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주인활동
주변에 거대벌레 시체가 너부러져 있다.
시큼한 피냄새와 합쳐진 향이 사방에서 진동했다.
"이런 것들로는 준비운동도 안 돼. 머릿수만 많지 실속이 영 꽝이잖아."
"너무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레비아탄. 꾸준히 하다보면 내공이 쌓이는 법이니까~"
"이놈들로 무언가가 쌓이긴 할까? 이럴 줄 알았으면 4레벨로 오는 거였다고."
게이트 현장 속에서 아쉽다고 느끼는 레비아탄이다.
반대로 벨페고르는 오히려 가볍게 몬스터들을 전멸시킨 것에서 만족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취향차이인가 싶다.
내 힘을 증진시키기 위해선 어느 한쪽으로만 따르기보다는 두 악마가 주는 내용들 속에서 잘 골라서 들으면 될 거 같았다.
"그런데.. 보스는 어디 있을까?"
"음..아마도 저기가 아닐까? 꼬마주인?"
"저건.. 건물?"
벌레떼들을 상대하는 동안 게이트의 보스가 나타나지 않았다.
벨페고르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마침내 발견했다.
협곡 안쪽에서 보이는 녹슨 건물이 보고 가리켰다.
"일단 가보자고! 더 센 놈이 있는 게 확실해 보이니까!"
의기양양 레비아탄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별다른 방법이 없겠지 꼬마주인?"
"그러게.."
나와 벨페고르도 레비아탄을 뒤따라갔다.
협곡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서진 잔해들과 기계 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이것들 처음 보는 부품이네. 역시 외계행성이 확실해보여."
벨페고르는 신기한 듯한 기계부품을 들고선 관찰하고 있었다.
-띡..띡..슈이..
"아~이렇게 쓰는 거구나."
"그거..위험한 거 아니야?"
"응, 맞아 기체 폭탄이니까."
"폭..폭탄!?"
"걱정 안 해도 돼."
-휙!
벨페고르는 기체폭탄이라는 것을 저 멀리 정면에 보이는 건물 입구에다가 힘껏 던졌다. 상당한 거리였는데 근력만으로 저쪽까지 던져버린 거다.
투척 후에 몇 십초 뒤에..
-콰쾅!! 으드드드..!
엄청난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파편들이 날아들었다. 일부 절벽이 폭발 때문에 금이 가는 게 보였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됐다.
"주..죽을라고 작정한 거야!?"
"호오, 실수실수 이정도 화력일 줄은 몰랐네."
벨페고르는 레비아탄한테 멱살을 잡혀있는채로 흔들거리고 있는데도 재미있는지 웃고 있다.
"다들 저것좀 봐 그 정도 폭발이 있었는데 건물이 전혀 부서지지 않았어."
"진짜 그러네."
"저 정도 폭발이면 SX뭐시기 빌딩도 방어가 될까?"
"물론 안 되지. 그래서 건물 안으로 더 들어가고 싶네 저기 궁금해."
처음엔 절벽보다 튼튼한 건물의 내구성을 보고 감탄했다.
그다음으로 이곳 방어시설은 현대 기술력으로 불가능한 방어기술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흥미가 생긴 그녀다.
그녀의 예상대로 고도로 발달된 건물이 아닐까.
"재미있어 보여~"
아까는 레비아탄이 먼저 앞장서서 갔지만 이번엔 벨페고르가 먼저 앞서 나갔다.
폭발로 인한 먼지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벨페고르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같이가! 벨페고르!"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벨페고르인데 나와 레비아탄은 그녀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무언가 홀린 듯이 걸어가는 벨페고르 그리고 그녀 머리 위로 무언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그걸 보고 나는 소리쳤다.
"벨페고르 위!"
"어라?"
-쿵!! 꿀꺽..
"벨페고르!"
기계로 된 거대한 파이프관이 벨페고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를 삼키는 듯한 행동과 함께 뱀처럼 움직이는 파이프관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감히 벨페고르를!"
레비아탄은 자신의 동료가 빼앗겼다는 것에 화를 내며 악마의 힘을 끄집어냈다.
날개와 뿔이 생기며 되돌아가는 파이프관을 보고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나도 하이오크의 힘을 끌어올리며 뒤따라갔다.
레비아탄이 빠르게 접근하는데 성공했고 수압이 담긴 주먹으로 파이프관을 강하게 후려쳤다.
-꽈지지직!
