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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02.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2) (2/145)



〈 2화 〉02.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2)


{아. 아. 아. 아. 아.}

신음소리로 추정되는 의문의 소음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는데.’

거대한 라커룸에 인기척은 전혀 없다.
하지만 기이한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아. 아. 아. 아. 아.}

짧게 끊어지는 단말마가 귀를 지속적으로 간지럽혔다. 심지어 점점 크게 들려온다.

‘…창곤가?’

그런  같다. 소리의 근원지는 아마도 라커룸과 훈련장 사이에 있는 훈련 물품 보관 창고인 모양이었다.

‘어떡할까.’

빨리 판단해야했다.

‘사람이면 모른 척하는 게 도리겠지. 창고에서  몰래 모닝 섹스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면.’

그게 문제다. 이 소음의 주체가 인외人外의 존재라면, 나는 지금 당장 아카데미 사무소에 연락을 넣어야 한다.

‘아카데미에는 결계가 있어서 마물이 침입할 수 없다. 그러니 만약 여기서 마물이 발견 되면… 테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아카데미 생도를 향한 테러 행위. 이것은 국제헌터연맹과 대립하는 불법 단체들로부터 종종 행해지는 일이다.

‘…좋아.’

결심을 굳혔다. 창고 안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한 뒤, 위기 상황일 경우 직접 대응하지 않고 곧장 신고하기로.

‘간다.’

나는 라커 안에서 훈련용 단창을 꺼내들고 조심스레 창고로 이동했다.

**


{아. 아. 아. 아. 아.}

역시 훈련 물품 보관 창고가 맞는 것 같다. 의문의 소리는 창고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크게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끼이이익

녹슨 창고 문 열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너무 컴컴한데.’

창고 안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전등 스위치를켜보아도, 등이 이미 나간 것인지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오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불이 나간 것도 모르는 거겠지.’

이 보관 창고는 폐기하기는 뭐하지만 계속 사용하기도 애매한 하자 물품들을 보관하는 곳. 그러니 평소에는 행정 직원조차 들어올 일이 별로 없다.

―카앙!

“헉! …에이 씨, 아니잖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훈련용 검을 밟고 흠칫 놀랐다. 방금 밟은 것 때문에 낡은 검신이 반 토막 난  같긴 한데,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 아. 아. 아. 아.}

“…….”

긴장이 고조 되어간다.
의지할  있는 빛은 고작 휴대전화 플래시 전등 하나 뿐.

‘…일단 누가 떡치는  아닌  같은데. 그냥 돌아가서 신고나 할까?’

약간 불안해진 마음에 이대로 조사를 마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였다.

[ ᚏ  ᚏ  ᚏ  ᚏ  ᚏ  ᚏ ]


기이한 진동이 뇌리에 파고들었다.

‘어?’

[ ᚏ  ᚏ  ᚏ  ᚏ  ᚏ  ᚏ ]

‘이건…….’

이것은 오검Ogham. 오검 문자였다.
고대 게일어Gàidhlig 표기에 사용됐다는 문자.
그것이 지금, 소리이자 동시에 문자의 형태로  뇌리에 파고든 것이다.

‘…….’

나는 홀린듯 오검 문자가 신호를 발하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1m 정도의 검신을 가진 장검 앞에 멈춰 섰다.

‘낡았네.’

내게 기이한 방법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 추정되는 검은, 아주 낡아빠져 있었다.

검날의 이는 다 빠졌고, 본래 은빛이었던 검신은 녹이 슬었으며, 검은 손잡이에서는 찐득한 오물이 묻어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 검이 제조년도를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풍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봐줄만 했겠는데.연식이 얼마나 된 거야 이거.”

자연스레 그런 감상이 나올 정도로.


[ ᚏ  ᚏ  ᚏ  ᚏ  ᚏ  ᚏ ]


……뭐야. 지금… 대꾸한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혼잣말을 했다.

“…근데  검은 너무 낡았어. 검신도 애매하게 얇은 걸 보니까 레이피어도 클레이모어도 둘 다 아니야. 전형적인 의식용 검이라는 거지.”

