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다섯번째 악마. 분노의 사탄
게이트 내부 갈대밭 들판 위.
사탄의 팔에 들려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자신이 동화속 왕자님이라도 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살인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
"뭐가 즐거운 거지?"
"이렇게 쉽게 이기다니. 끝까지 약 올려 주려고 했는데. 깡통."
"나 참.. 그래서 도발한 거였나."
"물론 싸우는데 모든 걸 사용해야지 크크. 천사들의 신성한 단어든 인간들의 법으로든. 적을 짓밟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깡통, 네가 속임수와 함정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지."
전생에 사탄은 귀족악마들 중에서 가장 빨리, 가장 먼저 인간들 속에 녹아든 악마다.
그녀의 성향은 홀로 다니는걸 좋아하는 악마였으며 단신으로 활동하는데도다들 귀족악마라고 불렸다.
보통 악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사탄은 다른 악마들보다 혼자서 돌아다니는걸 선호하는 스타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도 빠르게 환경에 적응하는 악마.
아마도 혼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인간들과 떨어져서 외톨이로 살아가던 삶처럼 사탄역시도 홀로 성장한 것이다.
사람이 혼자생활하면 의식주와 함께 여러 가지 일들을 계속해서 신경 쓰고 살아야했다.
그러다 보면 게을러지는 게 당연했다. 혼자 사는 사람의 싱크대만 봐도 더러운 접시들로 가득했다.
홀로서기란 안 봐도 답이 나왔다. 혼자 살려면 그만큼 부지런하고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아야했다.
항상 활기가 있어야했고 에너지가 넘쳐야했다.
스스로 움직이고 판단하는 삶을 살았던 사탄은 자연스럽게 강해질 수밖에 없다.
고독은 스스로 강하게 만들었다.
강함, 생존, 적응. 이것들이 모여 생명체의 정점이 된다고 했다. 이 모든 걸 해결해온 악마가 바로 사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신으로 사람들 속에 녹아서 살아가는 사탄은 분명 인간과 흡사할 정도로 닮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 특유의 강함이 있었다.
지구 최강의 종족이 된 인간들의 행동과 모습을 인정하고 배운다.
강해지기 위해서 악마라는 이미지나 생각을 버리고 그 이상을 뛰어넘는다.
다른 악마들이라면 정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혐오하겠지만 사탄은 아니었다. 모든 걸 배우고 받아들이고 나서 전투에서 증명했다.
선생으로써 말하는 훈수나 생각들이 사실 신성국이나 철학가들이 쓸법한 말들이었다.
정말 악마 사탄이라는 것에 지금도 혼란중이랄까.
괜히 선생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을 정도였다.
수천 년이라는 악마의 공백기 속에서 육체적인 전투뿐만 아니라 말싸움까지 터득한 사탄을 보고나니까.
왠지 모르게 악마보다도 더 악마 같아진 그녀다.
"좀 더 저항 할 줄 알았는데. 수천 년이 지난만큼 많이 시시해졌어. 뭐 다시 싸우면 되는 일이지. 1대0이다. 수집가."
"아니. 이제는 안 싸워. 이걸로 끝이야."
역시 전투를 좋아하는 악마였다.
실질적으로 대결에 있어서만큼은 나보다도 사탄이 위였다.
내가 이기는 이유는 속임수와 거짓된 행동으로 억지로 이긴 것뿐이다.
화끈하게 들어 박는 사탄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자였다. 속임수는 언젠간 들키지만 정직한 힘은 반드시 날아오르기 마련이니까.
"너 몸은 다 회복됐어. 이제 충분하면서 왜 전투를 피하는 거냐."
"마음이 힘들어서."
"아아, 아까 내가 한말들이 꽤나 상처가 됐나?"
"맞아."
"이거 악마수집가가 그런 걸로무너질 줄이야."
과거에 악랄한 수법으로 이긴 것도 이겼다고 취급하는 건지 계속해서 싸움을 걸어왔다.
"나를 가지고 논 이유가 뭐냐 사탄."
"네 녀석이 먼저 나를 찾아온 거지. 지금까지 우리 둘은 싸운 거 아니었나?"
"어이없네. 난 그저 높은 레벨의 허가증을 얻기 위해 들어온 거뿐이야."
"호오, 그런 거였지."
“다 알면서 놀리지 마.”
붉은 머리가 휘날리고 구릿빛 피부의 여인 사탄은 스윽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꿀꺽.
그냥 미소만 지었을 뿐인데 쫄게 되는 이유가 뭘까?
인간들에 틈에서 눈치 주는 법을 배웠나? 아니면 그가 교사라서 그런 건가?
분위기와 느낌을 볼 때 고등학교 선도부 선생님들의 눈초리와 흡사했다.
아니 경찰국 노련한 형사나 전문 수사대장, 해군 여장교 그런 것들이 떠오르는 사탄이다.
별로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진작 나한테 찾아와 상담했으면 됐잖아?"
