀가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닦아 내며 코를 훌쩍였다.
다정하게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좋았다. 미쳐 버릴 것처럼 찾아온 절정도, 좋았다. 이러다가는 정말 희대의 색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레이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에틸이 들었다면 기막혀했을 고민을 했다. 그녀는 강렬했던 오르가슴에 멍해진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벌써, 지쳐 버리신 것은…….”
“…….”
“아닐 거라 믿습니다.”
절대로 지쳤으면 안 될 것 같은 말투였다. 몸을 바르르 떨던 레이라는 뭉근하게 엉덩이를 드나들고 있는 손가락을 꽉 깨물었다.
픽 웃는 소리와 함께 자잘한 키스가 등가에 뿌려졌다. 간지러운 감각에 몸이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힘이 쫙 빠진 레이라가 흐느적흐느적 몸을 뭉그적거렸다.
에틸은 어느새 손가락을 네 개나 집어넣고 있었다. 애액과 정액 덕분에 별다른 준비물이 필요가 없었다. 질척거리고 미끈대는 체액을 잔뜩 묻힌 손가락이 제 몸을 한계까지 벌리며 손가락을 씹어 먹는 야한 구멍을 끈질기게 드나들었다.
에틸은 일부러 레이라가 느끼지 않는 곳을 찌르고 있었다. 쾌감에 약한 제 아가씨는 극점을 계속 찔러 대면 자지러질 듯 절정을 느끼다 픽 쓰러져 버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흐윽, 으으응……. 뭐, 뭐가?”
“이곳에, 자지를 넣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다시 눈물이 고인 레이라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어깨부터 엉덩이, 작고 앙증맞은 발끝까지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 정도야 별문제 없이 받아들였으나 에틸의 것은 무서웠다. 워낙 아무렇지도 않게 제 구멍을 쑤시고 핥아대는 에틸 때문에 거부감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첫 경험을 하던 때를 떠올리면 저곳도 필히 아플 것이 분명했다.
에틸은 그녀가 갑자기 무서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조심스레 등을 쓰다듬었다.
“행여 아플까, 두려우신 겁니까?”
“…….”
“제가 이렇게, 후우……. 구멍이 흐느적거릴 정도로 풀어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괜찮을 겁니다. 말하는 것과 동시에 느릿하게 내벽을 긁으며 빠져나오는 손가락이 짜릿했다. 레이라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떨림이었다.
“좋을 겁니다.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들 겁니다.”
아직도 흉흉하게 일어 서 있는 제 것을 손에 쥔 에틸이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었다. 레이라는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눈으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결국, 레이라는 베개를 꽉 그러안고 엉덩이를 더 높게 치켜들었다. 그녀는 꼬리를 흔들 듯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어차피 하게 될 거 두려워하기보단 기대를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야한 구멍에 제 것을 문지르던 에틸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느리게 입구를 뚫고 들어오는 커다란 살덩어리에 레이라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아아아흐…….”
“후…….”
뒤늦게 찾아온 거부감에 그녀가 허리를 비틀었다. 더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레이라는 고개를 휙 돌려 눈물을 매단 애절한 표정을 보였다.
“에틸……. 흐읏, 더럽, 더러워.”
“그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느릿느릿 진입하고 있는 성기의 모양을 고스란히 그려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라는 제 안에 꽉 들어찬 커다란 살덩어리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꽉 감았다. 또르르 떨어진 눈물이 베개 위로 톡 떨어졌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깊게 결합 된 두 사람 사이로 짙은 열기가 베어 나왔다.
한숨처럼 낮은 신음을 뱉어 낸 에틸이 턱에 힘을 잔뜩 주었다. 성기에 딱 맞게 만든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빈틈 하나 없이 맞물린 합이 기꺼웠고, 황홀했다. 집어넣기가 무섭게 제 것을 씹어 먹으려 드는 음도 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쾌감에 눈이 흐려진 그의 몸짓이 점점 거칠어졌다. 허리를 길게 빼낸 뒤 다시 무섭게 파고드는 기세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아흐윽, 으응!”
조금 전의 폭풍 같았던 정사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허리 짓이었으나 쾌감은 여전했다. 에틸은 레이라의 엉덩이를 짓이기며 제 몸을 들이밀었다.
