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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단단한 마음 (20/26)

19. 단단한 마음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 나이에 자력으로 이끈 사업을 성공시킨 신화의 주인공. 제국 최고의 부를 거머쥔 녹스 공작 가의 외동딸. 요정처럼 보이는 외양에 요염한 몸매를 가진 데다 다정하고 곱기까지 한 성품을 가진 완벽한 이상형. 명실상부한 제국 최고의 여인, 레이라 녹스.

온갖 찬사가 가득한 꼬리표를 단 레이라는 그 명성에 걸맞게 사교 활동보다 봉사 활동을 즐겼다. 덕분에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취향에도 맞지 않은 봉사를 다녀야 했다. 유행처럼 번진 귀족들의 봉사 활동에 황제는 귀족의 귀감이 된 공작 영애를 향해 갖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영애들, 가까스로 만든 우연한 상황에라도 그녀와 마주쳐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 하곤 했던 영식들까지. 그녀의 뒤를 쫓은 인파는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바라만 보아야 할 절벽 위의 꽃.

그래, 그렇게 고고한 그녀가 마법처럼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뜬구름처럼 느껴지던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모두의 우상이던 여인은, 모두의 우상이던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대중들은 질투조차 하지 못했다. 무려 공작 가와 공작 가의 연애 사였고, 둘은 누가 보아도 아주 어여쁜 커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했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버렸다.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것. 그 소문 또한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아웅다웅 귀엽게 싸워 대는 두 공작의 행동에 즐거워했다. 동시에 두 사람은 언제쯤 아비의 뜻을 꺾고 결혼할 수 있을까 궁금해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믿지 못했다.

공녀께서 울고 또 울었는지 수척해진 얼굴이셨다. 공자도 며칠은 굶은 사람 같았다. 두 사람의 연애 비사는 인연이 끝나 버린 순간에도 한없이 덧붙었고 이어졌다.

다시 만날 것이라며 예상하는 이들과 이 틈을 타 두 사람을 꾀어 보자는 이들로 나뉜 사람 중 그 누구도 이러한 미래를 그려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타이니아스의 반려가 된 제국의 공녀.

이슈는 거기서 끊이지 않았다. 나트하 러스티, 에틸 페르세나도 그녀의 부군이 될 예정이라 했다. 제국 최고의 여인은, 세상 최강의 남자와 제국의 마스터 둘을 거머쥐었다.

타이니아스의 등장만으로도 기름 뿌린 불씨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퍼져 나가던 소문은 레이라와 에틸, 나트하의 등장으로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그들의 연애 사를 집필했다는 소설 ‘타이니아스’를 읽어 보지 않은 이는 제국에 없다는 슬로건이 유행일 정도였다.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레이라와의 만남을 강렬히 소망했다.

오늘도 레이라의 앞으로 찾아온 서신들과 초대장은 산더미처럼 쌓여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바쁜 데이지는 골머리를 싸맨 채 초대장을 일일이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잘 타는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진 서신 중, 레이라에게 향할 것은 단 두 개뿐이었다. 포도 넝쿨이 멋들어지게 세공된 은쟁반에 담긴 두 개의 서신. 그 출처는 황궁과 메르세데스 공작 가였다.

레이라는 홀린 것처럼 사인을 끄적이며 그 두 개의 서신을 받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황궁에서 도착한 서신은 황태자의 여덟 번째 탄신 연회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주억이며 초대장을 내려놓았다. 곧 짙푸른 빛 봉투에 찍힌 봉인을 본 그녀가 햇빛 쨍쨍한 여름날 내린 눈송이를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왜 와?”

“왜 왔냐고 물으시면 제가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아가씨?”

“아니 왜 메르세데스 가에서 내게 서신을 보내느냔 말이야.”

“일단 읽어 보세요. 그럼 아시겠지요.”

몹시도 떨떠름한 레이라의 얼굴은 쓰고 떫은 것이라도 잔뜩 씹은 것 같았다. 읽기 전부터 기분이 나빠지는 서신은 오랜만이야. 작게 중얼거린 그녀가 수려한 검이 X자로 교차 된 모양의 봉인을 정말, 진심으로 뜯기 싫은 표정으로 뜯어 냈다.

우아한 필체로 적힌 서신은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가 보낸 것이었다. 레이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서신을 읽으며 뒤에 이어질 일정을 전부 취소했다.

레이라 공녀.

이렇게나 갑작스레, 반기지 않을 곳에서 도착한 서신을 보았을 공녀의 당혹스러움에 미안한 마음을 먼저 전합니다.

10월, 공녀와 제 아들이 사랑에 빠진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천치만도 못한 못난 어미는 제 아들의 소중한 마음조차 지켜 주지 못하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공녀께서 받았을 아픔들을 다 알지는 못하나, 이렇게나마 미안함을 전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진심을 다해 미안합니다.

