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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신성국 탄생일 (64/153)



〈 64화 〉신성국 탄생일

"둘은 역시나 오시지 않으셨네요."
"예상대로네요.."
"슬슬 성당으로 돌아가 봐야할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녀님."
"저야말로 오늘 너무 즐거웠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영화 보러 가실래요?"
"좋습니다."

부탁하는  힘들어하는 헬레나 수녀가 이번엔 용기내서 내게 말을 해줬다.
그런 헬레나 수녀를 위해 긍정적인 답변으로 웃어줬다.
헬레나 수녀도 내 대답에 웃어 보이며 몸을 돌렸다.

...

서서히 멀어지는데 이름 모를 아픔이 있었다.
수녀의 감정이 아니었다. 이건 내 마음이었다.
나는 이미 수녀를 알고 있었다.

최근에도 비슷한 느낌이  경우가 있었다. 바로 악마들 말이다.

수녀를 보고 기침이 나오다가 끊긴 상황같이 답답했다.
그렇게 멈춰서 생각하다 나는 갈증을 풀기 위해 소리쳤다.

"헬레나 수녀님!"
"네?"

나를 돌아보는 헬레나 수녀를 보고 뛰어갔다.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소리나 했다.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지 않으셔도.."
"제가 하고 싶습니다."
"아..그러시나요. 그럼 함께 가시죠."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을 여인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가까이 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냥꾼의 감도, 악마의 느낌도 아니었다. 마음이 시키는 이상한 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지금 안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행동했다.

-처벅..처벅..

"보관님은 제게서 무언가 느끼신 건가요?"
"그런 거 같습니다."
"혹시 아련함인가요?"
"...비슷한 거 같습니다."

헬레나 수녀도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말을 했다.

"최근에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꿈.."
"저는 이름 모를 작은 소녀였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한 사냥꾼을 따라다니는 꿈이었습니다."
"..."
"사냥꾼은 제가 방해가 된다고 하며 도망 다녔습니다. 아마도 제가 약하고 보잘것없어서 밀어내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눈앞에 사라져도 발자국을 보고 따라갔고.. 따라갔습니다."

나는 헬레나 수녀의 꿈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계속 말을 듣고 있었다.

"저는 사냥꾼을 따라가다 악마를 만났습니다. 악마는 저를 붙잡았습니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아랫입술을 물었다.

"소녀는 악마로 부터 저항하다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소녀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건 몸이 찢어지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 사냥꾼님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었습니다."

"수녀님.."

"저를 괴롭히던 악마들이 사라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때 나타난 건 따라다니던 사냥꾼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저를 구해줬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냥꾼이 싫어하는 보잘것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냥꾼은 일그러진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죽어 가는 게 감사했습니다. 그가드디어 저를 봐주고 안아줬으니까요."

-또각..또각..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꿈속이야기에 취해서 헛소리를 하고 말았네요."
"...아닙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요."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관님."
"혹시 쉬는 날이 언제인지  수 있습니까? 영화한편 또.. 같이 보고 싶습니다."
"벌써요?"
"네, 꿈속에 있던 바보 같은 사냥꾼의 행동을 들으니까 답답합니다. 이번엔 잘 챙겨주는 사냥꾼이 있어야 할거 같아서요."
"아..그렇습니까.."
"꼭 여기서 약속시간을 잡고 가겠습니다."
"웃.. 저도 좋습니다."

-끼이익..쿵..

헬레나 수녀의 미소를 보면서 나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과거에 소녀가 내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약속을 했다.
내일 모래로 말이다.

헬레나 수녀는 전생에 나를 따라오던 굶주린 소녀다.
악마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마을 안에서 혼자 버텨내던 다 죽어가는 소녀였다.
내가 빵 하나 주니 나를 따라온 소녀였다.
결국  때문에 죽어버린 소녀이기도 했다.

그 소녀가 다시 태어나 나를 만난 것이다.
내가 악마들을 다시 만난 것처럼 말이다.

헬레나 수녀는 나와 같은 전생자였다.

***

게이트 안에서 4명이 나왔다.

-지지직..!

"아아, 오늘도..수..수워월.."

