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01.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1) (1/145)



〈 1화 〉01.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1)

프롤로그


꿈. 신비한 꿈을 꾸었다.

하얗고, 성스럽고, 아름다운. 하지만 동시에 어쩐지 음란한 느낌을 주는  자루의… 검.

그래, 검을 보았다.

꿈속에서 나는 그 검을 쥐었다.

그리고 나는, 몽마incubus가 되어있었다.

**

1.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



―짹짹

창밖으로 들려오는 산새 소리에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의식이 떠올랐다.

“아으…”

평소보다 묘하게 머리가 무거웠다. 아침에 약한 편이아닌 나인데도, 쉽사리눈을 뜰 수 없었다.

‘꿈… 때문인가.’

그런  같다. 아마도 간밤에 꾼 개꿈 때문인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생긴 칼을 얻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흐릿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묘하게 생긴 칼을 하나 얻었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내게 온  칼이 굉장히… 뭐랄까.

‘즐거운? 일을 했던 것 같은… 그런기분이 드는데.’

그러나 어젯밤 꿨던 개꿈에 대한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뭐야, 벌써 번째 알람이야? 망했네, 젠장!”

꿈은 꿈일 뿐이고, 현생의 나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해야 했으니까.

**

나는 김제이. 헌터 지망생이다.

정확히는 헌터 아카데미 1학년에재학 중인 사관생도.

전공은 전투분과 창술전공인데, 아직 각성을 마치지 못해서 헌터 라이센스는 없다.

“아, 오늘따라 왜 이래.”

개꿈을  탓에 컨디션이 안 좋은가.
평소에는 잘만 매지던 생도 넥타이가 왜 이리 안 매지는지.
신경질적으로 매무새를 정돈하고,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못한  방을 나왔다.

오늘로 아마 마지막이 될,  방을.

‘아직 각성도 못 했는데 벌써 2관에서 방출 되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다니는 국제 헌터 아카데미 <이스트 블루>는 생도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
사관학교니까 당연한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숙사생활이라는 거,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짜증난다.

첫 번째로 자정 통금. 이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 패스.

두 번째로 공동생활. 3학년이 되기 전까지생도들은 모두 4인 1조가되어 공동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과락 제도.’

품행이 방정맞거나,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성적을 가진 생도는 이유를 불문하고 3관으로 추방된다.
솔직히 말해서 규칙 잘 지키고 사회성 괜찮은 나에겐 이 세 번째 사항이야말로 가장  스트레스다.

“…….”

…그래, 맞다.
나는 품행이 단정하고.
학과 내 성적(필기 한정)도 우수하며.
교우관계도 원만한데다.
실기도 나름(미각성자 치고) 괜찮은데.
정규 기숙사에서 배제되고  것이다.

‘다음 주면 아카데미 2년 차인데 아직도 각성을못 했으니까.’

헌터, 즉 마수 사냥꾼은 <각성>이라는 과정을 통해진정한 헌터로 거듭난다.

여기서 각성이란, 자신의 고유능력을 깨우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각성 과정을 거쳐야만 헌터 지망생들은 비로소 던전이나 웨이브 등의 전선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된다.

각성을 못 하면 전투에 직접 참가할  없는 이유? 그건 아주 간단하다.

각성을 못하면 마력魔力을 활용할 수 없고. 마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전투술에 아주 뛰어나고 마법 이론이 아무리 깊다고 해봐야 미각성 헌터 지망생은 F급 헌터의 반쪽. 아니, 반의 반반반쪽도 되지 못하는 등신이라는 뜻.

그렇다. 그 등신 열등생이, 바로 나다.

'각성 유력' 판정을 받고 아카데미에 입학하긴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성할 낌새가 전혀 안 보이는, 머저리.

‘…젠장.’

열등생이라는 이유로 1년 간 정들었던 방에서 강제로 추방당하게 생겼으니, 내 속이 좋을 리 없다.

‘밥이나 먹자.  먹고… 훈련해야지.’

복잡한 속을 삼킨  식당으로 향했다.

**


따스한 향기 가득한 오전의 식당.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하루를 이미 시작한 부지런한 생도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왔다.

“아 뭐야, 오늘 반계탕이네. 영양사님, 오늘옐로우덕 고기 안 들어왔어요?”
“응. 농장에 게이트가 열렸다나 뭐라나. 이번 주는 안 들어온다나 봐.”
“아주머니! 여기 굴러트만두 다 떨어졌어요! 프레이야 콩도요!”
“야! 빨리 좀 받아. 뒤에   거 안 보이냐? 존나 굼뜨네.”

나는 활기차게 떠들어대는 생도들 틈에 끼어,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어라아? 이게 누구신가.”

그때,  뒤에서 익숙한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말을 붙여왔다.

“우리 모지리 오빠 오셨네. 웬일이야? 늦잠을 다 자고.”