공녀의 찬란했을 순정을 아프게 꺾어 버렸을 이유가 저일 것 같아 무어라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부디 공녀의 반만큼도 아이에게 애정을 주지 못했던 어미의 간절한 진심이자 후회를 측은하게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그 아이의 잘못은, 전부 자식을 못나게 키운 이 어미의 죄가 아니겠습니까.

제 어미를 닮아 모질고 모자란 아들의 죄를 제가 전부 짊어질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렇게 하겠으나 공녀께서 그것을 받아 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녀, 가르침과 애정을 마음껏 주지도 못한, 이 못난 어미를 위해 제 세상을 버렸을 제 아이는 곧 제 어미도 잃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공녀께서 한 번만, 너그러이 마음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제게는 삶에 대한 미련일랑 없건만, 애정 한 자락 관심 한 번 주지 못한 아들에게는 미련이 넘쳐흐르는 못난 어미인지라 이렇게 한심한 글을 남기게 됩니다.

이런 저를 잃을 못난 아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얼굴로 제게 작별을 고할 테지만, 기대 울 곳이 없어 아픔을 속으로만 삼킬 것이 자명합니다.

저는 그것을 상상할 때마다 장마철 무너지는 산등성이처럼 마음이 부서지고 또 부서집니다.

공녀께는 정말 염치없고 무례할 테지만, 삶을 등지게 될 못난 어미의 소원을 그 다정한 마음으로, 아니 하다못해 저를 동정하는 한 자락의 가여움으로라도 이해해 주길 바라봅니다.

제 아들을 다시 사랑해 줄 수 없느냐는 허망한 부탁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미를 잃은 제 아들을 단 한 번만 보듬어 주시길 청합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어미를 잃어버린 뒤, 가슴 시릴 그 아이의 손을 단 한 번만, 가벼이 잡아 주세요.

이미 연이 다한 인연일지라도 공녀의 다정한 마음에 기대어, 어미를 잃는 아픔을 겪어 보았을 공녀께 기대어, 이렇게 염치없이 부탁합니다.

삶의 끝을 기다리는 여자의 달갑지 않을 서신을 읽어 주어 고맙습니다.

공녀의 삶에 누구보다 아름다운 광명과 세상 모든 이들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카이시아나 메르세데스.

레이라는 서신을 읽고 또 읽었다.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 내릴 때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 불쑥불쑥 입 밖으로 토해질 것 같았다. 울렁거리는 마음이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했던 레사의 어머니는 왜 제게 이런 부탁을 남긴 걸까. 레이라는 차마 그것을 버리거나 찢거나 태우지 못했다. 깃펜을 든 레이라의 손이 희게 질렸다.

한참을 빈 편지지 위를 배회하던 손이 결국, 답장을 써 내렸다.

✲ ✲ ✲

편지를 받아 읽은 세 남자의 표정은 그들의 심경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숨기려 고개를 비튼 나트하.

차가운 얼굴에 깃든 감정을 한 톨도 드러내지 않는 에틸.

대체 문제가 무언지 모르겠지만 썩 마음에 차지는 않아 보이는 피오니안.

레이라는 세 남자의 얼굴을 돌아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꽃향기가 물씬 나는 찻잔 위를 꼼지락대던 손이 곧 커다란 숨과 함께 뚝 멈추었다.

“사실이더라고.”

“무엇이?”

피오니안에게 대답하는 대신 나트하를 걱정하는 레이라의 눈빛이 한 차례 그를 훑었다.

“……한, 두어 달, 정도 남으셨다고.”

“정말인가요? 레이라?”

물기가 가득한 금빛 눈동자가 대답이 두렵다는 듯 눈꺼풀 속으로 숨어 버렸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에 나트하는 주먹을 콱 쥐었다.

“네.”

감은 눈 사이로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모른 척한 레이라가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감정 없는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서있던 에틸이 서서히 다가와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또 이건 무언가 싶어 동그랗게 벌어졌던 연분홍빛 입술이 합 다물렸다.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아가씨.”

“에틸?”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제가 그자를 가장, 깊이, 후……. 싫어할 겁니다.”

“…….”

맞다. 그랬다.

레이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이다 세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만큼 오래 그자의 곁에서 웃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사랑에 빠져 설레어 웃던 얼굴, 온 세상을 얻은 듯 사랑이 충만했던 얼굴, 상처 받아 아파하던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체념에 짙어진 눈동자, 증오에 타오르던 눈동자까지. 당신은 매 순간 사랑스러웠으나, 그만큼 저는 그자가 싫었습니다.”

“…….”

“그런데 아가씨, 내 레이라. 당신은 제게 와 주었고, 내 곁에서 그때처럼 웃었습니다. 아마 제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그자를 이미 용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겐, 그것이……, 그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자가 싫은 만큼, 그자를 사랑했던 당신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니, 당신의 선택을 전부 존중할 수 있습니다.”