"사탄. 난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몰랐어. 다른 귀족악마들도 모른다했고 지금 너인 줄 알게 된 거지."
"그래? 음..바알이 알 텐데?"
"바알은.. 아직 못 만났어."
"뭐냐. 바알이 아니라도 다른 귀족악마들은 다 모여 있잖아 충분히 나를 찾았을 텐데? 니들 모여서 뭐하고 있는데?"
사탄이랑 말싸움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사람보다 말 잘하는 악마라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후..그건 아스모데우스한테 물어봐."
"안 봐도 알겠다. 음욕의 악마, 이제야 네가 여럿암컷들을 만나고 다니는 이유를 알겠어."
"뭐를.. 말이야."
"뭐긴 전생에 고자로 뒈졌는데. 한을 갖고 여기저기 씨앗을 뿌릴만하지."
"그건 악마들의 힘을 나눠주기 위해서.."
"악마만이 아니던데?"
"크흠..어쩔 수 없었어."
"너라면 다른 방법도 있었겠지. 사실 섹스하고싶어서였지? 인정하라고."
추리하는 능력이 매섭다고 느껴졌다.
꽤나 공격적인 말투면서 일방적으로만 말했다.
그녀는 모든 걸 이기고 싶어 하는 악마였니까.
말투에서 부터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헌터선생이 될 만하네. 어떻게 한번을 안 지려고 하냐."
"처음엔 선생이라는 걸 할 생각 없었지. 용사의 핏줄을 가진 녀석과 치고받고 싸우다가 교사로 권유받았을 뿐이고."
"지금은 꽤 잘 맞는 거 같은데? 유명한 이들을 키워냈잖아, 14위 노란대검 알라라크라든지. 27위 석양의 리퍼라든지. 잘 키워줬잖아."
"그 녀석들.. 그저 반항하는 게 재미있어서 조 패는 것뿐이었어. 맞으니까 애송이들이 알아서 성장한 거다. 난 한 게 없지. 내가 손대지 않았어도 원래 헌터랭킹에 들었을 놈들이었어."
매로 다스리는 사탄의 방식이 어울리는 헌터들이 많이 왔었나 보다.
하긴 전투를 가르치는 것보다 몸소 체험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였다.
폭력.
꽤나 좋은 방식을 가진 사탄이다.
그만큼 헌터선생과 잘 어울렸다.
"그래서 강해진 거구나. 그 방식 때문에."
"그런가? 그냥 싸운 거 뿐인데?"
본능적으로 자신의 경험으로 살아가는 사탄이다.
그녀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서 많이 부족했을 거다.
하지만 게이트가 발생 이후부터 전투 쪽이 빛을 보면서 쭉 치고 올라가는 악마가 됐었을 거라고 생각됐다.
"아~ 그럼 너도 맞으면 더 강해지겠군! 크크. 앞으로가 기대되는데?"
"그게 안 통하는 사람도 있지."
"호오. 지금 어디가? 설마 교실에서처럼 조금씩 나를 피하는 거 아니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후후, 그렇겐 안 되지. 말했잖아? 다음에 만나면 평생 나와 싸워야한다고 말이다."
"나바빠. 벨페고르한테 빚도 있고 아스한테도 약속한 것 있어. 천사들에게 복수도 해야 해서 너만 신경 써줄 수 없어."
사탄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근데 사탄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런 건 모르겠고, 하는 김에 겸사겸사 내 쪽도 신경 써."
"내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는 거냐."
"당연하지. 남들이 하는 말은 안 들려. 난 악마니까. 후후."
사탄 녀석은 나를 집착하고 있다.
전생에 흘려 말했던 평생 싸워주겠다는 말로 나를 마주했다.
정말 그런가 싶어 아스의 힘으로 그녀의 속마음을 봤다.
지금 그녀의 목에 족쇄가 걸려있는 상태라 심리 상태를 알 수 있었다.
확인해본 결과 그녀의 본심은 달랐다.
그건 다른 악마들과 흡사한 느낌이었다.
오래된 연인.
본능적인 호감.
수백 년과 함께했던 정.
본질적인 분노의 힘에 끌림.
이런 것들 말이다.
사탄은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
저렇게 평생 속마음을 속인다면 내가 죽어서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다.
은근히 내적으로는 답답한 사탄이었다.
그러니 이번엔 내 쪽에서 먼저 공격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많이 맞았으니까. 이제는 나도 때려보기로 하자.
"내가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그냥 놓아줄 수없지."
"하암.. 그래서 내가 어디가 좋은데."
"나와 다른 분노가 느껴진달..까..아? 아아!?"
"연기 안 해도 된다고 아스의 힘 때문에 악마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으니까."
"뭐..뭐라고! 이게!!"
그냥 단순하게 툭 건넸는데 상당히 당황한 사탄이다.
두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역대급 놀람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만큼 사탄의 리액션은 상당했다. 내가 미안함이 느낄 정도로 말이다.
"으으..! 나를 능욕하다니! 또 나를 속이고 이길 틈을 엿보고 있었구나!"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아까 그냥 죽게 놔뒀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너..너!"
