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03.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3) (3/145)



〈 3화 〉03.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3)

나와 선우, 주머니 속에 든 마법검. 그리고 악마 군주의 정수 머시기는 본관 강의실로 갔다.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종업식이라 그런지 아카데미는 아주 떠들썩했다.

“맛있네.”
“정말요?”

나와 선우는 내가 뽑아온 밀크티와 함께 고구마 스콘을 먹으며 담당 교수를 기다렸다.

“응. 고구마도 신선하고, 빵도 촉촉해. 너 이제 빵집 차려도 되겠다.”
“아하하.”

선우가 선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 친구이자 생도 동기인 선우의 양어머니는 아주 유명한 헌터이신 반지원님이시다.
반지원님께서 한국 3위의 클랜인 <하얀 그림자>들의 수장이시니, 선우는 오리하르콘 수저라고  수 있다.
하지만 녀석은 재벌집 외아들답지 않게 아주 착하고 수줍음이 많았다.

‘하프 엘프라서 그런가. …아냐, 엘프 중에 성질 나쁜 개체들도 많다던데. 그냥 선우가 성격이 좋은 거겠지.’

나는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선우와 잡담을 나눴다.
수업 전후에 틈틈이 선우와 담소를 나누는  내게 의미가 크다. 내 하루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이런 작은 순간들조차 귀중한 휴식이 되기 때문이다.

“제하!”
“왔냐.”
“제이 오빠 하이! 선우도 안녕?”
“엘리사도 좋은 아침!”
“어? 빵이다. 나도 먹어도 돼?”
“그럼. 많이 있으니까 여기 앉아.”

아이웨이나 엘리사 등, 나보다 더 늦게 강의실에 도착한 친구들이 말을 걸어왔다.

“제이, 교수님 아직 안 오셨지?”
“응. 봄방학 미션 관련으로 회의라도 하시나봐.”
“봄방학이라…. 와, 벌써 1년이 지났네. 입학한 게 엇그제 같은데.”
“그니까. 이제 봄방학 지나면 바로 2학년이잖아. 늙었어, 흑흑!”
“…….”

나는 고작 17살이  주제에 ‘늙었다’는 표현을 쓰는 엘리사를 남몰래 째려봐주었다.
우리 이스트 블루 아카데미는 16세 이상 30세 이하 입학 가능이라는 탄력적인 연령 커트라인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17살인 엘리사나, 19살인 선우. 그리고 23살인 나도 모두 친구처럼 지낸다.

‘격의 없이 지내는  좋지만 이럴 때가 좀 슬퍼진단 말이지.’

우리가 1학년 생활에 대한 소회, 봄방학 중 부과될 미션, 2학년 생활에 대한 기대감 등을 이야기 하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우리 반 담당인 이시카와 레이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평소처럼 하얀 와이셔츠에 H라인 스커트를 입은 이시카와 교수가 표정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목.”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분위기가 금세 가라앉았다. 학생들이 착석했음을 확인한 교수가 디스플레이를 켰다.

“공지사항부터 확인하자.”

봄 방학 공지는 지난 여름/겨울 방학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 사고 치지 말 것.
과제 외의 자기 공부를 열심히 할 것.
학칙 외의 금전 활동을 자제할 것 등.

‘이 다음은… 또 그거겠구나.’

공지가 끝나면 그게 나온다.
내가 아주 싫어하는 그거.

“다음은 순위 발표를 하도록 하겠다.”

―딸깍

이시카와 교수가 포인터를넘겼다. 그리고 학내 전체의 상위권 랭킹 순위가 기록된 표를 띄웠다.

〓〓
<제4국제헌터아카데미 East Blue 202X年 개인 헌터 랭크 최종 채점표>

1. S 브라운 R. 보이드 (검술전공 / 2학년 / 명예졸업대상자)
2. S— 유재하 (마법전공 / 3학년 / 졸업예정자)
………

11. A++ 김하리 (마법전공 / 2학년)
12. A++ 엠마누엘 아이유 (창술전공 / 3학년 / 졸업예정자)
13. A++ 아이린 (치유술전공 / 2학년)
………

〓〓

“와! 브라운  괴물 같은 놈이 드디어 명예 졸업하는구나. 개쩐다 진짜.”
“우리 아이린 여신님은 또 순위가 오르시겠네? 역시 여신님이셔!”
“김하리 어뜩하냐. 유재하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랭킹전에서 이기고 따라잡히기 전에 도망쳐버리기~!”
“큭큭큭. 유재하가 김하리한테 발릴까봐 지난 겨울방학 때 피똥 싸면서 레이드 돌렸다던데.”

