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세번째 용사. 성녀 헬레나
"저도 은행을 들려야 하는데 그럼 같이 가시죠 헬레나 수녀님."
"그래주시면 감사합니다. 보관님."
물건을 처리하고 나서 레전더리 은행으로 같이 향했다.
"여기가 은행이라는 곳이군요."
"음식을 저장하는 냉장고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재산을 보관해두는 곳이죠."
헬레나 수녀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황금 조각상과 이상한 미술품들과 오래된 책을 로봇들이 옮기고 있는 모습들이 무지한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이쪽 방안에 있는 은행원분이 계좌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실 겁니다. 일이 끝나면 연락주세요."
"아.. 저는 홀로그램폰이 없어서요. 은행에서 보관님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랬었죠. 알겠습니다."
김보관은 떠나고 안내해준 방안으로 들어가는 수녀였다.
-스르륵.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개인계좌를 만들고 싶어서 왔습니다."
"네, 혹시 게이트 헌터이신가요?"
"아..아카데미에서 A반에 속해 있어요.."
"방금 전에 오셨던 김보관님과 같은 팀이시군요?"
"신성국 측의 계약기간동안이지만.. 같은 팀이긴 합니다."
"알겠습니다. 전문급 헌터로 측정하겠습니다. 수녀님께서는 기본적으로 계좌와 연결된 헌터 서비스와 레전더리 할인을 이용하실 수 있으시고요. 한 달에 한번 500만원이하의 제품 중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구매하실 수 있으십니다. 홀로그램폰과 연동시켜드리겠습니다. 전용 폰을 허공에 열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홀로그램폰이 없어서요.."
"음.. 알겠습니다. 혹시 신분을 증명할수 있는 카드가 있으신가요?"
"혹시..이거라도.."
"신성국 로자리오 목걸이군요."
수녀는 목걸이 끝에 작은 은십자가를 꺼내서 올려놨다.
은행원은 은십자가를 받고서 옆에 있는 기계위에 올려 논다.
그러자 허공에 수녀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나타난다.
"신성국 대주교가 인정한 수녀님이 맞으십니까?"
"네?"
"최근 천사님의 계시를 받으셨고.. 총 37번의 게이트를 클리어 하셨네요. 클리어 레벨도 최대 6레벨. 전문급 헌터로 확인 되었습니다."
"거기에 기록이 나와 있나요?"
"수녀님의 로자리오가 신성국 서버에 연결되어 있으니 충분히 신분을 증명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게이트 클리어 정보는 멀린 마법사님이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나타나네요."
헬레나 수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알게 되었다.
멀린도 그렇고 엘루나도 그렇고.
여기까지 함께 온 김보관도 말이다.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수녀였다.
"5분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개인계좌 기능과 함께 로자리오 내부에 홀로그램폰 기능을 넣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도 되나요?"
"네, 혹시 그건 불편하신가요?"
"아니요,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헬레나 수녀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대답한다.
여러 가지가 좋아진다는 것에 선물 받은 어린애가 되어 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업그레이드된 로자리오 목걸이가 생긴 헬레나 수녀였다.
볼일이 끝나고 김보관을 기다리기 위해 방에서 나갔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근처 자리에 앉았다.
-띵동~ 44번님. 띵동~ 46번님.
다른 사람들은 숫자가 적힌 번호표를가지고 은행원에게 가고 있었다.
수녀는 다른 방안에서 바로 볼일을 봤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약간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나왔던 방 입구에 Vip라는 문구가 보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자신만 특별대우를 받은 느낌이었다.
"수녀님 계좌는 다만 드셨어요?"
"아..보관님 다 만들었습니다."
수녀는 십자가를 보여줬다. 그리고 홀로그램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번에 폰도 생겼네요. 제 연락처 등록해주실 거죠?"
"물론이죠. 보관님 덕분이 생겼는데요."
수녀는 웃으면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나서 은행을 나갔다.
***
보관과 헬레나 수녀는 도시의 길거리를 걸어갔다.
볼일이 끝나서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수녀님, 뭐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아니요.."
"음..아까 보니까 영화 포스터를 계속 보고 계시던데."
"아..그..그게요."
"하하, 괜찮습니다. 수녀님이라면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삶을 살았을 테니까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영화본지가 오래돼서요. 같이 보러 가실래요?"
"영화를요?"
"네, 방에 가셔도 혼자 있으면 심심하실 거 같은데.. 신성국도 철수했다고 들었고요."
"그렇긴 해요.."
"그럼 결정됐네요. 영화 한편에 팝콘 가시죠."
"아...네네!"
부끄러운 수녀였지만 기분만큼은 좋아졌다.
그토록 바라던 영화를 처음으로 볼 수 있어서 말이다.
헬레나 수녀는 수도원에 버려진 아기였다.
홀로 살아야했으며 사람들에게 구박과 폭력을 당하면서 살아갔다.
늘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인정하고 시키는 것만을 따르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 헬레나 수녀는 본능적으로 관심이 가는 일이생겼다.
바로 TV에서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에 빠진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욕심 없는 자신이었지만 배우와 연기자들을 보고 부러웠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언제나 힘든 시작을 했지만 끝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걸 보고 자신도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에 사는 천사의 명을 받아 수녀로서 발탁되었기에 원하는 길은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니 큰 영상관에서 영화작품을 보고 싶었다. 비록 자신이 영상 속 여주인공은 되지 못했지만 그들이 어떻게 울고 웃는지 보고 싶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고 해피엔딩을 보고 싶었다.
"영화. 작은 희생자 어떠세요?"
"네, 좋아요.. 보관님은 작은 희생자 보셨나요?"
"...아니요, 저도 처음 봅니다."
