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여섯번째 악마. 오만의 루시퍼 (99/153)



〈 99화 〉여섯번째 악마. 오만의 루시퍼

....

하얀색 공간 안이다.
특별할  없는 평범한 공간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 없는 쓸쓸한 천국 같다.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있는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가 보였다.

"여기 있었나? 하얀 날개여."
"검은 날개."

쓸쓸한 공간 안에 천사의 날개를 가진 똑같은 모습을 가진 천사가 나타났다.
모든 모습은 똑같았지만 날개 색상만은 달랐다.

둘은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 루시퍼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 왔는데 계속 이러고 있을 건가?"
"...솔직히 난 지쳤다."

하얀 루시퍼가 무기력한 환자처럼 누워있었다.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는 검은 날개가 와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삶을 포기한 모습을 보이며 최소한 움직임만을 하는 방구석 백수처럼 보였다.

그런 하얀 날개를 가진 루시퍼의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는 검은 날개였다.

무기력한 모습이 답답했지만 같이 함께했던 동료이며, 지금도 같이 살아가는 친구였다.

둘이 한 공간 안에 있기에 싫어해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누워있는 하얀 날개 옆으로 걸어가 같이 쭈그려 앉았다.

검은 날개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 우리가 태어났을 때는 신에게 감사했었다."
"그렇지.. 창조해준 신을 위해 모든 걸 하겠다는 각오를 했었으니까. 신의 짐을 덜어주고자 바쁘게 살았다."

검은 날개가 둘만의 추억을 이야기하자 자연스럽게 누워있던 하얀 날개도 반응했다.

유일하게 전력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던 과거.
하얀 날개 역시도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신의 말을 완벽하게 따르고 싶었다. 또한 세상에 평화를 가지고 싶었다."
"더욱 노력했지. 신이 하는 일을 덜어주고자, 신들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였었지."
"계속해서 일했다. 신이 편안하게 살아주기 바랬으니까. 그는 우리들의 창조자니까. 하지만 신은 우리들의 행동들이 오만하다고 판단했지."
"자신들의 일까지 따라한다는 말로 우리들을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결국 신은 우리를 지옥으로 추방시켰다. 신을 모방한다는 오만의 죄목으로.."
"맞다. 예전에 우리가 직접 감옥으로 붙잡았던 사오정의 신세가 되어 버렸지."
"그렇고 보니, 사오정. 그자도 신에게 버림받아 추방된 신들의 무사였지. 지금은 요괴라 불리는 괴물이 되었지만."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몇몇 있다. 수집가 그도 그런 상황이지.“

실패한 과거이야기를 말하는 둘이었지만 즐거웠다.
살아있다고 느껴졌고, 과거가 있기에 지금 자신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신이 만든 실패작.
한 생명체에 두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창조 실험체.
루시퍼를 진심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우리들의 동생인 미카엘에게 패배하고 지옥으로 떨어졌지.."
"맞아, 온갖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악마들과 대립했다."
"그 말대로 지옥이었어. 믿을  우리 둘뿐이었지."
"생각나 악마들을 마주하고 싸우고  싸웠었어. 살아남기 위해서."
"모두 죽이고 최정상 자리에 앉았다."
"그래.. 악마들은 우리를 제왕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때 기분이 묘했다. 신을 따르기만 하던 우리가 누군가를 지배하다니."

루시퍼는 악마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왕이 되었다.
지상까지도 영향을 줄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였다.

"변수가 생겼었지.  악마수집가에게 우리들의 힘이 뺏겼다."
"하얀 날개 네 탓이다."
"맞는 말이지만... 매정하구나."
"아직도 의아하다 그때 왜 갑자기 신의 죄를 받겠다고  것인가?"
"이미 내게서 들었잖아...  물어보는 건가?"
"죄는 영원한 법이지. 약속하지 않았나?"
"후우... 다시금 신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힘들었지만 다시 신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정신 차려서 다행이다. 신은 진작 우리들을 버렸다. 그들이 보내는 죄를 받아봤자. 우리들은 또 잃어버릴 뿐이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실수.. 이제는 정말 알았으니. 그만해."

작게 미소 짓는 검은 날개가 보인다.
추억 속에 이야기를 하면서 최악의 실수가 지금은 웃긴 이야기가 되었다.