순위가 발표되자 조용했던 강의실이 삽시간에 떠들썩해졌다.
 또한 순위표 상위에 걸린 학내 유명인들의 이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진룡이 이번에 명예졸업을 하는구나. 하긴, 지난 학기 중에 했어도 됐는데 오히려 늦었지. 유재하 선배… 는, 와! 겨울 방학 중에 S급 됐구나. 진짜 대단하다.’

하리와 아이린의 순위야 이미 대충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지 않았다.
올해 19살 성인이 된 두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학년은 위다. 재능이 있으니 먼저 입학했고, 능력이 있으니 나보다 위에 있는 것뿐이다.

“…….”

어플을 열어 나의 순위를 확인해보았다. 이미 종업식이 시작했으니, 아카데미 앱에도 전체 순위가 올라와있을 테니까.

〓〓

………
10023. 미각성 김제이 (창술전공 / 1학년)
10024. 미각성 미아 파레스 (마력전투보조전공 / 3학년)
10025. A 반선우 (정령술전공 / 1학년)

<10025/10025 이하 없음>
〓〓

‘랭킹이 엄청 떨어졌구나…….’

…아무리 그래도 뒤에서 3등이라니.

‘필기는 앞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텐데…. 무기술도, 합동 훈련도 나름 잘 소화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미각성자는 아무리 잘해봐야 일반일 취급에 한없이 가까운 헌터 ‘지망생’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톡톡

옆자리의 전교 꼴찌님께서 잔뜩 상기된 말투로 속삭여왔다.

“형! 3기숙사 생활, 너무 기대되지 않아요? 저 너무 떨리는 거 있죠.”
“……하아.”

한숨이 앞을 가렸다.

**

종업식이 끝난 뒤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교수 연구동으로 향했다.
이시카와 교수가 개인적으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각성이나 제3기숙사 이사 건이랑 관련된 거겠지. …설마 자진 퇴교를 권하는 건 아니었음 하는데.’

불안한 마음을 안고 본관을 나와 광장을 지났다.

[야, 시간 언제 낼 거야! 이 몸을 대체 언제까지 방치 플레이할 거냐고!]

웬일로 니가 잠잠하다 했다.

‘좀만 기다려. 이거 끝나면 시간이 날 테니까.’
[멀티 테스킹 좀 해라! 멀티 테스킹 못 하는 남자가 쎅쓰도  하는 거 아냐?! 니가 그러니까 아직도 아다지.]
‘그러게.’

종업식 내내 수다스런 입을 꾹 닫았던 마법검이 둘만 남자 곧장 칭얼거렸다. 녀석의 항의는 정당했지만, 나는 머리가 복잡해 녀석의 응석을 받아주지 않았다.

―똑똑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은색의 문을 열고 연구실에 들어갔다.
이시카와 레이 교수는 업무를 보고 있던 중이었는지, 주위에 서류 뭉치가 가득했다.

“편하게 앉아.”
“네.”
“커피?”
“괜찮습니다.”

그녀가 응접용 소파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이렇게 단 둘이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니 이시카와 교수가 얼마나 젊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시카와 레이石川 怜.

29살의 젊은 나이로 이스트 블루의 교수직을 맡고 있는 S급 헌터다.
12세라는 무척 어린 나이에 각성한 천재로 일본 미디어에  주목을 받았었는데, 5년 전 어떤 일을 계기로 은퇴한 뒤 지금은 교수 일을 하고 있다고.

“김제이.”
“네.”
“억울하니.”
“아닙니다.”
“기말고사 때와 비교해서 결과적으로 983등이나 떨어뜨렸는데도?”

내 아카데미 랭킹이 뒤에서 3등인 데에는 담임 교수인 그녀의평가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지식은 쌓으면 됩니다. 전투술은 배우고 익숙해지면 되죠. 하지만 각성은 누가 가르쳐주고 배우려한다고 되는  아니잖아요.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

그녀가 아주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머리를 롤처럼 감아 뒤로 단정히 묶은 그녀다. 정숙하고 이지적인 인상의 미녀가 나를 향해 웃어주니, 약간은 위안이 됐다.
그리고 그녀의 위로는 끝이 아니었다.

“제3기숙사로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려고 불렀어.”

그게 무슨….