나는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어디서 개가 짓나.”
“월! 월월!”

웃기는 년.
몸을 돌리자, 163cm 남짓한 키에 갈색 긴 머리를 늘어뜨린 어린 녀석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왜. 아직 부족해? 월! 월월월!”

어린 녀석은 작고 하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우스꽝스러운 태도로 개흉내를 냈다.

이 자식의 이름은 김하리.

나와 같은 시설에서 함께 자란, 친한 동생이다. 친동생은아니고, 가족처럼 가까운 소꿉친구 같은 그런 관계.

“더 해봐.”

내가 장난을 받아주자, 신이  하리가 익살을 떨어댔다.

“월월! 월!”
“그렇게 말고. 귀엽게 해봐.”
“멍! 멍멍! 멍멍멍!”

하리는 청순한 얼굴에 안 어울리게, 옅은 녹색의 체크무늬 생도복 치마에 감싸인 엉덩이까지 씰룩거리며 장난을 쳤다.
나는 올해로 벌써 성인이 됐음에도 여전히 아이처럼 행동하는 하리의 모습에 슬쩍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귀엽게 하라니까 좆같이 하면 어떡해.”
“큭큭큭!”

하리가 웃으며 손을 내렸다. 녀석의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갈색머리가 킥킥거리는 놈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가느다란 목 아래, 벌어진 그녀의 블라우스 사이로 흰색 내의가 얼핏 보이는 듯 했다.

‘이런 칠칠맞은 새끼.’

나는 말없이 그녀의 흐트러진 생도복 넥타이를 고쳐주었다.하리는 킥킥거리면서도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큭큭! 아 개웃었네. 오빠, 근데 진짜 뭐야.”
“뭐가.”

내가 그녀의 생도복에서 손을 떼자, 하리가 식판을 껴안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빠 진짜 무슨 일 없었어?”
“뭔 일. 그런 거 없었는데.”
“그짓말. 빨리 말해. 뭔 일이야?”

뭔 일? …솔직히 아무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오늘부로 정든 방에서 강제 퇴거해야 하는 판이었으니, 불편한 속내가 얼굴에 드러나긴 했을 거 아닌가.

“……그냥. 아직 각성도 못 하고 아카데미에 기생충처럼 붙어 있는 꼴이 우스워서. 그게 표가 났나보지”
“아니. 오빠가 모지리라는 건 당연한 거니까 됐고. 그거 말고. 없어?”

새끼가.

“없다고. 야, 개소리 말고 밥이나 퍼. 뒤에 사람 밀린  안 보여?”
“멍! 멍멍!”

하리는 내 재촉에 잽싸게 발걸음을 옮겨 밥을 받았다. 정확히는 뷔페식 기숙사 식당인 덕에, 지가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담는 거였지만.

“흐으음…. 좋아! 이번에는 우리 모지리 오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이 가지님을 먹어줘야지!”
“주둥이 쫌. 음식에 침 튀잖아.”
“그럼 포상 아님?”
“맞고 싶냐.”

나는 쉴 새 없이 장난치고 잡담 걸고 혼잣말을 하는 김하리와 함께 음식을 받아와 식사를 시작했다.

‘…내 안색이 오늘 좀 안 좋은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

나와 하리는 아침을 먹은 뒤, 기숙사를 빠져나와 갈림길로 향했다.
기숙사 카페테리아에서 가져온 아아를 홀짝거리던 하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오빠, 근데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그 왜, 있잖아. 오빠 자주 가는 아공간 B 훈련장. 거기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던데.”
“이상한 소리?”
“응. …큭큭큭! 디게 웃겨! 들어 봐.  이상한 소리가 뭐냐면―”

하리가 ‘이상한 소리’라는 것에 대해 운을  참이었다.
마치, 귀를 녹이는 듯한 아름다운 음색이 뇌리에 파고들었다.

“제이 오빠, 안녕하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안녕….”

아이린艾林.

내게 인사를 건넨 고운 목소리의 주인이자, 하리의 같은 반 친구다.
또한 그녀는 하리와 마찬가지로 구룡칠봉의 1인이기도 한 아카데미의 특급 유망주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검고 긴 생머리 사이로 보이는 빠져들 것만 같은 검고 큰 눈. 155cm의 작은 키라고는 도무지 믿을  없는프로포션.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 모든 것을 감싸 안아 줄 것만 같은 드넓은 포용력까지.

‘아이린은 오늘도 예쁘네.’

뭘 숨길까.
아이린은 나의 아이돌이다.

“하리야, 안녕. 아침 맛있게 먹었니?”
“하오好! 자오썅하오早上好!”
“후훗.”

김하리의  같은 중국어 발음에아이린이 빙그레 웃었다.
정말 멋진 점은 그녀의 싱긋 웃으며 입가를 가리는 포즈 하나에도 그녀의 거대한…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함께 출렁거렸다는 사실이다.