에틸은 정말로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싫어하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배웠다. 죽여 버리면 속 시원할 테고 그럴 수 있었지만, 그녀를 위해 참는 것도 배웠다. 그녀를 온전히 품고 싶은 독점욕도 배웠고, 제 욕심이 그녀를 사지로 내몰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체념과 자제심도 배웠다.

부족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깨달아 보니, 인정하기는 싫으나 레사의 마음을 추측해 본 날도 있었다. 아마 저였더라면 그렇게 병신처럼 레이라를 놓아 버리지 않았겠지만, 자신에게 레이라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듯 레사에게 가족이 그런 존재라면 정말로 마음이 다 헤져 버렸을 거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희게 쥔 나트하의 주먹처럼 에틸의 손도 그러했다.

“당신은 저희가 바라지 않는다면 그를 다시는 보지 않으실 테지만, 언젠가 이 일을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그때 당신께 제가 무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당신과 비슷한 후회를 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처럼.”

에틸은 저택까지 쫓아와 용서를 빌던 레사를 떠올렸다. 그때 저나 녹스 공작이 막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레이라가 후회를 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미련을 남겨 두었다. 아니, 남겨 두게 했다. 잘라 버리거나 다시 사랑하거나, 레사와 만나 레이라의 마음을 확실히 정했더라면 이런 편지도, 지난번 나트하 아버지와의 대화도 전부 없었으리라.

에틸은 이제 와 그런 것들이 후회된다는 것이 또 후회되었다. 인간으로서 그를, 레사를 가엾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그저 레이라가 고민하고 아파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 괴로움에 자신이 일조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레이라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나도 그러하다.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네게 나쁠 것은 없을 테지.”

“…….”

“……알겠어요.”

아직도 눈물이 그득 담긴 말간 금빛 눈동자마저 저도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레이라는 수긍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만나 보는 것이 어떻겠냐 채근하는 눈빛들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어차피 마주해야 한다면 속전속결로 빨리 끝내 버리자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레이라는 조금 더 미루고 싶었다. 또한, 이 자리에서 만난다, 아니다 정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혹 모르지 않나, 레사는 레이라를 만나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아,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레사가 제국 북부로 발령을 떠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니 만나겠다고 생각하면 뭐 해. 그 먼 곳으로 가 버렸는데.”

“데려다 주겠…….”

레이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말을 끊어 버리는 기세가 영 심상치 않았다. 피오니안은 입을 다물었다.

“그건 아니야. 그렇게까지 해서 만나고 싶지는 않아. 아무튼, 세 사람의 마음은 잘 알아들었어. 음, 이 말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항상 고마워. 그리고 일단 에틸.”

“예.”

튼튼한 어깨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느껴져 피오니안이 한쪽 눈썹을 들었다.

‘대체 왜 쫄지?’

“내가 왜 세 사람에게 이 편지를 보여 준 것 같아? 러스티 후작님의 말씀도 말이야.”

“그야…….”

“내겐 이제 레사보다, 당신들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야. 사실 너무 난감한 일이라 일단 이야기부터 꺼내자 싶어서 부른 거였어. 내가 꼭 그를 반려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것처럼 구는데……. 난 그냥 셋, 음, 둘 다 내가 레사를 만나는 걸 당연히 싫어할 거라 생각했거든.”

아직도 흐느끼는 나트하를 끌어다 제 의자에 앉힌 레이라가 당당히 그 위를 점령하고 앉으며 말했다.

‘작게 다독이는 하얀 손에 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다면, 이상한 걸까?’

에틸의 머릿속은 레사보다 소중하다는 말로 가득 차 있었다. 무심코 지금까지 그를 견제했던 것은, 아직도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에틸은 환하게 밝아진 머릿속에 청명한 가을이 찾아온 것 같았다. 갑자기 온 세상이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냥 나중에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은 만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였는데……. 뭐 그렇게 원하면 반려를 하나쯤 더 들여 줄게.”

장난스레 웃으며 나트하를 꽉 껴안은 레이라가 눈가를 찡긋거렸다.

순간 푸른 눈에 환하게 번진 웃음이 에틸의 얼굴을 전부 물들였다. 사르르 녹아들 듯 따사로운 눈빛과 가지런한 치아를 다 드러내고 웃는 그의 웃음이 그녀의 마음 까지 물들였다.

요정이나 천사라도 본 것처럼 멍해진 레이라의 표정에 헛웃음을 터트린 피오니안은 에틸의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저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인가? 그렇군.’

깨달음을 하나 더 얻은 그가 몰래 고개를 주억이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부족하시다고 하니, 오늘 당장이라도 다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이 좋겠군요. 기절하실 때까지 박고, 또 박아 드리면 그런 말을, 다시는 못하지 않겠습니까?”

보조개가 콕 박힌 봄 햇살 같던 웃음이 한겨울에 만난 짧은 햇빛처럼 휙 스쳐 지나갔다. 나트하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 동그란 어깨를 살살 쓰다듬어 주며 코를 훌쩍였다.

