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다섯번째 악마. 분노의 사탄
"여기가 B반층 앞으로 저쪽 B-1반에서 수업 받을 거야."
"뭐야, 같이 못 있는 거야?"
이번 편입에 합격한 레비아탄이다. 레비찡이라는 헌터아이돌로써 끊임없는 활약과 함께 권력의 힘과 친한 주변 귀족악마들의 입김으로 최종합격에 성공했다.
그래서 오늘부터 고구려 아카데미의 교육생으로 다니게 된 레비아탄이었다.
"지금은 같이 못 있지만.. 점심 먹을 때 내가 레비한테 찾아갈게."
"레..레비. 맞아 여기선 그렇게 부르기로 했지.. 앗! 오..오지마! 무슨애도 아니고! 나도 멀쩡한두 다리가 있거든! 흥!"
레비아탄은 자신을 챙겨준다는 것이 부끄러운지 틱틱거렸다.
별거 아닌 일인데 역시 레비아탄의 속마음은 잘 보이면서도 잘 모르겠다.
"...내가 갈 테니까.."
"응?"
"내가! A반으로 갈 테니까! 오지 마!"
"알았어. 알았어."
"칫..바보같이 웃기는.. 가."
"있다가 보자."
"걱정도 하지 마! 어린애 취급도!"
-또각! 또각!
고구려 아카데미 제복을 입은 붉어진 레비아탄이 빠르게 구둣발을 옮겨 자신의 반으로 들어갔다.
꽤나 귀여운 레비아탄을 머릿속에 기억하며 나도 승강기를 타고 A-1반으로 이동했다.
-드르륵..
A-1반으로 들어섰다.
"이제 오셨네?"
"네?"
싸늘한 분화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교실 안에 있는 교육생들도 나를 보는 눈이 이상했다.
마치 걱정하는 눈빛들이었다.
"엎드려."
"그게 무슨.."
-퍽!!
분화선생의 발길질로 인해 몸이 기울어졌다.
웬만한 힘으로는 나를 넘어뜨리기 힘들었다.
난 그만큼 강해졌고 무엇보다 인간이 아닌 천사와 악마를 만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게 뭐가 대수라는 듯 나를 무너뜨리는 분화선생이다.
"끄응.."
아카데미 A-1반 교실바닥에서 엎드려 자세로 벌을 받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화선생은 간간히 내게 육체적인 재제를 가했다.
이번에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내 등위에 올라타서 사악하게 웃고 있는 붉은 머리, 구릿빛 몸매를 가진 여선생.
"소홀해지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멋대로 지각했다라.. 내가 우습나?"
시계를 봤다.
늦은 건 고작 10초정도였다.
A-1반은 수업시간이 시작되기 몇 분전 모두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다.
분화선생한테 벌 받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물론 그런 말을 분화 선생이 했어도 그녀가 수업시간 정각에 온 적이없었다. 오늘 말고 말이다.
남에게는 철저하면서 본인에게는 관대했다. 상당히 이기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도 직위상 선생과 제자관계라고 막 대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번에 편입한 아이를 안내해줬습니다.. 그래서 늦었습니다."
"그건 그 녀석이 알아서 할일이고 너는 내 반 학생이다. 내 말을 먼저 생각하는 게 우선이 아니냐. 깡통."
분화선생은 내게 별명도 지어줬다. 잘 맞아서 소리가 찰지다고 하면서 깡통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기분이 나쁘지만 그렇다고 A-1반을 뛰쳐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전문허가증만 받고 나오는 일만 생각하고 있는 나였으니까.
그런 것과 별개로 A-1반에 있는 A급 헌터교육생들은 땀을 흘리며 나를 보고 있다. 저러다 자살하는 게 아닌지 아니면 포기하고 퇴학하던지 말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잘 안내해줬고?"
"...그렇습니다."
"그거 참 다행이네."
-씨익.
여선생은 내 등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엎드려 있는 내 얼굴쪽으로 가까이 왔다.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인다.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재미있는지 아니면 끝까지 버티는걸 보고 쓸 만한 애라고 생각하는지 꽤나 즐거워한다.