멀린이 완드를 들어올렸다.
태식이는 본능적으로 살기를 감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제 수..수련한게 부족해 보이네. 아카데미에 보고하고 수련이나 해야겠다!"

살기를 감지한 태식이가 떠나갔다. 드디어 교육이 된 태식이가 보였다.

역시나 용사라고 불릴만했다.

보통사람은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태식이는 바로 습관이 바뀐 모습이다.

"보관씨, 오늘도 멀린씨와 같이 가실 거죠?"
"아니요. 오늘은 일이 있습니다."
"네에? 아..그러시지 마시고.. 저 조금 힘들어서요."
"아침에 해드릴게요."
"흑..너무해요."

엘루나씨가 울상이 되었다. 2순위로 밀려났다는 것에 실망감이 커보였다.
지금은  보이는 엘프귀가 풀죽은 강아지처럼 축 처진 모습일 거 같았다.

"엘루나. 적당히 해."
"그래도.. 말했잖아. 엘프 발정기라고.."
"쉿! 민망하지도 않아?"
"민망하긴..! 숨기면 영원히 해소되지 않아! 수십 년간 그렇게 숨겼지만 나만 손해였다고..! 이제 주변에 알리고 해소할거야!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까 흑흑.."

엘루나씨는 우는 연기를 하면서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안 통해요."
"너무해요..!"

엘루나씨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리곤 입술을 쭉 내민다.

언제 봐도 예쁘게 되는 엘루나씨였다.
조금 덤덤한 멀린은 한숨을 쉬며 엘루나씨의 엉덩이를한대 찰싹하고 때렸다.

"아읏..왜..왜 그러는데?"
"집착이 심한 여자는 피곤할 뿐이야. 너도 본인 관리나 좀 하시지. 남자들이 실증나지 않게끔."
"알고 있다고 멀린.. 이러면 보관씨가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겠죠.."

싸움이후 멀린이 주도권을 조금 가진 모습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상황을 알려주면서 등교 만남을 가졌다.

엘루나씨의 배와 귀가 민감하다고 했고, 그쪽으로 공략하면 된다고 엘루나씨가 있는데도 대놓고 말을 했다.

수치심을 느낀 엘루나씨는 얼굴에 있는 눈을 두 손으로 가리며 내 성기를 음부 안에 넣은  위아래로 허리를 흔들었다.

"싫어하진 않아요. 단지 약속 때문에..”"
"정말요?"
"물론이죠."
"그럼..당장 화장실에서라도.. 조금만.."
"내일이요."
"정말 단호하시네요! 단팥빵, 단호박인 줄 알았어요!"

어떠한 유혹에도 끄떡없는 나를 보고 결국 포기하는 엘루나씨였다.

"내일 배로 받을 거예요."
"조금 봐주세요. 엘루나씨."
"내일 하는 거 봐서요!"

심술이 생긴 엘루나씨는 혼자서 앞으로 나아갔다.
멀린은 그런 엘루나씨와 나를 번가라가며 본다.

"가요. 저는 괜찮아요."
"알겠어.내일 봐."

엘루나씨 정도의 흥분은 아니었지만 멀린도 내게 아쉬운 눈빛을 보내며 엘루나씨에게 갔다.

둘에겐 미안했지만 선약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전생에 못해줬던 게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나라서 지금은 헬레나 수녀에게만 신경 쓰고 싶었다.

"발람."

둘을 떠나보내고 나는 조용히 몸을 투명하게 감췄다.
둘이 나를 따라올 거라고 확신이 있었다. 그럴 거라고 둘을 믿었기에 몸을 숨겼다.

이내 헬레나 수녀가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

"흠.."

오랜만에 단정하게 옷을 입었다. 전생에 고통 받았던 소녀를 위해서 예를 표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살아 있는 만큼은 항상 웃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고통 없이 생을 살았으면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비슷하게 수녀님을 여동생처럼 느껴졌으니까.

-똑똑.

성당 뒷문에서 문을 두들겼다.
헬레나 수녀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끼이익..

헬레나 수녀가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수녀님."
"안녕하세요, 보관님."
"오늘 영화를 같이 보실 수 있죠?"
"...네?"