✲ ✲ ✲

아직 눈가가 채 마르지 않은 나트하는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잘 빠진 기다란 목을 지분거렸다. 그녀의 온몸을 물들인 향긋한 향기가 목에서는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는 숨을 흠뻑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으며 혀를 문질렀다. 혀에 착 감기는 피부도 코끝을 스치는 향기도 좋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으으응, 하앗.”

“하……. 레이라. 더, 더 소리 내주세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꿀을 바른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달콤한 목소리.

나트하는 야해 빠진 그녀의 신음에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듯 솜털이 곤두서고, 제 그것도 곤두섰음을 느꼈다. 그는 주저 없이 커다랗게 부푼 성기를 탱글탱글한 엉덩이 사이에 끼워 문질렀다. 애원하듯 신음을 조르는 그의 목소리가 야릇했다. 귀마저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나트하가 주는 자극에 몸을 흔들던 레이라는 가슴을 잡아당기는 감각에 몸을 원위치 시켰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흘긴 피오니안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집중해라.”

히끅, 그의 다그침에 놀라 딸꾹질을 시작한 그녀가 귀엽다는 듯 아래를 핥던 에틸의 몸이 웃음으로 들썩였다. 꽉 붙잡힌 그녀의 다리는 꼼짝없이 에틸의 어깨 위로 올려져 그의 얼굴을 감싼 채였다.

허리를 꽉 끌어안은 나트하는 레이라의 엉덩이를 사이를 요사스레 문지르며 가슴 한쪽을 매만지고 목 언저리를 지분거렸다.

제 것이라는 것처럼 당당하게 레이라의 가슴을 차지한 것은 피오니안이었다. 그는 야무지게 가슴을 쥐고 물고 빨며 가끔 에틸 대신 클리토리스를 매만지기도 했고 레이라의 입술에 짙게 키스를 하기도 했다.

레이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저 세 남자 사이에 갇혀 있을 뿐인데, 한참이나 달린 것처럼 숨이 가빴고 머릿속이 몽롱했다. 간지러운 입술과 뜨거운 혀끝이 전신을 핥아 내렸고 진득한 손길도 마찬가지로 전신을 쓰다듬었다. 살짝이라도 자세가 허물어지면 누군가의 단단한 손이 엉덩이를 찰싹 때리거나 애무가 더 짙어졌다.

“아아!”

혼몽한 머리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에틸은 허벅지에 난 붉은 자국 옆으로 비슷한 낙인을 더 새긴 뒤 부드럽게 핥았다. 간지러운지 발발 떨리는 다리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꽉 붙잡았다.

발딱 솟은 클리토리스를 혀끝으로 꾹 눌렀다.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짙어진 신음이 튀어나오자 빠르게 문질렀다. 펑펑 솟은 애액을 손가락에 휘감고 질구를 파고들었다. 연달아 가해진 자극 덕분인지 제법 풀려 있는 내부가 제 손가락을 잘도 삼켰다.

“하, 맛있습니까?”

“하아, 읏, 몰라아.”

깊은 곳까지 쑤셔 넣은 손가락을 발간 속살에 비비고 찌르고 문지르는 동안 입술은 쉬지 않고 작게 솟은 콩알을 핥았다. 시트를 흥건하게 적신 것이 에틸의 침인지 레이라의 애액인지 모를 정도였다. 덕분에 에틸의 손가락은 손쉽게 아래를 드나들 수 있었다.

“아흐으윽!”

가볍게 그러나 벌써 세 번째 절정에 달한 레이라가 일렁거리는 눈빛으로 에틸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곱게 휘어 웃음으로 화답한 에틸이 다시 클리토리스를 꽉 물었다.

좋았다. 미치게 좋았다. 예쁜 그의 눈웃음도 저를 미치게 했지만, 사방에서 오는 자극이 그녀를 더 미치게 했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깐이나마 마주친 시선에 듬뿍 담긴 애정이 그녀를 더 살살 녹여 냈다.

꼭 붉게 물든 꽃밭에 누워 뜨겁게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 같았다. 황홀해 미칠 것 같은데 비는 피하고 싶고, 어쩐지 상쾌하기도 한데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레이라는 연신 도리질하며 제 의사를 피력했다.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흐아앙!”

가슴을 쪽쪽 빨던 피오니안은 자꾸만 제 입속에서 탈출하는 유두를 찾아 다시 고개를 숙였다. 깊이 팬 미간이 언짢음을 고스란히 나타냈으나 그것을 알아줄 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봉긋 솟은 통통한 유실이 탐스러운 가슴을 얌전히 내려다보던 그가 얌전히, 그러나 빠르게 마법진을 그렸다.

새하얀 동그라미, 용언, 직선 여러 개, 마나 수식.

