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성장
"게이트 속에 늑대는 기본적으로 돌진형태가 많이 있다. 달려온다고 해서 같이 힘으로 찍어 누른다는 건 바보 같은 생각이다.
레벨1의 게이트에 대해서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기본적인 정글지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블린이나 늑대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최대한 처음 공격을 흘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이것들이 기본적으로 된다면, 후에 함정이나 반격을 통해서 처리하는 게 좋다."
수업내용은 정말 기초적인 내용뿐이었다. 좀 더 심화과정을 듣고 싶었지만 아직 초입이라 그런지 내게 유용한 정보는 얻기 힘들었다.
"김보관 교육생에게 질문하겠다. 늑대에게 효율적인 함정이 무엇이지?"
김성수 선생은 코앞에 있는 나를 지목하며 답을 기다렸다.
아직도 어제 일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지 뒤쪽에서 자고 있는 애들보다도 내 쪽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린애 같기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내가 아는 지식을 말했다.
"가시트랩이 기본이며, 추가로 호랑이 덫이 유용합니다. 그 외에 신형 함정이 있지만 1레벨 게이트 안에서 사용하기에는 손해가 있습니다."
"좋다. 역시 KP대표님이 추천할만하다."
뒤끝을 당하지 않기 위해 칭찬까지 하는 김성수 선생의 모습까지 보인다.
전형적으로 서서히 긁는 스타일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띵동~띵동~
"수입이 끝났군. 다음수업은 오크부터 시작하겠다. 그럼 쉬도록."
물론 어제사건 덕분에 칼같이 수업을 종료하는 모습이다.
남을 괴롭히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피드백이 빠른 남자인가보다.
-스르륵.
"너무하네, 보복하는 거잖아 저거."
'응?'
고개를 돌리자 뭔가 날렵해 보이는 남학생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내게 말을 흐리고 있었다.
"누구시죠?"
"같은 반 학생끼리 딱딱하게 시리. 나 김세원이야. 스무 살."
김세원이라는 남자학생은 김성수 선생의 행동이 불쾌하다는 듯 말하며 말을 걸어왔다.
"김보관. 나도 스무 살."
"이미 알고 있어. 소문이 쫙 났으니까."
홀로그램 폰을 내게 보여줬다.
어제, 오늘자 핫이슈 목록에 김보관. KP대표 순으로 이름이 올라온 게 보였다.
"게이트에 휘말렸지만 혼자서 살아 돌아온 학생. 거기에 요즘 세계가 주목하는 KP대표와 관계가 있고.. 모르면 이 세계 사람이 아니지."
"그런가.."
역시 정보와 통신이 활발한 세상이라 유명인들의 정보가 사방으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왠지 아스에게도 부담을 줬다는 생각까지 들어 미안했다.
"별로 안 놀라네. 여유로움이 느껴져. 역시 남부러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김세원이라는 학생은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눈이 있나싶다 아니면 촉이 좋던가 말이다.
"그쪽도 남에게 관심이 많네.“
김세원은 ‘씨익‘ 웃으며 주머니에서 손을 다시 집어넣었다.
"내가 조금 관심종자라서 말이야. 그것도 특별한 사람한테 관심이가거든."
"헌터보다는 기자가 어울려 보이네."
"맞아, 사실 엄마가 SBB기자시거든 태어날 때 그런 쪽으로 유전을 받았나봐. 그래도 난 기자가 될 생각은 없어. 헌터들과 함께 전투 현장에서 놀고 싶거든."
"목적이 그건가."
"눈치 챘어? 조금.. 빠르네.. 흠흠. 접근한 이유는 게이트 팀원 필요해서야 나 네가 마음에 들어."
은근히 내 편이 되어준 이유가 있었다.
하긴 그 이상 내게 뭔가를 바라고 접근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애당초 아카데미에서는 돈이 급해서 입학한 이들보다 권력을 얻고자 들어오는 이들 대부분이었다.
가난한 이들은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는 시간을 아까워했다. 교육받을 시간에 게이트를 한 번 더 가서 마석을 모으려고 했다.