[ ᚏ  ᚏ  ᚏ  ᚏ  ᚏ  ᚏ ]

……또다. 또 뇌리에 오검 문자가 파고들어왔다. 더구나 이번에는  뜻까지 어렴풋이 알  있었다.


―[부정denial]

뭐 이런 느낌.

“말도 안 돼…….”

나는 내가 지금 받고 있는  느낌을 부정했다. 에고 소드ego sword라니, 그런 신비에 가까운 무구가 이딴 창고에 굴러다닐 리 없지 않은가.

‘그딴 행운이 내게  리 없지.’

쓴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주저 없이 검을 손에 쥐었다.

“근데 이거 보다보니까.”

‘어쩐지 좀 낯이 익은  같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파아아아아아아앗

백색 빛 무리가 세상을 뒤덮었다.

연이어 문자들이 떠올랐다.

신비한 마력을 머금은, 오검어들이.

[ ᚏ  ᚏ  ᚏ  ᚏ  ᚏ  ᚏ ]

처음에는 의미를 알  없었으나, 그것들은 이내 해독 가능한 형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시스템 캄비온 봉인 완전 해제까지 앞으로: 87%]

[▶기관찰 중이던 인지 가능 마력원 확인. 근원 접속을 통한 카르마 수치 계산 중]

[▶시스템 캄비온 봉인 완전 해제까지 앞으로: 95%]

[▶기관찰 중이던 마력원과의 카르마 적성 판별 완료. 시스템 캄비온 승인 완료. 가계약 준비 기동]

쏟아지는 정보의 향연. 그리고 그보다 더한 압박으로 다가오는 기이한 마력의 물결에, 나는 검을 놓으려 했다.

“뭐야?!”

그러나 검은 내 손에서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스템 캄비온 봉인 해제]

[▶마력원 <김제이>와 가계약 완료]

[▶시스템 캄비온 조건부 봉인 해제]

무언가가 깨어났다.


[쎅스! 섹쓰! 와아~ 드디어 해방이다!]


**

[아앜!  떨어지는 계약자 때문에 더럽게 오래 걸렸네! 눈치는 개밥 말아 먹었나 꿈으로 암시를 그렇게나 줬는데도 이제서야 찾아왔어! 이거 실화냐?!]
“…….”
[흐음, 이 상쾌한 공기! 하오움, 쿰척 쿰척! 더! 나에게 더 신선한 공기를!]

뭐, 뭐야  새끼…….
너무 놀라 목소리가 덜덜거렸다.

“너… 너, 머야……?”

세상에나! 말하는 검이라니!

[나?]
“…그래, 너.”
[흠!  몸께서는 신검神劍 캄비온 그 자체이자, 캄비온의 검령劍靈이시기도 한 메를리누스님이시지. 어때, 존나 쎅스하지?]
“……신검 캄비온?”
[그래! 야, 일단 저어기 햇볕 비추는 데로 좀 가봐. 광합성 좀 하게. 아, 너무 오랫동안 처박혀 있었더니 비타민이 부족해.]

우웅, 하고 검이 한차례 진동했다.
마치 내게 행동을 재촉하듯이.

‘검 주제에 광합성은 무슨.’

나는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에고 소드로 추정되는  ‘말하는 검’의 존재에 얼이 나간 상태이기도 했다.

[하으……. 아…… 아으……. 하아…… 그래… 이게 쎅쓰지…….]

자신을 ‘신검 캄비온이자 메를리누스’라고 말한 검은 온탕에서 반신욕을하는 아줌마 같은 목소리를 내며 햇살을 즐겼다.
나는 한동안 녀석의 즐거움을 기다려주다가, 하나씩 질문을 던졌다.

“야.  에고 소드 맞지.”
[쯧, 구멍 앞에 두고 헛좆질할 놈일세. 하긴 이 모양  꼴이니 스물 셋 처먹고 아직도 동정이겠지.]
“…뭐?”
[척하면 척! 모르냐고.]
“하아….”

