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세번째 악마. 나태의 벨페고르 (37/153)



〈 37화 〉세번째 악마. 나태의 벨페고르

"어때 마음에 드나?"

모팔모 장인은 완성된 전투슈트를 들고 하얀 이빨을 보여주면서 웃고 있었다.
자신도 결과물에 만족한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입니다."

그가 웃는 만큼 나도 만족했다. 뛰어난 실력으로 실  없이 해낸 작품이었다.
누구보다 본인만이  성공을 잘 알고 있을 거다. 모팔모라는 장인이 웃는다라는건 대부분이 완벽하다는  말이다.


내가 실수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을 거다. 이 정도라면 제작의 삶을 사는 드워프가 만든 갑옷과도 비벼볼만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 입어 보라구 하하하!"

자랑스럽게 웃는 그를 보면서 그 자리에서 나는 붉은표범무늬팬티만 남겨놓고 알몸이 되었다.

"흐응? 겉보기와 다르게 자신감이 넘치는 손님이었나 보군 하하하!"
"사정이 있어서요.."

 팬티를 보고 웃긴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
"고맙습니다."


그가 건넨 전투슈트를 잡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세밀함과 정교함이 보였다.
마치 아스모데우스 오피스텔에 있는 훌륭한 액자그림과도 같아보였다.

슈트를 조심스럽게 입어봤다.
차량매장에서 들렸던 거부반응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경고음이 없자 자신감이 붙었고 손에 힘을 주고 목 끝까지 올려서 입었다.


-꾸드득..

살결을 기분 좋게 조여 왔다.
또 다른 피부가 생긴듯한 감각과 함께 마치 또 하나의 악마를 수집한 느낌이 들었다.


딱, 이거구나 하는 감각을 불러왔다.

"어때?"
"훌륭합니다. 몸을 완전하게 보호하고 있어요. 그리고 미세한 부분까지도 배려하는 느낌까지.. 그런 것들을 떠나서 어떤 옷들보다 편합니다."
"하하! 그렇지! 편안한 옷이야 말로 가장 어울리는 옷이고말고!"

모팔모 장인도 만족스러운 단어를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을 한번.. 사용해 봐도 될까요?"
"물론 시험해봐야지."


그의 허락에 악마힘을 이끌어냈다.
카임의 단검을 연상하고 오른 손바닥에 무기를 끄집어냈다.

-휘리릭..씨잉.

날카로운 단검이 슈트를 통과해 손에 들렸다.

그 순간이었다.


-취이잉! 취이잉!


악마의 힘을 끌어내자 전투슈트의 거부반응이 다시 일어났다.
또다시 일어난 거부반응에 모팔모 장인을 바라봤다.


"흐음.."

거부반응소리를 듣고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거 오랜만에 대단한 적수를 만났구먼."
"죄송합니다."
"아니다, 내가 무능한 탓이지. 손님의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 줘야하는데 실패했으니까. 네 탓이 아니다."


모팔모 장인은 자신이 만족할만한 전투슈트를 만들었지만 거부반응이 나타나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런 몸을 가졌냐고 탓하기 보다는 현재 자신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부르는 수밖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당연하지. 이 집 사장이 나보다 더 뛰어난 장인이라고 예전에 최고의 신발 만들기 시합에서 져버리는 바람에 내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거지."
"사장님이 그 정도라고요?"
"그럼. 사장놈이 대단하긴 하지. 털과 실을 다루는 실력이 말도 안 돼. 그런 말도  되는 짓을 당연하게 하니까 질투심도 생기고 존경심도 생기곤 했지. 내가 추천서  줄테니까 이곳 SXT1 본사 최상층으로 올라가봐."
"갑작스럽게 만나도 될까요? 이제 슬슬 퇴근시간인데요."
"야! 사내놈이 걱정이 많아서 참나! 중요하지 않는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한가지만을 집중해! 전투슈트를 이곳에서 얻고 간다. 그것만 신경을 쓰란 말이다! 우리 회사에는 그런 말 있어. 물건으로 손님을 만족 못시킨다면 집으로 돌려 보내지 말리고 말이야. 손님하나의 부탁하나 만족 못시켜주는데 무슨 세계최고의 기업이냐! 사장까지 불러서 해결해야지! 안 그래!?"

