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다섯번째 악마. 분노의 사탄
헌터시합 8강이 있는 날.
아침에 마몬이라는 거유무표정악마가 발목을 잡긴 했지만 그녀를 욕정을 만족시켜주고 나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물론 그 뒤로 마몬 말고도 아스와 벨페고르가 나타나 유혹하긴 했다. 아직 남아있던 욕정과 함께 그녀의 탐스러운 몸매에 눈길이 갔지만 시간관계상 오늘은 일과를 마치고 밤에 함께하기로 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악마로 태어난 그녀들을 밀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과거에 인간들의 타락을 이끄는 악마들의 마음은 참으로 참기 힘들 정도로 유혹적이며 위험했다.
마몬과 성관계를 다섯, 여섯 이상 가지지 않았다면 야한 눈동자를 가진 두 악마들에게 끌렸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당했다면 8강전 시합은 기권이 됐었겠지.
그 정도로 매력적인 악마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을 밀어내고여기 경기장에 온 만큼 성과를 얻어 가야 한다.
시합에서 승리하는 건 좋은 일이다. 내 커리어에 헌터시합의 결과가 남으니까.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역할을 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으로태어났다면 당연하게 생각할 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있었다.
앞으로의 거대한 싸움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성장이 필요했다.
일단 현대 세계의 전투형태는 어떤 식으로 자리 잡고, 살아남았고 유지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수천 년이 지난만큼 다들 살아남기 위해 진화 했을 거다. 다양한 헌터 능력자들과 기발한 전투방식을 가지고 있는 헌터생들이 많이 있었기에 그들을 마주치고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들을 방식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물론 시합 상대는 무지막지하게 강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그들로 인해 재미있는 전투방식에 눈을 떴고 방식을 이해했다.
8강까지 올라오면서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재미도있었다.
'이런 식으로 전투욕망에 빠져드는 건 좋지 못한 방법이지만.. 이제는 상관없지.'
악마의 힘을 다루는 내겐 이제 자제심은 역효과였으니까.
"어이 형씨 싸움 잘할거 같은데?"
한 한생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그쪽도 그래."
"난 이겼으니까 위에서 만나자고 형씨~"
어딜 가나 싸움은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었다. 싸움에서 진 패배자는 희생과슬픔을 낳았다.
패자는 모든걸 뺏기고 약한 이들은 자신의 대를 잇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렇게 승리자들은 이기적인 진화가 가능했다.
음욕이나 탐욕처럼 전투욕망 역시도 생명체들의 본능과 운명이다.
싸움역시 마약이나 도박 같은 심리적인 중독 증세가 있었고 자신이 강하다는 걸 늘 증명하고 싶어 했다.
본능적인 강함.
강한 씨앗을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는 자신감.
약한 이들을 죽이고 많은 것들을 빼앗을 수 있는 권력.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정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있었다.
그러기에 생명체들은 본능적으로 싸움을 원했다.
스스로 강하다는 걸 증명 못할 때가 되면 강한 이들의 경기를 보며 대리만족을 할 정도.
마치 섹스 하는 야한동영상 배우들처럼 간접적으로 자신을 속이기까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세계였다.
-씨잉.. 휘리릭. 씽..씽..착.
경기에 앞서 무기를 점검한다.
이번 시합에 사용해볼 무기는 신대륙 지역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카람빗이라는 단검이다.
손잡이 끝에 반지처럼 링이 있는 형태.
링을 한손가락에 끼고 짐승의 발톱같이 구부려있는 칼날 형태의 무기를 사용한다.
무기를 붙잡을 수 있는 무기였기 때문에 나머지 손가락과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숙련이 된다면 한손에 두 가지 무기도 사용할 수 있어 마음에 든다.
거대한 몬스터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 힘들 테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를 보여주는 전투가들에게 있어선 좋은 무기였다.
최근 시합에서 일부러 익숙하지 않는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문명이 진화한 만큼 무기들 역시도 진화했으니까 나도 뒤처지지 않게 인기 있는 무기들을 연습하고 있었다. 육체의 단련도 중요했지만 상황에 맞게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공부하고 있었다.
-끼익..철컥..
8강전부터 개인 대기실을 줬다.
이 장소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적을 어떻게 상대할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현 상태를 점검을 하고 있었다.