그만큼 아카데미 학생들의 부모들은 모두 재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밑에서 태어난 2세들 역시 엘리트라 생각하고 있었다.
김세원 역시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나를 사용하고 싶어 했다.
지금도 강하게 어필해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만큼 사람을 유혹하거나 끌어들이는 데에는 많이 부족했다.
자신의 원하는 패를 모두 보여줬고, 그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은 순수하면서 순진했고 경험이 적었다 심지어 고위층 아들인 만큼 거절당해본 경험도 별로 없을 거라고 예상됐다. 그러니 당당하게 내게 온 거라고 생각이 됐다.
"나는 그쪽이 별로라서 싫어."
"어..? 왜. 너도 팀이 없잖아?"
"기사내용 봤지 않았나? 게이트 혼자서 살아 돌아온 학생이라고, 나 혼자서도 충분히 게이트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있어."
"그..그런 변수가 있었다니!"
김세원은 예상치 못한 답에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어..어떻게 같이 안 될까?"
"오히려 방해돼. 아니 함께 하더라도 내가 위험해지면 버릴 수도 있어."
"피도 눈물도 없네!"
김세원의 표정이 당황했지만 다시 평범하게 돌아왔다.
"그럴 줄 알고 몇 가지 정보를 준비했지."
"웬만한 건 충분히 받고 살아서 필요 없어."
"공개된 정보가 아니라서 관심 있을걸?"
"..뭔데."
"쉿..내가 엄마 방에 몰래 들어가서 본거 있는데.. 신성국쪽에서 용사를 찾았다는 정보가 있었어. 신기하지 않아?“
!!
나는 정말로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때? 기가 막힌 정보 아니야?"
'그랬군.'
비상계단에서 느껴졌던 숲의 향.
바로 엘프라는 생각이 딱 떠올랐다.
전생에 나보다도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용사라 불리는 인간, 정령왕의 사랑을 받은 엘프여왕, 신성국소속 천사의 대리자 성녀 그리고 마력의 지배자인 대마법사까지. 4인팀으로 세상을 구하며 돌아다녔던 존재들이 많이 있었다.
나처럼 소소하게 악마만 사냥하는 게 아닌 세계의 괴수급 몬스터와 국가 간의 대립까지도 중재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영웅들이었다.
그들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는 말에, 세계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 발생률이 높아진 세계를 구하고자, 신성국 측에서 영웅을 찾아낸 건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
"..나중에 더 정보가 나오면 알려줄 수 있을까? 그럼 함께 팀이 돼 주겠어."
"진짜?"
"정보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도 없으니까."
"아싸! 왠지 촉이 왔었다고 하하!"
김세원은 기뻐하며 내 오른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크게 악수를 했다.
남들보다 빠른 정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유용했다.
공개된 언론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는 게 바로 인간사회였고, 언제나 흑막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김세원 어머님이 발견한 용사에 대한 정보도 신성국의 권력에 막혀 공기화가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컸다.
그 정도로 용사들은 엄청났다.
전생에 소문이 있었다.
검 한 자루를 휘두르면 몬스터 산이 사라졌고, 주문을 외우면 하늘에서 유성비가 떨어지며, 기도를 드리면 죽었던 한 왕국이 복원됐고, 도와달라는 말만 하면 이름 모를 수억 마리의 정령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고..
그 힘으로 마신을 영면에 들게 만들었다.
과장된 소문이라 생각했지만 용사 팀이 모여서 마신을 죽였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정말로 지상에 평화로워졌으니까.
'그건 그렇고 엘프가 왜 고구려 아카데미에 있는 거지?'
관심이 생겼다.
왠지 알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설마..그 엘프.. 혹시.. 정령왕들에게 사랑을 받은 여왕엘프인가? 나처럼 전생자?'
전생의 이들끼리 마주했다.
서로 비슷한 느낌을 주고 떠나갔다. 어쩌면 전생의 운명을 반복하는 이가 나 혼자만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그냥 힘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르고.. 내가 지레짐작한 걸 수도 있고.'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추측만 하고 있는 나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용사들이 나타났다면..