순식간에 완성된 마법진을 발동시킨 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느낌은 한 번 겪어 본 것이었다. 잠깐 정신을 차린 레이라는 경악에 홉뜬 눈으로 피오니안을 응시했다.

“읏, 이거, 하앗!”

역시나 하얀 액체가 몽글몽글 솟는 제 가슴은 당연하다는 듯 피오니안에게 삼켜졌다.

‘왜? 뭐 잘못됐나?’

순진함을 가장한 그의 표정이 가증스러웠으나 제 가슴에 뺨을 비비고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그것을 핥는 것에 무어라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는 또 예쁘고, 야했다. 아니, 그도 예쁘고 야했다.

“하앗, 아앙! 흐으으.”

“아? 정말이었네요. 하아.”

순간 막힌 숨을 틔우듯 한 남자가 레이라에게서 손을 거뒀다. 레이라를 뒤에서 받쳐 안던 나트하였다.

순식간에 베개를 척척 쌓아 그녀를 눕혀 둔 그는 날렵하게 그녀의 왼쪽 가슴을 베어 물었다.

양 가슴을 차지한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황홀함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눈웃음을 짓는 나트하를 마주한 피오니안이 그의 시선을 피한 것도 그때였다.

나트하는 벌써 정신을 놓아 버린 것 같았다. 흥분하면 내면의 고삐가 풀려 버린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피오니안의 표정이 신기함에 젖었다. 그 의문스러운 시선은 달콤하고 향긋한 무언가에 의해 금세 흩어졌다.

“아! 아아아, 안 돼에, 으응!”

촉촉한 피부를 빨아 당기는 마찰음이 과시하듯 사방에서 들려왔다. 유두를 쭉쭉 빠는 입술이 야속했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것처럼 클리토리스를 핥는 에틸도 마찬가지긴 했다.

레이라는 제 가슴을 빠는 두 남자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다시 흔들었다. 싫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행동과 목소리의 괴리가 꽤나 컸다.

나트하는 그것이 귀엽다는 듯 레이라를 향해 눈을 빛냈다.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를 숨긴 붉은 눈가가 색스러웠다. 이 와중에도 예쁘게 반짝거리는 금빛 속눈썹을 향한 레이라의 시선이 매혹에 걸린 것처럼 흔들거렸다.

그래 이 남자도, 어여뻤다.

레이라는 그냥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차라리 보지 않으면 덜 할 것 같았다. 자극만으로도 과한데, 눈앞을 스치는 남자들이 저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것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가슴이 간지럽고, 술렁였다.

눈을 감아 버린 그녀의 살결을 타고 내리는 느긋한 손이 늘어났다. 코앞에서 펼쳐지는 애무의 향연을 따라 하듯 흡수하는 피오니안이었다. 탁월한 두뇌로 응용까지 마쳐 완벽해진 손길은 그가 찾아낸 그녀의 성감대만을 노렸다. 바람이 스치듯 저를 간질이는 손길에 그녀의 바동거림이 늘어났다.

“하, 정말 피오니안 님의 말 그대로네요. 맛있어요.”

“…….”

“하아! 앗!”

최고급 포도주를 잔뜩 마셔 취한 것처럼 나트하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연신 감탄하며 유두를 빠는 입술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나트하의 발언에 궁금한지 위를 흘긋대는 에틸의 눈빛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레이라는 그저 수치심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젖을 핥아 마시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분명 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일이며 부끄러운 일인데도, 세 남자는 그저 기뻐 보였다.

덕분에 참을 수 없을 만큼 민망한데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 말릴 수도 없었다.

예뻐. 사랑스러워. 귀여워. 좋아해. 사랑해. 온갖 감정이 넘쳐흐르는 눈빛들은 마주치면 절로 입이 꾹 다물어졌다.

“으응, 그만.”

말로만이라도 그만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언어를 다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만하라는 말에 행위를 멈추는 대신 입을 딱 다문 두 남자가 시선을 교환했다.

한동안 말없이 가슴을 물고 빨고, 아래를 자극하는 애무가 이어졌다. 감은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자극을 받아들인 그녀의 신음만 허공을 울렸다.

레이라의 허리가 발발 떨리고 질구가 빠끔댈 때까지 이어지던 행위는 결국, 참지 못한 에틸이 레이라를 휙 들어 올려 제 위에 얹어 둘 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자석처럼 마주한 성기가 착 달라붙자 레이라의 고개가 휙 젖혀졌다.

“아아아앗!”

한 번에 깊숙이 삽입된 음경이 그녀의 자궁구를 콱 찔렀다. 아픈 것도 같고 좋아 죽어 버릴 것도 같았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을 때, 기다렸다는 듯 들이닥친 쾌감이었다.

바짝 마른 목에 빗방울을 받아 마시듯 레이라는 다리를 활짝 벌려 에틸을 집어삼켰다. 눈을 떠도 흐려진 시야 속에서, 에틸의 배를 짚은 레이라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렇게 물고 빨아 두면, 후, 넣자마자 가 버리는 게, 예뻐 죽겠습니다.”