오늘 상대는 화영이라는같은 고구려 아카데미 헌터생이다.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었다. 멀린처럼 3학년 선배라고 하는데 아침에 관계를 맺었던 마몬의 말로는 30년 전에 사라졌던 헌터생이라고 한다.
혹시나해서 화영이라는 여성이 기사화된 글을 찾아봤다.
그런데 다들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오로지 악마인 마몬만이 눈길을 줄뿐이었다. 마몬의 정보력을 믿는 만큼 약간 주의하며전투에 임하기로 했다.
상대편의 예선 경기를 봤다.
근접전투를 좋아하는 건틀릿을 무기로 사용하는 격투가 스타일.
레비아탄과 흡사한 전투를 보여주는 게 보였다.
강력한 일격과 함께 과감한 판단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방식이 마치 몬스터와 비슷해보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김보관님 경기장에 입장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성 안내원이 대기실안으로 들어왔다.
정규 방송으로 중계를 하는 만큼 예선전과 대우가 달랐다.
무기들을 장비하고 그의 안내를 받으며 경기장까지 이동하기로 한다.
***
-후다닥!
"야, 천천히 가도돼. 8강 경기를 찾아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까. 느긋하게."
"예, 알겠습니다! 피디님!"
"1, 2번 헬리캠까지는 필요 없어. 휴대용 홀로그램폰 정도로 촬영해."
"네, 선배!"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방송준비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국내 길드, 해외 길드나 유명기업들을 포함하여 헌터경기를 보고 마음에 드는 헌터생을 스카우트하곤 했다.
다들 그렇듯 8강 경기는 그렇게 많은 이들이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관심 있게 보는 경기는 역시 준결승과 결승전.
1등만이 바라보는게 다반사였다.
그래서 그런가 경력이 있는 방송업계의 사람들도 오늘 경기에 크게 관심 없어 보였다. 바쁘게움직이는 이들은 다들 중소기업 길드나 방송국 정도였다.
"다왔습니다. 김보관님."
안내원으로부터 경기장 입구까지 안내를 받았다.
지금까지 전투하면서 올라왔던 경기장과 같은 무대였지만 승리하면 할수록 점차 대우가 달라졌다.
개인적으로 안내를 받고, 개인 대기실이 있는걸 보면 능력중심사회.
물론 패배한다면 바로 사라질 권리들이었다.
전생이나 지금이나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이런 점은 비슷했다.
"8강전 시작하겠습니다! 고구려 아카데미 화영선수! 맞상대로 고구려 아카데미 김보관 선수! 두 선수는 경기장 안으로 입장해주십시오!"
"안내 감사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안내자에게 인사하고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 조금이지만 관객석에 사람들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이정도 관객들 숫자면 예선전보다도 적은 숫자였다.
"다른걸 신경 쓸 때야? 후배."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있는 화영이라고 불리는 붉은 머리 헌터생이 나를 지적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지만 외모나 목소리, 분위기가 달라 반쯤 흘리며 들었다.
"도발하는 겁니까?"
"그런 것도 있고 분화선생님 밑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고 들었지. 여기서 지면 공동 9위. 지옥을 경험할 테고. 다른 걸 신경 쓸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을 텐데?"
"선배가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하긴 그렇겠지. 네가 5위안에 들던 말든 내가 상관할일은 아니지."
화영이라는 사람은 분화선생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했다.
그녀도 분화선생 밑에 있었나 싶다.
그런데 스승과 제자가 닮는다는 소리가 있었나?
"푸른 신호가 꺼지면 전투가 시작됩니다. 그럼 카운터 들어가겠습니다. 3."
심판의 신호에 카운트.
"2..“
“1!"
그렇게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화영과 나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일명 탐색전이라고 무기를 꺼내는 위치나 서로의 눈길을 보고선 버릇이나 습관을 찾아내려는 했다.
'무섭군..'
화영의 약점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마치 전문적인 싸움꾼 같아 보였다. 삐딱하게 자세를 잡는 것도 그렇고 나를 비웃듯이 미소 짓는 표정을 보내는 것도, 마치 엘리트 몬스터를 만난 기분이다.
"안 오면 제가 먼저 가죠."
"얼마든지."
-휘리릭.
