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다섯번째 악마. 분노의 사탄
-탕! 탕! 탕!
날아드는 하늘창을 막으면서 접근하는 붉은 머리 화영.
공기탄을 쏘는 나를 그냥 놔두다간 상처만 입을게 뻔했기에 가만히 있던 그녀가 이제서야 움직였다.
그것 역시 내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
-쾅!!
회전하는 단검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바지 주머니 속에 있던 손을 빼들면서 흘린 작은 함정이 있었다.
이미 그녀가 다가오는 동선에 미리 뿌려 놨다.
그녀가 함정을 밟자마자 작은 알갱이들이 압력을 받고 터진다.
작은 화약과 함께 설계된 폭죽함정이 화영의 시선을 또 한 번 돌렸다.
"바닥을 볼 때가 아닐 텐데."
"큭!"
폭죽함정으로 인해 일어난 불꽃과 터지는 소리에 내가 접근하는 걸 뒤늦게 인지한 화영은 급하게 건틀릿을 들어 올렸다.
‘늦었어.‘
그녀가 무투가라 육체적인 움직임이 빨랐다.
하지만 나도 사냥꾼.
힘과 마력의 힘은 몰라도 속도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녀와 속도가 비슷하다.
그 비슷한 움직임 속에서 잠깐의 시간만 벌 수 있다면 먼저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
-사악!
-퍽!
화영의 옆구리를 베었다.
화영역시 나를 발로 차며 거리를 벌렸다.
깊숙하지 않지만 그녀에게 다급함이 느껴졌고 먼저 출혈이 일어나는 상태가 됐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몰..몰라요. 피디님. 갑자기 화영선수 옆구리에 피를 흘리는데요."
잠깐사이에 몇차례의 합이 있었는지 평범한 관중석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그 정도로 속도감이 있는 전투. 수준 높은 경기에 관중석도 한층 달아올랐다.
"다음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 궁금하다..!"
"저도 모르겠어요. 너무 빨라서 다시보기를.."
"지금 다시보기를 볼 때가 아니야! 다음 촬영해! 헬리캠도 올려! 이번 전투는 대박경기다!"
"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피디로써의 감이다. 13년 짬밥. 이 느낌.. 이번 경기를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
"그 정도라고요?"
"그러니까 서둘러!"
"네..네! 선배."
둘의 경기가 진행될수록 주변이들 관심이 집중됐다.
비등해 보이는 강자들의 대결.
승부를 예측 할 수 없는 승부는 누구나 좋아하는 스포츠였다.
-팡!
-팅!
화영은 다시 거리를 좁혔다.
공기탄을 막아내며 그를 쫓아갔다.
김보관은 훌륭한 투우사처럼 그녀의 공격을 흘리고 반격했다.
피하며 조금씩 그녀의 몸을 갉아먹었다.
그녀는 점점 상처가 많아졌고 지치기 시작했다.
승부가 안날 것 같은 고수들의 대결이 점점 막바지에 오고 있었다.
"하아..하아..쥐새끼처럼 촐랑촐랑..!"
"나도 집중하고 있었어. 피하는데 조금만 실수하면 당신의 주먹에 온몸이 으스러질테니까."
"그러니까.."
-후웅!
"한대만 맞자..!"
화영이 지친척하며 김보관을 속여 본다.
빠르게 주먹을 휘두르지만 다시 거리를 벌리는 그였다.
"그건 사양하지."
"후우...후우.. 역시 노련하네."
그녀가 벽을 느낀 건지.
한숨을 쉬고 몸에 힘을 뺀다.
그러면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깨와 목을 움직여 푸는 행동을 했다.
"인간의 몸은 역시 허약해."
"뭐라고?"
화영은 김보관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혼잣말을 한 뒤에 건틀릿을 벗기 시작한다.
-쿵..쿵..
건틀릿이 바닥에 떨어졌다.
상당한 무게를 가졌는지 바닥이 깨지는 모습과 함께 화영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강하니까. 재미있어졌어."
"...너."
