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여섯번째 악마. 오만의 루시퍼 (96/153)



〈 96화 〉여섯번째 악마. 오만의 루시퍼

편안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술에 취하거나 졸린 듯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보다 상위단계의 나른한 느낌이다.

감각이 온몸을 덮치며 피어나는 나태의 힘에 머리위에 벨페고르의 뿔이 생겨났고, 내 주위로 나태의 양털들이 휘날린다.

"나가..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어!"

애원하는 기괴한 괴물을 향해 다가가며 나태의 힘을 깨웠다.

괴물은 반대로 극한으로 흥분한 외침과 함께 침을 흘렸다.

배고픈 아이처럼 말이다.

"이거야! 이거라고! 나갈  있는 힘이야...흐흐흐.!"

열 명의 사람들 눈알이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리다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짐승의 눈빛이다.
나를 먹잇감으로 보고 있었다.

회색괴물은 본능적으로 나를 먹어치우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으로써의 이성적인 모습들이 많이 사라지고 본능에 잠식당한 모습이었다.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인간의 도덕심보다 짐승과 흡사한 판단을 하려한다.

"죽어 줄 수는 없지."

피곤한 듯 말하며 회색괴물에게 카임을 단검을 겨놓았다.

"흐흐히히! 갸아아!!"

눈알을 굴리다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섞인 비명을 지르는 괴물.

괴물은 왼손에 비해 거대한 오른손으로 땅을 짚으며 일어났고,두발과 한손으로 물컹거리는 회색바닥을 차며 내 쪽으로 달려 들어온다.

-후우웅!

"내거야아악!"

인간이 담긴 회색괴물은 직진으로 달려오며 거대한 손으로 나를 잡아챈다.

천장높이 손을 들어 올리며 기뻐한다.

손아귀에 있다고 나를 이긴 건 아닌데 말이다.

아카데미 헌터생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슈트를 제작하는 기간이 있었다.

그 기간에 나도 슈트를 만들기 위해 돌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악마의 힘이 있던 나는 슈트를 만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든 슈트자체가 악마의 힘을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악마들에게는 껍데기 역할도 못하는 것이 몬스터들.

나는 슈트를 입을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푸악! 찌지직!!

거대한 회색괴물의 손이 찢겨나간다.

손아귀에서 붉은 핏물이 터져 흘러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로 붉게 물들었다.

"아? 끼아아악!! 아파!!! 아파!!"

그 힌트는 벨페고르에게서 얻었다.

그녀의 날개는 달랐다. 다른 귀족 악마들과 다르게 상대를 위협하거나 멋으로써 사용하지 않았다.

양털을 늘 자신의 주위로 흐르게 했고 마법사들의 마력보호막처럼 사용했다.

어쩌면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마법사들이 마력 보호막을 만든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아파아아!!"

깃털은 내 육체를 지키는 장갑으로 사용하게 된다.

난 악마인 벨페고르의 몸과 마음을 취했기에 양털 같은 깃털을 자유자제로 다뤄낼 수 있었다.

지금처럼 나를 해하려고 하는 대상은 가차 없이 살점을 찢어 발겼고,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총탄이나 살인무기도 벨페고르의 양털을 뚫을 수가 없었다.

벨페고르의 힘은 그녀의 성향과도 같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적이 공격하다 지칠 때면 그때 시작이었다.

그녀는 악마들 중에서 가장 뚫기 힘든 방패를 가진 악마였다.

괴물은 순진하게 나를 먹으려고 했다.

그 순간 괴물의 손가락  2개는 잘려나갔고, 두개는 손에 달려있지만 대롱대롱 걸려있어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흐아아..흐으으!!"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벨페고르의 깃털은 독가시다.
나태의 힘이 있어 치료를 더디게 하며, 치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통증을 느끼게 만든다.

한 번에 받는 고통을 수년에 걸쳐 느끼게 하는 그녀가 즐기는 방법이었다.

고통은 밤송이 가시가 살 속에 박혀 빼지도 못하고 평생을 함께하는 느낌과 같다.

"아파아아!!"

-쿵!

"아퍼!!!"

-쿵!

괴물은 나를 움켜잡았던 망가진 손을 보고 아프다 소리치며, 다른 손으로 망가진 손을 몇 번이고 내려친다.

벨페고르의 깃털 때문에 저 망가진 손을 자르고 싶어 할 거다. 아니 자신의 손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나도 알고 있다. 이미 당해본적이 있으니까.