아까 정비했던 반지용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은밀하게 그리고 빠르게 걸어갔다.
"3세기경에 고양잇과 수인들이 사용하던 숲걸음이네."
"그걸 어떻게 알죠?"
"훗."
내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사실 놀랐다. 숲걸음을 아는 이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전문적인 헌터가 아닌 헌터생.
마몬이 느낌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가볍게 보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나를 암살하기 위해 천사나 신성국 측에서 보낸 암살자 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기세가 올랐네. 진심으로 갈려고?"
"...나를 노리고 있던 건가?"
"착각이야, 그냥 네가 뭐하는지 지켜보는 거."
"그런 거치고는 너무 날카로워. 위험할 정도로.."
"주변에서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지. 어제도 다른 학생에게 들었고 말이지. 후후."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나를 죽이려고? 아니면 같은 전생자? 그렇다면 왜 내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약간은 당황했다.
"안심하라고 죽이거나 이상한 짓 할 생각 없어. 그저 네가 얼마나 강한지 보고 싶을 뿐이야."
"단지 싸우고 싶은 건가요."
"그렇지."
"그쪽인가 보군요."
“그쪽?”
화영은 싸우길 원하고 있었다.
전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마 화영이라는 사람은 전투를 좋아하는 사람인게 분명했다.
그러니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오히려 잘됐다. 새로운 무기들은 연약한 이들에게 사용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더 높은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무기가 존재하는 것이니.
과거의 나는 악마만 수집하는 수집가가 아니었다.
무기도 수집하고 물건도 수집하는 나였다.
-씨잉!
숲걸음을 이용해 걸으면서도 전력으로 달리는 정도의 빠르기로 접근하고 단검을 휘둘렀다.
팔을 올리는 화영. 그녀의 팔과 손에 철로 만들어진 장갑가리개와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었다.
-티이잉!
"날카로워. 정확하게 급소를 노리고 멈췄어."
평가하고 있는 화영이다. 16강까지 학생들은 모두 이 수법을 당했지만 화영은 가볍게 막아섰다.
그리고 정확한 궤도와 설명까지. 이것만 봐도 그녀가 전투에 미친년이라고 말할 정도로 천재라 생각이 들었다.
"이걸 보고 웃는 사람은 두 명이었지."
"훗..그래?"
"한명은 사람. 나머지는 사람이 아니었지."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까 조금 그러네."
-휘리리링!
손가락에 달린 단검을 빠르게 회전시켜 화영의 목을 노리고 깊숙이 내질렀다.
역시나 웃으면서 가드하는 화영을 보며 인지했다.
화영은 내가 특이한 짓이 아니면 방어만 할 생각이라는 걸 말이다.
저건 내 힘이 약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행동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수준이 낮다고 말하는 거다.
그녀가 저렇게 나온다면 오히려 좋다. 약하다는 걸 인식시키고함정을 파자.
사냥꾼, 도적은 정면 승부하는 직종들이 아니다.
함정을 만들고 기습을 하며 독을 타서 조용히 암살하는게 특징이다.
전사도 마법사도 아니기에 정직하게 살지 않았다. 신성국에서 제노사이드무기를 받고 나온 뒤로 난 스스로 선과 멀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을 제압하기 위해서 악이 되기로 했다.스스로 신성국을 나간 것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각오를 했다.
그래 난 악이다. 과거에 악마를 수집했던 악..
회전하는 칼날이 공기와 분위기를 일그러뜨린다.
작은풍압이 일어나면서 내 머리칼이 휘날린다.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단검이 이내 여러 개로 보였고 서서히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지?"
"넌 사람들의 기술을 다 알고 있는 거 같으니까 재미있는 거 보여주려고."
"그래? 어디한번 해봐."
화영은 내가 이상한 묘기를 보고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건.. 익숙해..어..?“
"맞아."
나는 수집가다.
악마수집가라는 별명이 있지만 과거에 나는 물건뿐만 아니라 남의 기술을 수집하는 것도 좋아 했다.
그때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없어 힘들었지만 지금세계는 달랐다. 보고 싶은걸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며, 관심이 있다면 배워서 따라 할 수 있었다.
-탕! 티이잉!
"하! 하늘창이라니?"
화영은 내 공기탄을 막아내면서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그래 난 다른 이들의 기술을 수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