"후후후."
화영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건틀릿은 그녀의 힘을 봉인하는 역할을 해왔는지 생각할 정도로 기운이 퍼졌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분노의 힘을...
내가 잘 알고 있는 힘이다.
특히나 전생에 악마수집가였던 이가 알고 있는 힘.
바로 악마의 힘이었다.
"사탄."
전투와 전쟁을 좋아하는 귀족악마 분노의 사탄.
붉은 기운과 함께 자신의 속살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후웅.. 쿵..
풍선처럼 늘어나는 무기.
붉은양날도끼.
사탄이 자주 쓰던 무기다.
수많은 대상을 단번에 몰살할 수 있는 야만적인 무기다.
내게 수집된 사탄은 그렇게 말했었지.
상대를베는 동시에 박살낼 수 있는 감촉을 가진 무기는 도끼만한 게 없다고..
"오랜만에 흥분해볼까. 크크."
-후우웅!
경기장 사방으로 붉은 바람이 뿌려진다.
게이트에서 만났던 하이오크가 쓰던 도끼와 차원이 다른 흥분과 기압이 느껴졌다.
저건 스쳐도 아니 약간의 풍압만으로도 몸이 터져 나갈 거라고 말이다.
도끼의 파괴력을 막으려면 악마의 힘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니까 같은 힘으로 받아쳐야한다고 말이다.
"시작해 볼까아!"
흥분에 취해 도끼를 들어 달려드는 화영.
그녀를 정면으로 보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늘로 높게 들어 올린 양날도끼를 내 머리통을 노리며 내려찍는다.
그런데.
-후웅..!
그 도끼는 내 정수리에서 멈췄다.
“왜 안 움직여.”
"기권."
"뭐..?"
이제 막 싸움이 시작되는 찰나에 김보관은 손을 들고기권이라 말한다.
당황한건 오히려 화영이다.
눈이 커지고 어이없는지 김보관을 바라봤다.
"왜..포기하는 거냐!"
"여전히 주변을 보지 않는구나."
"뭐라?"
몸을 돌렸다.
그리고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한순간 기권으로 승부가 결정 나자 관객석에 있던 이들 역시도 모두 멍하게 된다.
"뭐..뭐냐? 왜 기권을 하는 거지!? 포기하지 말라고! 싸우라고!"
"서..선배?"
"제..젠장! 흥을 깨다니! 저 김보관이라는 놈은 뭐하는 놈이야?"
그렇게 8강에서 탈락한 김보관은 경기장을 떠나갔다.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헌터시합은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물론 누구보다 허탕한건 그 자리에 있던 화영이었다.
***
"기권을 했다고 들었는데?"
"네."
"왜지?"
"강한 상대니까요.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근성이 글러먹었군. 지옥훈련으로 네놈의 근성을 고쳐주마."
김보관은 시합을 포기하고 나서 다음날이 됐다.
고구려 아카데미 A-1반으로 들어서니 화가 난 분화선생이 정면에 서있었다.
평소에 냉정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아니었다. 불만 있고 잔뜩 화가나 있었다.
"따라와라. 나머지 녀석들은 자율학습해!"
""네..네!""
분화선생과 함께 김보관은 뒷문을 통해서 교실을 나갔다.
"어..어떻게 해."
"보관이 죽는 거 아니야? 분화선생의 저 표정은 처음 봐."
"무..무서워.."
"꿀꺽..나도 지리는 줄."
"무슨 보스급 몬스터보다 더한 살기가 느껴지냐."
분화선생을 보고 두려워하는 학생들은 모두가 불쌍한 눈빛으로뒷문을 바라본다.
***
분화선생을 따라서 5단계 게이트를 내부로 향했다.
-후우웅...
게이트내부로 들어서자 황금빛 들판이 펼쳐졌다.
갈대들이 바람의 방향따라 왔다 갔다 하던 중 그 속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대형 하이에나 같은 들짐승형 몬스터였다.
맛있는 인간을 맛보기 위해집단으로 달려왔다.