레이라는 자꾸만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과 희미한 거부감 사이에서 피어난 배덕감 비슷한 것이 머릿속을 잔뜩 헤집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편하기도 했고, 미쳐 버릴 것처럼 이상하기도 했고, 왜 이렇게 좋을까 싶을 정도로 당황스럽기도 했다. 뒤로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고, 싫기도 했고, 좋기도 했다. 혼란스러웠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등을 쓸어내리던 에틸은 레이라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의 몸이 휙 들어 올려졌다. 뒤로 박히던 자세 그대로 들린 레이라가 완악을 금치 못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꺄앙!”
제법 귀여운 소리였다. 입꼬리를 잔뜩 끌어올린 에틸이 레이라를 가뿐히 들어 벽으로 다가섰다. 레이라는 바동거리던 팔로 엉겁결에 벽을 짚었다. 그녀는 제 다리를 허리에 감아두고 제 허리를 꽉 쥐는 커다란 손을 느끼며 황당함에 입을 딱 벌렸다.
이상하다 싫다 생각하던 것은 이미 멀리 날아가 버렸다. 당장이라도 거꾸로 땅에 처박힐 것 같아 두려웠다. 긴장감이 물씬 차오른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이런저런 체위들을, 하……. 다 해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겁지도 않은지 아무렇지도 않게 허리를 돌리는 그의 행동에 말문이 막혔다. 레이라는 그저 벽을 단단히 짚을 수밖에 없었다.
“힘을, 후……. 긴장을 좀 풀어 주시겠습니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거였던가. 레이라는 잔뜩 조이고 있을 제 하체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벽을 응시했다.
안 되겠는지 한 손을 떼 낸 에틸이 그녀의 음핵을 느리게 굴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 레이라는 갑자기 느껴지는 무시 못 할 쾌감과 저를 지탱하고 있는 두 팔 중 한쪽 팔이 사라졌다는 두려움에 긴장을 풀기는커녕 몸에 힘을 더 주고 있었다.
“으윽, 정말 끊어, 하……. 버리실 작정입니까.”
“흐읏, 그러려고 그런……. 앙, 아니잖아!”
레이라는 다시 허리를 단단히 붙드는 손에 작은 위안을 삼았다. 느리게 호흡을 한 그녀가 다리를 꽉 옥죄며 에틸을 끌어당겼다. 휙 끌려가며 처박힌 비부에서 질척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레이라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앗!”
정확하게 찔려진 스팟에 허리가 팔딱거렸다. 눈을 가늘게 뜬 에틸이 허리를 척척 움직이며 레이라가 느끼는 곳만 푹푹 찔러 댔다. 이리 자극하면 금방 녹초가 될 것 같았으나 별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두렵고 무서워 피하려 하는 것보단, 쾌감을 심어 줘야 했다.
퍽퍽-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기까지 했다. 찌르고 찔릴 때마다 자지러지는 레이라의 뒷모습은 뼛속까지 짜릿할 정도로 야했다.
평평하고 뜨겁고 미끄러운 내부는 고무줄처럼 이완과 수축을 반복했다. 맛있다는 것처럼 에틸의 성기를 씹어 먹고 있었다. 충분히 풀어 주었던 입구는 한계까지 열려 제 것을 끈질기게 집어삼켰다.
제법 익숙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굴었으나 그에게도 항문 성교는 처음이었다. 나트하와 둘이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했다는 것을, 레이라가 알 도리는 영원히 없을 터였다.
저를 콱콱 처박던 에틸은 레이라의 가느다란 팔에서 힘이 빠지려는 것을 느끼고 신속 정확하게 그녀를 뒤집어 안았다.
레이라는 결합 된 곳이 휙 비틀리는 자극에 몸을 달달 떨었다. 기운 없는 팔을 들어 그의 목을 감고 눈물을 터트렸다. 에틸은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다가도 더 울었으면 좋겠다는 비틀린 생각을 했다.
비릿하게 웃은 에틸이 탱글탱글한 엉덩이를 단단히 붙잡고 허리를 튕겼다. 레이라는 고개를 꺾으며 바동거렸다. 가뿐 숨소리에 섞인 비음이 허공을 메아리쳤다.
