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두번째 악마. 질투의 레비아탄
-뚝...뚝..
"끄으으.."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 덕에 의식이 깨어났다.
'산건가..'
분명 거대한 몬스터가 해안가로 돌진하는 모습.
레비아탄이 치이기 직전 그녀를 살리고 대신 몸을 던졌다.
그 행동 때문에 몸이 부서질 듯 아프지만 살아있었다.
조금씩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과한 데미지를 받아서 몸이 회복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수집가!’
나를 안타깝게 외치던 레비아탄의 목소리.
이곳에 있기전 마지막의 기억이었다.
“괜찮겠지..”
분명 기믹이와 함께 잘 숨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어두워.'
그나마 멀쩡한 왼손을 들어 프로그램폰을 켰다.
하얀빛이 사방에 비췄다. 주변을 돌아보니 분홍빛 벽이 보인다.
이건 살아있는 고기벽이었다.
"그 바다 몬스터 입안이구나."
몬스터한테 강하게 치이는 동시에 먹혔나 보다.
왜 우리들에게 다가왔고 먹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대한 몬스터가 반응할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게이트를 통과하고 고작 내가 한 짓은 그저 어인 한 마리를 잡았을 뿐..
'설마.. 그 어인이 자폭하고 뿌린 핏물이.. 이 거대 몬스터를 유혹한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어인이 휑한 해안가 대놓고 있다는 게 웃긴 일이니까.
수많은 몬스터를 봐왔지만 이정도로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몬스터는 처음 봤다.
자폭어인은 당당하게 해안가를 어슬렁거리며 먹을거리를 찾았다.
자신을 공격하는 천적들이 나타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을 죽이면 더 큰 친구가 와서 대신 혼내 줄 테니.
어인이 추구하는 진정한 자폭은 포식자를 부르는 것이었다.
상위 몬스터를 불러서 같이 죽는 거다.
'무서운 어인놈들..'
절대로 레벨2 정도의 게이트가 아니었다. 이정도의 함정과 몬스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레벨 3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후회해봐야 소용없지.."
상황이 벌어진 이상 내가 할 수 있는걸 최대한 할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악마의 힘을 뿜어냈다.
채찍을 만들어냈다.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어 내가 등지고 있는 고기 벽에 깊게 찔렀다.
-푹..
소용없나..
엄청나게 질기다. 탄성자체도 너무나도 뛰어나서 구멍조차 나지 않았다. 내 공격은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찌르다가 다른 방법이 있을까 고민해봤다.
생명체의 구조상으로 볼 때, 구멍은 두 군데가 있다.
저기 굳게 닫힌 입. 아니면 맨 뒤쪽에 있는 배설구멍.
배설구멍으로 향하기 위해선 소화기관을 통해서 지나가야했기에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남은 게 바로 옆에 있는 입일 텐데, 이 녀석 처음부터 나를 먹기 위해서 이곳까지 헤엄쳐왔다. 절대로 놔줄 리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건 녀석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집어삼키고 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배불러서 숙면에 들어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나마 내겐 좋은 상황이었다.
이 시간에 입속 주변을 확인하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처벅..처벅..
처음 와본 장소이지만 상관없었다.
숲속에서 느껴졌던 밀폐되고 고립된 느낌은 같았으니까.
이곳이 숲이라고 가정하니 주변이 잘 보였다.
미역 줄거리나 통나무, 바위 같은 것들이 바닷물에 잠겨있었다. 휩쓸린 물고기나 바다동물이 제법 많이 있었다. 입이 큰 만큼 그물형태가 되었나보다.
신기한 것은 바닥에 거대한 육지동물의 뼈도 보였다.
아마 육지동물까지도 포식하는 녀석인가 보다.
녀석의 입바닥도 울퉁불퉁했다. 상당한 퇴적물이 쌓이고 굳어져있었다.
입안이 아니라 동굴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입안이 무슨 무덤처럼 보였다.
"그르르 벅벅..'
"저 녀석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온몸이 보라색 빛이 나면서 움직임을 보이는 생명체가 보였다.
"오옳..벅...벅.."
어인이다. 내가 죽였던 어인과는 다른 모양새이긴 했지만 동족인 게 확실했다.
녀석은 주변에 있는 미역이나 조개들을 주워 먹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나는 퇴적된 돌 틈사이로 숨었다.
그리고 녀석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옳..버벅.."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점차 늘어나는 어인들이 모래 틈에 있는 죽은 바다동물과 조개를 먹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으로 와서 말이다.
'그거였나..'
이 어인들이 거대 몬스터를 이용하는 거였다. 자신의 동족을 해안가의 제물로 삼아 육지 짐승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거대한 바다 몬스터를 이용해서 육지짐승을 입안으로 끌어들인다.
먹힐 때 피해를 받은 육지 짐승들은 고립되고 이곳 어인들에게 식사거리가 된다.
'바다 몬스터 배속에 기생하는 어인이라..'
거대한 바다 몬스터를 이용해서 입안으로 먹을거리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소를 희생해서 대를 먹여 살린다.
어인들의 전략은 무서울 정도로 완벽했다. 저 정도의 집단이 머무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는 뜻이었다.
입안에 있는 어인은 수십 마리 이상이었다. 새로 들어온 공급물들을 맛보기 위해서 이곳에 몰려들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저 중에서 우두머리가 있겠지.. 찾았다.'
머리에서 형광 빛이 나는 어인이 가장 몸이 튼튼하고 거대했다.
녀석이 어인들의 대장인게 확실했다.