"이쯤 해두지. 자리로 돌아가."
"알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가운데 있는 내 자리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사방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안타까워하는 시선이었다. 그런 눈빛을 보내고 있었고 다들 주먹을 움켜쥐며 '화이팅!' 이라는 무언의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었다.
"깡통이 말한 대로 이번 아카데미에서 대량의 편입생을 입학시켰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다들 기합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명성이 자자한 고구려 길드 부길드장이 선생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다들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분화선생의 미움을 내가 모두 받고 있는 터라 다들 크게 혼나는 일은 없었다.
다른 교육생들에게 보여주는 벌은 거의 애교수준이었으니까.
고작 레비아탄이 고구려 아카데미에 편입하게 되어 여러 가지를 알려주다가 늦은 것이다.
마치 억지로 나를 혼내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 분화선생이다. 크게 벌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약간 자존심을 건드는 느낌이랄까.
뭐 이런 식으로 한명만 크게 혼을 내고 분위기를 잡는게 분화선생 스타일.
아마 나는 그녀의 도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뭔가 있었는데.. 그래 요번 주에 행사가 있다. 1:1 데스매치형 헌터시합이 요번 주부터 시작하니까. 다들 참여해라."
"헌터시합.."
"드디어 온 건가."
헌터시합 일명 헌터 투기장이라고불리는 아카데미의 경합문화다.
전생에 있던 투기장의 문화가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고, 아직 전문적으로 활동하지 않은 헌터 교육생들이 사회에 어필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스타가 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카데미 A~D반까지 모두 참여가 가능하며 0년차부터 4년차 교육생 모두 출전이 가능했다. 고구려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백제 아카데미, 신라 아카데미 등등 다양한 아카데미 인원들이 참여하는 대회였다.
"자, 여기 있는 22명이 다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내라. 1등부터 22등까지 A-1반으로 채운다. 만약에 22등 안으로 들지 못하면 내가 친히 보충수업을 해주마."
"아아..!"
"그럴 수가!"
다들 조용히 지내려고 했지만 스승은 자신의 학생들을 가볍게 키우지 않았다.
모두 지옥으로 내몰아서 아카데미 졸업 후, 전문헌터 랭킹 상위권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선생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역시나 A-1반의 학생들은 모두 헌터 투기장에 강제로 참여하게 만들었다. 이게 바로 분화선생의교육법이었다.
참여해서 수준 높은 헌터들과 대결하는 것도 두려웠지만 요번 주가 지나고 후에 있을 분화선생의 보충수업이 모두를 두렵게 만들었다.
나도 최근에 직접 보충수업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다른 교육생들이 두려워할만한 하드 트레이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추가로 잔뜩 화난 분화선생의 정신공격을 받아야한다는 정도.. 그러니 싫어할만한 수업이었다.
"특히 깡통 너는 5위권 안으로 들어 알겠지?"
"...알겠습니다."
"훗, 당당한 그런 자세 마음에 들어."
역시나 나는 분화선생에게 찍힌 만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더 큰 목표점과 함께 불가능한 시험을 내줬다.
아마 그만큼 나를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분화선생이 하는 행동들이 그렇게까지 짜증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말이다.
"자, 그럼 오늘 수업 잘 받고 헌터시합 다 신청해라이상."
***
"조졌구나."
"젠장 집에 가고 싶다."
"어떻게 22등 안에 드냐고!"
분화선생의 일방적인 악행에 약한 A-1반 교육생들은 모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모두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결과를 보고 두려워하고 걱정했었다.
하지만 사실 마주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과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평범하게 나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보관씨는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옆에 있는 여자 교육생이 나를 보고 물어왔다.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생각보다 재능이 뛰어난 아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빙결계의 힘을 사용한다던 교육생이었나..'
설녀의 후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았다.
"대단하시네요.. 보관씨는요. 다른 교육생들은 모두 떨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신가 봐요."
