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첫번째 용사. 대마법사 멀린
주변이 어두워졌다. 게이트 안쪽 상황을 모르는 만큼 시간 때도 역시 무작위였다.
내가 멀린과 싸우고 있을 때 이미 노을이 지던 시간 때였다.
지금은 어두워져서 시야가 좁혀진 만큼 하루 안에 게이트 정리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방어하기 좋은 공간을 찾아 하룻밤을 숲에서 보내기로 했다.
"불은 제가 피울게요. 불의 정령들아."
"장작은 나한테 맡겨."
엘루나씨와 태식이는 불이 먼저 생각이 났는지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나도 게이트에 들어왔으니, 할일을 찾아서 움직였다. 바위와 나무가 고정된 자리를 찾기 위해 인근을 탐색했고 마침내 좋은 위치를 찾았다.
그곳에 지붕을 만들었다.
바닥을 청소하고 모닥불 자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불 피우세요!"
"어? 언제 이런 곳을 찾은 거야?"
내가 만든 야영지를 보고선 태식이가 불씨를 가지고 들어왔다.
난 따로 밖으로 나갔다.
안전한 야영지를 만들기 위해서 야영지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함정을 설치했다.
나무 주변에 걸려있는 덩굴이나 나뭇잎으로 올가미 함정과 도르래 함정을 만들었고 땅을 파서 날카로운 가시함정을 만들었다.
'이건..먹을 수 있는 거네.'
함정을 설치하면서 식용 가능한 열매나 버섯들을 모조리 채취했다.
그리고 찻잎으로 쓸 수 있는 나무도 발견했다.
배탈에 도움 되는 물을 우려내서 마실 수 있을 거다.
이것저것 모으다보니 내 품안에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한가득 쌓였다. 이제 야영지로 향했다.
"뭐야? 어떻게한 거야?"
"어제 아카데미 수업 중에 다 배웠어."
"대단한데? 진짜로 전문 사냥꾼 같아. 아니 그 이상이야 내가 본 사냥꾼 중에 최고인거 같아!"
"다행이네, 도움이 되었다니 말이야."
자연스럽게 야영 준비하는 모습과 결과물에 많이 놀라고 있었다.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태식이한테는 대단했나보다.
"...혹시 숲에서 살았던 적이 있나요 보관씨?"
"조금.. 연이 있었어요."
"역시나.. 왠지 제 오라버니와 움직이는 게 비슷해서요."
인근 숲을 돌아다니며 식용버섯이나 열매들을 채취한걸 보여줬다. 엘루나가 놀란 눈치였다.
모두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나를 다시 봤다는 표정이었다. 왠지 관심이 가는 눈빛을 보여줬다.
전생에 혼자서 사냥꾼 생활을 많이 했다.
그런 만큼 숲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대부분 알고 있었고 도움이 된 거다.
"함정을 만들면서 열매나 나무 잎사귀들을 봤어요. 이번 게이트 숲은 열대 숲은 아닌 거 같아요. 그러니 밤에 조금 일교차가 있을 테니까 따뜻하게 덮고 잘게 필요해요."
"그건 정령들의 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되요."
어두운 숲을 잘 볼 수 있는 건 숲속에 사는 맹수나 몬스터 그리고 정령들이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물의 정령으로 물을 공급했고, 바람정령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또 불의 정령으로 야영지를 따듯하게 만들었다.
야영준비가 끝이 나서 모두 야영지안에 모였다.
-모닥.. 타타탁..
"홉오크들이니까.. 보스는 아마도 오크종이겠죠?"
"아마 그럴 거예요."
"오크 숫자가 상당히 많던데.."
모닥불 주위에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의견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잘 조율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 팀에 머리가 바로 멀린이었나보다. 하긴 엘루나씨와 태식이 둘이 떨어져서 어디로 갈까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거의 그 자리에 있는걸 보면 멀린이 사전에 말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어렵네.. 멀린누나가 깨어나 있었다면.. 금방 정했을 텐데 말이야."