헬레나 수녀는 그게 무슨소리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엊그제 약속했던 영화 관람이요. 잊은 신건 아니시죠?"
"보관님.. 저는.. 모르는 일인데요?"
"그게 무슨.. 저희 약속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영화를 같이 보자고 약속했어요. 정말로 기억나지 않나요?"
"아...네..죄송합니다. 보관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영화를 같이 봤다는 기억도 없는 듯 했고 나를 보고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다.

헬레나 수녀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착각한 모양이네요. 들어가 보세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보관님.”
-...끼이익..철컥.

바로 알았다.
누군가 분명 기억을 건드렸다는 것을 말이다.

꿈을 말하던..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던..  소녀의 기억을 지웠고 나와의 작은 추억을 없애 버린 게 확실했다.

“누구죠 헬레나 수녀.”
“아..대주교님. 용사팀에서 같이 활동하는 헌터님이었습니다.”
“호.. 헌터가 직접 찾아오시다니 큰일이 있었나봅니다?”
“아닙니다.. 약속으로 오셨다고 했는데..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주교님...”
“후후..헌터님이 착각했다는 뜻이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우드득..

성당 내부에서 대주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금니가 부서질 듯  물었다. 당장이라도 신성국 내부로 쳐들어가서 관련된 이들과 천사들의 멱살을 잡고 심판대 위에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내가 혼자가 날뛴다면 그동안 참아왔던 과정들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였다.

나는 입안에 핏물을 맛보며 분노를 삼켰다.
그리고 바로 뒤돌아서 게이트로 향했다.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어디에서라도 분풀이가 필요했다.

***

-쾅!! 쾅!! 쾅!!

온몸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하이오크의 몸이 아닌데도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느껴졌다.

"크르릉!!"

눈앞에 거대한 맹수가 보인다.
호랑이나 표범 보다 두세 배는 커 보이는 야수형 몬스터였다.

"이리와."

맹수들을 수집가의 차가운 분노를 느끼고 움찔거렸다. 공포감과 함께 몸이 잠깐잠깐 멈췄다. 마치 게임 속에서 렉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크르르.."
"안 오면 내가간다."

-씨이잉!!

레벨 6 게이트.
혼자서 클리어하는 것 자체가 힘든 장소였다.
하지만 김보관은 달랐다. 달려들지 않는 맹수들에게 오히려 다가가며 단검을 찔렀다.

-콰직! 빠각! 서걱!! 끄르르륵!!

야수들의 질긴 가죽과 고기들을 도축한다.
온몸에 뜨거운 핏물들이 번져갔다. 그것들보다 더 뜨거운 분노가 내 몸을 지배했다.

신성국에게 실망했고, 천사들이 그것들을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치솟았다.

"크어어엉!!"

나를 위협하는 괴음이 들렸다.
한쪽 눈을 잃은 거대한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보스 몬스터였다.

"니가 모두를 지배할 정도로 그렇게 강한가?"

달려드는 보스에게 말했다.
녀석은 대답 없이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올 뿐이었다.

-땡그랑..

카임의 단검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 거대한 악마 힘을 응축시켰다.

"크라라라!!"

돌진해 오는 거대 맹수의 코를 보고 주먹을 내질렀다.

-쿵..!! 파팍팍!!

주변에서 충격파가 터졌다. 이후 작은 진동과 함께 후폭풍이 일어났다.

-뚝..뚝..뚝..

오른손을 봤다. 손가락이 전부 부러지고 아작이 났다. 핏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부모님과 소녀의 고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다.

"기다려 신성국. 수천 년간 해먹은 방식을 내가 부셔 줄 테니까."

예전에 봤던 고블린처럼 머리가 터져버린 외눈맹수다.
그 보스 옆구리에 올라타서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들은 부모님과 함께 자신을 사랑해준 소녀까지 건드렸다는 것에 용서할 수가 없었다. 정의와 법, 규칙으로 세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약자들의 기억까지 억압하고, 통제하는걸 보고선 구역질이 일어났다.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잠깐이지만 과거의 집행자 역할로 돌아가기로 했다. 악마의 집행자가 아닌 신성국의 집행자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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