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와신상담
레사 메르세데스가 제국 북부로 발령됐다는 소문은 레이라와 부군들의 러브스토리에 의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 쓸쓸하게 수도를 떠난 레사의 빈자리를 느끼는 사람은 그의 부친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걱정을 하는 이는 있었다.
“아가씨! 듣고 계십니까? 저는 각하께도 소식을 전하러 가보겠습니다!”
밖에서 하녀가 소리치며 전해 준 레사의 소식에 두 사람은 하던 것도 멈춘 채 굳어 있었다.
“……어, 어. 그래, 고마워.”
레이라의 허리를 짚은 채 뭉근하게 허리를 돌리던 나트하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신음을 꾹 참으며 발개진 얼굴을 테이블에 대고 식히던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나트하, 들었어요? 아니, 들었으니까 멈춘 거겠지만.”
“……하, 네. 말도 없이 가 버렸네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던 성기가 비 맞은 강아지처럼 힘을 잃어 갔다. 말랑해진 자지가 레이라의 내벽을 느리게 긁고 빠져나갔다.
“제국 북부는 지난번 마물 습격을 받은 곳이죠?”
“지금은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을 거예요. 왜 기사단장을…….”
관계 도중 혼란스러워진 두 사람은 자연스레 침대로 자리를 옮겨 서로를 끌어안았다. 제법 익숙한 행동은 흐트러진 서로의 머리를 정돈해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일을 꾸미신 것 같아요.”
“각하께선 그러실 만도 하죠.”
레사는 제 친우지만 녹스 공작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도 아닌지라 나트하는 고개를 주억였다. 촉촉하게 젖은 금발을 만지작대던 레이라의 눈빛이 짙어졌다.
“분명 황제께서 레사에게 선택권을 주셨을 텐데 가겠다 답한 거겠죠.”
“……네.”
하,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어이없는 숨소리에 나트하는 눈을 감았다.
착잡하고 답답한 나트하와 달리 레이라는 화가 났다. 황실 기사단장이라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갖은 레사가 단번에 그 직위를 내려놓고 떠나 버린 것이 언짢았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아니었다. 그보다 레사가 떠나 버린 것이 왠지 그녀를 무책임하게 버리고 떠났을 때 같아 기분이 나빴다. 아주 비약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었으나 그랬다.
당연히 가지고 있었을 죄책감에, 누가 보아도 녹스 공작이 부린 술수를 독배를 마시듯 단숨에 비워 버린 것일 터다. 그러니 더 싫었다. 눈앞에 보인다면 너 없이도 이렇게 잘 산다며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이고 싶기도 했는데 그 기회조차 날름 뺏겨 버린 기분이었다.
레이라도 알고 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도 그를 다 떠나보내지 못한 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나 제 마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나트하는 레사가 안타깝고 걱정되겠지만, 저는 화가 나요.”
“…….”
“저가 뭔데 혼자서 벌 받는 것처럼, 그렇게 떠나 버릴 수 있어요? 만약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내가 주는 것이지, 남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떨어진 꽃잎처럼 아련하게 웃은 나트하가 그러게요. 라고 속삭였다.
“굳이 그 자리를 맡지 않아도 됐을 거 아니에요. 그 성격에 뻔해요. 내가 무슨 낯으로 남아 있겠어 차라리 가서 일이나 하자. 뭐 이런 거겠죠. 아니면, 정말 보기 싫어서 가 버리는 건데 포장을 열심히 했거나. 재수 없어 진짜! 끝까지 이기적이잖아요! 레사 메르세데스!”
툴툴거리느라 툭 튀어나온 입술이 귀여웠다. 속도 없이 그녀의 입술만 빤히 바라보던 나트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것이 퍽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가서 때려 줄까요?”
“……그건 좀. 나트하, 에틸한테 그런 거 배우지 마요.”
지지예요, 지지. 귀엽게 타박하는 것도 사랑스러워 나트하의 입매가 부드러워졌다. 그녀를 향해 사랑스럽다는 광선을 쏘아 보내던 그는 레사를 떠올렸다.
아마 레이라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는 분명 이렇게 된 거 가서 일이나 하자 싶었을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곳에 집중하며 잊으려는 타입이었으니. 그의 생각은 알겠으나 괘씸하기도 했다.
‘험한 곳으로 떠나 버리면 남겨진 사람의 마음은 어떨지 정말 몰랐을까?’
나트하의 고운 얼굴에 수심이 깃들었다.
잠시 후,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그 로이를 괴롭혀 줄까요?”
“그럴까요?”
섬광이 스민 것처럼 레이라의 눈에서도 빛이 반짝 빛났다. 로이에겐 관심이 조금도 없는 피오니안과, 로이에게 앙심만 가득한 에틸에게서는 도통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당장이라도 괴롭혀 주고 싶다는 아우라가 잔뜩 뿜어 나오는 레이라의 기세에 나트하는 허탈하게 웃어 버렸다.
“혹시 위험할 수 있으니까 밤에 괴롭혀 줘요. 이미 떠나 버린 것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괴롭게 해 줘야겠어요.”
행여 나중에 딴소리라도 할까 싶은지 레이라는 나트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나눴다.
앙증맞은 손가락에 입을 맞춘 나트하는 다시 레이라의 가슴을 지분거렸다.