"그 때문에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뺏겼지. 기대해봤자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인정하지..  실수 때문에 약해진 우리들은 천사에게 패하고, 놈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이 치욕을 생각하면 천상과 신성국 인간들을 전부를 멸종시키고 싶을 정도구나."
"악마수집가도 우리와 비슷하게 이용당하는 신세가 되었던가."
"꼭두각시가  우리들을 기억을 깨워준 전생자 말인가?"
"그렇다. 지금은 악마들에게 진실을 듣고 분노하고 있다."
"가엽구나. 두 번의 가족을 잃는 슬픔이라.."
"나도 하얀 날개가 사라진다면 슬퍼할 거다. 늘 함께하는 가족 같은 존재였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검은 날개여."

둘의 우정은 끈끈했다.
어쩌면 우정 속에 사랑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둘은 늘 함께하며 부부처럼 살아갔다.

태어나고 추락할 때까지 모든  함께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탁하나하려고 한다. 하얀 날개여."
"뭔가?"
"악마수집가가 우리들을 붙잡았다."
"알고 있다. 전생자들은과거를 집착하니까."
"어떤가? 조금 장단에 맞춰 주는 게 말이다."
"...싫다. 신들에게 이용당하는 느낌.. 두 번 다시는 싫다."
"그게 아니다. 우리의 의지대로 그를 선택하는 거다. 어쩌면 따른다는 말보다 그가 집사가 된다는 게 좋겠지. 묶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악마수집가는 우리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거다. 그리고 우린 자유를 얻을 것이고 말이다."
"자유.. 이번엔 우리가 이용한다는 건가?"
"우리들뿐만이 아니다. 귀족악마들 모두가 그를 이용하고 있지."
"서로 이용하는 관계라.."
"그는 우리에게 힘과 기회를  거다."
"그러려면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나?"
"우리는 그저 진심으로 그를 원해야겠지. 몸과 마음을 줘야 할 거다."
"악마의 방식?"
"세계엔 많은 법칙과 법이 있지만 그래도 악마들의 방식이 가장 우리들에게 맞지 않은가?"
"...싫지만 당신에게 과거의 빚이 있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라  거다. "
"믿어줘서 고맙다, 하얀 날개여."

***

"으으음.."

포근한 침대 위에서 일어난 루시퍼가 주위를 돌아본다.
깨끗한 방안이었으며, 불편함이 거의 없었다.

-꼬르륵..

배고픈 거 빼고 말이다.

-쿵!

"사탄! 이 자식이! 치즈감자칩 가져와!"
"아하하, 예전보다 느리네. 레비아탄."

방문이 닫혀있는 바깥에서 악마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군.."

루시퍼는 거슬리는 소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일단 배고프기에 뭔가를 먹고자했다.

-끼이익.

"앗! 루시퍼님! 깨어나셨나요!"
"어라? 이게 누구야 수집가 따위한테 패배하신 제왕님 아니신가?"
"이게! 루시퍼님을 모욕하지 말라고! 지도 수집가한테 졌으면서!"
"불만 있으면 덤비라고 레비아탄. 크크. 싸움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야! 씨! 지하로 따라와! 건방진 녀석!"
"흐흐, 좋아. 바라던 바라고."

"하아.."

서로 으르렁거리며 사탄과 레비아탄을 무시한채로 거실 뒤편에 있는 테이블로 향하는 루시퍼다.

거기에 앉아있는 존재는 아스모데우스와 벨페고르가 있었다.

둘이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루시퍼가 왔는데도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어라? 잘 잤어. 루시퍼?"
"후웃.. 남은 해산물좀 줄까?"
"아무거나 주거라. 몸에 에너지가 없으니. 불편하니까."

꾀죄죄한 루시퍼의 모습을 본 악마들이 웃으면서 여러 가지 음식을 챙겨준다.

"쩝..쩝.."
"어때 먹을 만해?"
"나쁘지 않구나 벨페고르."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네~"

꼭꼭 씹어 먹는 루시퍼가 마음에 드는지 느긋한 표정을 짓는 벨페고르다.

"그래서 기분이 어때?"
"뭐가 말인가 아스모데우스."
"주인님을 따르게 됐잖아~ 모르는 척하지말고~"
"너희들이 상관할일이 아니다."
"왜왜? 이제 같이 살결과 감정을 비비면서 살아야하는데 너무 매정하다~"

벨페고르가 맛있는 음식으로 약을 주고 아스모데우스가 말로 병을 주며 루시퍼에게 장난을 친다.