과거에 그녀의 깃털을 만졌다가 사슬형 제노사이드로 하나하나 살점을 뜯어냈던 기억이 있었다.

내 과거의 모습과괴물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서걱.

그러니 그 기억을 되살려 괴물의 망가진 손을 잘라줬다.

"끄꺄아악!!"

괴물은 또 다시 비명을 지른다.

발광하는 괴물 앞에서 그저 고개를 들어 올려 지켜봤다.

"아..아! 그..그만! 꺼져..! 저리가 가아아!!"

나를 사냥감이라고 생각하던 회색괴물은 뒤로 주춤거리며 피하려고 한다.

갈망에 잠식된 인간괴물 아니 짐승이기에 강자를피하려한다.

이제는 오갈  없는물컹한 회색 벽에 도달한 괴물이 괴로워하다 갑자기 멈춰 섰다. 동시에 은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쯧쯧쯧.. 천한 것... 들어가거라."
"어..억.."

회색괴물 속에서 울려 퍼졌던 수십 개의 심장소리가 멈췄다.

그건 회색괴물 속에 있는 모든 이가 죽는 소리였다.

괴물의 심장소리가 끊긴걸 느끼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돌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오정. 사오정이라고 하죠."

흡사 어인처럼 물갈퀴가 있는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지며 자신을 소개한다.
물갈퀴가 있는 손이 마치 부채처럼 느껴졌다.

분위기는 인구가 가장 많다는 대륙의 책사처럼 보인다.

녀석이 입고 있는 하늘거리는 옷도 그렇고 말이다.

"으흥? 사오정씨군요."
"저도 그대들의 성함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벨페고르는자신의 팔과 팔을 교차해 팔짱을 끼며 사오정이라는 존재에게 다가간다.

거대한 가슴이라는 무기를 앞장세워서 말이다.

"난 벨페고르, 이쪽은 나의 김보관."
"벨페고르와 김보관이군요."
"그래서? 우리들을 끌어들인 이유는 뭘까나?"
"그건 안쪽에서 말해드리죠. 같이 들어온 손님 분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획..! 탁!

"왜 죽였지?"
"..오호."

수십 명의 목숨을 단숨에 가져간 사오정을 보고 카임의 단검을 녀석에게 던졌다.

녀석의 새끼손가락도 아까 전 괴물처럼 잘려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붉은 핏물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그들은 제가 정해준 임무를 다했기에 해방시켜준 것이죠."
"죽음이해방이라는 거냐."
"이 세계에선 죽음이야 말로 진정한 해방이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호호호."
"개소리."

오정이라는 자는 살기를 내뿜는 나를 보고도 웃고 있었다.
그만큼 여유가 있어보였다.
자신의 강함을 믿고 있는 존재인 듯 했다.

던졌던 카임의 단검이 다시 내 손에 잡힌다.
그리고 다시 녀석을 보고 겨놓았다.

-씨잉..

"당장 사람들을 해방시켜. 죽어버린 사람들처럼 네 놈의 심장도 멈춰 버리기 전에."
"끄끄끄..후후후!"

협박이 재미있는지 끅끅 웃음을 참으며 눈웃음을 보인다.
그 눈은 초승달처럼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웃음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하찮은 인간주제에 감히 이 사오정님을 두고 협박을 한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하 열 받아.. 정말로 열 받아."

-또르륵.

사오정이라는 존재의 이마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 자리에  다른 눈동자가 피부를 뚫고 나온다.

회색괴물들처럼 이마 쪽에 나타난 눈동자.
그런데 눈동자는 달라보였다.
흰자위가 없는 온통 검정색 눈으로 마치 몬스터와 같은 눈동자처럼 보인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일어나려고 한다.

"잠깐~"

그사이로 벨페고르가 차분하게 걸어 들어왔다.

나와 사오정은 그녀의 평온한 표정에 제자리에 멈춰 섰다.

"어머, 사오정씨 이러려고 우리 부른  아니겠죠?"
"...흐으으?"

벨페고르의 말에 사오정은 멈춰 섰다.
자신의 계획했던 일을 생각하는 듯 했다.

