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첫번째 악마. 음욕의 아스모데우스
비가 내리는 밀림 속.
고블린을 죽이고 나서 다시 생존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멍하니 숲속을 바라봤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누군가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힘까지도 내게 들어오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감기느낌이 완전히 사라졌고, 지붕을 만들 때 나뭇잎에 베였던 손가락도 다 회복되었다.
또한 점점 냉정해지고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이 이상 기다리기 힘들어."
변한 내가 내린 결단은 아까 전 고블린을 날려버린 힘으로 차라리 이 게이트를 내 손으로 끝을 내겠다고 생각을 했다.
게이트 보스를 잡는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게이트가 생긴다고 했으니, 그곳을 통해서 다시 원래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거다.
비가 내리는 주변을 돌아보고 덩굴과 돌, 나무때기를 챙겼다.
누구의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뛰어난 사냥꾼인 듯하다.
주변의 도구들을 잘 사용하고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
그는 나와 비슷하기까지 했다. 도구를 잘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수집을 좋아하는 건 나와 같았다.
항상 무언가 잃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저장하고 간직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일들로 인해 내면에 무언가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현실의 나를 잠시 동안 잊을 수 있었다.
홀로 사는 내방이나 화장실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를 전시해뒀다.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나 옷들도 내 방에 그대로 있었고 가끔 그것들을 보곤 했다.
그의 기억대로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걸 모두 챙기기로 했다.
고블린을 상대하기 위해서 말이다.
"..고블린은 동굴에 많이 살고 있고 대체적으로 소악마라고 불리는 녀석들.. 단순하지만 집단성이 강하다."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다. 그 사냥꾼의 기억이었다. 고블린이라 불리는 소악마를 많이 상대해 본 듯했다.
"최대한 유리하게 싸워라.."
아까 잡았던 고블린의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사방에 보이는 환경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지형을 계속 읽고, 계획한대로 고블린들의 머릿수를 줄여나간다. 변수에 대비하고 내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라."
사냥꾼의 기억이 나를 가르쳤다. 아니 알게 됐다. 내 수준이면 충분히 고블린들을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생존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이 든 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고 사냥꾼의 지식이 들어와서다.
지식을 통해 이길 방법을 얻었고, 또 용기를 얻었다.나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발자국.. 고블린들이 자신의 구역을 알리는뼈 조각상들까지. 이곳이다."
발자국이 이곳에 가장 많았다. 짐작한대로 상당한 크기의 동굴이 있는 장소였다.
‘들어가자.‘
고블린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모두 내부로 들어간 흔적이 보인다.
가져온 나무때기와 돌을 들어올렸다.
서서히 안쪽으로 향했다.
동굴 내부에서 불빛이 보인다.
고블린들은 인간들을 따라하는걸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도구와 불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
동굴내부에 불이 있는 게 확인되고 그곳에 고블린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모두 평범한 고블린들.
생존지에서 만난 고블린과 흡사한 녀석들이다. 그만큼 약체.
내 주먹에 머리가 터지는 이들이다.
‘간다.‘
모닥불을 향해 달려들었다.
"끼에?"
동굴입구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느낀 것인가. 모닥불 주위에 앉아있는 고블린 한마리가 입구 쪽으로 돌아봤다.
-빠각!
그 녀석한테 돌을 던지니, 돌과 고블린의 머리통이 함께 박살이 났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동료가 죽자 고블린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나를 바라봤다.
""키에엑!""
-쉬이익 빠각!
달려드는 고블린, 나무때기를 휘두르자 고블린의 척추와 함께 나무도 파괴된다.
도구들의 강도가 너무나 약했다. 여러 가지 사냥꾼의 지식이 들어왔지만 감각적으로 도구를 다루는 요령이 없었다. 그저 전력으로 휘두르고던질 뿐이다.
‘상관없어. 기습을 틈타서 모두 죽인다.’
도구들은 그저 사용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부서져도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야.
내가 가진 무기를 다 소모하고 주변에 고블린들이 사용했던 걸로 보이는 날카로운 돌칼과 돌도끼를 잡았다. 이후 던지고 찌르고, 살점을 찍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로 인해 동굴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4마리의 고블린은 모두 절명해버렸다.
"후우..후우.."
처음이기에 조절이 안됐다. 그저 죽인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서 과도한 힘을 사용했다.
하지만 서서히 몸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키에에!"
‘나타났나..‘
동굴 가장 안쪽에서 한명의 고블린 비명이 들려왔다.
자신의 부하들이 죽은 것에 화가 단단히 났다.
안쪽에서 나온 고블린은 두 손도끼를 각각 양손으로 들고 등 쪽에 깃발을 꽂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
동굴의 주인은 정예 고블린이었다.
일반적인 고블린을 통솔하는 분대장 같은 녀석이다.
녀석은 일반 고블린보다 머리가 좋고 힘도 쌨다.
대치하면서밑바닥에 있던 불이 붙은 장작을 집어 들었다.
"이걸로 구워주마..악마야."
"키에에!"
도발에 응한 건지 내게 달려드는 정예 고블린이다.
나도 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왼손에 숨긴 덩굴줄기를 길게 뽑았다.
돌과 연결된덩굴은 바닥에 먼지를 풍기면서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녀석과 내가 한 지점에서 만났다.
-콰직!
불이 붙은 장작이 파괴되며 날아갔다. 동시에 녀석의 오른쪽 도끼도 날아갔다.
난 남아 있는 녀석의 왼손의 도끼를 의식했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듯이 바닥을 굴렀다.
"키에!"
예상대로 정예 고블린의 시선이 나에게 따라왔다.
고개를 크게 돌리는 정예 고블린은 나를 돌아보면서 도끼를 높게 들어올렸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아직 남아있는 게 있지."