✲ ✲ ✲
레사가 떠나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는 소식을 들은 두 남자는 나란히 검을 맞댄 상태였다. 굵은 땀방울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지는 모양이 아주 바람직했으나 그것을 지켜볼 사람이 없었다. 조금 전, 소식을 전하러 뛰어온 시종이 그것을 전하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을 가 버린 후로 드넓은 연무장에는 또 두 사람뿐이었다.
후끈해진 살갗을 스치는 바람을 기껍게 느끼던 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레사 메르세데스를 치워 버린 것은 공작이겠지?”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닌지 피오니안은 먼 산을 응시하며 혀를 쯧쯧 찼다. 에틸은 검에 불어 넣었던 마나를 거둬들이며 땀방울을 닦아 냈다.
“각하께서 하신 일이 맞을 겁니다. 그자를 눈엣가시처럼 여기셨으니, 단 하나라도 그자를 치워 버릴 방법이 있다면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을 겁니다.”
에틸의 말을 들은 피오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레이라가 걱정입니다.”
“왜?”
“분명 저 이야기에 신경을 잔뜩 쏟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나트하도 그렇겠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흐르는 땀을 닦는 에틸에게 손가락을 튕겨 클린 마법을 걸어 준 피오니안이 덩그러니 놓인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틸도 그 옆에 따라 앉았다.
두 남자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소식에 무언가 만족스러우면서도 불쾌감이 들었다. 그것이 레이라를 향한 걱정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두 남자 모두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화를 내고 있군.”
“감히 그딴 식으로 죗값을 치르려는 괘씸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에틸의 질문에 피오니안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시선에 에틸은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입술을 약간 삐죽거린 피오니안이 말을 이었다.
“정확하다. 그런데 그자는 제 신체 부위를 음……, 아무튼 어째서 그것을 되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거지?”
피오니안의 삐죽거린 입 모양이 레이라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던 에틸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죄책감 때문일 겁니다. 처음에는 시도해 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자에 의해 레이라에게 걸린 저주를 몰랐을 때의 일이지만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 하는 듯 했습니다.”
“무릎이라도 꿇고 빌던가?”
“그랬더라면, 용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에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당당하게 찾아와 레이라에게 용서를 구하던 그 반질반질한 낯짝 대신, 제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용서를 구했더라면 그녀는 분명 그를 용서했을 것이었다.
피오니안은 전해 듣기만 했던 그자의 만행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에게 인간의 감정이란 아직도 익숙지 않았지만, 저가 들어도 화가 나는 행동들이었다. 비록 그것이 사랑에 빠진 뒤 겪게 되었을 일일지언정 그는 자신의 감정이 다채롭게 늘어났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꺼웠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노을을 등진 두 남자는 한참이나 레사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거사를 앞둔 어느 날, 레이라는 정기적으로 날을 정해 둔 채 한 번씩만 꺼내 만지던 로이를 당당히 끄집어냈다.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로이를 바라보는 네 개의 눈동자 중 두 개는 무척 어색해 보였다.
“음, 나트하에게는 조금 불편한 상황인가요?”
“……그렇긴 하지만, 괜찮아요.”
약간 떨떠름했던 나트하의 표정이 금세 밝아지는 것을 보며 레이라는 제 가슴 근처를 문질렀다. 심장이 빠르게 뛰어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요즘 세 남자가 자꾸만 사랑스러워 보여 힘들었다. 심장이 아플 만큼 예쁘지는 않아도 될 텐데, 뭘 해도 그저 곱고 예쁘고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것이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나트하는 왜 예쁜 얼굴로, 예쁜 말만 해요?”
“…….”
붉어진 귓바퀴에 물이 들 듯 그의 볼이 서서히 붉어졌다. 그녀는 다시 제 심장 근처를 문지르며 나트하에게 기대 아양을 떨었다.
레이라는 단단한 가슴팍에 볼을 마구 문지르고 얇지만 탄탄한 허리를 껴안았다. 슬금슬금 허리를 더듬는 손짓이 엉큼하고 귀여워 나트하는 레이라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작게 킥킥거렸다.
“로이를 어떻게 괴롭힐 생각이에요?”
“음, 종일 자극만 주고 사정을 시키지 않았던 방법이 가장 좋았는데…….”
“그런 짓, 흠 그런…… 행동을 하셨어요?”
핼쑥한 몰골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레사의 모습이 떠오른 나트하의 표정이 묘해졌다.
“로이가 레사 거라는 걸 알고 나서는 한참 괴롭혔었거든요. 그러다 에틸한테 딱 걸렸지만요.”
“……그걸 또 걸리셨어요?”
처음 에틸을 마주했을 때 풍기던 어마어마한 독점욕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레이라는 차마 그걸로 협박당해 시작한 관계라는 것은 이야기하지 못한 채 눈을 굴렸다. 왠지 모르게 민망했고 부끄러웠다.
잘 익은 사과처럼 변한 얼굴이 귀여워 쪽쪽 키스를 남기던 나트하가 고개를 바로 했다.
“그럼 오늘도 괴롭혀 볼까요?”
“나트하는 정말 괜찮은 거예요?”
“썩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불쾌한 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레이라가 혼자서 로이를 가지고 노는 게 더 신경 쓰일 것 같아요.”
에틸보다는 조금 더 순화된 말이었지만 거의 비슷했다. 차이라면 에틸은 보는 것도 싫다는 거였고, 나트하는 제 눈앞에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보다 레사의 것이 당신의 몸에 닿거나, 넣어진다는 것에 거부감은 없나요?”