얼탱이 없는 놈의 말솜씨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어쩐지 이놈의 성격에 대해 약간은 알 것 같아, 놈을 편하게 대하기로 했다.

“너 뭐하는 놈이냐. 간략하게, 알아먹을  있게  말해봐.”
[으이구, 이 얼간아. 캄비온Cambion이라고 했을  알아먹었어야지. 신비유물연구 A+ 받은 놈이 눈치가 그렇게 없어?]
“캄비온? …그러고 보니.”

하기사, 캄비온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말이다.

‘캄비온Cambion. 분명, 몽마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를 이야기하는 거겠지. …근데 그게 이 검이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이 검과 캄비온의 반인반마 전설에 대해 혼자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놀랍게도 검이 생각을 읽고 말을 걸어왔다.

[너 진짜 바보로구나? 캄비온이라고 하는 순간 떠올린 그거. 그래! 지금 니가 긴가민가 하는 그거! 이 몸께서 바로 그 인간이랑 깊은 관련이 있으신 분이라 보면 돼.]
“…마법사 멀린?”

멀린Merlin. 영국의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예언자. 몽마와 인간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단아이자, 수많은 마법사들의 원형이 된 ‘역사가 기록하는 진짜’ 마법사.

[흐응, 창조주의 이름을 남에게 듣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로군.]

검, 자신을 ‘시스템 캄비온 그 자체’라고 소개한 녀석이 사뭇 그리움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반면 나는 몹시 놀랐다.

‘얘를 멀린이 만들었다고?!’

아카데미 허름한 창고에 대마법사 멀린이 만들었던 신병이 있었고, 그 검을 내가 발견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없었으니까.

‘그럼 검은 최소 15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뜻이잖아!’

하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경이로움과 달리 신기한 검은 담담했다.

[뭐, 너희 인간들이 알고 있는 멀린과 내 창조주가 꼭 같은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몸이 대리인 행세를 한 셈이니 대충 같다고도 볼 수 있지.]
“…그게 무슨 소리야.”

―우우웅

검이 한차례 떨었다. 놈은 잠시 전보다 약간 더 예기를 품은 모습으로 당당히 자신을 소개했다.

[너희 인간들이 멀린이라고 부르던 몽마 마법사는 사실 이 몸이었다는 뜻이다!]

[뮈르딘, 메를리누스, 멀린.]

[이 몸께서 너희 인간들에게 불렸던 이름들이 바로 그것이었지.]

[쉽게 말해서, 이 몸을 만든 창조주인 진짜 멀린이  몸께 대역을 시켰다는 뜻이야!]

“…….”

전승에 등장하는 멀린이 <진짜 멀린>이 아닌  검이었다니. 만약 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정말 놀라운 역사적 진실이다.

“너 그럼 원래사람이었냐?”
[사람이라기 보단 정령체지. 지금이야 힘이 다해서 캄비온 속에 갇혀 있는 모양새지만, 왕년에는 나도 한가닥했었으니까.]
“흐응.”

너무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어버린 탓에 맥이 탁 풀렸다.
나는 먼지 자욱한 바닥에 주저앉아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그러나 녀석이 나를 말렸다.

[야, 잠깐. 앉을 거면 저기서 물건부터 챙겨.]
“무슨 물건.”
[일단  보기나 하셔.]
“…명령질이야.”

구시렁대며 원래 녀석이 있던 위치로 돌아갔다.

[거기. 거어기, 이 몸이 놓여 있던 곳 바로 아래에 떨어진 거. 응! 그래 그거. 그거 챙겨야 돼.]
“이게 뭔데 그래.”

녀석이 말한 ‘물건’이라는 것은 분홍색 반지였다. 약간 서늘하면서도 끈적끈적한 느낌이 나는 꽤 큰 반지.

[이 반지는 악마 군주의 정수야.]
“악마 군주의 정수?”
[쎅스. 흐음…… 남은 건 이거 하난가? 그래도 제파르의 정수라니, 이 몸의 새로운 파트너는 운이 괜찮군.]
“뭔 소리야. 알아듣게 좀 얘기 해. 그리고 아까부터 파트너니 계약이니 그런 말을 하더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인데?”
[나도  번에 다 말하고야 싶지. 그런데 너, 지각해도 돼?]

