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04.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4) (4/145)



〈 4화 〉04. 제이와 신비한 마법검(4)


<72 악마 군주>.

이것은 기원전, 지혜로운 왕 예드디야가 봉인한 강력한 악마들이다.

예드디야Jedidiah. 다른 말로 솔로몬이라 불리는 이 위대한 왕은 다윗왕의 아들이자, 예루살렘의 지도자였다.

마법과 신비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신대神代의 혼탁한 세상. 예드디야는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72악마를 <예드디야의 반지>라 불리는 무구에 가둔다.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던 내용이다.
문제는 이 다음부턴데….

“그러니까, 이 반지가 예디드야. 즉, 솔로몬의 반지라는 말이야? 예디드야가 마법으로 72악마들을 봉인했다던?”
[쎅쓰.]

주머니에서 엄지보다 훨씬 구멍을 가진 분홍색 반지를 꺼냈다.

<악마 군주의 정수>.

마법검이 아까 챙기라고 했던 그거다.

[예디드야는 72개의 반지를 만들어서 반지 하나하나에 악마 군주들을 봉인했어. 그리고 바빌론 깊숙한 곳에 악마들을 묻어버렸지. 하지만 멍청한 바빌로니안들이 봉인을 깨버리면서, 악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버리게 된 거야.]
“그래서? 그게 왜 여기,   안에 있는 건데.”
[크크.]

낮게 웃은 마법검이 우웅 떨었다.

[그! 래! 서! 창조주가 1600년 전에 이 몸을만들었지! 72악마들을 재봉인하기 위해서 말이야.  몸의 이전 파트너인 아서Arthur,  얼간이는 내 도움으로 72악마를 재봉인하는 데에 성공했어.]
“…?”
[하지만 아서 그 새끼가 뒤진 후에 문제가 생겼지. 요정 여왕의 호수에서 조용히 꿀잠 자던 내가 <퍼스트컨택트>에 휩쓸리면서 봉인이 강제로 풀려버린 거야.]
“……??”
[그래서 이 몸은 72악마 군주 놈들을 다시 잡아들이기 위해서! 산 넘고 물 건너 이 대륙 동쪽 끝의 촌구석까지 오게 됐다는 말씀! 어때, 설명 존나 쎅쓰했지?]
“??????????”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과 몰랐던 정보가 섞여 머리가 어지러웠다. 두뇌 풀가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젠장. …천천히 정리해보자.’


1. 기원전, 예디드야가 72 악마 군주를 반지 속에 봉인했다. (1차 봉인)

2. 예디드야 사후, 바빌론 사람들이 봉인을 풀었다.

3. 풀려난 72 악마 군주들을 잡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 마법검 캄비온이 만들어졌다.

4. 마법검은 그의  번째 계약자인 아서왕과 함께 72악마를 재봉인하는 데에 성공한다. (2차 봉인)

5. 그러나 마법검은 60여  전 지구 전역에 일어난 <퍼스트 컨택트>에 휩쓸렸고, 이 여파로 봉인이 풀려버렸다.

6. 그래서 마법검이 72 악마 군주들을 다시 봉인하기 위해 여기, 대한민국 제주도에 위치한 이스트 블루까지 굴러오게 되었다. (3차 봉인 시도)


“…내가 이해한 게 맞냐?”
[역시 이 몸의  계약자는 이전 새끼보다 훨씬 영리하군! 아주 쎅쓰해!]

가만.
이 자식의 이전 계약자라면 분명….

“아서왕이 니 이전 계약자였다고? 원탁의 기사, 그거?”
[이 몸께서 인간형이었을 시절의 존함을 이미 말해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 맞다.
얘, 지가 멀린 당사자라고 했었지.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 머저리 새끼와 얼빠진 전쟁광년들 얘기가 아니지 않나. 파트너, 타인이 아닌 너에게 집중해. 중요한 건 너야.]

그 말은 맞다. 지금 무엇보다 먼저 파악해야  사안은 따로 있었으니까.