입맛을 다시며 빼앗긴 레이라의 빈자리를 더듬던 두 남자의 시선이 두 사람의 결합부에 꽂혔다. 서서히 위를 향한 시선이 통통하게 터질 것 같은 엉덩이, 안쓰러울 정도로 가느다란 허리, 땀방울이 맺혀 더 매끄러워진 등을 서서히 훑었다.

순간, 더 깊숙이 더 기분 좋은 곳을 찾듯 레이라의 허리가 꼿꼿하게 섰다. 에틸의 하체에 꽉 맞닿으며 뒤로 빠진 엉덩이와 이어진 유연한 허리선에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하, 이건 반칙 아닌가?”

“치사해요.”

이미 차례를 정했으면서 괜히 우는 소리를 내본 두 남자가 다시 레이라에게 달라붙었다. 뒤로 쭉 빠진 엉덩이 사이를 파고든 나트하의 손가락과 레이라의 입술을 집어삼킨 피오니안의 눈빛이 비슷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윽, 아앙.”

다시 몰아친 자극에 할딱이는 그녀가 아름다웠다. 몸을 둥그렇게 말고 레이라의 가슴을 맛보던 에틸이 입을 떼며 제 입술을 핥았다. 다디단 액체가 묻어 있는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러나 목은 더 말라 왔다. 탐하면 탐할수록 더 부족해지는 것만 같았다.

신음처럼 그르렁거린 에틸이 커다란 손으로 레이라의 가슴을 쥐어짜자 젖이 방울방울 맺혔다가 아래로 똑똑 떨어졌다. 입을 크게 벌린 그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액체를 받아 마셨다.

그것은 굶주렸으나, 고아하기 짝이 없는 짐승이 먹잇감을 눈앞에 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입씩 천천히 먹는 것에 감질이 나는 듯 눈을 빛내면서도 이미 잡은 먹잇감이니 품위를 잃지 않고 느긋이 즐기겠다는 묘한 집념이 담긴 그런.

붉고 앙증맞은 유두를 입에 넣고 굴리며 쭉 빨아들이면, 분명 저 나름대로 만족스러울 테다. 그러나 그는 그저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쥐어짜며 느긋이 젖을 받아 마셨다.

그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궁금한 사람은 레이라 뿐이었다. 가슴을 틀어쥔 손은 억세고 아팠다. 찌르르 울리던 가슴은 유두 끝으로 욕망을 분출하듯 쾌감을 자아냈다.

아프고, 간지럽고, 수치스럽고, 좋았다.

“으응, 으으응! 으음…….”

레이라는 시뻘게진 얼굴로 제 불만과 신음을 앗아가는 피오니안을 노려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제 입천장을 혀로 훑으며 눈을 휘어 여우처럼 웃는 미남과 눈이 마주할 때면, 심장이 철렁거리며 속말이 쏙 사라졌다.

마법처럼 저를 홀리는 남자의 보석 같은 눈동자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을 무렵, 허리를 꽉 틀어쥔 손이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아흐윽.”

“들어갈게요. 레이라.”

“으으, 아앙!”

엉덩이를 드나들던 손가락이 쑥 빠져나가며 나트하의 음경이 파고든 것도 그때였다. 나트하는 자지러지듯 교성을 터트리며 추락하는 천사처럼 허리를 꺾은 그녀를 받아 안았다.

자연히 레이라를 덮고 누운 그를 따라 에틸이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물 흐르듯 자리를 뒤집는 동안에도, 그녀의 내부를 꽉 채운 자지는 미동도 없이 박혀 있었다.

“하윽!”

“윽, 너무, 조여요.”

“맛있게 드시나 봅니다. 하, 맛있습니까? 레이라.”

“……흐으읏, 하아.”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자세를 바꾸면서 이다지도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쪽 소리와 함께 제게서 다시 멀어지는 레이라를 향해 기다리라는 듯 빙긋 웃으며 피오니안이 생각했다. 그는 제 하의를 벗어 던졌다.

“세 개라는 것을 잊으신, 것은 아닙니까? 하나는, 어디로 가야 할, 까요?”

질문을 던지듯 건넨 에틸의 말에 레이라의 눈이 반짝였다. 이미 혼몽하게 흩어져 있던 시선이 피오니안을 향했다. 퉁, 마침 튕겨 나온 성기가 레이라의 코앞까지 디밀어졌다.

“흐으응, 아아.”

“하, 미치겠군.”

“먹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도, 미치게 예쁘지 않습니까?”

“그렇군.”

“흐, 당연하죠.”

입을 벌려 귀두를 날름 삼킨 레이라의 시선이 피오니안의 얼굴을 향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다디단 눈동자가 그의 얼굴에 머물렀다. 마주 바라보며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쓸어내리던 피오니안이 레이라의 양 볼을 꾹 눌렀다.