"손님들을 두고 제가 실수했군요.. 사죄의 뜻으로 인간들은 모두 풀어주기로 하겠습니다."
"후훗. 신과 함께 하던 장군은 뭔가 다르네요."
"끄끄끄.. 그저 허접한 과거 얘기일 뿐.. 지금은 그저 요괴라 불리죠.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사오정은 우리들의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이 잡아뒀던 사람들을 해방하기로 한다.

회색벽 뒤쪽에 있던 사람들의 기척이 서서히 사라져갔고, 우리들은 사오정이라는 존재의 뒤를 따라갔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머지 인원들을 구할  있게 되었다.

죽어버린 이들 때문인가 아직까지도 사오정이라는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벨페고르가 알고 있는 존재라 위협적인 적이라는 게 분명했지만.. 방금 저지른 일 때문에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벨페고르의 행동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녀는 내가 본 악마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니까. 그녀의 기다림을 믿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장난을 했던데요?"
"장난이기 보다는 가벼운 오지랖이지요. 전 인간들이 원했기에 기회를 줬을 뿐입니다."
"기회?"
"옛정이라고 불려야할까요. 인간들은 신들에게 기도하죠. 자신들의상황에 맞춰서 바라고  바라는해충 같은 놈들.. 그러니.. 전 도움을 준거죠. 그리고 대가로 그들의 에너지 조금 빌렸습니다. 음식물을 씹을  있게 이빨을 빌려준 것이라고 알면 될 겁니다."

사오정은 악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악마의 계약과 흡사하다고 보였다.

남들이 원하는 걸 이루는데 힘을 주고 나중에 더 큰 힘을 갈취했다.

"후훗, 요괴 쪽은 우리들과 생각이 비슷하네요."
"그러니 초대 드린 거지요. 지금이 바로 약해진 신들에게 복수할 기회이지 않습니까? 저와 악마는 같은 생각일 거라고 보고 있었지요.저도 추방당해 갇혀 버린 몸이 되어 본적이 있으니까요. 천사의 악행에 무너진 악마 분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오정도 천사들에 의해 게이트 감옥에 갇힌 녀석이었다.
녀석도 복수라는 목표를 향해서 계획을 세우고 있던거였다.

"우리들을 잘 아시네요.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이미 저희와 함께한다는 악마나 천사 같은 이들이 있으니까요. 그들이 말하는 걸 들어본 적 있죠. 본래 고향 땅엔 7명의 귀족악마가 있다고요. 그들은 당신들의 힘을 원하고 있죠. 전 당신들이 고귀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스스로 온 것이고요."

'설마..'

사오정의 말에 나는정신이 번쩍 들었다.
악마의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다.

 천사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았다.

오정의 말은 천사들도 손을 잡았다는 말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의를 지키는 천사들 또한 정의를 등지기 시작한 것에 말이다.

"후후, 꽤나 우리들을 좋게 보고 있네요."
"과거엔 마왕들에게 가려진 모습이지만 전 이 눈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귀족악마들은 마왕 따위보다 무서운 힘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을요."
"그럼 사오정씨는 마왕 아닌 마신병인가요?"
"마신병? 아아, 저는 그 무뇌한 마족들과 친해질 수 없죠.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랍니다."

마신병이는 존재들은 게이트 너머에 갇힌 마족들의 세력을 일컫는 말이었다.
게이트 안쪽이 얼마나 거대한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마족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혹시 베히모스라고 아시려나?"
"그 거대한 동생은 살아있습니까?"

사오정이 의외라는  말을 한다.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게이트에서 가장먼저 나갔을 텐데요? 설마 인간들한테? 허허..안타깝군요. 갯벌의 마왕이라고 불리던 동생이었는데 말이죠. 살아있었다면 좋은경쟁상대가 됐었을 텐데 아쉽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만났다면.. 그 힘은  것이었을 텐데요. 끄끄끄."

경쟁.

마신병들 아니 게이트 너머에 있는 고위등급의 마족들은 서로가 친하지 않는 듯 했다.

정말로 흡사 귀족악마들처럼 보였다. 서로를 적이라고 보고 언제든지 자리를 차지하려하는 의지를 보였다.

"맞다, 악마들에게도 왕이 있다고 들었지요. 혹시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꼭 만나보고 싶군요."
"응? 여기 있잖아요?"
"어디요. 어디.. 설마.. 저 인간..?"

벨페고르는 사오정의 의구심을 확실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내 쪽으로 와서 팔짱을 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건지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사오정은 3개의 눈이 모두 가장 크게 떠진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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