"1대1."
"이 자식이!"
"아아.. 아파 그만 흔들어."
사탄은 한동안 내 목을 잡고 흔든다.
자신의 마음이 들킨 것에 분노하면서 말이다.
왠지 사탄을 통해서 좋은걸 배운 거 같았다.
신념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고, 진실 된 마음을 들키면 과도할 정도로 흥분한다는 걸 말이다.
"내 본심을 알아내다니 죽여 버리겠어!"
"너무 많이 놀렸나.."
"으으! 너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
싸움과 생존의 악마 사탄이지만 그녀도 약한 분야가 있던 거다.
그건 다름 아닌 내면.
엄밀히 말하면 그녀의 약점이었다.
"설마 지금까지 노처녀?"
"너 이 새끼.."
부족한 걸 건들면 난 체념해버리지만, 사탄은 그런 성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를 냈다.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말이다.
-후우웅!
구릿빛 피부가 붉어지는 게 보였다.
귓불이나 얼굴의 볼이 말이다.
상당히 화난 사탄은 양날도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나를 찍는다.
-휘익. 쾅!!
갈대밭 한가운데에 폭음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다행이도 당황한 사탄을 피해 무사히 안전거리를 벌렸다.
그녀의 품속에 안겨있었지만 도끼를 꺼낼 때 틈이 생겨 도망칠 수 있었다.
"나 잡아봐라?"
"잡히면 뒈져."
"이번만 봐주면 안 될까?"
"절대로 죽인다."
분노의 힘을 끌어올린 사탄은 내게 전력 질주한다.
처음 가졌던 악마의 힘보다 더욱 커졌다.
내 몸에 봉인되었던 분노를 가져다 쓰고 있다는 거였다.
무섭게 내리치는 붉은 양날도끼.
그녀는 강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무력하게 져 줄 생각은 없었다.
나도 이젠 분노의 힘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쿵!
내 손에도 양날도끼가 들려있다.
붉은색을 가진 사탄의 도끼와는 달랐다.
내 것은 푸른색의 양날도끼였다.
"차가운 분노."
"이걸 그렇게 불러?"
"...냉정이라고 불리는 힘이다. 내가 원했던 힘이기도 하지."
"그래? 나는 오히려 사탄처럼 붉은 도끼를 원했는데 말이지."
-후우웅!! 쾅!
서로 다른 분노의 도끼가 마주한다.
자석의 S극과 N극처럼 붙어 엄청난 힘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주변일대가 날아가고 부서진다.
그러고 나서도 다섯 여섯 번의 폭발이 계속 일어났다.
사탄과 나는 피를 흘리면서 서로를 바라본다.
"퉤..어때 조금은 열이 식어?"
"식다니, 오히려 더욱 흥분되는데!"
사탄이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즐거워하니 나도 즐거웠다.
서서히 전투에 취해갔다.
전투에 취한 둘은 몇 번이고 돌진했다.
즐거웠지만 승부는 승부.
둘 중에 한명만이 승리하는 게 당연했다.
교전이 생기면 생길수록 내 쪽이 유리했다.
악마들의 힘을 비축하고 있어 끊임없이 뽑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탄은 아니었다. 내게 공급받고 성장해야했다.
인간 세상에서 자력으로 분노의 힘 일부를 얻는데 성공했겠지만 그것만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본래의 악마 힘에 비해서 말이다.
-땡그랑.
"내가졌다. 수집가."
"말했잖아. 악마의 힘은 내가 더 많다고."
"아니, 내가 나약해서지."
이제서야 대자로 황무지에 누워버린 사탄.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고 상처가 많았다.
그 틈 사이로 그녀의 알몸이 살짝 노출됐다.
"걱정 마 사탄. 다시 예전의 힘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
"내가졌으니. 다른 암컷들처럼 나도 능욕하려는 건가?"
"능욕이라니.. 힘을 주는 거뿐이야. 아스모데우스의 약속이 있었으니까."
"과거에서부터 패배자들은 늘 승리자들의 성노예가 됐지."
"그때가 어느 때인데.. 지금 그런 말을.."
"하려면 빨리해라. 회복하면 다시 도끼를 휘두를 테니까."
성격이 괴팍해서 행동은 생긴 거에 비해 전혀 귀엽지 않단 말이지.
사탄의 내면은 여자로서의 매력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겉모습은 길들여지지 않은 건강미 넘치는 상여자 체형이었다.
배꼽에 11자 복근과 함께 다른 여자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잔근육과 굴곡 있는 허벅지.
마지막으로 어울리는 단단하고 큰 가슴까지.
살보다 근육으로 뒤덮인 사탄은 그만큼멋있는 여인이다.
나도 억지로 하는 건 싫지만.. 탐스러운 몸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이었다.
그러니 아스의 힘을 믿고 강제로 그녀를 희롱하기로 했다.
고집불통의 야수 같은 사탄을 어느 정도 길들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