"쩝... 그보다 녀석은 어디 있지?"
"주인님? 왜? 맹세의 키스라도 하려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아스모데우스.."
"나도 천사를 타락 시켜본 적이 있으니까. 당연히 알지. 나도 받아봤어 요기 입술에."
"...그렇군."
"옛날이야기지 지금은 오로지 주인님뿐이야 아아~ 또 달아올라. 어제 꽤나 강렬했는데 말이야.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서 흐응~ 히히."

여기에는 제 정신이 아닌 이들이 많았다.

아니 이게 보통인 거지.

그들의 근본이 악마라 이런 모습이 오히려 평범했지만, 천사가 근본인 루시퍼는 여러 가지로 불편하긴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신 역시도 검은 날개의 권유를 받아들인 이상 이 생활에 적응해야했다.

"후후, 꼬마는 저쪽 방안에 있을 거야. 루시퍼."
"그렇군."

앙큼한 상상에 빠진 아스모데우스말고 벨페고르가 대답해준다.
그나마 믿을 만한 악마였다.
 상황을 크게 볼 줄 알고 얌전한 스타일인 악마였으니까.

벨페고르가 가리킨 방을 보고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꺼억."
"잘 먹은 티를 내니까 기분이 좋네. 다음에도 해줄게."
"고맙구나."

트름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굳게 닫힌 방문으로 걸어갔다.
멋대로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으..? 무슨 냄새가.."

문을 살짝 열자마자 흘러나오는 정액냄새에 잠깐 주춤하면서 뒷걸음질 치는 루시퍼다.
아니 뒷걸음질 하려했지만 오히려 몸이 다르게 반응했다. 앞으로 들어가려고..

하얀날개라 불리던 자신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자신은 신이 창조한 천사였다.
신에게만 만족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달랐다.

냄새만으로도 자신의 몸이 반응했다.
기분 좋은 감각이 후각을 자극했다.

자극이 과거에 그렇게나 따랐던 신들의 손짓과도 비슷했다.

잊으려 했던 신.
지옥을 선물한 신이다.
그 신만이 자신을 채워 줄 거라고 믿었던 루시퍼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하아아..으.."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악마가 정면에 보였다.
이마 왼쪽으로 치우친 외뿔을 가진 악마.
그녀의 뿔은 유니크한 보석 장신구처럼 보였다.

악마들은  여악마를 탐욕의 마몬이라고 불렀다.
눈에 보이는 걸 모두 가져야만 살아가는 악마라 불렸기에 저 악마의 욕심을 채워줄 물건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을 했었다만.

지금은 아닌거 같았다.

"그만 줘.. 욱.."
"힘이 흘러넘쳐서.. 탐욕의 마몬이라면 잠재워 줄 거라 믿어."
"한계..."

사방이 애액과 정액으로 뒤덮여있는 방안은 탐욕의 악마 마몬도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다.

내가 물러선다..? 난 루시퍼야.
태초의 천사.
악을 직시하는 게 내가 탄생한 이유였어.

공포를 이겨내고 자신을 믿고 움직이는 루시퍼다.
과감하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끼익.. 철컥.

"오늘도 문란하구나.. 그대는."
"루시퍼.. 깨어났구나."

-철푸덕..

수컷의 정액 비린내가 나는 악마수집가가여유 있게 루시퍼를 바라봤다.

녹초가 되어 버린 마몬을 바닥에 방치한다.

마몬은 시름시름 앓는 눈빛으로 루시퍼와 수집가를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루시퍼.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대가 나를 말인가.."
"이 힘 원래 루시퍼의 힘이니까. 돌려줘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도 좋다. 그대는 악이 아니니까."
"아니,  다 알고 있어. 과거에 내게 붙잡혀 죄를 받은 이유를 말이야."
"괜찮은.. 읏..!"

수집가는 오른손을 당겼다.
둘 사이에 연결된 영혼의 사슬이 팽팽해진다.
루시퍼는 그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힘을 돌려받고 너희 둘이 만족했으면 좋겠어."

루시퍼는 몸이 슬금슬금 달아오르며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말에 믿음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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