파이프관 입구가 뜯겨 나가면서 그곳을 레비아탄이 잡아당기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입구에서 푸른 불길이 일어났다. 레비아탄은 얼굴을 막으며 바닥을 굴렀다.
"윽..! 건방지게..!"
다시 한 번 도약하는 레비아탄.
하지만 기계 파이프관은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폭발도 견딘 견고한 녹슨 건물만이 보인다. 뒤늦게 도달한 레비아탄은 건물을 무자비하게 내려쳤다.
"야! 문 열어! 문 열라고! 벨페고르! 벨페고르!"
-퉁..퉁..
그녀의 강력한 수압이 담긴 주먹에도 꿈쩍도 안하는 건물이다.
건물 외부에 무슨 보호막 같은 게 쓰여 있는지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몇 번이고 있는 힘껏 내려치다 이제야 도착한 나를 돌아봤다.
"주인..벨페고르가.."
"걱정 마, 벨페고르는 쉽게 당하지 않으니까."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에 슬퍼하는 레비아탄이다.
"그렇겠지..."
"우리는 빨리 들어갈 곳을 찾아보자. 버티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
-꿀꺽..꿀꺽..퉤..
벨페고르는 기계 파이프에 삼켜져서 건물내부로 들어왔다.
은색의자 위로 뱉어진 채로 앉았고 자신의 머리 위에 깜박거리는 전구등이 깜박거린다.
"으음~ 건물 내부는 이렇구나?"
납치당했지만 여유롭게 주변을 바라보며 구경하는 벨페고르다.
"...어서 오십시오. 지능체."
"누구니?"
"찌지직..저는 A13-44 시설 보안프로그램 아서라고 합니다.. 당신 같은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꼬마야? 그럼 넌 생명체가 아니네?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이구나?"
-티깅..티킹..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보안프로그램 아서라는 실체가 서서히 보였다.
거대한 인간의 뇌에 형형색색의 전선줄과 연결된 기계장비들.
마치 기계장비들을 곤충의 다리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뇌몸통과 기계장비들로 움직이는 몬스터가 벨페고르의 눈앞에 나타났다.
"꼬마라기엔 조금 클까?"
"좋을 때로 불러주십시오."
외눈렌즈로 벨페고르를 바라보는 인공지능 아서는 날카로운 레이저 칼을 그녀의 풍만한 가슴 쪽으로 들이 밀었다.
-휘이잉..우웅..우웅..
"당신과 같은 지식을 가득 담을 수 있는 신체가 필요했습니다.."
"내 몸이 필요하다라.. 음, 그건 힘들겠네. 난 이미 주인이 있는 몸이라서 후후."
"당신에게는 거부권은 없습니다. 이곳에 지배자는 저 아서 이니까요."
"그래?그럼 내 주인보다 나를 즐겁게 해준다면 네 말을 따르겠어. 어때 한번 해보겠니. 꼬마야?"
"좋습니다."
은색의자에서 일어난 벨페고르는 서서히 자신의 주변에 검은 양털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의 뿔이 나타나면서 나들이 할법한 하늘거리는 옷에서 노출이 심한 전투슈트로 변신하는 모습이다.
"핥짝.. 이리와.. 귀여운 꼬마야."
***
"기기.."
"레비아탄, 여기 구멍이 뚫려있어."
"정말이네."
레비아탄과 나는 벨페고르를 구하고자 녹슨 건물 주위를 돌아다녔다.
또 다른 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른 문은 없었다.
그래도 창문이나 건물과 연결된 하수도가 있을 수도 있기에 구석구석 찾아봤다.
그러던 중에 발견한건 무언가가 파고들어간 건물 외벽이 있었다.
"기믹이가 찾았어."
"역시 미믹은 이런 곳을 좋아한다니까."
"기기.."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자세를 낮추고 기어서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로 했다.
-지지직..지직..
건물 벽이 무슨 전산망같이 느껴질 정도로 여러 가지 신호가 왔다 갔다 했다.
무슨 신호를 보내는지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 건물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다 왔다.. 그런데 여기는.."
"공장이나 실험실 같네."
빛바랜 붉은 줄 선이 무너진 건물잔해 밑에 깔려있는 게 보였다.
잔해들을 치워서 그게 뭔지 확인해봤다.
붉은색 해골표시와 함께 폐쇄시설, 접근금지 흔적이 보였다.
"그랬었나.."
게이트를 통해서숲 안으로 들어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공기가 가둬져 있는 느낌 그리고 이형의 거대벌레들이 숲을 점령하고, 발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바닥까지.