“……음, 사실 로이만 따로 보면 딱히 레사의 것이라는 실감이 잘 안 나요. 아, 머리로는 생각이 드는데 체감이 잘 안 된 달까요? 일단은 저렇게 떨어져 있으니까.”
하긴 저렇게 덩그러니 성기만 놓여 있는데 끊임없이 레사를 떠올리는 것이 아닌 이상은 따로 생각할 수밖엔 없을 것이었다.
“그럼 자극을 줘 볼까요? 일단, 음, 민감한 부위이니 만큼 온도에 예민하겠죠.”
나트하는 마법으로 로이를 둥둥 띄운 뒤 레이라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그와 동시에 딱 로이가 들어갈 만한 귀여운 크기의 욕조가 침구 위에 뜨거운 김을 뿜은 채 나타났다. 나트하는 자연스럽게 로이를 욕조에 넣은 뒤 레이라의 손에 장갑을 끼워 주고 얼음 조각을 건네주었다.
“제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것은 조금…….”
레이라는 작은 욕조에 담겨 따듯한 물에 강제로 반신욕 중인 로이와 나트하를 번갈아 바라보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철저하게 괴롭혀 주겠다는 것처럼 결연한 눈동자와 어색하고 민망한지 발갛게 익은 볼의 차이가 무척 귀여웠다.
한참을 웃는 레이라의 곁에서 볼을 긁적이던 나트하는 멋쩍은 얼굴을 침구에 폭 파묻었다. 뒤늦게 민망함이 폭풍처럼 찾아왔는지 나트하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귀여워. 나트하는 어쩜 이렇게 귀여워요?”
사랑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붉은 눈동자가 나트하를 향했다. 파르르 떨리는 금발을 쓸어 주던 레이라는 로이에게 얼음 조각을 들이대며 눈을 곱게 휘었다.
“이렇게, 음, 위쪽을 문지르면 되겠죠?”
슬금슬금 얼굴을 든 나트하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다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은 레이라가 제 광대를 꾹꾹 눌렀다.
따뜻한 물에 폭 잠겨 흐느적대던 로이는 제 귀두에 닿는 차가운 감각에 몸을 연신 움찔거렸다. 곧 금세 커다랗게 부푼 로이를 보며 악마처럼 웃은 레이라가 로이의 기둥을 붙잡고 본격적으로 귀두에 얼음을 문질렀다.
체온에 얼음이 녹아 물방울이 흘러내리며 로이를 간지럽혔다. 차가움에 땡땡 굳은 귀두는 작은 주름이 잡혀 매끄러움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너무 차가울까 싶어 얼음을 슬쩍 떼어 낸 레이라를 보며 나트하는 얼음을 치워 주었다. 장갑을 벗은 손이 로이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마법처리가 된 장갑인지 얼음을 쥐던 손이 전혀 시리지 않았다. 오히려 체온이 오른 것도 같았다.
귀두를 쓰다듬는 뜨거운 손가락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듯 서서히 움직였다. 성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문지르던 레이라의 시선이 나트하를 향했다.
붉어진 얼굴로 레이라를 응시하던 나트하가 몸을 움찔 떨었다.
“나트하가 곁에 있어서 그런가? 로이가 자꾸 나트하 거 같아요.”
“…….”
“같이 괴롭혀 주고 싶은데, 우리 욕조로 갈까요?”
저를 괴롭히겠다는 말인데 왜 설레는 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나트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빠르게 주억였다. 그러지 않아도 레사의 성기가 제 것으로 느껴져 하물이 슬금슬금 커지려 하고 있었다.
나트하는 로이가 든 작은 욕조를 레이라게에 쥐여 주며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러는 새에도 로이의 귀두를 문지르던 레이라는 남은 팔을 그의 목에 감았다.
✲ ✲ ✲
하얀 대리석을 깎아 만든 거대한 욕조는 레이라의 침대와 비슷한 크기였다. 미끄럽지 않도록 세로로 홈을 낸 계단과 앉을 수 있는 단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장미가 흐드러지게 양각되어 있었다.
드문드문 금칠이 된 장미마다 온도 유지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트하는 레이라의 요구에 따라 욕조에 물을 절반만 채웠다. 나트하는 따뜻한 물이 찰랑대는 욕조에, 역시 레이라가 앉으라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어느새 제 품에서 떨어져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레이라는 제게 찰싹 달라붙더니 붉어지기 시작한 나트하의 귓바퀴를 살살 문질렀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피하지 않는 것이 또 귀여웠다. 두 사람은 서로를 귀여워하며 즐거워했다.
“나트하는 로이와 닿는 것이 싫은가요?”
“……뭐, 좋지는 않지만…….”
레이라는 작은 욕조에 담겨 살짝 힘이 풀린 로이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물에 슬쩍 잠긴 나트하의 것과 로이를 한꺼번에 쥐며 조물조물 양손을 움직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나트하의 눈동자가 힘없이 하늘거렸다.
불편한지 나트하의 허벅지에 로이를 올려둔 레이라가 빈손을 그에게 척 내밀었다.
“얼음, 주세요.”
먹이를 기대하는 토끼처럼 유순해진 표정이었다.
경계심을 잃어버린 나트하가 헤실헤실 풀어진 얼굴로 얼음 조각을 레이라의 손 위에 올려 주었다. 얼음을 받자마자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환하게 웃은 레이라의 표정은 마치…….
겨우 제정신을 차린 나트하의 눈동자가 전보다 더 아주 확연히, 태풍 앞의 깃발처럼 흔들렸다. 당황스러움에 손을 주저한 그가 저것을 빼앗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레이라는 몹시 흡족한 얼굴로 두 귀두에 얼음을 문질렀다.