“으응, 읏.”

“빼앗지 말라는, 건가?”

레이라는 교접 중에 성기를 빠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에틸과 나트하와 함께 밤을 보냈을 때, 그들이 번갈아 가며 그녀를 탐하는 동안 레이라가 정신을 놓지 않을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녀는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아름다운 피오니안의 자지라면 더 좋았다.

“빼앗지 않을 테니, 그렇게, 후, 예쁘게 보지 마라.”

젖은 눈을 다시 한번 다정히 쓸어내린 피오니안이 허리를 디밀었다.

양쪽을 치대는 두 남자의 몸짓에 하느작하느작 떠밀려 피오니안의 것을 물었다 뱉었다 반복하던 레이라가 배부른 미소를 지었다. 제 안에 꽉 맞물려 있는 두 개의 성기에 배가 불러오듯 포만감이 들었다. 쾌감은 두 배가 아니라 열 배, 스무 배 이상으로 밀려들었다. 기대했던 것처럼 바르르 떨리는 몸을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세 남자가 미치도록 좋았다.

서서히 움직이던 에틸과 나트하가 점점 속도를 올렸다. 낑낑거리며 피오니안의 성기를 문 채 신음을 꾸역꾸역 삼키던 레이라가 참지 못하고 교성을 내질렀다.

“읏, 흐윽, 흐아아앙!”

아픔에 소리를 지르는 것 같기도 했고 쾌감에 몸부림치는 희대의 탕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피오니안은 그 희대의 탕녀를 지근거리에서 보았으나, 그녀보다 레이라가 더 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오니안의 성욕을 깨운 것은 레이라, 그녀가 유일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에틸은 제 것을 찔러 넣을 때마다 찔끔찔끔 솟아 방울져 흐르는 젖 방울을 바라보며 흐린 눈을 했다. 당장이라도 뇌가 녹아 버릴 것처럼 흥분이 솟았다. 당장 저것을 핥지 않으면 눈이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시뻘게진 시야 사이로 에틸이 허리를 유연히 구부렸다.

“하아, 에틸이 부러워요.”

“으으응, 시러어.”

“이 입은, 귀여운, 윽, 소리만 하는군.”

도통 대화가 이어지질 않았다. 네 사람이 한자리에 있으면 무언가 말이 오갈 법도 한데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묘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트하는 입맛을 다시며 레이라의 가슴을 문 에틸을 바라보았다. 아쉬움에 남은 가슴을 손에 쥐어 비틀자 토도독 떨어지는 방울이 에틸의 복근을 타고 흘렀다.

손을 뻗어 피오니안의 것을 쥔 레이라가 그것을 쪽쪽 소리를 내 빨아 당겼다. 제 것을 꽉 쥐고 터트려 버릴 것 같은 아귀힘에 움찔 놀라던 피오니안은 레이라가 절정에 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젖히고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무언가의 날개 같았다. 그녀의 전부가 아름다워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통통한 입술이 하얀 잇새에 갇혀 희게 질렸다가 푸딩처럼 말캉하게 튀어나오는 것도 귀여웠다. 밭은 숨과 함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피오니안은 제 것을 밀어 넣었다.

참을수록 더 짙게 배어 나오는 흥분과 욕망이 그녀를 더 원하게 했다.

“하아, 으읍.”

“흐으.”

“하.”

머리끝까지 치솟은 흥분을 터트려 버린 에틸이 그녀의 안을 몇 번 더 헤집은 뒤 제 것을 빼냈다. 그는 피오니안을 툭툭 쳐 제 자리에 끌어다 놓았다.

피오니안은 기다리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밝아진 얼굴로 그녀의 입구에 제 것을 문질렀다. 정액이 제 것을 타고 몽글몽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숨겨진 소유욕을 끌어올렸다.

반쯤 신난 그와 달리 레이라는 먹던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울먹이며, 시선으로만 그를 좇았다. 에틸은 그녀를 달래듯 제 것을 대신 내밀었다.

“흐으응, 아웁, 으응.”

“후, 맛있습니까?”

제 정액과 그녀의 애액이 섞여 역할 법도 한데, 레이라는 그저 맛있다는 듯 에틸의 자지를 물어왔다. 그녀는 저주로 인해 상대의 체액이 점점 달콤하게 느껴졌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서서히 그녀를 물들이듯 감각을 뒤바꾸고 있었다.

“흐으. 흐읍, 으응!”

피오니안은 처음보다 더 꽉 죄는 입구에 몸을 떨었다. 그제야 피오니안의 하물을 바라본 에틸의 표정에 경악이 스쳤다. 부러 서로의 물건을 바라본 일이 없는 세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래곤은 생식기도 무기로 쓰는 겁니까?”