“오빠.”
“…어, 엉?!”

홀린 듯 아이린의 흉부를 훔쳐보다 깜짝 놀란 내가 잽싸게 눈을 돌렸다.
하리가 얼빠진 내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우리 먼저 갈게. 오빠 오늘오전 훈련 늦었잖아.”
“그럴래? …근데 좀 더 얘기해도 되는데. 어차피 오늘 종업식이라 수업도 빨리 끝나잖아.”

사흘. 무려 사흘 만에 영접한 아이린님의 실물이다. 이대로 떠나보내기 전에 한 마디라도 더 그녀와대화를 나누고 싶은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김하리는 진정 악마였다.

“아니야, 아니야~. 훈련 덕후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을 수는없지. 안 그래, 아이린?”
“그럼. 오빠께서는 지금이 아주 귀중한 시기시잖아. 폐를 끼칠 순 없지.”

마음 착한 아이린 또한 여기서 찢어지자는 데에 동의했고,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훈련장으로 발길을 서두를 수밖엔 없었다.

‘저 새끼는 매사에 도움이 안 돼.’

나는 쓸쓸 훈련장으로 향하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로내려갔다.

“오빠아!”
“아, 또 왜!”

하리의 부름에 큰 소리로 되물었다.
녀석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영문 모를 개소리를 했다.

“숫총각 따먹는 처녀귀신이 산대.”


…뭐?
귀를의심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하리와 아이린 주변을 지나던 생도들도 이게 무슨 망측한 소린가 하는 심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하, 하리야아!”

아이린이 새빨개진 얼굴로 하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김하리는 친구의 만류에도,  손을  가로 모은 뒤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소무운! 아공간 B 훈련자앙!

거기에! 오빠 같은! 동정남을 따먹는!

처녀! 귀신이! 산다고오!”

…뭔 소린가 했더니.아까 말하다 말았던 훈련장의 괴소문 얘기였구나.

‘음.’

하지만 나는 소문의 진위에 대해 생각할 겨를을 가질 수 없었다. 왜냐면.

“야, 쟤 아직도 동정이래,큭큭!”
“헌터 성인 남자가 아직도? 무슨 문제 있는  아냐? 킥킥!”
“발기부전인가. 멀쩡하게 생겨놓곤.”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생도들의 목소리가 내 얼굴을 홍당무로 만들고 있었으니까.

‘귀신은 뭐하나, 저거  잡아가고.’

나는 뒤에서아직도 “이 참에 오빠도 동정 탈출해!”, “혹시 알아? 나도 정령계 새언니 생길지. 요즘 비인간형 개체랑 결혼하는 헌터들이 대폭 늘었대!”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김하리를 무시하며 훈련장으로 달렸다.


**

훈련장에 도착한뒤, 곧바로 라커룸을 찾았다.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평소의 루틴대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훅! 훅!”

고속 맨몸 스쿼트 100회 – 비대칭 플랭크 5분  손가락으로 버티는 물구나무서기 및 팔굽혀펴기 50회.
 과정을 빠르게 5세트 반복하는 것이 내 자율훈련의 첫 번째 순서다.

“후우! 후우!”

그리하여 내가 막 세 번째 세트를 마쳤을 무렵이었다.
나는 평소와다른 라커룸의 분위기를 눈치챘다.

‘흐음.’

그것은 바로, 나 이외에는 다른 생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오늘이 종업식이라 그런지 많이 한산하구나.’

정말 그랬다.
시간은 오전 7시 반. 아직 등교 시간까지 1시간 반이나 남은 시간이었음에도 이곳, 아공간 B 훈련장의 거대한 라커룸은 쥐죽은  고요했다.

‘하긴. 이맘쯤이 1년 중에 가장 붕 뜨는 시기지. 나 같은 열등생 아니면 누가  시간에 훈련장엘 와.’

…어쩐지 이  아카데미에 나 혼자만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 아아. 아아!”

힘을내려 기합성을 내보았다.

“박을 수 없어! 박고 싶은데! 딸만 치는 기분인걸!”

중학생 때 유행했었던 19금음란송을 불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라커룸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휑해진 기분.

‘뭐야.  귀신이라도 나올 분위긴데.’

…그때 문득, 아까 하리가 언급했던 귀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숫총각 따먹는 처녀 귀신이 산대.


실소가 나왔다.

“귀신은 무슨.”

해가 동산에 걸린 오전 댓바람부터 양기 충만한 남자 훈련장 라커룸에 나타날 배짱 좋은 처녀귀신 따위가 있을 리가.

“나오라 그래. 나도 총각 딱지  떼보자.”

스쿼트 끝낸 뒤, 플랭크 자세를 취하며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었을 때였다.


{아. 아. 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눈살을 찌푸렸다.


{아. 아. 아. 아.}


…환청이 아니었다. 이건…….

{아.아. 아. 아. 아.}

이건, 신음……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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