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여섯번째 악마. 오만의 루시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아. 넌 남아서 보충수업."
수업중인 분화선생 아니지 사탄의 수업이 끝났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강제로 보충수업을 시키고자 했다.
그녀의 위치가 많이 이상했다.
반에 있는 헌터생들이 모두 한 곳을 볼 수 있는 교탁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 책상 위에 앉아서 나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수업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노골적으로 나만을 바라봤다.
"대답은?"
"알겠습니다."
그녀가 말한 미션을 실패했기에 보충수업이 시작됐다.
처음엔 사탄과 단둘이 게이트를 갔다 왔다.
게이트 안에서 그녀는 자신이 귀족악마 사탄이란 걸 밝혔다.
그 당시 사탄은 매우 화가 난 상황이었던지라 분노 속에서 뽑아낸 양날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결국 그녀의 양날도끼로 죽음을 맞이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긴 나는 악마로부터 저주를 받은 존재라 했다.
죽고 싶어도 귀족악마들의 사랑이 있다면 쉽게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고 다시 살아나 사탄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었다.
그녀의 힘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과연 좋은 결과인가 싶다.
오히려 그녀를 발견한 게 더 역효과가 난 기분이었다.
힘이 얻고 나서 더욱 열정적으로 변한 그녀가 되어버려 오늘도 불려가게 생겼다.
-또각.
그녀는 내 눈앞에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책상위에서 내려왔다.
사탄의 머리카락 냄새가 코끝을 괴롭혔다.
온몸이 두근거리며 아랫도리가 꼴릿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간 그녀를 끝까지 응시하며 조금 있을 보충수업을 상상한다.
"보관이...제대로 찍혔구나.."
"불쌍하다."
"내가 분화선생님한테 찍혔으면 퇴학했지."
내게 노골적으로 붙어있는 사탄.
오늘도 거의 1대1 수업을 하듯이 내 책상위에 앉아 수업을 진행했고 계속 나만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교육방식에 반항하는 이들을 모두 모범생으로 만드는 무서운 교사이며, 고구려길드의 부길드장이기에, 찍히면 졸업 때까지 지옥을 경험한다는 소문이 아카데미 전역에 퍼져있었다.
다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슬프다.
하지만 헌터생들의 생각과 다르게 사탄은 이제 내게 묶이게 되어서 큰 문제까지 아니었다.
'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지.'
평범한 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탄이 명성이 엄청나니까.
헌터생들과 달리 난 사탄이 애교부리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노의 귀족악마라는 이름과 알맞게 사탄의 성격은 불같이 화끈하고 쓴소리를 해왔다.
관계를 맺은 악마들 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이었다.
그럼에도 귀여운 점이 있다면 다른 악마들에 비해 연애경험이 없어서그런지 행동들이 순수했고 본능적이었다.
좋다면 좋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싫다면 꺼지라고 말하는 게 그녀였다.
***
사탄은 수업이 끝난 뒤에 아카데미에서 가장 높은 방으로 향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 깨끗한 복도를 지나갔다.
담뱃재를 떨어뜨리면서 하나의 문 앞에 섰다.
-쾅!
발로 문을 차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와. 분화."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반응이네."
"당신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지. 단단하면서도 우직하니까."
"놀구있네."
"그래서 용건은 뭔가?"
"전에도 말했었지. 때가 되면 이 길드 나간다고."
"허어.."
근육덩어리 거구의 몸을 가진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고구려 길드장 정태산.
이 아카데미의 최고자이며 세계 10위 헌터라고 불리는 남자다.
김보관의 절친인 정태식의 부모이며, 용사의 핏줄을 이어받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그는 영웅이라 불리고, 모두가 응원하며, 존경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 남자 앞에 있는 사탄은 정반대였다. 예의도 지키지 않고 존댓말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선 담배를 피지말래도..."
"쓰읍..후.. 딴소리 하지 말고 승인하고 싸인이나 해라."
"흐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도 될까?"
"단순하잖아 정태산. 네가 만든 아카데미는 너무 작고 재미없거든.“
"작다라.. 그럼 네가 찾은 세상은 이보다 큰가? 1위 세력인 고구려길드보다도?"
"물론이지. 거기선 나도 경쟁해야 하거든. 안 그러면 밀려날 테니까."
"거기가 어디지? 어디 길드인가?"
"길드라는 말로 규모를 정하지마. 내가 있을 곳은 지옥이니까."
"지옥..."
