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다섯번째 악마. 분노의 사탄
A-1반의 담당 교육자인 분화선생.
처음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입한 레비아탄의 의견과 그녀와 계속 부딪치는 상황 속에서 서서히 그녀를 의식하게 됐다.
"화낼 줄도 알고, 웃을 줄도알고 있네."
"저 사람입니다만.."
"알고 있어. 교실에서는 그렇게까지 웃는걸 못 봤으니까. 감정이 없는 깡통인간인줄 알았지."
분화선생이 내 근처에 자주 보인다는 사실을 의식한건 레비아탄이 주의하라고 나서부터였다.
예전부터 생각해보니, 저번 주도 그렇고, 월요일도 그렇고 어제도, 지금도 내 근처에서 붉은머리칼을 휘날리며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나타났다.
"그런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내 눈앞에 있지."
오늘도 어김없이 말을 걸어오는 선생이다. 경고를 하던 레비아탄의 감이 적중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요번 주 내내 지금처럼 내 근처에 나타났고 자주 만나서 부딪쳤다.
"이제 장난은 그만하지? 선생."
"레비, 어때? 오늘은 내 학생할거냐?"
"싫다고 몇 번을 말해! 그거 말고!"
"크크, 참 마음에 든단 말이야 너란 학생."
"으으! 따라다니는 약꼴남이나 너나 다 귀찮게!"
내가 레비아탄과 함께 웃으면서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자 어디선가 분화선생이 나타나서 방해공작을 펼쳤다.
특히나 레비아탄은 짜증이 많이난 상황이다.
"왜 이렇게 저를 따라다니는 겁니까?"
"무슨소리 우연이라고 우연."
"우연치고는 너무 제 앞에 자주 나타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뭐 하러 너를 따라다니는데?"
"그건..."
"제자를 지켜보는 건 내가 늘 해오던 교육이라고 특히."
-툭.
분화선생은 내 정수리에 손바닥을 올리며 사악하게 미소 짓는다.
"너같이 재능 있는 녀석들은 더욱 말이지. 선생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이..이게! 보관..이는 내거라고!"
"아아, 물론 너도 관심 있어 내 학생하자."
"이상하게 알아듣고 너! 귀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레비아탄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분화선생한테서 빼온다.
그리고 날카롭게 분화선생을 노려본다.
"하하. 재미있어. 이즈음하고 오늘 시합이 있다고 하는데 탈락하지마라. 탈락하면 다른 애들과 달리 넌 지옥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야만여전사처럼 터프하게 웃는 분화선생은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갔다.
"위험한 인간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천하의 귀족악마인 레비아탄이 위험하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분화선생은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현 시대에 오면서 영웅이라는 전생의 힘을 가진 이들과 함께 천사와 악마들만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세계랭킹에 올라온 헌터라는 존재들과 함께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 위협 그리고 신성국에서 말한 마신병이라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세상을 변했다는 걸 서서히 알아가게 됐다. 그러니 위험기준을 다시 설정해야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래도 당장은 위험하지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레비."
"어..언제 내가 걱정을 했다고! 흥! 시합이나 이기라고! 나는 약한 녀석은 싫으니까! 아무리 주인이라고 해도."
틱거리면 일어나는 레비아탄이다. 그러면서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갔다.
왠지 분화선생과 레비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물론 둘의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시합도 안했는데 벌써 피로하네."
그렇게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
"26일 오후 헌터시합 예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위치는 도심 속 가운데에 있는 헌터공용 체육장.
국가가 지원해준 장소이며 예선전이 시작되는 장소였다.
고구려 아카데미 제복이외에도 백제 아카데미 제복과 신라, 가야 등등 다양한 아카데미 헌터생들이 보였다.
"쟤.. 그 녀석 아니야?"
"어..맞다. 신라 아카데미에서 1등이라고 불리는 신궁 화랑."
이목이 집중되는 곳을 봤다.
매를 어깨에 올리고 눈을 감고 있는 남자다.
유명 영상물에 나왔던 유명헌터다. 날아오는 수백 마리의 박쥐몬스터를 엄청난 속사로 전부 적중시키는 어마 무시한 천재였다.
"저분은 하늘 창기사!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씨바거.. 젠 어떻게 이기냐."
백제 아카데미의 2위 하늘 창기사 자룡.
창을 던지고 그 창을 타고 다닌다는 말도 안 되는 무예를 가진 천재였다.