"깨어나지 않으면 한 번 보스를 찾아볼게."
"위험해, 멀린누나도 그러다가 위험해진 거잖아."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몬스터와 만나서 그런 거였어. 어쩔 수가 없었지. 내가 조심한다면 보스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나숲길을 잘 보거든."
"하지만.."
"가만히 멀린씨만 깨어나길 기다릴 수는 없잖아. 그리고 나 때문에 저렇게 된 거고 만회할 기회를 줘."
적극적으로 내 주장을 어필했다.
가만히 있는 둘을 보면서 추진력 있게 나서기로 했다.
태식의 잠재력은 엄청나지만 전문 헌터가 아닌 아카데미 교육생이라 정해진 방식이나 전투만을 보고 행동하고 있었다.
태식이는 분명 3~4레벨 게이트도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한사람.
멀린이 없으니 팀이 바보가 되어있었다. 좋은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개인적인 판단이 많이 아쉬웠다.
이 상황을 의도한 건가.. 아니 어쩌면 더 위에서 교육시켰을지도 모르지.. 자신의 입맛대로 사용하고 버리려고 말이야.
세계를 구하는 용사팀일지도 모르는 이들이다. 겉보기에는 훌륭한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용당하기 좋은 조련된 개들이었다.
이렇게 만든 건 신성국이 제일 유력했다. 아니면 천사겠고, 사실 멀린의 행동을 보면 조금 이상한 면이 많이 있기도했다.
멀린은 입력된 기계처럼 용사를 키우려고만 했다. 주위가 파괴되어도 냉정하게 태식이의 성장만을 보고 판단했다.
최면이나 암시를 멀린에게 걸고 용사팀을 감시하고 지도한다. 전형적인 사제들 수법이었다.
그렇게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신성국 측에 멀린이 이용당하는 것보다 내가 불편해도 붙잡아 두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식이까지 피해를 보게 둘 수는 없었다. 태식이 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내가 힘들 때 유일하게 힘이 되어준 친구이니까.
멀린이있다면 신성국 첩자로도 이용 할 수도 있테고, 마법사는 여러모로 쓸데가 많이 있으니 당분간은 함께하기로 했다.
어쨌건 다음 계획은 이번 게이트를 나가고 나서 생각할 문제.
-으스스.. 부엉...부엉..
고개를 돌려 입구 쪽 어두운 숲을 바라봤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숲속 안에서 들려오는걸 보니, 다행이도 몬스터들이 이 근처에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먼저 불침번을 설게."
"힘들지 않아? 아까 야영지도 만들었잖아."
"괜찮아, 이 시간 때가 제일 안전하니까."
"알았어."
"푹, 쉬고 있어. 시간되면 깨워 줄게."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태식이가 푹신한이끼 침상위로 자리를 잡는걸 봤다.
태식이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했지만 체력이 많이 소모된 거다.
잠든 태식이를 보고 밖으로 나갔다.
숲이 온통 어두웠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30초를 샜다.
하나..둘..삼십.
30초가 되었을 때 눈을 뜨고 숲속을 다시 바라봤다.
어둠에 적응된 두 눈이 되었다.
달빛아래에 있는 숲이 잘 보이게 됐다.
"숲으로 들어가시게요?"
"엘루나씨.."
숲을 바라보는 데 엘루나씨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무리하시지 마세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태식이와 멀린씨가 저렇게 된 건 제 잘못이 있으니까요."
"충분히 도움 되고 있어요.. 그리고 보관씨 잘못이 아니었잖아요."
"그러더라도 제 스스로 만족하지는 못하겠는걸요."
"그럼 같이 움직여요. 혼자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안돼요. 멀린씨와 태식이가 많이 피로할거에요. 깊게 잠든걸 보니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게 보이고요.. 아무도 없다면 위험해 질 거예요."
"...말려도 소용없겠군요. 그럼 부디 조심해주세요. 당신이 다친다면 태식이도 슬퍼할 거랍니다."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엘루나씨를 남겨둔 채로 숲 안쪽으로 향했다.
