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세번째 악마. 나태의 벨페고르
-띠띠리~ 띠리리~
"전화왔다. 잠깐만.."
피자를 먹던 중 레비아탄의 홀로그램폰이 다급하게 울렸다.
"어.. 뭐? 알았어. 금방 갈 테니까 준비해둬."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는지 눈살이 찌푸리는 모습이다.
-뚜..뚜..
"흐으.. 바보 같기는."
연락을 끊고 나서 아저씨처럼 한숨을 쉬는 레비아탄이다. 역시나 무슨 일이 생긴 게 확실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영상 편집을 하는데, 모자란 부분이 있다고 해서 추가 촬영을 들어가야 한다잖아 귀찮게 시리."
"실수가 나왔나보네."
"그런 거지.. 더 같이.. 아니 더 먹고 싶지만.."
"얼른 가봐. 아니면 같이 가줄까?"
"아니야! 나 혼자 갈 거야!"
"왜왜?"
"촬영하는 거 보여주는 거 부끄러우니까. 나중에 촬영된 거나 보라고!"
"알았어 알았어. 일하는데 방해할 수는 없지. 그럼 이따가 집에서 봐."
"으..응."
레비아탄은 본인 입으로 촬영하는 장소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아쉬운 듯한 표정과 함께 남은 피자조각을 한입에 다 넣고 일어섰다.
빨리 일처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려 서두르는 모습이다.
한두 발자국 움직이다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봤다.
"오늘.. 어울려줘서 고마웠어."
"나야말로, 다음에도 같이 피자먹자."
귀여운 짓을 하는 레비아탄에게 손을 흔들어주자.
민망한 듯 몸을 움직였다.
빠르게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그럼.. 나도 돌아가 볼까."
피자집에 혼자 남은 나는 남겨진 피클 한 조각을 씹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값을 지불하고 피자가게 밖으로 나갔다.
고개를 들어 올려서 주변을 돌아봤다.
아스에게도 무언가 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아스 덕분에 좋은 집과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이게.. 여기 있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건 다름 아니 SXT1 본사였다.
한없이 높게 올라가는 고층빌딩을 보고 있으니 목이 뻐근할 정도였다.
"3대 재벌이라는 게 정말인가 보구나.“
SXT1 본사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양한 직종의 회사들도 많이 모여 있는 것도 보였다.
마치 한 나라의 수도처럼 느껴지는 SXT1 본사였다.
그래도 온 김에 가볼까.. 지금 시간이라면 충분하겠지?
주말에 가려고 했지만 동선이 딱 맞았고 시간도 적당했다.
그렇게 전투슈트를 맞추려 도로 건너편에 있는 SXT1 본사로 향했다.
강화 유리로 된 입구에서 부터 여러 가지 기계장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청소를 하거나, 감시를 하거나, 신원확인을 도와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끼릭.. 끼릭..
"어서 오세요. 손님. 이곳은 SXT1 입니다. 신원확인을 위해 3번 자리에 위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로봇의 말을 듣고 나는 홀로그램으로 3번이라고 떠있는 자리로 가서 섰다. 가만히 있자 광선이 온몸으로 비췄고 그중에서 내 주머니 속에 있는 추천서가 빛이 났다.
"홀로그램 추천서가 확인되었습니다. 코드명 데미안. 김보관님 어서 오십시오."
순식간에 신분확인이 되면서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아스가 사는 오피스텔을 보고 감탄했는데 이곳은 그것보다 더 높은 시설들을 가진 것 같아 보였다.
-씨잉! 치긱.! 치긱!
"CP433검사기록 가져와!"
"한조수! 한조수! T샘플!"
내부로 들어가자 SXT1 직원들과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김보관님."
내 출입을 확인한 남성 안내원이 내게 접근했다.
목적을 물어보고 정중하게 안내를 도와주려하는게 보였다.
"전투슈트를 제작하러 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직원분의 안내를 받으며 전투슈트를 제작할 수 있는 목적지까지 향하게 되었다.
저건 신형드론인가..
회사 내에서 이동하면서 여러 가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기계품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연구하고 관찰하는 게 보였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엄청나다. 이정도 크기의 마석이 존재한다니..
본사 중앙에 보이는 거대한 마석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멍하니 마석을 바라보자 직원분이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재앙. 괴수 베히모스를 잡고 나온 마석이지요. 전투슈트의 활약으로 잡은 최초의 괴수이며, 저희 회사의 큰 자랑거리중 하나입니다."
"이게 그럼.. 베히모스 심장. 이렇게 큰 마석을 가져다 놓은 이유가 있나요?"
"물론이죠, 어떤 곳보다도 SXT1 본사의 방어 시설은 세계최고입니다. 그 기반으로 핵발전소보다 수억배 높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저 베히모스 심장을 다루고 도심의 전력을 모두 담당하고 있고요. 들어보셨겠죠? 마석 발전소라고 말입니다."
"아, 개발 중이라고 들었는데 여기선 이미 사용 중이었군요?"
"보통 사람들이 간편하게 사용하게끔 만드는 건 아직 개발 중이 맞습니다. 과거에 있던 수소차를 바로 시민들에게 판매하지 않은 이유처럼 말이지요."
"아하.."
"좀 더 둘러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전투슈트를 만들고 돌아가 봐야해서요."
"알겠습니다. 가시죠."
국가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SXT1인가 보다. 베이모스 심장을 한 기업에 맡겼다니 예상밖의 일이었다.
그만큼 엄청난 신뢰와 함께 나라마저도 의지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신성국이 천사를 믿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좋게만 볼 수는 없겠지..
이런 곳에서 삐뚤어진 길로 가는 경우를 무수히 많이 봐왔다.