화들짝 놀란 나트하의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그것을 부드럽게 저지한 레이라가 그와 눈을 맞춘 채 요녀처럼 웃었다.
“나트하, 얌전히 있어야죠.”
붉고 색스러운 눈동자를 피해 눈을 굴린 나트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미지근해진 욕조에 엉덩이를 딱 붙인 그의 얼굴에 체념이 일렁였다.
레이라는 조막만 한 손으로 한껏 커다래진 두 개의 기둥을 어색하게 쥐었다. 얼음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커진 음경 두 개는 그녀의 한 손으로 쥐기가 힘든 탓이었다.
레이라는 나트하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녀가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 확연히 몸을 떠는 음경이 보였다. 빙긋 웃은 레이라가 머리를 숙여 나트하의 귀두에 입을 맞췄다. 그는 차가웠던 귀두에 닿는 뜨거운 입술에 온몸이 살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입을 벌린 레이라가 혀를 내밀어 나트하의 것을 할짝댔다. 평소의 배는 크게 느껴지는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떤 그는 아직도 얼음이 올려진 로이를 보며 작은 죄책감을 느꼈다. 차갑게 식은 피부를 덥히는 뜨거운 점막이 제 것을 강하게 빨아 당겼다.
“흐윽.”
빙글빙글 귀두를 문지르는 뜨거운 혀에 나트하의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그 위에 놓인 로이는 덩달아 몸을 흔들며 강제로 얼음에 제 몸을 비벼야 했다.
나트하의 귀두가 제 체온을 찾을 때까지 핥고 문지르고 빨던 레이라는 순서를 바꿨다. 다시 나트하의 귀두에 닿은 얼음은 벌써 크기가 절반이나 작아져 있었다. 차가운 얼음이 따끈해진 귀두를 문질렀다. 체온에 녹은 얼음은 반질반질하게 녹아 부드럽게 귀두를 문질렀다. 그러나 가해진 감각은 몹시도 날카로웠다.
“윽, 레이라.”
재차 터진 신음은 레이라의 귓가를 빙빙 맴돌았다. 더없이 해사하게 웃은 그녀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로이를 입에 물었다. 나트하의 것보다 차가운 귀두가 레이라의 입 안에서 움찔거렸다. 달래듯 부드럽게 문지르는 혀는 여전히 뜨거웠다. 살금살금 달래 주듯 차가운 곳을 전부 매만져 주는 달콤한 혀끝이 주름진 귀두를 매끈하게 만들었다.
나트하는 레사의 것을 입에 머금은 레이라에게 질투를 느낄 새도 없이 자극에 몸을 떨었다. 왜 제가 이런 것을 생각해 낸 것인지에 대한 후회마저 날아가 버렸다.
레이라는 다시 로이의 귀두 위로 얼음을 문질렀다.
“흐으, 읏, 하아.”
레이라에겐 꿀보다 달콤한 나트하의 신음은 잔뜩 억눌린 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트하는 허리를 비틀며 레이라가 주는 감각을 느꼈다. 차가운 냉기를 느끼다 마주친 따뜻한 점막은 하반신을 불에 지지는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번갈아 가해져도 처음 느끼는 감각처럼 이질적이었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이성을 점점 갉아 먹었다.
머릿속에 팽팽하게 당겨진 끈을 당겼다 놓았다 반복하는 기분이었다. 나트하는 욕조를 꽉 쥔 주먹에 힘을 더했다. 사방이 울리는 욕실이어서인지 더 음란하게 들리는 질척이는 소리에 흥분이 더 빠르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레이라는 제 손바닥만 한 얼음이 다 녹아 사라지고 같은 크기의 얼음이 또 사라질 때까지 그것을 반복했다. 덕분에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눈을 형형하게 치켜뜬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다, 하셨나요?”
“…….”
잇새로 새어 나온 말이 꾹꾹 누른 그의 욕망 같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피해 눈동자를 굴리던 레이라는 맥없이 그에게 끌려갔다. 흥분하면 인성이 뒤바뀌는 것처럼 다정함이 사라지는 나트하의 모습은 레이라가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다.
제 허벅지 위에 그녀를 올려 둔 그가 성급하게 레이라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딱딱하게 부푼 성기 두 개가 레이라의 매끈한 음부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물속에서 다른 것으로 젖어 있을 제 음부가 부끄러워 레이라는 하체를 비틀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저지시킨 것은 나트하의 두 손이었다. 어느새 레이라의 엉덩이를 꽉 틀어쥔 단단한 손이 그녀를 제게 바짝 당겨왔다.
미끄러운 체액을 가득 묻힌 두 개의 성기와 촉촉하게 젖은 음부가 거칠게 비벼지며 물살을 일으켰다. 어느새 물이 가득 찬 욕조에 흐느끼는 신음이 찰랑거렸다.
기다란 손가락이 레이라의 음부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뒤로 닿은 손이 향한 곳은 그녀의 애널이었다. 길고 딱딱한 손가락이 꽉 닫힌 입구를 매끄럽게 파고들어 물씬 휘저었다.
클리토리스를 스치고 지나는 성기가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옴찔거리는 질구는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애액을 쏟아 냈다.
“으으응, 나트하.”
“에틸이, 후, 그랬어요.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로이에게 이곳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어떨까요?”