“하앗, 아앙! 으으으……. 아읏!”
“……하아.”
짙어진 눈빛과 색스럽게 구겨진 에틸의 표정을 마주한 레이라는 등 뒤로 짜릿한 감각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가 제 안을 드나들며 짓는 표정들이 좋았다.
못 참겠다 내지는 좋아서 미쳐 버릴 것 같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표정과 눈빛이었다.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등줄기가 서늘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저로 인해 그의 쾌락이 짙어진다는 것이 좋았고, 저와 함께 쾌락을 내달리고 있다는 것이 기꺼웠다.
가슴 가득 피어난 충족감과 함께 절정을 느낀 레이라가 허리를 꺾었다. 뒤집히는 시야에 몸을 떨면서도 에틸이 저를 떨어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차올랐다.
그녀를 붙잡아 테이블 위에 눕힌 에틸이 레이라의 다리를 모아 잡고 추삽질을 이어 갔다. 척척 맞닿은 살결에서조차 쾌감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뿌예진 시야와 거뭇거뭇하게 칠해진 머릿속에 강렬한 벼락이 내리쳤다.
✲ ✲ ✲
제국 북부, 얼음탑이라 불리는 성벽 근처에 마수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수백 개체는 될 법한 거대한 마수 군단이 몇 없는 작물을 죄 먹어 치우고 사람들마저 씹어 먹고 있었다.
우둑우둑, 남자는 뼈를 부수는 소리와 함께 마수의 목구멍을 타고 꿀꺽 삼켜진 제 발이었던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하나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미 남은 하반신이 전부 마수의 입 안으로 삼켜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다.
눈조차 감지 못한 억울한 죽음이었다. 사지가 너덜너덜하게 찢긴 시체. 상반신과 하반신이 거칠게 뜯긴 시체. 옆구리가 절반이나 사라진 시체. 끈적한 피가 낭자한 바닥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악기가 짙게 가라앉은 차가운 대기 위로 비릿한 피비린내가 깔렸다.
마수들은 발을 쿵쿵, 크게 구르며 행군을 시작했다. 저 멀리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사들은 저마다 마지막을 예감했다.
성호를 그리며 신을 찾고 타이니아스를 읊던 그들은 결연히 눈을 빛냈다.
성벽을 둥글게 감싸 포위하듯 다가오는 마수들 사이로 파발꾼을 태운 말 한 마리가 잽싸게 튀어 나갔다.
이른 겨울이 찾아온다는 북부에 겨울이 아닌 재앙이 드리웠다는 소식은 빠르게 황성을 향해 갔다.
“뭐라? 궤멸?”
“예. 마을 두 개가……. 전부 궤멸했다 합니다.”
“하,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마수가 나타난다는 전갈입니다. 거기다 대형 개체도 섞여 있어…….”
분노한 황제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어째서 마수라고는 하나 없던 북부에 마수가 떼거리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체 제국이 어떻게 되려고 이런 일이 벌어지나.
당혹감에 물든 황제의 눈동자가 다시 서신을 읽어 내렸다. 그러나 몇 번을 읽어도 그 내용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피 칠갑을 한 채 무릎을 꿇은 파발꾼은 고개를 한없이 조아리며 몸을 달달 떨었다. 그는 죄가 없는데도 혼자 살아왔다는 것이 처참한 것처럼 처절한 표정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흐느끼는 그를 내려다보던 황제는 파발꾼을 치료하라 이르며 눈가를 문질렀다. 그는 마스터들이 제국을 위해 맹세하던 날을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리라 여겨지는 한 남자와 제국의 수호 검이라 불리는 남자, 그리고 하나뿐인 마법사를.
“에틸 페르세나는 제국에 위험이 닥칠 시, 황제의 명을 받아 앞장서서 제국을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다.”
“레사 메르세데스는 제국에 위험이 닥칠 시, 황제의 명을 받아 앞장서서 제국을 수호할 것을 맹세한다.”
“나트하 러스티는 제국에 위험이 닥칠 시, 황제의 명을 받아 제국을 수호할 것을 맹세한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은 황제의 노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당장, 마스터들을 불러 모아라!”
-숨은 고추 찾기 3권에서 계속…….
숨은 고추 찾기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