물론 현대에 와서 법이라는 성능 좋은 목줄을 사용해서 삐뚤어지지 않게 붙잡고 있겠지만 언제어디서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신 말고는 절대적이라는 건 세상엔 없으니까.
물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지금 내가 할일이나 잘하자..
나의 일이 우선이었다. 악마들을 다시 수집하고 그들의 힘을 키워서 천사들을 압박한다. 그리고 나의 정해진 운명을 부시고, 악마와 천사의 밸런스를 다시 맞춰놔야 했다.
환생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는 늘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서로 견제하며 세상을 바라봐야 그것이 평화였다.
악이라고 지정하고 그것을 멸종시키는 순간 본인이 악이 되는 것이고 멸종당하는 이가 선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멸종위기종인 동물들을 인간의 힘으로 보호하는 모습을 보면 딱 예상했던 모습이었다.
악마라는 종을 내가 강제로 멸종시켜봤으니까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누가봐도 악마는 지금 약자였다.
레비아탄..아스모데우스.
그러기에 내가 일부 악마를 도와주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여기가 전투슈트과 입니다."
"여기군요."
베히모습 심장이 있는 중앙을 지나서 통로를 따라 다른 건물로 들어왔다.
안쪽에 보이는 건 수많은 나노실과 기계들이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헌터만이 사용하는 전투슈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옷이나 신발, 장갑, 투구나 가면까지도 만들고 있었다. 다양한 최첨단 시설들을 보면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쪽으로 가시면 전투슈트제작을 도와주실 제작자 분이 계실 겁니다."
"안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VVIP손님이시니까요."
"제가요?"
"예, KP그룹과 여러 가지 계약과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KP그룹의 도련님인 김보관님을 정중하게 대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랬군요.. 그럼 전투슈트도.."
"그건 아닙니다. 최근에 KP사장님도 전투슈트 한 벌 직접 맞추고 가셨습니다. 그분과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저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5레벨 게이트를 나왔을 때 전투슈트를 입은 아스모데우스르 본적이 있었다.
상당히 고급지고 대천사들이 입을 법한 디자인이었다.
누가 봐도 부티가 온몸에서 흘러나올 정도이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랑 나랑..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라..
아무래도 악마의 힘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와 흡사하면서도 인간과 비슷한 농도를 가진게 바로 악마였다.
그 사이 중앙을 맞추려는 일은 쉽지 않을 거라고 봤다. 전투슈트에서 그 문제점이 보여지고 말이다.
“저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내원이 떠나가는 걸 봤다.
나도 안쪽으로 들어갔다.
-또각.. 또각..
발걸음 마다 소리가 울리는 구역을 홀로 걸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눈에 보이는 건 첨단시설과는 거리가 먼 낡은 시설들이 눈에 보였다.
김세원이 보여줬던 광고에서 보던 거였다. 아마도 여기서 광고를 찍었나 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흠흠..”
내가 낡은 시설을 보고 있자 오크 같은 덩치에 온몸이 근육질이고 수염 털이 풍부한 아저씨가 걸어 나왔다.
"흠.. 손님인가? 제작사 모팔모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김보관이라고 합니다. 전투슈트를 제작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중앙에서 보냈나 보군. 일로와라."
험악한 외모를 가졌지만 목소리는 참 다정하게 느껴지는 제작사였다.
"흐음.. 그래 농도가 높다고?"
"예."
"요즘 들어서 농도가 높은 사람들이 꽤 많구먼."
"그..그런가요..하하."
의도한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잘못을 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기억이 돌아오는 시점부터 악마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뭐.. 그래서 수작업을 하는 우리들이 일이 있는 거겠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군요."
근육을 부풀리면서 자신의 과시력을 보여주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검사해보자."
제작사를 따라가 하나하나 내 몸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대충대충 검사하던 고구려 아카데미와는 달랐다.
정확한 몸치수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 내면에 있는 근육량, 마력수치, 체력, 유연성 등등 세세한 것까지 검사에 들어갔다. 그만큼 시간도 걸렸고 검사를 받는 나도 지치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분야다. 전투슈트종 어느 쪽으로 제작하고 싶나."
"도적이나 사냥꾼계열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음.. 그러냐. 몸과는 전혀 맞지 않는 체질이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법이지."
"그렇죠?"
"그래, 전사나 기사가 어울리는 몸.. 아니.. 또 다르게 보면 마력수치나 신경회로를 보면 마법 쪽에도 재능이 있는거 같고.. 너 뭐냐. 왜 이렇게 다양한데?"
"하하.. 정말로 정상인 수치랑 차이가 있네요."
"아무래도 좋겠지.. 좋아 이제 만들어주마."
모팔모 제작사는 아까 낡은 작업대로 향했다.
나도 그를 따라서 걸어갔다.
-우드득..우드득.. 틱틱틱틱.
그는 몸을 풀고 나서 작업대에 스위치를 올렸다.
여러 가지 도구들을 점검한 후에 나노실과 연결된 기계팔을 착용하고 작업대에 앉았다.
-쉬이잉..끼릭..끼릭.. 취이잉!! 띡..띡..
마치 피아노 연주자처럼 현란하게 손가락들을 움직였다.
전투슈트가 점점 만들어지는 게 보였다.
세세하게 조각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제작사 모팔모는 얼굴이 점점 땀범벅이 되었다.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자신의 흐르는 땀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스스로의 적과 싸우는 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목숨을 걸고 작업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게 장인이라는 건가..
그의 현란함에 나도 조용히 침묵하며 감상했다.
만들어지는 전투슈트는 내가 알고 있던 슈트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마치 하나의 물건을 창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완성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나의 첫 전투슈트가 완성이 되었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결과물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