레이라를 지분거리는 손가락이 닫힌 구멍을 풀어 주고 내벽을 문질렀다. 어느새 두 개, 세 개로 늘어난 손가락을 꿀떡꿀떡 집어삼킨 엉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나트하는 로이를 레이라의 엉덩이에 가져다 댔다. 무슨 마법처리를 했는지 물속에서도 미끈거리는 귀두가 레이라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아흐읏, 안, 돼에.”
칭얼대는 음성은 좋아 죽겠다는 것처럼 로이를 집어삼킨 뒤 파르르 떨리는 몸짓에 제 소임을 잊어버렸다. 비릿하게 웃은 나트하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흑, 아앙! 하앗!”
몸을 꿰뚫린 것처럼 잔인한 고통과 함께 쾌락이 강타했다. 레이라의 뒤를 퍽퍽 치대는 로이의 움직임에 멍하니 풀린 붉은 눈빛이 야릇했다.
나트하는 레이라의 표정을 감상하듯 지켜보다 클리토리스를 꼬집었다.
“하으으응!”
펄쩍 뛰는 작은 몸을 지그시 짓누르며 손가락을 뭉근히 문지르는 그의 팔에 힘줄이 돋았다.
레이라는 눈을 뜨고 있어도 시야가 온통 하얗고 검게만 보였다. 막연한 두려움에 나트하를 끌어안은 몸짓은 쾌락에 잔뜩 흐려진 모양새였다.
질구를 톡톡 두드리던 손가락이 안으로 쑥 밀려 들어왔다.
“아앙!”
뒤로 확 젖혀진 가느다란 허리 덕분에 드러난 가슴을 베어 문 나트하가 입술로 유두를 잘근잘근 씹었다. 제 품에 안고 그녀를 자유자재로 굴리며 온몸을 핥고 빨며 붉은 자국을 가득 새긴 그의 표정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손가락을 집어삼킨 내벽이 파르르 떨렸다. 레이라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며 나트하의 허리를 꽉 조였다.
“벌써, 가 버리셨나요?”
“으으읏, 하아.”
로이를 느긋하게 잡아 뺀 나트하가 레이라의 허리를 쥐고 들어 올렸다. 그가 제 것을 그녀의 아래에 대고 문지르자 당장 넣어 달라는 것처럼 질구가 귀두를 야금야금 물어 왔다. 기껍게 웃은 나트하가 그녀의 몸을 제 하부로 확 끌어당겼다.
“아아앙!”
“……후우.”
순식간에 파고든 성기에 레이라는 몸을 파드득 떨며 작게 가 버렸다. 커다란 음경을 오물오물 주무르는 내벽이 주는 감각에 그도 그녀와 함께 몸을 떨었다. 서로를 꽉 껴안은 두 사람이 짐승처럼 씩씩대는 숨을 뱉었다.
“치사하게, 하아……, 한 번에 넣는 게 어디 있어요.”
“빨리, 빨리 움직이고 싶어요.”
나트하는 눈을 질끈 감고 레이라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며 아양 떨 듯 내숭을 부렸다. 그녀의 체온이 빠르게 상승했다. 땀방울이 솟아난 목을 재촉하듯 길게 핥아 내리는 혀가 뜨겁고 간지러웠다. 레이라는 자연스럽게 나트하의 어깨를 짚고 일어났다 앉았다.
체중을 실어 퍽퍽 치받는 엉덩이를 주무르던 나트하가 로이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탁.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들린 소리는 순식간에 강렬한 쾌감으로 범벅되어 흩어졌다. 엉덩이를 부드럽게 가르고 들어온 로이는 사정하지 못하도록 끝이 야무지게 묶여있었다. 사정이 막혀 한계까지 부푼 검붉은 성기가 하얗고 통통한 엉덩이 사이를 드나들었다.
고통 비슷한 쾌감에 바르르 떨리는 성기에 레이라의 교성이 높아졌다. 앞뒤를 꽉 채운 두 개의 성기는 평소보다 더 깊고 빠르게 레이라의 안을 드나들었다. 레이라의 허리 짓이 느려지자 나트하는 그녀의 허리를 꽉 쥐고 허리를 튕겼다.
찰랑찰랑, 물방울이 튕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아흐윽, 아앙! 아으응!”
“하아, 어떤가요? 레이라, 연습이 조금 되는 것 같나요?”
고개를 크게 내저으며 허리를 비틀고 목을 뒤로 젖힌 레이라의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연습이 되지 않는다는 건지 그만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웃은 나트하는 더 조여든 내부에 맥없이 사정해 버릴 뻔 했다. 나트하가 다시 로이를 조종했다.
“하아.”
“후, 너무 조여서 안 되겠어요.”
조금 더 느긋해진 몸짓은 레이라의 안 깊숙한 곳까지 닿아와 자궁구를 부드럽게 문지르는 것으로 흥분을 가라앉지 못하게 했다.
나트하는 눈앞에서 출렁거리는 탐스러운 가슴을 날름 삼켰다. 약간 차가운 공기에 발딱 일어 서 있는 유두가 따뜻한 입 안에서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달아요. 피오니안 님은, 이곳에서 나온 우유를 드셨다죠?”
“아윽! 으응, 아니야아.”
“다 말해 주셨잖아요. 이틀 뒤엔 저도 맛볼 수 있을 테니까 참을게요.”
매끈한 허리를 잡은 손이 부드럽게 레이라의 등줄기를 훑었다. 나트하는 조금 크기가 줄어든 로이를 빤히 바라보다 다시 손을 튕겼다.