아까 풀어놨던 덩굴을 움직여 정예 고블린의 발을 걸었다. 그리고 잡아당겼다.
-수욱! 끼이익!
"키익!"
나를 의식하느라 바쁜 고블린은 자신의 발에 걸린 것을 보지 못했고, 추잡하게 넘어지는 게 보인다.
녀석이 넘어지는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에 보이는 도끼날을 집어 들었다.
"죽어라."
줄을 어떻게든 풀려고 하는 고블린을 보고 녀석에게 올라탔다 그리고 도끼날로 녀석의 얼굴을 내려찍었다.
"키이이!!"
-빠각! 빠각!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뇌수가 튀어나올 정도로 뭉개진 얼굴을 보면서 그제야 도끼날을 손에서 놨다.
"헉..헉.."
사냥꾼의 기억 때문인가.
알 수 없는 분노가 있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건지 이상했다.
단지 눈앞에 있는 고블린이 소악마라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과도한 힘을 사용하고 나서 갑자기 무력함이 몰려왔다.
-찌지직..
정면에 보이는전격.
게이트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이빨을 꽉 물고 일어나 게이트 밖으로 향했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동시에 의식을 흐릿해짐을 느껴졌다.
***
"A분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B분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게이트 안으로 진입한다!"
게이트 주변에 경찰과 군인, 헌터들, 그리고 다양한 방송국에서 기자들.
게이트 발현에 하루가 지난 지금이 되서야 구조 활동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갑작스러운 게이트 발현은 이번년도 들어서 15%나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20년 만에 최대수치라 하며 해외박사들도 지구가 또 한 번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고 하는데요..."
.
.
.
-위잉! 위잉..위..
"어..어라?"
"위험경보가 꺼졌습니다! 게이트가 닫힙니다! 모두 뒤로 물러서세요! 누군가 나옵니다!"
헌터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려는 찰나 게이트 소멸이 시작이 된다.
교육받은 군인들의 말에 모두 뒤로 물러섰고, 게이트 안에서 나오는 존재가 누구인지 지켜본다.
-뚜벅..뚜벅..쿵..
"...게..게이트에 휘말린 학생이다! 의료진! 의료진!"
동시에 게이트가 소멸되면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의식을 잃을 학생과 함께 말이다.
***
"어제 오전 10시경 경기도에서 발현된 게이트에서 의식을 잃은 남학생이 걸어 나왔다고 합니다. 현재 대학병원으로 후송 중에 있으며 졸업날 마고등학교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이제 막 성인이 된 남학생인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소식은 이후 학생이 깨어나고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김보미 기자였습니다."
거실 한 벽면 전체에 커다란영상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상당히 부유한 집안을 가진 집 같아보였다.
"저 얼굴.. 오늘은 13일.. 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인이 잠깐 뉴스 화면을 보고 날짜를 확인했다.
그리고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초고층빌딩위에서 보이는 지상의 시선은 다양한 차들과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여인은 혼자만 아는 말을 우물거리며 자신의 홀로그램 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한다.
"오늘내일 모든 일정 캔슬해주세요. 할일이 따로 있거든요."
여인은 어느 기업에 고위급 임원인 듯 했다.
그녀는 모든 일정을 지우고 연락을 끊었다.
그리곤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외출하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외출준비를 끝마친 한 여인은 마치 천사가 아닐까 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누구보다 빛나는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3초 이상 바라볼 것 같은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그 상태로 10cm이상의 검은 하이힐을 신고선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오세요. 주인님."
현관문이 열리자 무감정한 기계음이 들어왔다.
그리곤 현문이 닫혔다.
***
어둠속에 밀폐된 공간이다.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공간 안에서 작은 뿔이 달린 여인과 함께 있었다.
"그냥 죽여."
"아니, 넌 내 수집품이야. 평생 나와 함께 있을 거야."
"악마보다 독한 사람이야 넌.. 200년간 똑같은 말만 하다니."
"고마워, 그 말을 들으니까 내가 하는 일이 정답이라는 걸 알겠어."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려줄까? 그래도 200년차인데.. 사실 내 부모님은 악마들한테윤간당해 죽었어. 서로가 보는 앞에서 말이야."
"후.. 그래서 복수하기 위해 악마를 붙잡아서 수집한 거였구나. 우리들도 똑같이 윤간하려고."
"반은 맞고, 반은 인간들을 위해서지."
"미친 새끼.."
온몸이 철사 줄로 묶인 악마는 악마수집가와 마주보고 대화하고 있었다.
"흠.. 날 풀어준다면 끊임없는 쾌락을 선물 해줄 수 있어 그럼 부모의 아픔도 사라질 거야."
"그렇겠지. 그런데 부모님의 아픔을 평생가지고 살고 싶어."
"부유한 재산도 줄 수 있어. 그럼 평생 놀고먹을 수 있지."
"먹고살기만 하면.. 과식까지는 할 필요 없어."
"명예는 어때? 아니면 왕이 되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골라 가족을 꾸리는 거지."
"천사의 무기를 가지는 순간. 아이를 가질 수 없어. 가족을 만들 수 없는 상태야."
"너 정말 악마만 위해서 모든 걸 걸고 살았구나?"
잠시 침묵한 상태로 서로의 눈만을 바라본다.
그 상태가 몇 시간이 되었을까 악마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사실 부모를 죽인게 악마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할거야?"
"그럼 너희들한테 정말로 미안할지도 모르겠네."
"좋아, 흥미가 하나 생겼어. 한 번 찾아볼게 내 말이 맞는다면 그때 가서 원하는 거 하나 해줘야 할 거야."
"물론이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어."
"약속했어. 악마수집가. 기필코 네가 뱉은 말은 꼭 지켜야해."
"물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