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네번째 용사. 수인 엘리스
두 손가락으로 잡은 탄환이 바닥에 떨어지며 튕겼다.
-탕!
총알이 떨어지면서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려 퍼진다.
고개를 틀며 총알을 피하곤 엘리스를 바라봤다.
"이제 표정이 보이네."
아까전과 달리 선글라스를 벗고 있어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사탄이 나를 죽이려고 할 때와 같아보였다.
"쓸데없이 많은걸 알려고 하는군 김보관."
"그러면 안되나?"
"당연하지. 그러니까 죽어줘야겠어."
"과연 나를 죽일수 있을까?"
놀리는 듯한 말에 엘리스는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는지 총구로 대답했다.
-탕! 탕! 탕!
불을 뿜는 권총.
그녀와 거리를 벌리며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그녀도 쫓아온다.
단검을 만들어냈다.
날아오는 총알들을 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마탄을.."
추격하는 엘리스는 궁금한가보다.
카말의 방패를 관통했던 마탄이 단검에 막히자 흥미롭게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궁금한 눈빛에 나도 미소를 지었다.
선물로 카임의 깃털을 만들어내서 집어 던졌다.
그녀 역시도 총열로 여유롭게 막아내며 그녀가 자신의 머리옆에 총구를 겨냥했다.
'자살?'
-탕!
총구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내 머리에서 충격이 퍼졌다.
'말로만 듣던 전이능력인가.'
순간적으로 그녀와 자리가 바뀌며 총알이 내 머리를 때린 거다.
자살이 아닌 근거리 사격이었다.
엘리스.
제국의 그림자.
상당한 실력과 센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나를 맞추는걸 포기하고 과감하게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변수를 노려본거다.
"너.. 뭐냐."
하지만 어림없지.
총알로 인해 기울어졌던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총알은 내 어깨를 타고 흙탕물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 옆에서 검은 양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엘리스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공격을 포기하고 나와 대화하려는 의지를 가지는듯 보였다.
"그 표정 이제 대화로 풀까? 많은 게 궁금하잖아? 마침 나도 너한테 관심 있어."
"미친놈."
아니었다. 그녀의 대답은 수류탄이었다.
-쿠웅!
주변지대가 울리며 늪지대 위로 수십 미터 가량 물이 솟구친다.
-위이잉..
슈류탄으로 인해 온몸이 진동하며 울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화력을 저항하며 카임의 단검을 어깨위로 들어올렸다.
그순간 엘리스가 나타났다.
-칭! 끼이익!
검푸른 기운이 담긴 검과 카임의 단검이 격돌했다.
엘리스 원거리 화력으로 나를 못 잡는다고 판단하고 근접해서 나를 찢어 죽이려는 행동을 보였다.
"죽어..죽어."
-칭! 칭! 치지징!
이제부터가 진짜다.
현대무기가 좋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통할때 얘기였다.
당장 6레벨 게이트만 가더라도 현대식 무기가 통하지 않았다.
통하더라도 미미한 정도였다.
6레벨이상부터는 마력을 발현시켜야만 몬스터를 잡을 수 있었다.
헌터들도 마력을 사용할 수 있어야 6레벨의 몬스터들의 피부를 뚫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마탄자체도 그녀의 마력을 입힌 무기였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담긴 마력의 힘은 약해졌다.
그러니 근접전으로 나를 상대하려 하는거였다.
-씽! 탕!
그녀는 한손에 도검을 들었고 다른 한손엔 권총을 들었다.
특이한 조합이다.
근접으로 권총을 사용하는 무예를 보여주는데 내가 알던 움직임과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녀가 독창적으로 개발한 무술처럼 보였다.
후일에 S급 인재라고 하는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칭!!
"너 왜 나를 공격하지 않는 거지?"
"들켰나."
"나를 기만하는 건가..!"
당장 썰어버릴 만큼 냉정한 표정을 보여준다.
"얼마나 강한지 확인 중이야. 너무 신경쓰지 마."
"장난치지 마라!"
결국 답답한 엘리스가 음을 높여 대답하며 당장 나는 죽이려고 모든 기교를 보여준다.
그녀의 움직임이 점차 회오리처럼 회전했다.