모팔모는 벗은 전투슈트를 잡고 날카로운 레이저 칼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슈트를 찢으면서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적었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그 부족한 결과물을 보고 본인의 손으로 찢어버렸다.


"이게 추천서다 가져가. 사장실 방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서 이거 던져버리라고 그럼 알아서 만들어 줄 거다. 꼭 그렇게 하라고."
"아..네."

모팔모 장인의  어깨를 한대 툭치면서 자신의 작업실로 걸어갔다.
 모습을 보면서 전투슈트를  잡고선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인의 조언대로 사장실로 향하기로 했다.

"결과물은 어떻게 됐습니까?"

슈트제작과를 나오자 눈앞에 남성 안내원이 보였다.


"보다시피 실패했어요."
"흠.. 모팔모님까지 실패한 몸을 가지고 계셨군요."
"뭔가 죄송스럽네요."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죄송합니다. 김보관님의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안내원 역시도 모팔모 장인처럼 내게 미안함을 보내고 있었다.
SXT1의 직원들 자부심이 높은 만큼 손님의 만족도를 높여주지 않으면 죄송하도록 교육했나보다. 이런 마인드 덕분에 3대재벌 아니 세계최고의 슈트제작기업이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장실까지 안내 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승강기를 탑승했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는 승강기였다. 층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회사 내부가  보였다.
드론들이 날아다니고 거대한 기계팔 크레인이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다.
상당히 높게 와서 그런가 창가 너머로 구름층 위로 올라가는 것까지 보였다.

"한고은 사장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성격이 어떠신가요?"
"상당히 부드러우십니다. 모시고 있다는 것에 영광이지요."
"아하.."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꼭 저희 큰누나처럼 포근하시며 자상하십니다. 사장님은 이곳 직원 분들을 소중히 아끼시고 배려심이 깊으시죠. 약간 어머니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러니 저도 10년 동안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고요."

안내자는 사장님을 생각하고 자상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또 사장이 자신의 편이라는  알고 있는지 꽤나 의지하는 모습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는 걸로 봐서는 그만큼 유능한 사장인가 싶다.

광고 속에서 봤던 현란한 제작 솜씨와 함께 경영운영까지도 탁월하고, 이미지까지도 챙기는 실력까지 느껴졌다. 한마디로 천재라고 불릴만한 인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띵.


사장이 머무는 곳 107층에 도착했다.


투명한 승강기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저의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도 퇴근해야할 시간이라 서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결과물을 얻기를 바랍니다. 김보관님. 일이 해결되고 나시면 다른 안내자분이 계실 겁니다."

남자 안내자분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승강기를 탔다.


-시잉..


"잘됐으면 좋겠네."


홀로 남겨진 나는 복도를 바라봤다. 복도길은 깔끔했다. 바닥에 부드러운 양털카펫이 깔려있었다.
사장의 취향인가 싶었다. 복도길을 전부 뒤덮을 정도니까 누가 봐도 그렇게 느낄법했다.
아직 겨울이라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여름에 보면 답답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복도길을 걸어갔다.

보들보들한 벽면을 만지면서  앞에 보이는 사장의 방으로 짐작되는 문으로 향했다.


그래도 총책임자가 있는 장소인데 너무 허술하네.

회사의 최첨단 보안장비들을 믿는 건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서나 직원들이 없었다.
심지어 안내원분도 돌아간 상황이라 갑작스러운 침묵감과 함께 홀로 서있었다.

-똑똑똑.