"저도약간 긴장은 됩니다만.. 막상 세상을 경험해보면인생은 이런 일보다 더 큰일들이 많더라고요."
"훗.. 할아버지 같은 말을 하시네요."
가볍게 웃는 여학생.
그렇게 교육생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안갈 거야?"
"어? 언제 왔어?"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바라봤다.
다름 아닌 레비아탄이 두 옆구리에 손을 올리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약간 짜증이 난 모습이다.
"먼저 갈 거야."
"아, 같이가! 레비!"
찌릿하게 나를 한번 바라보고 이내 '흥!' 하며 교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보곤 레비아탄을 따라갔다.
"바보같이 암컷을 보고 실실대기는.."
복도길을 걸어가는 레비아탄의 작은 혼잣말이 들려왔다. 사냥꾼인 만큼 한 존재를 집중하면 아주 작은 소리도 들리는 능력이었다. 아무래도 여학생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에서 질투가 났나 보다.
"그런 거 때문이었어?"
"그런 거라니! 내가 왔는데도 보지도 않고!"
레비아탄을 따라잡은 나는 웃으면서 레비아탄을 바라봤다. 그런 모습도 싫은지 레비아탄은 화를 냈다.
"나는 신경도 안 써주고."
"아까는 어린애처럼 보지 말라고.."
"으으.. 그거랑은 다른 거라고!"
레비아탄은 일이 잘 안 풀리자 입술을 쭉 내밀며 나를 바라본다. 뭔가 원하는 게 있는데 자신도 그게 명확하지 않은지 고민한다.
이제 막 마음을 이해하는 악마라 그런지 마음조절이 잘 안되나 보다.
"레비, 나는 교육생들과 그냥 대화할 뿐이야. 그런 거 말고 진실 된 내 마음을 가진 건 레비아탄과 악마들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비겁하게 그딴 소리만 하고.. 알고 있지만 왠지 짜증이나.."
"나는 레비아탄이 1순위이니까."
"...정말이지?"
"물론. 나는 악마의 힘이 없는 존재들에게 발정하지 않잖아?"
레비아탄의 기분이 살짝 돌아왔다.
서서히 질투심을 지우고 자신의논리를 맞춰나갔다.
차분하게 현실을 보자 불만이 있어서 튀어나온 입도 들어갔다.
"또 감정적으로만 행동했네.. 후우.. 어린애처럼 굴어서 미안해."
"아니야, 나도 레비를 많이 생각 못했지."
그렇게 작은 일을 해결되었다.
"오? 아침에 안내해줬던 친구인건가?"
"분화선생님.."
갑작스럽게 구릿빛 붉은머리의 여선생이 등장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와 레비아탄을 번가라가며 바라본다.
"넌 또 뭐야."
"너라고? 제법 당돌한 교육생이잖아?"
레비아탄과 분화선생 간에 푸른 기운과 붉은 기운이 마찰을 일으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신경전을 하면서 노려본다.
-씨익.
레비아탄을 마주한 분화선생은 웃는다.
"이름이 뭐지?"
"레비..다."
"레비라.. 아 레비찡. 그 유명한 헌터 아이돌이구나."
"칫.."
레비아탄은 자신의 정보가 들통 나자 한방 먹었다는 지 혀를 찼다.
"굴복하지 않는 투기. 마음에 들어 너 내 학생해라."
"싫어. 내 길을 네가 왜 정해?"
틱틱거리며 거부하는 레비아탄.
그것마저도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유지하는 분화 선생이다.
"훗.. 무뚝뚝한 너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아..흥! 누가 한 쌍이라는 거야!"
기분 좋아진 레비아탄은 애써 부정하며 자리를 피했다. 땅만 보며 복도 길을 걸어 나갔다.
"좋은 여자 친구를 뒀어. 깡통."
"그렇죠."
"훗.. 가봐 점심 잘 먹고."
그렇게 나는 멀어지는 레비아탄을 쫓아서 걸어갔다.
"....약간은 부러울지도."
분화선생은 혼잣말을 흘리며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