이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에 생각할 변수가 더 많아졌다.
물론 용사일행들과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기 때문에 다짜고짜 나를 죽이려고 들지는 않을 거다.
나를 인지하고 있어도 아마 감시정도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봤다.
웬만하면 마주칠 경우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세계가 용사들을 필요로 하는 만큼 많이 바쁜 이들이었으니까.
주의할 점은 신성국에서 그들을 찾아냈다는 것에서 조금 마음이 걸렸다.
***
아카데미 수업이 끝이 나고 아카데미 인근에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오늘이 바로 정태식과 약속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김보관 여기야 여기!"
어제도 봤는데 왠지 오랜만에 보는듯한 태식이다. 그렇게 식당안쪽 방으로 들어서자 무언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태식이를 다시 바라봤다.
그런데 태식이 옆에 녹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애가 앉아있었다.
오늘 비상계단에서 만난 여자애였다.
예상컨대 전생에 용사의 팀에 속했었던 엘프여왕일수도 있겠다는 여자애다.
또 다시 만난 여자애의 등장으로 당황했지만 애써 웃으며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한번 봤죠?"
"계단에서 제 연락처를 물어보셨죠."
"그때는 실례했습니다. 당신에게 정령들이 붙어있어서 관심이 가서요.. 저도 모르게 그만.. 엘루나라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엘루나씨."
아직까지 내가 전생자라는 걸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그저 정령들이 내게 붙어서 궁금했던 거였다.
일단 엘프여왕으로써 자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정도 정령을 의식한 걸로 봐서는 엘프인게 확실했다. 근데 엘프가 왜 태식이랑 같이 있는지 모르겠다.
"뭐야 서로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어? 후우~"
-팍!
"아야!"
"아무리 고귀한 혈통이라 하더라도 저를 괴롭히면 정령들이 싫어합니다. 용사."
'잠깐.. 용사? 태식이가 용사라고!?'
엘루나라는 엘프에 이어서 또 한 번 놀랐다.
"아니, 나는 용사할 생각 없다니까 그러네. 그냥 헌터해서 이렇게 삼겹살이나 먹고 살거리니까."
"세계의 위기가 오는데 태평한 소리를 하다니요.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요. 차기 용사답게 행동하세요."
오래된 사이인 듯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마치 나와 악마사이처럼 말이다.
여자애가 용사라는 말과 함께 확신이 들었다.
태식이와 함께 있는 녹색머리 여자애는 환생한 엘프여왕이라고 예상됐다.
물론 전생의 기억이 없는 채로 태어난 거 같았다. 마치 아스를 만나기 전 내 모습처럼 말이다.
"태식아 차기용사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진작 말하려고 했는데 기회가 없었네. 내 집안이 사실 용사의 혈통이거든."
"그럼 대단한 거잖아?"
"그렇지 않아.. 하루하루가 지옥수업이라. 너무 피곤해. 난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말이지."
태식이는 용사라는 말에 큰 생각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귀찮아 보였다.
"늘 말하지 않았나요? 용사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요. 계속 어리광부리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걸.. 나보다 뛰어난 아빠도 있고 말이야.. 굳이 나까지 나서야 할까? 엘루나 누나."
이번 생에는 약간 불량한 용사가 태어난 모양이다.
한숨을 쉬는 엘프를 보아하니 느낌이 왔다.
전생에 들었던 그 위대한 소문과는 정반대인 모습이었다.
"멀린이 들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랍니다."
"멀린 누나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
-띠잉.
태식이 뒤쪽에서 응축된 힘이 느껴졌다. 마치 게이트가 열릴 때와 흡사하면서 다른 느낌이었다.
힘 속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 존재가 보였다.
"흠..그래?"
"그래.. 어..어? 멀린 누나 왔어?"
로브를 굳게 쓰고 금색 머릿결을 가진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카임에게 악마의 힘을 건네준 여인과 많이 겹쳐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