사장님이 안에 있는 걸로 보이는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락에 문을 밀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엔 아름다운 웨이브헤어가 독보이는 SXT1의 총책임자가 보였다.
책상에 사장 한고은이라는 홀로그램 직함명폐가 올려져있었다.  뒤쪽에서 나를 보고 의자위에 앉아있었다.
눈웃음으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만큼 나도 안심이 됐다.

"전투슈트 때문에 왔습니다."
"연락받았습니다. 모팔모 아저씨가 실패했다고 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여사장님 앞으로 향했다.

"이게 추천서라고.."
"어머.."


가슴팍에 갈갈이 찢긴 슈트와 사인이 보였다.
험악한 모습에 손을 자신의 입을 가리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꽤 뛰어난 아이인데. 냉정하신  여전하시네요."
"저도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네요."
"후후, 역시 제가 인정한 분이시네요. 어디 김보관님 상태를 확인해볼까요?"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사장실 책상 앞에 있는 하얀 의자에 앉았다.

"흐흥, 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거부반응이 일어났군요."
"네,  때문에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혹시 무기를 보여주실  있을까요?"

나는 약간 주춤했다. 악마의 무기를 평범한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에 약간은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도.. 전투슈트를 사용하려면..


끝내 무기를 만들어내기로 작정하고 힘을 일으켰다.
악마 카임의 힘이 손바닥에 뭉쳐졌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그녀가 잘 보이는 책상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무기를 만들어내는 헌터는 희귀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KP사장님이 관심을 가질만 하네요."
"하하.. 그것보다 동생이라.."
"후후, 저희 정보망이 워낙에 특별해서요. 숨기지 않아도 된답니다. 유능한 인재에게 시선이 가는  저희측도 마찬가지거든요."


모팔모 아저씨가 시합에서 졌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사장의 말을 듣고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아스모데우스가 인재를 원한다는 말로 나를 감추고 있었나보다.


서서히 만들어진 단검. 한고은 사장은 서서히 카임의 단검에 손길을 보냈다.
그리고 손잡이 부분을 움켜잡았다.


"아..이건.."

그녀가 악마의 무기를 잡자 작은 말과 함께 침묵하기 시작했다.

"저기 무슨 문제라도.."
"...떠오르네요."
"네?"
"수많은 털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으면서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까와 다르게 악마의 무기를 잡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한고은 사장이었다. 천천히 단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을 핑 돌아서 내게 다가왔다.


10cm 이상의 하이힐과 함께 부드러워 보이는 살구색 스타킹을 신은 허벅지.
잠깐의 시선이 뺏기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까 단검날을 들어서 내 턱밑을 받치고 있었다.

"오랜만인건가? 악마수집가."

-뜨끔.

그녀는 갑자기 입을 열고 수상한 단어를 꺼냈다.
나는 의자를 박차고 뒤로 물러섰다.

"누구지."


-씨익..


한고은 사장은 나를 보고 웃었다.


"그쪽이 나를 찾아와서 깨워 준거지?"
"...정체를 밝혀 천사냐? 아니면 신성국 소속이냐?"
"흐음.. 글쎄.. 나도 지금 기억이 돌아와서 잘 모르겠네."
"기억이 돌아왔다고..?"

한고은 사장은 책상위에 단검을 가볍게 놓고 자신의 책상의자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꿈에서 깨어났어. 아주  자고 있었는데 바로 네가 이곳으로 와서 나를 깨워줬네."


잠을 잤다고 했다. 도통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꿀꺽..

그녀는 안타깝게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악마의 힘도 모조리 사라졌구나. 이거  슬픈 부분이네."


무언가 막혀있는지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만큼의  힘을 네가 가지고 있는거겠지 하얀 아이야?"

그녀가 하얀 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딱 생각나는 악마가 있었다.
어제 꿈속에서 봤던 기억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까먹었던 단어가 갑자기 생각난듯 말이다.

그녀의 여유있는 말투와 부드러움에서 그녀가 누구인지  수 있었다.

"나태... 벨페고르."


한고은 사장은 기억을 잃었던 나태의 벨페고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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