무리 사냥에 특화된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꺼져. 개새끼들아."
"깨..깨갱!"
분화선생이 살기를 내뿜자 바로 똥오줌을 지리며 도망친다. 근처에 있던 하이에나 몬스터들은 거품을 물고 기절하기까지 했다.
엄청난 기세였다. 하이에나 몬스터들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높은 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을 분화선생은 너무나도 쉽게 해냈다.
"여기서 지옥훈련을 하게 될 거다."
"그렇습니까."
"전혀 반성하는 모습이 아니네?"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왜지?"
"거기서 나까지 무리하게 힘을 사용한다면 주변인들까지 말려들 테니까."
"주변인들까지 말려드는 생각하면서.. 지는 여자들과 즐길만한걸 다 즐기고 누리고 산다?"
"네?"
"내게 덤벼. 여기는 말려들 사람도, 지킬 사람도 없으니. 전력으로 나와싸운다. 그렇게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넌 여기서 죽어."
분화선생은 살기를 뿜어내며 나를 노려봤다.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악마는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기를 뽑아. 아주 박살을 내줄테니까."
"..."
선생의 말에 단검을 뽑았다.
그러니 무섭게 질주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챙..!
싸커킥을 해오며 붉은 머리칼을 휘날렸다.
황금빛 갈대와 함께 그녀의 구릿빛 피부가 겹쳤다.
-후웅! 사악! 퍼억! 팍!
갈대사이로 주먹과 단검이 오고갔다.
바람소리에 비해 싸우는 소리가 작았지만 둘은 주변의 바람소리보다도 둘의 소리가 더 크다고 느끼며 무서운 기세로 경합을 나눴다.
-쾅!!
"쿨럭.."
"엄살피우지마라. 깡통."
분화선생한테서 온몸이 철갑으로 두른 듯한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 정도로 강하고 우직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더 이상 무리였다.
그렇다면 제노사이드나 악마의 힘을 사용해서 선생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드득..!
"아직도.."
그렇게 간을 보고 있는 나를 의식한 분화선생은 내 망설임을 날려버릴 만큼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분노."
붉은양날도끼를 꺼내들었다.
분노의 악마 사탄을 상징하는 무기.
"사탄.."
"이미 나인걸 알고 있던 거아니었나!?"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
그 말에 사탄은 더욱 분노하면 달려든다.
양날도끼를 휘둘렀다.
-쾅!!
사방으로 지형지물이 터져나갔다.
갈대풀과 바위들이 휩쓸려 터져나갔다.
몸은 온전했다. 벨페고르의 양털로 방어에 성공했다. 양털은 바람이 불자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죽여 버리겠어!"
-쾅!
-쾅!
-쾅!
분노의 외침과 함께 몇 번이고 도끼를 내려찍었다.
난 벨페고르의 힘으로 몇 번이고 사탄의 공격을 막아냈다.
"자신이지배하는 것만 자유를 주는 영악한 녀석!"
"..."
"다른 이들은 즐기면 안 되냐? 전투를 즐기면 안 되냐! 그렇게 꼭 모든 걸 통제해야 직성이 풀려!?"
"그건.."
"오히려 네놈이 세상을 속박하는 감옥이다! 네놈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를 막는 악마다!"
사탄은 전투를 하면서 일방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싸우면서 그동안 쌓아두던 응어리들을 뱉어냈다.
-쾅...
"맞아. 나는 정의롭지 못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어."
"그럼 죽어! 필요 없으니까!"
-서걱..! 쿵...
"아...어째서."
내 몸에 사탄의 붉은 도끼가 겹쳤다.
가슴 깊숙이 박힌 도끼를 통해 붉은 핏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필요 없다면 당신의 말대로 죽는 것도 맞겠지.."
"...왜..왜 그 딴말을 듣는 거지..! 평소처럼 저항했어야지!"
"아니..사탄. 당신은 옳아. 과거엔 무서운 악마였지만.. 지금은 사람들 틈 속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정당하게 살고 있는걸 보여줬어."