“안, 돼……. 아앙, 싫어.”
“허리를, 하, 직접 흔들고 계시면서 싫다고 하시면 어떡해요.”
나무라듯 허리를 쾅 처박은 나트하가 느릿하게 허리를 돌리며 말했다.
자지러질 듯 교성을 지른 레이라는 그를 꽉 껴안았다. 자꾸 유두를 지분거리고 등줄기를 쓰다듬는 손이라도 떼어 내고 싶었다. 자극이 사방에서 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터질 것처럼 부푼 로이도 레이라의 자극에 큰 몫을 했다. 파들파들 떨리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은 레사를 괴롭히고 있다는 만족감과 강한 자극에 더 커다란 쾌감을 느끼게 했다.
레이라는 빠듯하게 벌어져 있을 제 하반신이 이대로 닫히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실없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쾌감에 잠식된 머리는 모든 신경을 하반신으로 몰아 버린 것처럼 계속해서, 끊임없이 불꽃이 튀었다.
물살이 일렁여 찰랑대는 소리, 나트하의 숨죽인 신음, 레이라의 높은 교성이 욕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나트하의 턱에서 똑 떨어진 땀방울이 수면에 얕은 파동을 남겼다.
나트하는 레이라를 휙 뒤집어 세우며 욕조를 짚고 서게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자세를 바꾼 그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로이는 제 엉덩이에 뿌리 끝까지 박혀 움직이지 않았지만 나트하는 달랐다.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가 레이라의 클리토리스와 질구를 문지르다 다시 콱 박혀 들었다. 낭창하게 꺾인 허리가 엉덩이를 바짝 세웠다. 나트하는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제 몸을 팡팡 치대기 시작했다.
바들바들 떠는 로이의 몸짓이 질 벽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은 또 기묘한 느낌이었다. 찌르면 찌르는 대로 허리를 휘고 몸을 떨고 색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자지러지는 레이라가 사랑스러웠다.
탱탱한 엉덩이, 가느다란 허리, 나긋나긋한 어깨와 미끈한 등도 눈이 돌아가게 아름다웠다. 나트하는 하얗고 통통한 엉덩이가 저와 부딪치며 흔들거리는 모양새를 한참이나 훑었다. 그는 매끈하게 잘린 로이가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에 꼬리처럼 박혀 있는 것에 즐겁다는 듯 웃기도 했다.
지금 곁에 없는 제 친우와 함께 정사를 나누는 것 같아 묘한 배덕감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나트하는 그제야 제가 레사와 함께 레이라의 안을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벼락처럼 내리친 깨달음이 흥분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레이라는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거세진 몸짓에 커다랗게 밀려오는 오르가슴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고 뒤를 조였다. 그것을 느낀 나트하는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비벼 주며 더 빠르게 안을 드나들었다.
“하아……, 레이라, 로이는, 으윽,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안 돼요, 흐응! 안 돼에…….”
와중에도 잽싸게 안 된다고 외친 레이라가 교성을 크게 터트리며 몸을 떨었다. 나트하는 제 음낭까지 박아 버릴 기세로 그녀의 깊숙한 안쪽까지 제 것을 밀어 넣고 사정했다.
“아아아앙!”
“흐읏, 하.”
힘차게 터진 정액이 레이라의 몸을 뜨겁게 데우듯 쏟아져 들어왔다. 나트하가 움찔거리며 정액을 토해 낼 때마다 부러운 듯 함께 몸을 떨던 로이가 제 몸을 더 크게 부풀렸다.
레이라는 이러다 제 몸 안에서 로이가 터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두려움에 질 내부가 다시 꽉 조여지자 얕게 추삽질을 이어 가며 후희를 즐기던 나트하의 음경이 다시 힘을 받았다.
“……부족하신 거죠?”
“읏, 아니야, 왜 커지는 거예요!”
빽 소리 지른 레이라의 볼에 작게 입을 맞춘 나트하가 해사하게 웃었다.
✲ ✲ ✲
결국, 나트하에게 붙잡힌 레이라는 밤새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나트하가 다섯 번 사정 할 동안 함께 괴롭혀지던 로이는 그가 마지막 사정을 할 때 함께 정액을 토해 낼 수 있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정액은 레이라가 처음 괴롭혔던 그 날처럼 거셌다.
배부른 다람쥐 같은 얼굴로, 두 사람은 함께 부둥켜안은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에틸과 피오니안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곤히 잠에 빠진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밤새 얼마나 해 댔길래 아직도 못 일어나는 거지?”
“아주 격렬한 밤을 보냈나 봅니다.”
레이라의 몸 여기저기에 찍힌 키스 마크를 쓸어내린 에틸의 눈빛이 아주 어두워졌다.
“자국은 남기지 말자더니 이놈, 저가 제 말을 지키지 못하는군.”
“상의를 더 해야겠군요.”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피오니안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던 에틸이 냉정하게 웃었다. 행여 추울까 헐벗은 두 사람에게 착실하게 도톰한 이불을 덮어 주던 피오니안이 혀를 끌끌 찼다.
“저것은 대체 왜 아직도 나와 있는 것이지?”
“괴롭혀 준다더니, 그냥 즐긴 것 아닙니까?”
반질반질 잘 닦이고 뽀송뽀송 잘 말린 채 탁자 위, 작은 방석에 덩그러니 놓인 로이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두 남자가 기묘하게 웃었다.
“저것.”