"그만한 곳이 아니라면 내 흥미를 끌만한 곳은 없지."
정태산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자신과 싸워 무승부했던 유일한 헌터다.
처음엔 여자라고 봐줬다가 갈비뼈가 아작 났던 때가 생각났다.
유일하게 자신과 동급이라 생각하는 존재였기에 자신의 그룹에 넣고 함께했다.
전투적으로 천재성을 보이는 동시에 많은 경험을 가진 헌터였다.
심지어 훌륭한 헌터생들까지 키워냈기에 이만한 인재를 찾긴 힘들었다.
그런 그녀가 떠난다는 말에 아쉽고, 몇 번이고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외로운 늑대라고 하며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15년전 약속이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15년전 약속. 약속은 약속이니까 승인해주지."
"후우.., 내일부터 나 고구려길드소속 아니다."
"아쉽군."
"아, 그래도 교사일은 계속할거야. 굶을 순 없으니까. 용병형태로 머물겠어."
"알겠네. 그건 유지해두지. 소속만 바뀌는 거군."
"그럼 간다."
"잘 가게 분화."
-또각..또각.
쿨하게 떠나가 분화를 끝까지 응시하는 정태산이다.
그 정도로 아쉬웠고 정말로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옥이라.. 한번 보고싶구만 당신이 보는 지옥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네."
아내가 있는 정태산이지만 여성으로써 끌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난 그저 싸움상대.
마음을 털어놓은 존재가 아닌 그저 보통사람1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든 나처럼 15년 동안 정을 붙인 사람이든 같았다.
***
분화선생은 길드장과의 만남 후 다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다.
A반교실로 향하는 복도길에서 한 헌터생이 남자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왜 여기 있는 거지? 보충수업이라 말했는데? 자리에 앉아 있어야지."
"제가 할 말입니다. 분화선생님. 기다려도 안와서 화장실간 겁니다."
괜한 트집을 잡으며 남자의 관심을 끄는 분화선생이다.
그런 분화선생의 시선이 남자바닥으로 향한다.
바닥에 물웅덩이가 서서히 커지면서 누군가 나타난다.
"사탄, 선생놀이 재미있었냐!?"
"응? 제자 되려고 온 거니?"
"이게 죽을라고!"
물웅덩이에서 나타난 레비아탄은 잔뜩 인상을 쓰며 사탄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날 가지고 놀아? 인간인척하면서? 이 악랄한 악마 녀석!"
"난 인간이라고 한적 없는데, 그리고 속은 게 바보 아닌가? 크크."
"바..바보라고!?"
대치하는 사탄과 레비아탄이다.
두 귀족악마는 만나자마자 싸운다.
이쯤 되면 질투와 분노는 씨너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이제는 오랜만에 만난 악마들의 인사라 생각하고 둘을 지켜봤다.
"미안하지만 레비아탄. 잡답은 여기까지. 보관이랑 단둘이 보충수업 해야 해서 이쯤 할까?"
"웃기고 있네. 나랑 피자먹기로 했거든?"
"오호. 그래? 그럼 한번 싸워서 순서를 정해볼까? 이기는 쪽이 먼저 녀석을 잡는 거지."
"좋아! 바라던 봐야!"
난 권한이 없는 건가.
둘이 멋대로 내 일정을 잡아버린다.
"그런 건 둘만 하게 두지 않아."
"훗.. 난 오히려 끼고 싶은데."
"나도 한다."
동시에 다른 귀족악마들까지도 나타났다. 아스모데우스, 벨페고르, 마몬까지 마치 순간이동 하듯이 모습이 나타났다.
사탄때문인가.
분노의 힘이 깨어나고 부터 한계치가 높아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공간을 이동하는건 천재마법사들이 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마법사들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악마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줬다.
물리법칙이나 이해가 안 되는 자연현상을 마법처럼 부리며 오늘도 나를 놀라게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역시 악마들이다.
수백만 명이 머무는 왕국전체를 나태하게 만든 벨페고르.
바다를 뒤집어서 하늘로 만드는 것도 레비아탄.
달을 가지고 싶다고 지상으로 훔쳐 온 것도 마몬.
과거엔 지금보다도 더 제멋대로인 악마들이었지.
과거를 생각하니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들 여긴 어쩐 일이야."
"아, 맞다. 마신병에 대해서 알려드리려고 왔어요."
"마신병.."
국내에 있던 신성국을 공략했을 때였나.
대주교가 가면을 쓴 우리들을 보고 첫마디를 했었다.