"걱정되는데.."
엘루나는 숲 안으로 떠나는 김보관을 보다가 이내 뒤로 돌아서 야영지로 향했다.
"아, 멀린 깨어났나요?"
엘루나는 깨어난 멀린을 바라봤다.
그녀는 누워있는 태식이를 바라보다가엘루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어떻게 된 거지."
"보관씨가 멀린을 업어서 여기까지 데려왔어."
"그 녀석이.."
치욕적인 기억이 들어오는 걸 느낀 멀린은 인상을 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녀석 지금 어디 있지?"
"방금 나갔지. 주변을 탐색한다고 하면서요. 느낌상 보스에게로 가는 거 같은데.."
"...혼자서 말인가?"
-끄덕..
"위험해, 내가 가봐야겠어."
"안돼. 어제 무리해서 기절까지 했잖아 멀린."
"녀석한테 빚이 있어. 갔다 올게."
"후우.. 전부 고집불통만 있군."
엘루나는 먼저나간 김보관과 눈앞에 있는 멀린을 보고 피곤했다.
전부 제멋대로에다가 남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다.
"제가 막아도 갈 거잖아. 갔다 와."
"...고마워 엘루나."
고맙다는 말에 온화하게 웃는 엘루나는 그녀의 어깨를 털어주며 정령의 기원을 일으켰다.
"바람을 일으켰으니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그를 지켜줘."
"알겠어."
멀린은 악마의 힘으로 상승한 자신의 마력을 느끼면서 밖으로 나갔다.
엘루나는 그녀를 보면서 생각했다.
"멀린은 태식이 이외에 신경 쓰는 남자는 없었는데..."
여러 게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이들을 만났었다.
그때마다 자신의 팀이 아닌 타인을 모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방치하고 팀의 계획만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깨어난 멀린은 조금 달라보였다.
"특히나 빚이 있어서 찾아간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어본 말인데.."
엘루나는 떠나간 멀린을 생각하다 이내 태식이의 친구인 김보관을 생각했다.
정령들이 모이는 인간.. 그리고 숲의 동식물을 잘 알고 숲의 길도 잘 보는 특이한 사람.
마치 자신처럼 숲에서 사는 종족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딸칵..
엘루나는 왼팔에 걸려있는 팔찌를 풀었다. 그러더니 녹색머리칼이 바닥까지 길어졌다.
인간의 귀가 뾰족하게 길어졌다.
누가 봐도 엘프의 모습이 된 엘루나였다.
"대지의 왕이시여... 숲의 파수꾼들이여..."
조용히 정령들을 불렀다. 그들의 힘을 사용했다.
엘프가 된 엘루나는 떠나간 둘이 땅위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안심이 되네."
엘프가 된 엘루나는 멀린과 김보관을 만난 걸 느낄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 사이가 상당히 가까웠다. 마치 조금만 더 다가가면 몸이 겹칠 듯이 말이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
땅의 힘만을 사용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궁금증이 생겼다.
왠지 모르게 둘 사이가 관심이 갔다.
***
달빛에 숲의 바닥이 잘 보인다.
오크 발자국..
태식이가 약 30~40마리를 혼자서 잡았다고 했다.
그만큼 체력이 떨어졌고 결국 피로에 쌓여서 야영지 안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
나를 이곳에 데려온 만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유일하게 나를 도와준 사람인데 이것조차 못한다면 다시 태식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 떳떳하고자, 과감하게움직였다.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을 때였다.
"여기 있었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났나.멀린.."
노을이 지던 때, 나를 죽이려고 했던 멀린이 다시 나타났다.
아마 내가 떠나온 시간에 맞춰서 깨어난 듯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용사를 지키고 있지. 왜 따라 나온 거지?"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그림자속에서 달빛으로 걸어 나오는 멀린을 보였다.
복수를 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그게 아니었다.
"아까 전에 하던 거 계속해야지.."
그녀를 보자 한 단어가 생각이 났다.
"미쳤군."
그녀는 발정이 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