그만큼 다양하고 강한 이들이 헌터시합장 안으로 들어섰다.
단순하게 지켜볼 이들이 아니었다. 다들 한 가닥하는 헌터들뿐.
천재도 천재들이지만 레비아탄처럼 현역으로 뛰고 있는 자들이 헌터 아카데미에 오는 경우도 많이 있었기에 지금 이 시합은 정식랭킹 대결시합이라고봐도 무방했다.
그만큼 클라스 있는 이들이 모여 있었고 나도 봐주거나 적을 만만하게 보는 자세는 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분화선생님이 정해준 5위안에 들기를 성공하려면 악마의 힘까지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있었다.
물론 악마의 힘은 내 힘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순수 내 힘으로 이 대회를 지낼 생각이다.
같은 사람인데 비겁하게 두개의 힘을 사용하는 건 내 스스로도 싫었으니 평범하게 가기로 했다.
-휘리릭. 덥썩.
그래서 지금도 카임의 단검이 아닌 헌터단검과 암기, 트랩, 사슬등등을 지원받아 경기를 임하기로 했다.
비겁해 보이는 무기들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헌터 시합은 살인 빼고 모든 게 가능했다.
헌터 자체의 목적은 바로 게이트 내부에 있는 몬스터 퇴치였다.
그만큼 살상기술을 가르치고 습득하게 만드는 교육장소가 바로 아카데미였다.
몇몇 규칙이 있지만 대부분 전투에 큰 영향이 가지 않았다.
시합은 당연히 1대1 전투방식.
한명이 전투불능이 되면 경기가 끝이 나고 신성국 출신인 수녀와 여러 힐러헌터들이 나서서 잘려나간 신체와 정신을 치유시키고 마무리 짓는다.
참여자들은 끝까지 이겨서 1위를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1-1경기장으로 신라 아카데미 화랑선수! 백제 아카데미 근초고! 오십시오!"
첫 경기가 시작됐다.
활을 들어 올리는 화랑.
한손방패와 한손 검을 들고 있는 근초고의 대결.
저 멀리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칭! 사각!
"오오! 오오!"
"예선전인데 치열한데?"
화랑이 수많은 활을 뿜어내고 있지만 방패를 이용해서 따라붙는 근초고가 보였다.
'힘들 텐데.'
몬스터와 헌터의 차이였다. 아무 생각 없이 헌터한테 들어 박는 몬스터와는 달랐다.
헌터는 공격과 방어를 자유자재로 선택하고 판단했다. 그리고 함정을 팠다.
"끼이익! 끼이익!"
"으..으.."
이내 매를 이용해서 근초고의 기세를 저지하며, 다시 자신의 공격권을 가져오는 모습이 보인다.
"매를 사용한다!"
"저거 2대1 아니냐?"
"아니야, 등록된 무기라고 나와 있어."
"저 매가 무기라고!?"
"화랑의 활은 맹금목라고 마석을 이용해서 매의 영혼을 불러온다나.."
"신기하네.. 그런게 있다니."
"레전더리 팰리스에서 77억에 낙찰.. 역시 레전더리인가.. 상상하지도 못한 보물과 무구들이 있다고 하더니.."
헌터들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자신에게 맞는 무구를 찾는 것도 중요했다.
지하철에서 사람의 신발을 보면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달랐다.
그만큼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전부 달랐기에 각자의 무기들이 찾는 것도 일이지만, 그 무기에 적응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게 그 시간을 견뎌낸다면 보다 높은 경지로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칭! 사각!
"끼이익! 카악!!"
2대1의 공세가 시작되고 그렇게 화랑이 이길 거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저건!"
"고기가시방패다!"
근초고의 원형방패가 갑자기 가시가 튀어나왔다.
날아드는 매가 수많은 가시에 박히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시작된 근초고의 반격.
굳건하게 막다가 끝내 화랑을 잡아내는 그림이다.
"...예선전에서 쓰기 싫었지만 상대가 상대다보니. 어쩔 수 없었어."
근초고의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숨겨진 패를 꺼내고 승리를 따냈다.
"와..예선전이 이정도인데 결승은.."
"그러게 말이다."
"결승은 중계도 한다며?"
"그뿐이냐. 더 나가서 엄청난 규모야. 한양경기장 안에서 수만 관객들 앞에서 방송 탄다고."