"너 비겁하게..!"
"전생자인 나보다도 더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악마들 역시도 평화롭게 지내는 걸 봤다. 가능성을 봤지."
전생에 악마수집가로써의 역할은 옳은 일이라고 확신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현재의 악마들을 보고나서 나는 나의 존재가 점점 필요 없다고 느껴졌다.
다들 인간답게 아니 인간들보다도 더 열정적이고 활기차게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파는 아스모데우스.
경매장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놀 곳을 만들어준 마몬.
안전하게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벨페고르.
이제 시작이지만 자신의 일을 즐기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레비아탄.
악마의 힘과 천사의 힘,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하나하나 신기하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루시퍼까지.
그런 귀족악마들이 있다면 내 역할을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이 됐다.
지금 위협적인 다른 악마들 역시도 언젠간 귀족악마들 밑으로 흡수될 테고..
"그래.. 사탄. 당신이 정답을 말해준거 같아. 나보다 먼저 세상을 경험한 선생님처럼."
"아니야.."
가슴에 내려찍힌 도끼를 흡수하는 사탄이 보였다.
"일어나.. 일어나! 죽지 말라고 이 새끼야!"
사탄은 점차 차가워지는 수집가의 신체를 잡고 흔든다.
하지만 대각선으로 찍힌 도끼자국은 상당한 상처였다.
박살난 폐가 보였고 그 옆으로 장기들이 흘러나올 정도로 상처가 깊다.
"또 지마음대로..!"
사탄은 수집가의 안쪽에 있는 악마의 힘을느꼈다.
자신의 힘이었다.
분노의 악마는 싸움을 좋아했다.
늘 치열하고 고통스럽게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즐거웠다.
상처를 입는 것도 말이다.
분노는 통증마저도 축복으로 생각하고 힘을 키웠다.
분노는 식지 않는다.
단지 웅크리고 있는 것뿐. 죽음직전까지 가도 불굴을 힘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게 분노라는 감정이다.
"못 죽어! 내 힘이 있는 한!"
사탄은 죽어가는 수집가의 분노를 끄집어낸다.
근데 다른 악마들의 힘까지도 딸려서 뿜어 나온다.
음욕이나 나태, 탐욕, 질투까지도 말이다.
다른 악마의 힘은 이미 그의 영혼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수집가는 악마에게묶여져 있었다.
그의 영혼은 떠나지 못하고 강제로 붙잡힌다.
분노의 족쇄도 역시 그의 영혼에 합류한다.
황금빛 들판에 악마의 힘이 분출하며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
"아..."
"일어났냐."
"죽지 않았어.."
"못 죽어. 귀족악마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건 그런 거야. 천사들은 사랑이라 불리고 축복이라 하지만 우리들의 끊을 수 없는 저주라고 하지."
"저주."
"넌 이제 너만의 몸이 아니야. 우리 악마들의 몸이기도 하지."
들판위에 일어난 나는 사탄의 말을 들으며 일어났다.
몸의 상처가 없어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 아니 예전보다 더한 힘이 느껴졌다.
분노의 힘이었다.
"어째서 나를 살린 거지."
"훗. 이제야. 승부할 상대를 찾았는데 시시하게 끝낼 수 없어. 넌 평생 나랑 싸워줘야 해. 전생에 말했었지 나를 이긴 유일한 존재는 너뿐이니까. 다음에 태어날땐 평생 놀아줘야한다고 말이야."
"그건 예전일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나보다도 강한 이들이 많아. 좀 더 다양한 이들이.. 자유도.. 읍...!"
"아아 시끄럽네. 알겠으니까."
붉은 머리와 구릿빛 몸매를 가진 선생은 시끄러운 내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씨익 웃는다.
"넌 그냥 입 다물고 안겨. 깡통."
시크하게 웃는 사탄의 목에 걸린 족쇄가 보였다.
어떤 생각으로 내게 묶인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악마에 대해서 많았다.
"빨리 회복이나 해. 대판 싸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