“좋습니다.”
잠에 빠진 두 남녀와는 다른 의미로 로이를 괴롭히기 위해 방을 나선 두 남자의 손에 작은 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었다.
✲ ✲ ✲
심각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린 레사가 한숨을 길게 뱉었다.
괴롭힘이 사라져 홀가분한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으로 떠나온 북부. 레사는 그곳에서 처음 맞은 밤에 어마어마한 괴롭힘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사정할 만하면 멈추고 다시 자극을 주던 것과 다르게 계속해서 자극이 가해지던 지난 밤, 레사는 지옥의 문턱을 수십 번 넘나들었다.
하얗고 꺼멓고 붉게 이지러지던 시야. 땀이 흥건할 정도로 더웠다가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추운 감각. 질과 묘하게 다른 통로로 드나들던 제 음경의 느낌. 사정하고 싶어 죽을 것 같던 고통.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아주 뒤늦게 찾아온 폭풍 같은 쾌감.
그래. 그러니까, 그를 지켜보던 검붉은 눈동자의 한 남자는 즐거웠겠지만 레사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한 지옥 같은 밤이었다.
“하아…….”
지친 표정으로 다 죽어 가는 레사를 본 시종은 저가 더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레사가 아직 성치 못한 몸으로 여행의 여독을 다 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다.”
“오늘까지는 쉬어야 한다고 전하겠습니다. 그냥, 제발. 주무십시오.”
애원하듯 말하며 레사를 침대에 곱게 눕혀 둔 시종이 아주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덕분에 하루 휴가를 얻은 레사는 곧 그 휴가가 아주 필요했던 것임을 강제로 깨달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 얌전히 침대에 드러누운 그는 순식간에 제 것을 후려친 누군가에 의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윽!”
하반신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처럼 강렬한 고통은 척추를 타고 올라 머리까지 지끈거리게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해진 그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레사는 머리를 흔들고 제 몸을 웅크렸다 펴기도 했다. 그러자 치유 마법을 걸어 주는 것처럼 사르르 녹아든 따뜻한 느낌이 고통을 싹 걷어 갔다.
“대체 뭐…….”
동시에 번개처럼 제 것을 스치고 간 무언가가 재차 커다란 고통을 주었다.
“으윽!”
헛웃음이 새어 나온 레사의 입가가 기묘하게 비틀린 순간이었다. 예상한 것처럼 다시 치유 마법이, 고통이 번갈아 이어졌다. 대체 무엇으로 후려치는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딱딱하고 얇은 무언가가 채찍처럼 제 것을 후려치고 또 후려쳤다.
뒤끝 없는 고문처럼 느껴진 삼십 분 동안 레사는 얻어맞고 치유되기를 반복했다. 치유 마법을 삼십 분 동안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두 사람이 레이라의 곁에 있다. 그러나 나트하는 이런 짓을 할 위인이 못 될뿐더러 그럴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타이니아스?”
의문 섞인 부름에 답하듯 레사의 눈앞에 나타난 검은 인영이 빙긋 웃었다.
“드디어 쪼오금, 아주 쪼오오금! 재미있게 되었네?”
“…….”
“어때? 고통스러운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레사의 신경을 긁었다. 베르는 활짝 웃는 얼굴로 레사를 내려다보았다.
“대답, 안 해?”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신은 그걸 원할 테고. 만족스러운가?”
“음, 그렇지. 좋아. 그런데 생각보다 좋진 않네. 왜일까?”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버린 레사를 따라간 베르가 그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바짝 붙였다.
“왜 이렇게 포기가 빨라? 게다가, 이 먼 곳까지 오면 어떡해? 바로 옆에서, 응? 코앞에서 네 여자가 내 것이 되는 것을 봐야 하는데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봐 줬더니 오늘은 입이 아주 자유분방하네? 반대로 대가리는 굳어 버린 것 같고. 그렇지?”
재차 낄낄 웃은 베르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허탈하게 눈을 깜빡인 레사가 짙은 한숨을 뱉었다.
‘레이라를, 꼬셔보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타이니아스에게서?’
제게 고통을 준 것은 잊어버리기라도 했는지 레사는 피오니안의 편을 들며 마음속으로 그를 응원했다.
✲ ✲ ✲
아침이 찾아왔다는 새의 지저귐이 열어 놓은 창밖을 통해 노래하듯 들려왔다. 커다란 창에 쏟아지는 햇살마저 반가웠다. 녹스 공작은 느릿하게 호흡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사실 녹스 공작의 즐거운 아침은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보좌관은 그저 허허 웃는 얼굴로 녹스 공작의 앞에 차를 놓아두었다. 오죽 좋아 저러실까 싶은 마음을 잘 갈무리한 그는 얌전히 서서 녹스 공작의 지시를 기다렸다.
기분 좋음을 한참이나 어필한 녹스 공작은 제 서랍 깊숙이 숨겨 놓았던 서류뭉치를 꺼냈다. 겨우 다섯 장의 종이를 넘겨 보던 그의 미간이 고민으로 약간 굳어졌다. 버릇처럼 테이블을 두드리는 만년필 소리가 탁탁탁 허공을 메웠다.
“각하, 누구를 부르면 되겠습니까?”
“아직 선택하지 못했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공녀께 어울리면서, 세 부군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좌관이 가리킨 인물은 녹스 공작의 마음에도 든 이였다. 이상하게 호감이 가는 신기한 남자. 그러나 묘하게 뒤따르는 찝찝함이 느껴지는 남자.