"뭘 좀 알겠어. 주인?"
"여기가 어떤 곳인지 대충 예상이가.. 여기는 버려진 실험장 같은 게 아닐까?"
"버려진 실험장..?"
"새로운 무기나 개량된 생명체를 시험하거나 개발하는 장소."
"아.. 뭔지 알 것 같아. 냄새나는 리치들이 시체를 가지고 실험하는 던전같은 거 말하는 거지?"
"뭐..어찌 보면 비슷하네."
-지지직..
그녀야 말로 레비아탄이 전기가 튀어나오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 같은 말을 하니까 왠지 소녀가 아닌 언데드 같다.
-쿵..쿵..
"이 소리는.."
"누군가 싸우는 소리야."
"벨페고르!"
"지하다! 서두르자!"
무언가를 강하게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어갔다.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복도길을 따라가서 내려가는 곳이 보였다. 부서진 계단밑으로 내려갔다.
굳게 닫힌 문이 나타났다.
나는 악마의 힘으로 발로 차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끼릭..끼릭..
"으..읍! 썩은 냄새..!"
안으로 들어가자 고기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검은 핏물이 바닥을 채우고 있다.
"쿠륵..크아?"
끝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서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그 존재가 눈앞에 보였다.
"이건 또 뭐야.."
레비아탄은 눈앞에 있는 대상을 보고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의 반은 사자와 같은 동물이고 또 다른 반은 기계 부품이 조합되어 있었다.
그 괴물의 기계손에는 머리와 다리가 없는 인간여성의 시체를 들고 있었다.
새로운 게이트 일 텐데 인간헌터로 짐작되는 시체였다.
"쿠르르.."
"기계랑.. 생명체가 붙어있어."
"역겨워..."
-우드득..
이형의 몬스터를 보고 한마디씩 하자 몬스터의 등 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저거..우리가 오기 전에 잡았던 거대벌레들 다리지."
"맞는 거 같아."
기계와 동물, 심지어 곤충까지 합성된 키메라.
어떤 미치광이 과학자로 인한 광기에 물든 결과물이었다. 무슨 실험을 주제로 계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고어적인 모습에 속이 울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벨페고르는 어디 있어! 당장 쳐 죽여 버리기 전에대답해!"
나도 레비아탄과 같은 마음이었다. 당장 저 괴물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카임."
-우적..뿌드득..우드득..
괴물의 손에 들린 여성의 상체를 힘 있게 움켜주니 핏물이 쫙 뽑혀 나왔다. 그리곤 그 상태로 자신의 입에 여자시체를 던져버리곤 서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튀어나가 녀석의 발목의 힘줄을 노렸다.
아무리 기괴한 괴물의 몸을 가졌어도 몸이 큰 만큼 균형 잡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발의 신경이 끊기면 제대로 설수 없으니 쉽게 전투를 이어나가고자 했다.
-휘리릭! 까앙!
“흡!”
카임의 단검이 녀석의 발목을 베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질겨서 단검이 녀석의 발목 중간쯤에 박혀들었다.
"피해 주인! 얕아!"
어쩔 수 없이 카임의 단검을 포기하고 괴물의 곤충의 발들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멀어지자 밑에서 오우거 샤크가 나타나 녀석의 몸을 박치기했다.
-쿵!
단검으로 인해 다리가 불편한 괴물은 레비아탄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박혔다.
흡사 거대한 배가 상어를 박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이 물난리가 나며 난장판이 됐다.
주변의 검은 핏물들과 썩은 시체들이 터져 나가는 게 보였다.
"괜찮아 주인?"
"괜찮아.. 그보다 그 괴물은?"
"저기 머리만 남아서 굴러다녀."
"쿠륵.."
일그러진 벽에 박혀서 꿈틀거리는 괴물이 보였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네."
"머리만 남고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그렇겠지?"
"벨페고르도 저런 거와 싸우는 중일까?"
"그렇다면 빨리 찾아야지."
이들은 내가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는 게이트 몬스터였다. 심지어 본적도 없는 괴물들이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고 있었기에 벨페고르와 빨리 합류해야했다.
-끼릭...릭..
하지만 앞길을 막는 존재들이 많았다.
"한 놈이 아니었어."
"계속 귀찮게 하네!"
다시 단검을 새로 뽑아 들었다.
레비아탄 역시 물이 담겨진 주먹을 움켜쥐고 다가오는 괴물들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