그 안에서 날아오는 무수한 총탄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빈 공간을 단검의 일격으로 마무리한다.
피할 곳 없는 보이는 천재의 필살총검무.
그녀의 공격에 온몸이 두부처럼 썰리고 벌집이 되어갔다.
-쾅!
늪지위에 물보라가 치며 폭음 소리가 게이트 내부를 진동시킨다.
"하아..하아.."
화려한 일격과 함께 엘리스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도검을 늪지대에 밑에 박아 넣고 몸을 지탱한다.
드디어 베었다는 감각이 있었다.
총탄이 적중하고 녀석이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큰 상처를 입거나 죽었을 게 분명했다.
자신의 모든 마력을 쏟아 부었으니까.
최근에 만났던 미노타우로스도 이 일격을 받아 내지 못하고 토막시체가 되었다.
녀석이 아무리 강해도..
"대단해. 순식간에 난사하며 다쓴 틴창을 다시 채워 넣는 집중력. 거기에 검까지 휘두르기까지 하다니 멀린급 수준이야."
"너..너.."
뒤를 돌아보는 엘리스가 망연자실했다.
수십 수백을 베었고 쐈다.
하지만 액체처럼 흐물거리는 김보관의 몸을 보고 뒷걸음질을 쳤다.
수백의 헌터들을 시체로 만든 엘리스는 순간적으로 공포를 느꼈다.
전력을 다한 힘이 통하지 않는 건 둘째치더라도 멀정한 모습에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소름이 올라왔다.
"뭐냐! 네 녀석 뭐냐고!"
두려움에 질려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현상에 당황하는 기분.
나도 알고 있는 기분이다.
악마들을 상대하다보면 이곳이 현실인지 악몽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으니까.
무지에서 나온 생각이 공포로 넘어가는게 당연하다.
"좋아. 이쯤하지. 밖에서 엘루나씨가 기다릴거든."
"너 이 새끼.. 처음부터 나를 죽일 생각이 없었구나.."
"그건 아니고.. 발리아 제국이 조금 신경 쓰여서 나대신 움직여줄 사람이 필요해."
엘리스에게로 걸어갔다.
뒷걸음질 치지만 다가가는 게 더 빨랐다.
손을 올리니 그녀가 내 손을 쳤다.
하지만 내 손을 쳐냈다고 그녀가 인식한 것과 다르게 이미 그녀의 어깨 위에 내 손이 올라가 있었다.
"무슨.."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엘리스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마주고 있었다.
"이..! 이거놔! 놓으라고! 만..만지지마라!"
"죄없는 이들을 죽였다. 그럼 본인도 처참하게 당할 거리는걸 알고 있을텐데?"
"나..나를 어떻게 할 속셈이지!"
"이렇게."
어깨에 있던 손이 엘리스의 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이제야 사냥꾼의 살기에서 벗어났는지 나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커..커억...! 이...이거 놔! 놓으라고!"
"살려는 줄게. 하지만 이젠 제국이 아니라 내 말을 들어야 할 거야."
족쇄가 그녀의 목에 걸렸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사슬이 내게 연결된다.
"허억..!"
그녀는 흙탕물 위로 주저앉았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예속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게 있어."
"예속? 정신계열 능력자라고? 웃기지마! 넌 분명 사냥꾼 계열의 헌터였어!"
나름 나의 대한 정보를 많이 찾아봤나 보다.
아쉽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난 능력들은 잘 알지는 모르겠지만 내면에 있는 악마의 힘은 알 수가 없었을 거다.
"정신계열의 능력이 있다고 한들! 내가 하라는 대로 할 거 같아! 개자식아!"
"음.. 지금은 거부해도 좋지."
"이게..으..읏?"
엘리스는 순간 몸을 비틀거리며 스스로 자신의 머리와 심장을 붙잡았다.
갈증을 느꼈다.
끝없는 욕망과 갈구함.
서서히 커지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버틸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지 않을 거다.
"실력 테스트는 통과. 예상했던 것 보다 마음에 들어. 첫 번째 임무는 발리아 제국에 있는 사령술사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내게 가져와. 그럼 그 떨림을 진실을 알려주지."