녹스 공작은 찝찝함은 그저 기우겠거니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자로 하지.”
카르도베르 R. 파이어. 마지막 뱀파이어가 레이라의 맞선 상대로 정해진 순간이었다.
녹스 공작과 그의 보좌관은 레이라에게 들키지 않고 두 사람을 마주하게 할 자연스러운 순간을 꾸미기 위해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 ✲ ✲
며칠 놀았다고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눈앞에 둔 레이라는 저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쏘아 보내는 두 남자를 향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운 얼굴에 서늘한 미소를 짓는 에틸과 조각 같은 미모로 미간을 잔뜩 구긴 피오니안은 한눈에 보아도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그녀는 그저 눈을 굴리며 서류에 사인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지?”
“……그렇습니다.”
소유한 상점을 점주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똑같이 적힌 82개의 서류는 단 하나를 빼고 전부 그녀의 사인과 인장이 찍힐 예정이었다.
상점 거리를 만들기 위해 그녀가 들였던 수고와 시간은 이 시간 이후로 끝날 예정이었다. 진즉부터 예정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아쉬움이라고는 한 자락도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한 얼굴로 사인을 하던 그녀가 다시 두 남자의 눈치를 보듯 눈을 굴렸다.
“내 얼굴 뚫릴 것 같아.”
“그러니 서둘러 정해라.”
“……그냥 같이.”
“안 된다.”
고개까지 크게 휘저으며 부정한 피오니안이 인상까지 썼다. 수려한 미간에 생긴 빗금마저 아름다운 그는 화내고 찡그리는 얼굴도 어여뻤다.
그보다 오늘의 그는 반짝거리는 후광이 느껴질 정도였다.
붉고 긴 머리카락은 하나로 깔끔하게 올려 묶어 그를 무척 이지적으로 보이게 했다. 은빛 장식이 더해진 헨리넥 블랙 셔츠와 긴 다리에 착 감긴 블랙 수트 팬츠는 오히려 에틸의 취향일 텐데 그에게도 아주 잘 어울렸다. 요즘 유행이라며 데이지가 가져다 놓은 태슬이 달린 부드러운 양가죽 구두와 발목이 살짝 보일 정도로 짧은 바짓단의 조화가 아주 멋스러웠다.
흡족한 표정으로 턱 끝에 손을 댄 레이라가 에틸을 바라보았다.
피오니안과 옷을 바꿔 입은 것처럼 에틸은 하얀 기사단 정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양새였다. 레이라가 아주 좋아하지만 잘 입지 않는 복장이었다. 구김 하나 없이 칼같이 다려진 정복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근육을 슬쩍슬쩍 드러내는 보드랍고 매끄러운 재질이었다. 푸른색 수술과 화려한 장식 덕에 움직이는 마네킹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공들여 손질한 머리는 곱게 흐트러진 곱슬머리를 반만 뒤로 넘겨 무척 나른하고 유혹적이었다.
두 남자는 대놓고 레이라를 유혹하러 치장한 공작새 같았다. 물론, 그 목적이 맞았다.
“왜 나 보고 정하래. 그냥 둘이서 가위바위보라도 하던지, 내기라도 하면 안 돼?”
“후.”
“후.”
동시에 한숨을 내뱉은 두 남자가 시선을 주고받았다. 입꼬리를 얄궂게 끌어당긴 에틸이 레이라를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
“레이라, 그저 누가 먼저 오늘 밤 당신을 찾아갈지 정하는 겁니다. 아주 쉽지 않습니까?”
“난 두 사람 다 좋으니까, 못 고르겠는 걸.”
그보다는 한 사람을 고르면 남은 한 사람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 맞는 이유였지만 말이다. 두 남자는 재차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발긋한 볼을 긁적이던 레이라는 다시 서류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럼 오늘은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오늘은 잠시 나갔다 오겠다.”
“응? 어딜 가는데?”
서류에 코를 박고 있던 레이라가 냉큼 자세를 바로 했다. 아닌 척하면서도 열심히 두 남자의 이야기를 주워듣고 있던 것이 티가 났다. 그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혀를 쏙 내밀며 민망한 듯 헤헤 웃었다.
그 귀여운 광경에 에틸은 제 입 앞을 주먹으로 가리며 웃었고 피오니안은 넋 빠진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응? 어딜 가는데에?”
길게 늘인 목소리에 애교가 담뿍 담겼다. 달콤한 초콜릿 타르트를 먹은 기분이었다.
피오니안이 붉어진 낯을 쓸어내리며 커다란 손을 쥐었다 폈다. 그러자 소매를 걷은 셔츠 아래로 힘줄이 돋은 피오니안의 팔뚝이 도드라져 보였다. 레이라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다.
“저주에, 크흠, 관해 물을 것이 있어 그, 악마를 찾아가려 한다. 내일쯤 도착할 것 같군.”
“……으음,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야 해? 밤에는 마법 구로 연락도 해 주고.”
“알겠다.”
걱정이 담긴 목소리가 간지러워 피오니안은 제 귀를 매만지며 답했다. 아직 익숙지 않은 느낌들은 불쑥불쑥 그를 당황케 했다. 피오니안은 문득 에틸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눈으로 칭찬을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익숙지 않은 느낌이라 시선을 피해 버린 피오니안의 귓가가 붉어졌다.
레이라, 에틸, 나트하는 피오니안이 만든 벽 안으로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었다. 피오니안은 그것을 알면서도 이제는 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