"오오! 나도 결승가고 싶다! 방송타고 싶어!"
다들 놀란 모습이다.
유명한 신라 아카데미의 화랑이 승리할거라고 봤지만 근초고의 승리.
역시나 헌터와 헌터 대결은 몬스터 사냥과 다르게 대결간의 변수가 많은 대회였다.
"1-4경기장으로 백제 아카데미 자룡선수! 고구려 아카데미 김보관! 오십시오!"
'왠지 기대되네.'
전생 때와 달랐다.
변화하고 진화하는 세상이었다.
다양한 전투와 방식이 생겼고, 그만큼 변수도 많았다.
나도 여러 범죄자들과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했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궁금증과 호기심 또 기대감이 생겼다. 악마들처럼 전투에 대한 재미가 생겨버린게 아닐까.
전생에는 혐오하고 관심 없었던 일들이었지만 이제는 나도 달라졌나보다.
과거에 악마를 싫어했었지만 현재는 좋게 생각했고, 성관계와 여성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전투에 대한 욕구가 치솟았다.
예전엔 승리에 대한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이기고 싶다.
결승전에서 강한 상대와 싸워보고 싶었다.
"자! 선수 마주보시죠!"
하늘색창을 가진 긴 머리의 미남자가 보며 기다린다.
하얀 용의 갑주를 입은 그는 노려보며 각오를 다지는 듯 보였다.
"두 선수는 정면에 보이는 홀로그램 신호를 보고 맞춰서 전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준비."
-띵!
-띵!
소리와 함께 신호등처럼 녹색불이 3개가 보였다.
그리고 초당 1개씩 사라지는 게 보인다.
-띵!
마지막 초록불이 사라지고 나서 홀로그램 또한 사라졌다.
동시에 하늘색 창을 들고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백제아카데미 자룡이 보인다.
돌진해오는걸 보며 접근과 맞춰서 여유 있게 피하기로 했다.
"하늘창."
자룡은 꽤나 먼 거리 인데 말을 흘린다. 그러면서 창을 허공에 찌른다.
-후웅! 파앙!
어이없는 녀석의 창찌르기를 피했다고 생각했다. 거리도 있고 피하는시간도많이 있었다.
하지만 접근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문처럼 외운 녀석의 말과 동시에 총탄 비슷한 것이 어깨를 때리고 지나갔다.
"윽..!"
암기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치고 나서 속도가 느려진 물체일 텐데 나를 타격하고 나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권해라. 넌 나를 못 이긴다."
자룡은 나를 보고 험악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어 보였다. 꼭 승리해야한다는 표정이다.
"기권? 무슨소리. 나한텐 포기 같은 건 없어. 5위까지는.."
"그래? 아쉽군. 누굴 고통 주는 건 싫었는데 말이다."
창을 들고 다시 내 쪽으로 달려오는 자룡이다.
아까와 똑같은 자세다.
"하늘창."
녀석은 또 기술을 사용하면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날려 보냈다.
나는 옆으로피하며 직선경로를 피했다.
-휘이잉..!
"어림없다."
피했지만 피한 경로를 따라서 내 쪽으로 창을 내려친다.
역시나 꽤나 먼 거리였다.
하지만..
-빠각!!
"아!"
투명한 것이 내 명치를 치며 나를 뒤쪽으로 밀어냈다.
"콜록...콜록.."
"기절하지 않고 버티다니. 제법 매집이 있군."
순간 기도를 막고 쇼크를 주려는 모양이었나 보다.
하지만 상당한 기간을 단련한 나였기에 뼈와 근육으로 버텨냈다.
그래도 타격이 꽤 있었다. 웬만한 몬스터와 평범한 헌터생들은 살점이 뚫려 나갔을 거다.
"콜록.. 꽤 재미있어 그거."
"지고 있으면서 재미있다...?"
"잠깐 뭐하는지. 몰라서 당해준 것뿐이지."
"내 힘의 비밀을 알아챘다는 거냐? 단 3번의 공격으로 말이냐?"
"대충은."
"웃기지..마라! 하늘창!"
거짓된 말이라 생각하고 다시 한 번 기술을 날려 보내는 자룡이다.
하지만 나는 품속에서 단검을 뽑아들어 올렸다. 그렇게 녀석의 기술을 막았다.
"아니! 어떻게!"
자룡은 어이없이 나를 바라보며 소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