황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AM 8:45

“젠장.”

검과 반지를 챙기고 황급히 창고 밖을 향해 달렸다.

[잠깐 멈춰 봐.]
“나 바빠!”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

내가 녀석의 말을 듣자, 검이 울었다.

―우우우웅

그러자 신기하게도 검은 시시각각 작아지기 시작했다.

“어?”

본래의 1m 이상 크기에.
팔뚝 길이 정도로.
그리고 더욱 작아져 종래에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까지 줄어든 것이다.

[어때?]
“……좋네.”

크기는 물론이고 질량까지 줄어드는 기능을 탑재한 무기. 그런 것은 정말 희귀하다.
경량화 마법에서부터 밀도와 관련된 위상 차를 고려한 고난도의 형태변환 마법. 여기에 원상태 복구를 위한 무기의 소재 등까지, 정말 복합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고지능의 자아까지 갖췄다?

그런 무기는 부르는  값이다.

[알면 귀하게 뫼셔.]

나는 신기한 마법검을주머니에 넣고 힘껏 달렸다.

“…가자. 지각하겠다.”
[쎅쓰?]
“닥쳐.”

**

내가 있던 아공간 B훈련장과 강의실이 위치한 본관 사이는 꽤 멀다.
나는 샤워도 못 한 채, 생도복만 갈아입고 황급히 본관으로 향했다.

[히야, 학교 이쁜 거 보소. 야! 쟤 봐,쟤 팬티 보인다! 물도 좋네! 쎅쓰!]
‘닥치라고!’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거는 마법검 때문에 차질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아주 늦지 않게 본관에 다다를  있었다.

“형!”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고 있는 선우의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종업식이라서 오늘 아침 조회는 조금 늦게 시작하나보다.
나는 뜀박질을 멈추고 천천히 선우에게 다가갔다.

“형! 이제 오세요? 오늘은 웬일로 늦으셨네요.”
“어, 늦잠을 자서.”
“아하하. 형 머리 새집 졌어요.”

맑은 웃음을 지은 선우가 까치발을 하고 내 머리를 정돈해주었다. 키가 166cm 정도인 녀석이라, 180인 나를 도와주기 어려울 텐데도 선우는 귀찮은 기색도 없이 내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이그, 꽃가루 묻은 거 봐.”
“가로수 길에서 붙었나보네.”
“형, 늦잠 주무셨다면서 오늘도 훈련하신 거예요?”
“그냥.”
“종업식인 오늘도자율 훈련을 하시다니, 진짜 부지런하시다. 완전 존경스러워요!”

분을 칠한 것처럼 하얀 얼굴. 송아지처럼 큰 눈과 신비로운 인상을 주는 긴 귀. 그리고 무척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머리카락을 가진 하프 엘프가  얼굴을 올려다보며 칭찬을 해댔다.

“고마워. 근데… 오늘도 나 기다린 거야? 이렇게 늦는 날은 그냥 먼저 들어가지 왜.”
“아뇨, 아뇨! 별로 안 기다렸어요!  오시는 동안 정령술도 연습하고 그랬어서, 하나도 안 지루했어요.”
“에휴.”

별로 안 기다렸다고 말은 했지만 아마 30분도 넘게 본관 앞에 서있었을 거다.

이 착한 녀석의 이름은 반선우.

나와 같은 반에서 훈련 중인 친구다. 전공은 정령술이고, 종족은 보시다시피 하프 엘프.

“형! 오늘은 스콘을 구워봤어요. 엄마가 맛있는 고구마를 선물로 받아오셔서 그걸루요.”
“그랬냐.”
“네!”

내 아무 의미 없는 추임새에 선우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리곤 뺨까지 내려온 결 좋은 녹색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호, 혹시 형도 고구마 스콘…… 좋아하세요?”

…얘 남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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