"하! 웃기는군!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난 어깨를 으쓱대며 엘리스의 반항을 지켜봤다.
그녀가 검을 전송받아 다시 나를 보고 내려친다.
검으로 나를 갈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검은 내 머리 앞에서 멈춰섰다.
덜덜 떨리는 엘리스의 검날이 코앞에서 보인다.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검을 옆으로 밀었다.
"좋게 가자고 엘리스. 넌 이제 나를 죽일 수 없어."
"죽으라고!"
"맞아 처음부터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건 너다 엘리스."
"날..원래대로 돌려놔.."
"당장은 안 돼. 제국의 음모가 실패하면 그때 풀어주지."
스스로의 처지를 인정하는데 시간이 필요할거다.
당장 지배된 이들이 처음부터 내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멀린도 그랬고 말이다.
마침 잘됐다.
멀린은 음욕의 힘을 과하게 쓴 경우라서 그런 거지만 이번엔 순수한 내 힘으로 그녀를 다뤄보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고 임무를 끝마치고 오는지 궁금해졌다.
한 번 느긋하게 기다려보자.
"그럼 서로 일들이 많잖아? 나가자."
-지지직!
내 뒤편에 게이트가 열렸다.
이미 보스가 누구인지 밝혀진 상황이었다.
악마 바하무트는 이미 이곳에 없었다.
게이트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건 게이트 보스뿐.
바하무트는 내게 문을 권한을 넘겨주고 레비아탄의 바다에 들어갔기에 이곳의 게이트는 내 것이었다.
멍한 그녀를 두고 나는 게이트를 열고 걸음을 옮겼다.
"김보관!!!"
처음부터 이곳에 온 목적은 하나였다.
마탑으로 지원요청이 온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엘루나씨를 숲에 대려다 주는 것뿐이었다.
제국의 은밀한 일과 사령술사 일은 굳이 해결할 생각은 없었다.
또 다른 내가 보여준 악몽이 사령술사들이 소환한 마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당장 일을 크게 벌릴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시간과 정보가 필요했다.
사령술사의 진행도가 어디까지 됐는지 알아야 했고, 약점을 잡을 것도 찾아내야했다.
1차적인건 엘리스가 모두 가져다 줄 거다.
"설명해. 이 상황을 설명해! 내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나를 왜 선택했는지!"
엘리스의 절규를 끝으로 피식 웃으며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내가 엘리스를 여기서 만나게 된건 우연이다.
수백년간 살면서 그 우연이 인생에 큰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곤 했다.
과거에 나도 기연을 만나 강해질 수 있었고 스승까지도 만나 살아남았던 적도 많았다.
설명? 그녀를 보자 문뜩 떠오르는 느낌 때문.
엘리스에겐 죄업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내려주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녀가 마냥 질 좋은 인물이 아니었기에 바로 용서할 수 있는 건 안 된다.
다만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녀는 제국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쓰레기 같은 일들을 해결하는 인물.
악행들을 해오던 이들을 벌하는 건 내 전문이니 하늘이 나에게 맡긴 건가 싶기도 하다.
엘리스의 입장에선 운이 안 좋다고 느껴질 법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악마 수집가인 나를 만났으니까.
"지금쯤이면 깨어있겠지."
게이트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멀린과 엘루나씨가 잠든 항공기 쪽으로 슬슬 향하기로 했다.
뒤편에서 느껴지는 엘리스의 기척이다.
또 한번 내게 암기를 집어 던졌지만 보기 좋게 휘어 근처에 있는 나무에 박혔다.
그리고 나를 노려본다.
"날 어쩔 셈이지!"
똑같은 말을 계속 질문해왔다.
반복되는 말만 봐도 그녀의 정신이 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각일 거다.
이성과 본능이 싸우고 있는 이상한 경험.
자신도 어지러운 거다.
"아..! 김보관 헌터님! 돌아오셨군요!"
엘리스가 내게 물어볼게 많아 보였지만 난 미소를 보이며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휴스대장을 보며 한손을 들었다.
엘리스는 여기에 있다는 걸 휴스대장에게 걸려선 안되는지 아랫입술을 깨물며 이내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