우두머리를 처리한다면 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더라도 밖으로 향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확신이 들었다.
녀석들은 이 거대 몬스터에 소화되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으니 분명했다.
'당장 처리할까? 아직.. 회복이 덜됐고 숫자가 너무 많아.'
바로 처리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부서진 오른 어깨와 팔이 다시 복구 될 때까지 말이다.
그러니 녀석들을 조용히 관찰하고 지켜보며 서서히 계획을 세웠다.
숲에서 고블린을 처음 잡았을 때처럼 말이다.
"레비아탄이 빨리빨리 처리하자고 말할만하군.."
녀석들은 시야가 좁았다. 바로 옆에 있는 먹이도 두리번거리면서 뒤늦게 먹거나 옆에 있는 어인에게 뺏겼다.
느긋했다. 이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눈과 반응이 퇴화되어도 이 거대한 몬스터만 있다면 계속해서 먹을거리들을 잡아 줄 테니까.
겨울잠자는 곰처럼 체력을 아끼고 굶어죽지 않으려고 저런 형태로 진화되었나 싶다.
여기 있는 어인들은 해안가에 있던 어인과는 전혀 다른 종인가 싶을 정도로 달라보였다.
어쩌면 해안가 어인미끼는 일부러 단단하게 만들어, 거대 몬스터가 해안가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려고 한 건가 싶다. 마치 딜러들이 공격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주는 것처럼 말이다.
"벅! 벅! 아옳오!"
"아옳오!"
어인들이 소리쳤다.
나만큼 커다란 거북이를 발견해서였다. 그 쪽으로 모여든 어인들은 움직였다. 거북이를 잡고 줄다리기 하듯이 퇴적물 안에서 거북이를 꺼냈다. 그리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어인에게 보여주고 이내 우두머리와 함께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남겨진 어인들은 다섯.
오른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두세 번 움켜줬다.
'이제 기회가 왔군..'
바닥에 보이는 쓸 만한 뼛조각들을 집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채찍을 꺼내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녀석들의 시야는 좋지 못하니까 최대한 천천히 움직여서 접근했다.
"버..벅..읍!"
-사사삭..푹! 찍...폭! 찍..
어인의 입을 채찍으로 묶고 날카로운 뼛조각을 꺼내 녀석의 심장부분을 세네 번을 찌르고 베었다.
혈관이라고 보이는 부분도 베어버리고 조심히 바닥에 눕혔다.
-툭..
그리고 다음 타깃으로 향했다.
물속을 멍하니 바라보는 어인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말이다. 그대로 물속으로 얼굴 집어 놓는걸 보고 뒤쪽에서 접근했다.
아까처럼 자유자제로 움직이는 채찍으로 소리를 낼만한 곳을 묶고 날카로운 뼛조각으로 녀석을 베어버렸다.
여기 어인들은 단단하지 않아서 좋았다. 통통한 살점이 있어서 조금만 힘을 집중시켜도 녀석들의 몸에 상처가 쓱쓱 생겼다. 이정도면 고블린의 피부보다 좀 더 단단한 정도.
이런 식으로 나머지 3마리도 처리하고 안쪽으로 향하는 입구를 바라봤다.
"...시작해볼까."
사냥꾼으로 살아갈 때 한 암살자를 만나고 배웠던 기술.
오랜만에 사용하는 암살기술들이었지만 녹슬지 않았다.
하나하나 처리하다보면 우두머리까지 잡을 수 있을 거라 봤다.
-싹..싹..
돌아다니면서 바닥에 박힌 척추 뼈를 대충 날카롭게 갈아서 뼈창을 만들었다. 또 암기로 쓸 만한 뼈들을 챙겼고 몸도 거의 다 회복되었다.
준비가 끝났다. 이제는 자신의 집이라고 안전하다 생각하는 어인들에게 깨달음을 주기로 하자. 이곳도 지옥이 될 수가 있다는 걸 말이다.
-처벅..
끈적끈적한 고기 벽에 기대며 조금씩 안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보이는 야광 빛이 보였다.
거북이를 들고 우두머리 혼자서 어디론가 간다.
부하들만 남은걸 확인하고 날렵하게 움직였다.
앉아서 죽은 고기를 먹고 있는 어인의 목을 뼈창으로 뚫어버렸다.
그 옆에 있는 얼마나 고기가 맛있는지 옆에 어인이 죽어도 모르고 있다.
친구역시도 자연스럽게 접근해 발로 정수리를 밀어 찍었다.
앞으로 넘어지면서 앞에 있는 날카로운 기둥에 녀석의 턱을 관통했고 머리끝까지 튀어나왔다.
'운이 나쁜 녀석이네.'
꽤나 굶주렸던 것인가 음식에 한눈이 팔려있었고 조용히 처리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녀석들한테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는 정도였다.
-파악..쭈욱..
이곳 어인들은 고블린들보다 더 약한 녀석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악마의 힘이 나를 더 은밀하고 날카롭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다.
하긴 매일 아스모데우스와 성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지금 최소 하급악마이상 중급악마정도 수준이지 않을까?
이 정도라면 어인정도는 무리 없이 잡는 것은 당연하다고 판단이 섰다.
처음에 만났던 자폭하던 어인은 특별한 것이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곳은 그런 특별한 어인이 없을테니 자신감있게 나갔다.
야광머리 어인이 향했던 곳으로 걸어갔다.
뒤에 수많은 어인들의 시체를 방치한체로 안쪽에서 들려오는 어인들의 외침소리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