“……설마, 내가 72 악마 군주를 잡아들여야 된다는 뜻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해.
아니라고 해.
아니라고 해.

[쎅쓰. 제파르가 남았으니 72가 아니라 71군주지만.]

오, 아이린님 맙소사.

“개소리 하지 마! 내가 그걸 왜 해?!”
[이 몸이 널 살려줬잖아.]
“어차피 ‘그거’한테 홀려봐야 마력 탈진 현상을 겪을 뿐인데 뭔 생명의 은인 드립을 치고 있어. 염치도 없냐?”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우웅

마법검이 가늘게 진동했다.
녀석의 검신에서 지금까지 볼  없었던 날카로운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가 빠진 고물검이라고는 믿을  없을 정도의 박력이었다.

[너. 1600년 전에 색슨족, 그 야만인들이 왜 브리타니아 깡촌까지 침략했을 거라 생각해? 세력 다툼에서 떠밀려서? 아니지. 그게 아니지.]

[네놈. 강대했던 서로마 제국의 병사들이 어찌하여 힘들게 점령한 수십만 리  섬에서 황급히 도망쳤는지 아나? 종교적 문제? 식민지 가치 문제? 아서라, 세상 겉껍질에서 나고 자란 놈아.]

[이 몸과 임시 계약을 맺은 계약자여. 강대했던 브리타니아 왕국을 덮친 역병과 신수들, 그리고 재해들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노라.]

[이 몸의 동반자가  소년아. 대지가 불타고 시체가 산이 되며 피의 강이 흐른 뒤에야 분루를 흘리며  몸을 찾을 셈이더냐. 차라리 창세기의 대홍수를 조각배로 살아남겠다하여라.]

“…….”

잘은 모르겠지만 이 마법검 놈이 영 허튼 소리를 하는 건 아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라고 할 말이 없진 않다.

“구해준  고맙다. 71악마를 방치하면 향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알겠어. 하지만 나는 바빠.”
[왜? 각성도 못한 모지리라서?]
“……그래.”

나는 내 앞길 살피기도 버겁다.

[할 수 있어.]
“뭐?”
[각성. 할 수 있다고.]

검이, 사람을 유혹한다.

[각성할  있어. 이 몸과 정식으로 계약하면. 흠, 보다 정확히 말해주지.]

검이, 사람을 꾄다.

[네놈은 이 몸과의 계약 외에는 각성할 수단이 없다. 네놈이 가진 고유능력이 그러하니까. 이건 진실이야.]
“헛소리! 니가 나에 대해 뭘 알아!”
[200X년생 김제이. 나이 23. 대한민국 서울 출생. 헌터였던 부모는 200X년 우면산 던전 브레이크 사건으로 모두 사망. 그 이후 줄곧 시설에서 균열 고아로 자라다, 15세에 헌터 적성을 보여 <각성 유력> 판정으로 공교육을 통해 헌터 훈련을 시작했음. 21세 겨울,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4대국제헌터아카데미 전체 필기 수석을 거머쥠. 22세 봄, 이스트 블루에 입학  현재까지 재학 중. 소속 동아리는 창술초식단련 심화반이며―]

마법검은 무려 20분 나의 신상 정보에 대해 줄줄 읊어댔다.
 안에는 내가 몰랐던 나의 버릇이나, 나도 몰랐던 내 창술의습관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여자 타입까지도 들어가 있었다.

[어때. 이래도  메를리누스님께서 널 모르나?]
“…….”

의심스러운 점은 다수 남아있지만.
이 이상 대화는 무의미하다.

놈은 나를 꼬셨고.
나는 이미 혹했다.

이제 결정만 남았다.

“메를리누스Merlinus.”
[지금 생각한대로 불러도 돼. 이 몸도새 이름이 필요하다 여긴 참이니까.]
“그래, 메리. …한 가지만 물어보자.”
[쎅쓰.]
“계약을 하게 되면 대체 나는  하게 되는 거냐? 그렇잖아, 나 같은 하룻강아지가 어떤 방법으로 악마 군주를 잡을 수 있는 건데.”