“너는 아직 각성만 못 했을 뿐이지, 타의 모범이 되는 생도야. 학칙 상 2학년이 될 때까지 각성을  했으니 3관으로 가게 되기야 했지만, 네가 원한다면 힘을 써줄 수도 있다는 뜻이야.”
“…….”

고민됐다.
사실 말이 3기숙사지, 또라이와 문제아와 열등생을 모아놓은 유배지다.
3관은 밥을 해주는 요리사도, 청소를 해주는 용역도, 분위기 관리를 해줄 사감도. 그리고 헬스장이나 편의점 같은 편의시설조차 없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제 힘으로 되돌아오고 싶습니다.”

나는 특혜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편법이기 때문도, 종종 대학원 진학을 추천해준 이시카와 교수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아직은 학자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 헌터가 되고 싶어요.”

이시카와 교수가 커피를 마셨다.
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작고 예쁜 입술을 뗐다.

“네 뜻은 잘 알겠어.  봄에는 꼭 각성해서, 네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렴.”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시카와 교수나 나나 공적인 일에 군말이 없는 타입. 겉치레나 안부 따위는 필요 없을 테니까.

“잠깐만.”
“네?”

할 말이 남으셨나.

“너, 요즘도 거기서 자율 훈련 하니?”
“아공간 B 훈련장 말씀이십니까?”
“어.”
“네. 오늘 아침도 다녀왔는데. 왜 그러세요?”

내 대답에, 이시카와 교수가 보기 드물게도 눈살을 다 찌푸렸다.

“거기 한동안 밤에는 이용하지 말렴.”
“…왜 그러시는데요?”
“괴이현상보고가 내려왔어.”

괴이현상보고怪異現狀報告.
헌터연맹 내부에 공식적으로 하달된 ‘원인을 알  없는 이상 사건’이다.

“어떤 현상인지 여쭤 봐도 되나요?”
“기이한 소리가 들린다고 해.”
“…소리요?”
“그래. 여자의 비음 같은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소리를 듣다가 홀린 생도들이 몇 있었던 모양이야.”
“홀리다뇨?”

이시카와 교수가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보고서 내용은 이래. 어디선가 비음이 들려오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비음 소리가 온통 머릿속에 가득 찬다고 해. 그리고 눈을 떠보면, 병원이었다는 거지. 온 몸의 마력이 탈진된 상태로.”

…이거 설마.

“되, 되게 이상한 일이네요….”
“그러니까. 그런데 피해 규모도 경미하고, 자주 일어났던 일은 아니라서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까다로운 상황이야.”
“…….”

쓴웃음을 가리며 교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주의하겠습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교수님. 봄 방학 잘 보내세요.”
“수업 시간에 보자.”

**


연구실에서 빠져나와, 인적이 없는 복도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아진 마법검을 꺼내 녀석을 추궁했다.

“너지?”
[뭐가.]
“시치미 떼지 말고.”
[뭐 임마.]

어이가 없네.

“니가 했잖아! 창고에서 ‘아.아.아.아.’ 하면서 여자 신음 소리  거. 그거 너잖아.”
[아닌데.]
“뻥치지 말고. 너 근데 생도들 마력은 왜 빨아먹은 거야? 그때는 계약자가 없던 상황이라서 그랬어?”
[이 섀끼가 진짜!!]


―우우우우우웅

[뒤질 뻔한 거 살려줬더니 감히 누구를 악마 따위로 취급해?!! 엉망진창 되고 싶냐!!]

녀석이 크게 울며 백광을 토해냈다.
그 모습에 억울함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나는 크게 놀라 녀석을 품에 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뭐야. 그거, 진짜 너 아냐?”
[아니라고 이 빙추 동정 새끼야! 오히려 니가 그거한테 홀릴 뻔한  이 몸께서 구해주신 거라고! 기억 안 나?!]

날 네가 구해줬다고?

“자세히말해봐.”
[아유,  답답아! 니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그거한테 당할 위기여서, 이 몸이 널 먼저 부른 거야. 나랑 계약해야 니가 그거한테 당하질 않으니까. 그 잘난 대가리 좀 굴려보라고!]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나는 머지않아 위화감을 눈치챘다.

“……아.”

라커룸에서 들렸던 신음소리가.
이 녀석과 조우한 뒤로…, 깨끗이… 사라졌던 것… 같긴 했다…….

“…….”

등골에 소름이 달렸다.

“…그, 그럼 ‘그거’의 정체가 뭔데.”
[킥킥!]


―우우우우웅


녀석은 한차례 크게 떤 뒤, 선언했다.


[네놈 검집. 아니, 좆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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