마신병이라고.
과거 신성국의 시선으로 볼 때 가장 까다로운 악은 악마였다.
하지만 대주교의 말에선 마신병이 먼저 나왔다.
그렇다면 지금시대는 마신병이라 불리는 이들이 악마들보다도 더욱 악하다는 걸 뜻하는 거였다.
"여긴 보는 눈이 많아서요. 집에 가서 얘기해드릴게요."
"그래야겠네."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거나, 게이트를 가거나, 수련을 집중하는 헌터생들이지만 한두 명쯤 아카데미에 머무는 이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봤다.
이런 미녀들을 두고 있다면 이목이 집중될게 뻔했다.
마침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몇몇 이들이 느껴졌다.
그들이 악마들을 보면 일이 귀찮아질 수도 있기에 아스의 의견대로 따르기로 했다.
"누구마음대로 데려가?"
한명 빼고 말이다.
"고지식한 건 여전하잖아?"
"본인만 생각하는 건 변하지 않았네. 사탄. 후후."
아스와 벨페고르까지 도발하는 사탄의 고집이다.
역시 여전하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미움 받는다."
"겁먹은 적 없지."
"오호, 그러면서 주인님한테 아양을 떨다니."
"내가 언제?"
"여기 다 녹화해 놨지롱."
"아스모데우스..이 음흉한 년."
"자업자득."
아스모데우스는 홀로그램폰을 들어서 사탄과 내가 섹스 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끙끙거리며 참는 표정의 사탄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그 장면을 모든 악마들에게 보여주니까 부끄러움 때문인가 악마의 형상을 보였다.
뿔과 날개가 나타난 사탄은 눈앞에 있는 귀족악마들을 전부 쓸어버리려한다.
"얼마나 음란한지 내 음욕의 자리를 넘겨줘야하나 생각했다니까?"
"죽인다. 아스모데우스."
결국 선을 넘네.
악마의 힘까지 사용한 사탄의 행동에 내가 나서기로 한다.
내가 그들의 수집가이니까.
시끄러운 만남이 다시 시작됐고 나는 위험한 악마들을 통제할 수 있게 손을 족쇄와 연결된 사슬을 들었다.
***
무수한 고층빌딩이 있는 도심 속에 골목길이 보인다.
-찌지직..
싸늘한 기운과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게이트 출현.
평범한 게이트라면 공간이 열리고 내부에 있는 몬스터를 정리해야했다.
하지만..
-처벅..처벅.. 씨이잉...측..
게이트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아, 드디어 나왔다. 이게 얼마만인가."
겉모습은 알몸을 가진 인간형태의 모습과 비슷했다. 하지만 여자인지 남자인지 성별은 구별하기 힘든 생명체라고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올린 존재는 눈이 3개이며 전신에 알 수 없는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후 게이트는 닫혔고, 그는 3개의 눈이 바쁘게 움직이며 주변에 정보를 얻는 모습이다. 그러던 중 한명의 사람에게 시선이 고정된다.
"하아..이러다가 다시 C반으로 내려가겠어.."
그 골목길 안으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채로 걸어오는 김세원이다.
그의 헌터실력은 C반급이다.
하지만 운이 좋게 김보관을 만나 B반으로 승급했지만 다시 강등 위기가 온 것에 걱정하고 있었다.
"B반 졸업을 하고 싶은데.. 욕심인가."
게이트에서 나온 존재는 고민하는 인간을 의식한다.
3개의 눈이 마치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듯 했다.
"그거 내가 들어주지."
"응?"
신경이 모두 한쪽으로 쓰여 있던 김세원이 이제야 시야가 넓어지며 한 존재를 의식했다.
"어..어어? 변..변태다!"
김세원은 알몸의 존재를 보고 몸을 돌렸다. 골목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변태와 얽히기 싫으니까.
"변태? 이 위대한 사오정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목숨이 여러 개인가?"
도망가는 김세원을 보고 사오정은 반응한다.
알몸이 갑자기 길게 늘어났다. 그리곤 물처럼 뿌려진다.
그 액체들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골목을 벗어나려는 김세원을 손가락을 붙잡곤 다시 골목 안으로 끌어당긴다.
"아...! 살려..! 읍!"
소리치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 목소리는 주변에 들리지 않았다.
회색빛 액체가 김세원의 목, 눈, 입에 덕지덕지 붙는다.
그렇게 김세원은 골목길 속으로 끌어당겼고 주변이 다시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