내 질문에 메리가 즉답했다.

[그야 당연히 쎅쓰지.]
“……섹스?”
[쎅쓰. 악마라는 놈들은 숙주의 가장 깊고 어두운 구멍 속에 도사리는 법이거든.]

놈이 음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우린 벌써 깊고 찐득한 구멍 하나가 아카데미 안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


오후 9시 15분. 해는 진즉 저물었다.
오늘 밤의 거사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3관으로의 이사는 모두 끝난 상태.
나와 같이 오늘 3관에 전입한 선우는 저녁을 먹은 뒤, 본가에 일이 생겼다며 서울로 떠났다.

[기대보다 훨씬 훌륭하군.]

메를리누스. 이제는 메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 마법검이 감상을 내뱉었다.
메리 말마따나, 3관은 학교 사이트에서 봤던 사진보다 훨씬 좋은 상태였다.

“그러게. 겨울방학동안 리모델링을 했다더니 진짜로 괜찮은데? 놀랐다, 야.”

유배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곳 제3기숙사는 본래 40년도 더  낡은 빌라였다. 그런데 지금은 썩 예뻤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모드레드가 이 저택 정도의 대우만 받았어도 지 애비 뒤치기를 하진 않았을 테니까.]

하늘색으로 칠해진 페인트에서는 새집 특유의 냄새보단 되려 청량한 향기가 감돌았고, 외관은펜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단장되어 있다.
총 5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내부는 하얀 나무 계단이 인상적인 인테리어 덕에 화사했다.
방 내부도  넓고 가구들도 새것이라서, 나는 2관에서 쫓겨나온 것도 영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떤 미친 인간이 유배지 재단장 따위에 기부금을 쏟아 부은 건지.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간 게 분명하군.]
“…그러게.”

고소苦笑가 나왔다. 3관이 단시간 내에 이토록 좋아진 이유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파트너. 짐승의 시간이 되었어.]
“…그, 그래.”

이사가 마무리 됐으니 이제는 메리의 말대로 임무를 수행할 시간이었다.

“후우……. 일단 좀 씻을게.”

먼지투성이인 몸을 청결히 하기 위해 샤워를 했다. 메리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왠지 그래야  것 같은 마음에 평소보다 더 빡빡 씻었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샤워를 마친 뒤 방 불을 끄고, 비닐을 뜯은  침대에 눕고, 이불을 덮었다.

[긴장하지 마. 심호흡을 해.]
“긴장이  되겠냐! 꿈속이라고 해도 첫 경험인데!”
[릴렉스. 릴렉스. 말해준대로만 해.]
“후우……. 후우…….”
[시작한다.]

―우우우우우우웅

배 위에 올려놓은 메리의 몸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검신이 점점 커졌고, 메리는 이내 본래의 크기로되돌아왔다.

―파아아아아앗

메리의 검신에서 환한 흰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들은 허공에서 신비한 문자들을 만들어낸 뒤,  두 개의 정해진 구역으로 이동해 이윽고 큰 원을 만들어냈다.

‘황도 12궁이구나. 고대 마법이다.’

어두운 방을 환하게 밝힌 채, 메리가 주문을 외웠다. 여기까지는 이미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봉인의 좆찌여.]

[그대와 계약을 맺으려는 자가 여기에 있다.]

…주문이  이상했다.

[공상을 유린하는 힘을 가진 그 자의 진명은 김제이. 좆찌여 그에게 힘을 부여하라.]

[봉인 해제!]

―파아아아아아앗!

메리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수 없는 밝기로 빛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검이었던 메리가 기이한 형태의 몽둥… 몽둥…… 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제이! 그 딜도를 잡아!]

 미친놈아!
나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하얀색 딜도로 변해버린 메리의 몸을 잡았다.

그러자, 기적이 벌어졌다.

[▶시스템 캄비온 정상 기동 확인]

[▶계약자 고유능력 강제 개화 완료]

내가…… 각성한 것이다!