수녀는 기뻐하며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하지만 보관이는 살짝 씁쓸해하는 기분을 흘렸다.
그렇게 둘은 영화관안으로 향했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영화가 끝이 날 때까지 즐겁다가 웃었다가 슬퍼하다가 하는 마음이 흘러갔다.
수녀는 마지막 남은 희생한 헌터의 편지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여기 손수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보관님..흑..흑.."
손수건의 그림을 한번 보고 눈물을 닦아냈다.
"오늘 어땠어요?"
"...아 재미있었어요. 보관님. 오늘하루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늘 저희 팀을 치료해주시는데요. 빚이 아직도 많습니다."
"아..아니에요."
수녀는 민망했다. 그렇게 크게 다칠 일도 없었고 계약 때문에 팀 옆에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위급하거나 궁금한 일이 있으면 연락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보관님. 보관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보관이는 수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수녀의 곁에서 멀어졌다.
도시의 거리를 걸어갔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쓸쓸함과 함께 외롭다고 느껴졌다.
"기억이 돌아올 리가 없지.. 루시퍼본인도 천사인줄 알고 있는데.."
기억의 자유마저도 뺏어간 신성국을 생각하니. 악한 감정만 퍼져나갔다.
그나마 자신과 악마들이 나서서 멈췄기에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헬레나 수녀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비록 자신을 못 알아보지만 말이다.
"저기요! 저기요! 보관님!"
"어..? 헬레나 수녀님?"
당황함과 함께 헬레나 수녀가 나를 쫓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옆에 지나가고 있었지만 내 눈엔 수녀만 보였다.
수녀역시도 나만을 보고 있었다.
"손수건이요! 가져가셔야죠!"
"아..그렇군요."
숨을 크게 쉬는 헬레나 수녀에게 다가갔다.
"다음에 만날 때 주셔도 되는데.."
"아니.. 그게 손수건 빌려주셔서 고마워서요. 당장 주고 싶은 것도 있고요."
"네..?"
수녀가 건네는 손수건을 받았다. 그러면서 내 손을 잡는 헬레나 수녀였다.
"꿈속에 사냥꾼님. 드디어 만났네요."
"...수녀님. 기억이."
뭉클해진 수녀가 보였다.
수녀는 나를 꽉 안았다.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왜..왜..또 도망가는 거예요."
"...그게..미안해요."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기억이 나니까요."
수녀는 내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매우 복잡한 감정들이었다. 서러움과 기다림.
자신을 구해 줄 거라고 믿고 있던사냥꾼에 대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과거의 마음들을 생각하며 서로를 안았다.
그저 오래된 인연을 만나 감정을 나눴다.
***
헬레나 수녀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공원에서 함께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켜졌고 풀벌레들 소리가 공원 안에서 들렸다.
그런데도 공원 벤치에 앉아서 수녀와 많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말이다.
"그때 사냥꾼님은 저를 때어 내려고 하셨군요.."
"나는 악마를 사냥해야했어. 내 곁에 있으면 넌 무슨 일이 있어도 살해당하니까."
기억을 찾은 헬레나에게 전생자라는걸 알렸다.
헬레나도 자신이 손수건을 잡고 눈물을 닦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을 했다.
"저는 그래도 좋았어요. 사냥꾼님은 저희마을의 영웅이였으니까요. 죽더라도 사냥꾼님 곁에서 죽길 원했어요."
"그래도.. 살아있는게 좋아."
"아니요. 저는 사냥꾼님 없이는 살아가지도 못 했을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갔어도 노예가 되었을 거예요. 누군가에게 잡혀서 몸이 팔리고.. 부유한 집안의 성노리개로 사용되었겠죠. 차라리 그런 거라면 마을의 한을 풀어주신 사냥꾼님의 노예가 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홀로 남은 소녀의 뒷이야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줬다면 끝까지 책임 줘야했다. 대천사 라구엘이 내게 제노사이드를 건네 준 것처럼 말이다.
소녀가 다가오는 게 싫다면 처음부터 빵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 헬레나는 내가 죽인거랑 다름없었다.
"내 잘못이야. 끝까지 함께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끝났어도 다시 사냥꾼님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
"헬레나."
헬레나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이번엔 떨어지지 않게 저도 강해지겠어요. 가치 있는 여자가 되서 사냥꾼님 곁에 붙어 지낼 거예요."
"아..그게.. 나는 지금도 악마를 잡고 있고.. 위험해. 나는 신성국도..읍.."
변명하는 내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 헬레나였다.
"전생엔 사냥꾼님이 그렇게 했으니까.. 이번엔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이것만은 양보 못해요."
"읍..하.. 나보다 잘난 사람들 많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
"전다시 기억을 찾은 이유가 사냥꾼님과 맺어지게 하려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끄으.."
헬레나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알던 수녀의 모습이 많이 벗어나고있었다.
"그러니까.. 저도 엘루나님처럼.. 함께 할 거예요."
"뭐..?"
"모르는척하지 말아요. 저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요."
"아무 짓도 안했어..!"
"게이트 안에서 엘루나님이 제게 말하셨거든요? 보관님이 계속 생각난다고 하면서 몸을 투명하게 만드셨죠."
입단속을 위해 족쇄를 걸었던 나다.
하지만 족쇄를 걸기 전엔 엘프의 입이 더 빨랐다.
설마 전생의 기억을 찾게 되면서 전에 있었던 엘루나씨 기억까지 되살아날 줄이야.
"위험할거야.."
"또또.. 그래서 저는 악마들한테 죽었다고요 흑..흑.. 또 저 혼자 내버리실 건가요.."
"아..아니 그게 아니라..“
“흑..흑..”
“알겠어..그만 울어."
우는척하며 미소를 짓는 성녀였다.
사냥꾼은 그녀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