“……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피오니안이 에틸의 시선을 따라 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계까지 몸을 늘인 질구를 파고드는 제 것과 그녀의 뒤에 박힌 흉흉한 나트하의 자지. 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마찬가지로 붉은 안개가 낀 레이라의 시야 사이로 온갖 쾌감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흉악스런 피오니안의 음경이 그녀의 내부를 서서히 가르고 들어오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자지를 매끄럽게, 그러나 힘겹게 삼킨 그녀의 내부가 발발 떨렸다. 그녀의 엉덩이에 달라붙어 그것을 고스란히 느낀 나트하의 미간이 구겨졌다.

“으윽……. 이, 무슨.”

울퉁불퉁한 성기가 레이라의 질구를 늘렸다 좁히며 질 벽을 두드렸다. 빼곡하게 안을 채운 성기의 모양을 가늠하듯 레이라의 내벽이 꾸물꾸물 움직였다. 전해진 자극에 사정해 버릴 뻔한 나트하가 제 허리를 뒤로 쭉 뺐다.

“대체 뭘, 뭐가.”

“…….”

피오니안을 전부 집어삼킨 레이라가 배부른 토끼처럼 눈을 휘며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에틸의 음경이 레이라의 뺨을 두드렸다. 그것에 볼을 비비던 레이라는 숨이 생각보다 잘 쉬어진다는 것과 그것이 세 남자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 피오니안과 흔하지 않게 놀란 기색이 역력한 에틸, 난감하다는 듯 허리를 물린 채 입술을 깨문 나트하.

어리둥절한 레이라의 표정이 세 사람을 훑어 피오니안에게 닿았다.

“으응? 왜 그래?”

“괜찮, 아니, 아프지는 않으십니까?”

에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레이라가 그저 발갛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응, 좋아. 너무너무 좋아. 얼른 더 해 줘.”

“하.”

“허.”

“…….”

이를 악문 피오니안이 울퉁불퉁한 자지를 끝까지 처박았다. 레이라의 허리를 꽉 붙잡은 나트하도 허리를 딱 붙였다.

이를 가는 것처럼 으르렁거린 에틸이 레이라를 향해 웃었다. 시리도록 추운 겨울날 딱 한 송이만 피어난 꽃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웃음이었다. 어딘가 서늘하지만 아름다운 미소에 사르르 풀어진 레이라의 몸을 꿰뚫은 남자들이 탁한 숨을 뱉어 냈다.

에틸이 레이라의 턱을 쥐고 입을 벌리게 했다. 슬쩍 벌어진 입 안으로 드러난 빨간 혀에 잘 익은 자두처럼 불거진 귀두가 닿았다. 레이라는 입을 크게 벌렸다.

힘차게 허리를 튕기는 세 남자의 눈빛은 이미 짐승 그 자체였다. 허리 짓을 반복하는 것만이 제 목표라는 듯 가열한 움직임이었다.

✲ ✲ ✲

비가 내리는 새벽녘의 상쾌한 공기는 땀방울이 뒤섞인 정사 냄새를 거둬 가지 못했다. 답답함에 활짝 열어젖힌 창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끓어오르는 열기를 식혀 주듯 냉랭한 바람이었으나 그 누구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헐떡이다 지쳐 항복하듯 손을 들어 팔랑거리는 여인의 몸짓이 가여웠다. 제 눈앞에 하늘거리는 손을 잡아 내린 남자가 허리를 퍽퍽 쳐올렸다. 온몸에 정액을 묻힌 여인이 가녀린 신음을 흘렸다.

금빛 마나가 여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눈을 반짝 뜬 여인이 발을 바동거리다 남자의 허리를 감아 왔다. 높아진 교성은 그저 그녀의 몸부림이 교태였다는 것처럼 간드러졌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여인의 손으로 제 음경을 흔들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음경을 쓰다듬던 작은 손톱이 툭 불거진 핏줄을 긁었다. 여인의 손으로 수음을 하던 남자가 헛숨을 내뱉었다. 뜨거운 숨결이 차가운 공기에 뿌옇게 이지러졌다.

은빛 머리카락 때문에 더 신비로워 보이는 남자는 여인을 제 쪽으로 돌려세우며 젖가슴에 제 음경을 문질렀다. 왈칵 터진 정액이 그녀의 젖과 섞여 탁한 빛으로 물들어 흘러내렸다. 유두에 문질러진 귀두가 움찔거리며 제 욕망을 다 토해 냈다.

안심하듯 접힌 여인의 눈꺼풀이 화등잔만 하게 뜨였다. 그녀의 가슴에 귀두를 몇 번 더 문지르던 남자의 것이 다시 크기를 부풀렸기 때문이었다.

벼락 맞은 나무처럼 쩍 굳어 버린 여인이 소리를 빽 질렀다.

“적당히 좀 해! 이 색마들아!”

-숨은 고추 찾기 4권에서 계속…….

숨은 고추 찾기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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