〓〓
[계약자:김제이]
실제계 등급: E / 공상계 등급: F

[신체능력]
근력35 체력45 민첩37 마력17 정력31

[고유능력]
공상 침식 lv.1

[보유권능]
no.16: 성감 고조 lv.1
〓〓

[쎅쓰! 흩어진 72악마를 잡을 보지캡터 탄생!]
“아아…!”

더 놀라운 사실은 시스템 캄비온에 의해 내 정보가 객관적으로 보인다는 것.
하지만 길게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집중해. 이제 시작한다.]

메리의 말대로였다.

‘의식이…….’

딜도를 잡은 그 순간부터, 머리에 물이 들이차는 것처럼 의식이 급속도로 꺼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아. 아. 아. 아.}


오늘 아침 들었었던 기이한 신음소리가 마치 옆에서 들리는 듯 갑작스럽게 포착되었다.

[쎅쓰! 탐색까지 며칠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운이 좋군. 숙주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망한나라 백조년에다, 공상 침식 주체인 너와 인연이 있는 자였어! 잘 됐다, 제이야! 아까 내가 가르쳐준 대로 해!]
‘지금?!’
[쎅쓰!]

나는 메리의 말에 따랐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배 위에 올려놓았던 악마 군주의 정수를 집어, 조심스레 딜도에 꽂아 넣었다.

‘메리 이 새끼… 이래서 반지가 아니라 좆찌라고 한 거였구나.’

나는 주문을 읊조렸다.

‘음란한 힘을 지닌 반ㅈ… 좆찌여.’

‘그대의 진정한 힘을 내게 빌려다오.’

‘너와의 계약에 따라 명한다.’

‘봉인, 해제!’

[▶<제16위 악마 군주제파르Zepar의 정수> 확인. 공상계 다이브 허가 완료]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암흑 속에서 쏟아지는 빛 무리에.
나의의식은 어딘가로 떨어졌다.


**


눈을 뜨자, 낡은 모텔임을 알았다.
낡은 벽지와 퀴퀴한 인조 장판 내음이 풍겨져 나오는 그런 3류 모텔.

‘이 복장은 뭐야.’

나는 원래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이 아닌, 가운을 입고 있었다. 물론 흰 가운 아래에는 완전히 나체.

‘옷이랑 장소가 바뀐  보니까 성공… 인가?’

아까 메리가 말했었다.

내 고유능력 <공상 침식>은 꿈이나 환상 같은 공상계空想界에 임의적으로 진입 가능한 초희귀 능력이라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개화는 물론이거니와 평생 발동조차 쉽게 할 수 없는 독특한 힘이라고.

그러니 내 고유능력이 메리의 도움으로 정상 발동됐다면, 이곳은 분명 꿈속이어야 한다.

‘근데 너무 리얼하잖아.’

정말 그랬다.
열린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조용한 도시의 밤풍경이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방 안은 시원해서. 이건 마치 꿈속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 꿈이 컬러일 수가 있어?’
[그러니까 공상 침식이 유니크한 고유능력이지. 뭐, 너희 유기체들이 존재하는 실제계에서는 좆도 쓸모없지만.]

―우우우웅!

자지가 웅장하게 떨려왔다.
장난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메, 메리?!”
[그래, 몸은 여기 계시다.]
“…내 고추 속에?”
[쎅쓰. 걱정 마. 16위 악마 군주 제파르의 권능은 제대로 작동할 거야.]
“야!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이잖아!”
[감격스러워할 시간 없어. 온다!]

뭘 감격해 이 미치광이 꼬추 자식아!

―끼이이이익

문 열리는 소리가귀에 꽂혔다.

“어머? 오빠, 벌써 왔어?”

덜덜 떨리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 뒤를 보았다.

“…오올! 오늘은 운이 좋은데? 오빠 몇 살이야? 잘 생겼다.”

그곳에는 낯익은 단발머리의 누군가가 있었다.
평소의 단정한 짙은 녹색 생도복 차림이 아닌, 노출이 무척 심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아영… 누나……?’

나의, 첫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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