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07. 제이의 이상한 친구들(1)
―휘익 휙! 휘익 휙!
장창이 훈련장 허공을 가른다. 부푼 팔 근육이 창대를 견고하게 쥐고, 부드럽게 당겨진 다리는 대지를 박찬다.
“하압!”
―우우우우웅
기합성을 내지르며 온 몸의 마력을 창끝에 모았다.
‘간다.’
창병을 쥔 오른팔을 앞으로.
반동을 주는 왼팔을 뒤로.
적을 쫓는 눈은 정면으로.
“흡!”
콰광.
아공간 B 훈련장 내에 작은 폭발음이 들려온다. 마법사의 그것과 비교하기엔 초라한 화력이지만, 일점一點에 모아진 파괴력만큼은 확연히 앞선다.
시뮬레이션 C급 허수아비의 심장에 당구공만한 구멍이 깔끔하게 뚫려있었으니까.
“후우.”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틀 간 내내 훈련장에서 사느라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마력 활용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
각성의 힘은 위대했다.
미각성 상태라 체내의 마력을 사용하지 못했던 이틀 전의 나와.
마력을 활용하기 시작한 현재의 나는도저히 같은 사람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현격한 차이를 보였으니까.
이 모든 게 메리의 덕이다.
[공을 돌리는 건 갸륵하다만 겸손한 것도 그 정도면 자의식 과잉이다.]
“뭐가.”
우우우웅.
뒤쪽, 양지 바른 풀밭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메리가 웅웅 떨었다.
[바보야. 각성을 한 사람들이 누구나 너처럼 마력을 쉽게 활용하고, 마력 창술에 쉬이 적응하겠어? 다 니가 지금까지 흘려온 더러운 액체들 덕분에 이리 빨리 강해지고 있는 거지.]
“칭찬을 해도 꼭.”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놈의 칭찬대로, 내가 지금껏 흘려온 땀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으니까.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시스템 캄비온의 시동어를 조용히 읊었다.
‘상태창, 신체능력.’
〓〓
[신체능력]
근력38 ▲
체력51 ▲
민첩40 ▲
마력25 ▲
정력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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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이틀간의 특훈으로 근력3, 체력5, 민첩3, 마력8 올랐다.
각성 직후에 신체능력이 훈련 여하와 기존 단련 정도에 따라 무섭게 향상된다더니, 사실이었던 것이다.
‘좋다.’
나는 날아갈 것만 같은기분이 됐다.
등에 부스터를 단 것만 같은 성장에, 평소보다 고된 훈련이 하나도 힘들지가않을 정도였으니까.
[근데 파트너, CP는 언제 쓸 거냐?]
“CP? 글쎄.”
나는 현재 50 캄비온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다.
내가 보유한 능력을 임의로 올릴 수 있는 사기적인 기회를 잡게 된 것.
“마음 같아서는 신체등급을 이것저것 올리고 싶은데, 당장은 훈련으로도 올릴 수 있으니까 고민되네.”
[신체등급? 효율은 별로지만 아주 나쁜 선택은 아니지. 실제계에서 네놈이 의문사라도 당하면 그건 이 몸에게도 큰 출혈이야.]
“효율이라.”
CP사용 효율. 이건 중요하다.
메리는 신체등급이나 능력등급이 올라갈수록 CP의 사용효율이 급격히 낮아질 것이라 했다.
더구나 진정한 초인인 S급에 오르면 CP로 신체등급을 올릴 수가 없다고.
나는 현재 나만의 유니크 스탯인 <정력>을 제외한 스탯 평균이 39정도다.양민 중의 양민인 E급 헌터의 스탯.
내 목표인 S급까지 갈 길이 멀기에 CP투자도 일견 괜찮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무턱대고 투자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다른 건 초조해할 필요 없다. 근민체의 스탯은 마력이 늘어남에 따라 함께 강화되는 경우가 많아.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마력이야.’
[일부 동의.]
‘더구나 마력은 재능의 영역이라, 스타트 지점이 높을수록 더 멀리 갈 수 있어. 애초에 훈련만으로 마력을 올리기엔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겐 고차원의 연공법이 없어.’
[그건 인정. 이 몸이 아는 마나 연공법도 너무 구식이라 도움이 안 된다.]
이틀간의 고민을 끝냈다.
“메리, 일단 마력을 올릴게. 사용 효율이 어떻게 돼?”
[무지 복잡해. 계약자 맘잘알인 이 몸께서 알아서 해줄 테니 염려 마.]
파아앗 하고 장검이 환하게 빛났다.
연이어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39CP 사용: 마력25 -> 마력40]
[▶잔여CP: 11]
“……어어!”
―고오오오오
일순간에 마력회로가 강건해졌다. 그리고 회로를 따라 도는 마력의 양이 시냇물에서 작은 샛강 정도로 일변했다.
‘진짜잖아?!’
뿐만 아니었다.
―사아아아아
훈련장 내부에 휘도는 풍부한 마력의 기운이 한층 정밀하게 느껴졌다.
기감이 뛰어난 아이웨이가 예전에 ‘아공간 B 훈련장의 기氣는 왠지 민들레 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 약간 알겠다.
“…….”
평균에 살짝 못 미치는 나의 기감. 즉, 마력 민감도 또한 평균 이상으로 나아진 것 같았다.
도저히 이 초현실적인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서 멍청히 메리를 바라봤다.
“…이건 너무 반칙 아니냐?”
[재능도 없고 돈도 없으면 반칙이라도 해야 앞사람 똥냄새라도 맡지. 아무튼, 나머지 11포인트는 어떻게 할 거야. 이 몸의 조언에 따를 거냐?]
메리의 조언이란, CP효율은 공상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능력 향상에 무지 좋다는 것.
그러니 악마 봉인 작업을 위해서라도 우선 이것들을 올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좋아, 나도 염치가 있지. …근데 진짜로 정력도 올려야 돼?”
[당연하지. 악마 봉인 중에 또 인스턴트 자지 되고 싶으면 그냥 놔두고.]
“이 새끼야, 그 얘기를 왜 꺼내!”
[입 닥쳐 3분 카레 자지. 악마 봉인과 관련한 판단은 이 몸이 한다!]
메리가 다시 빛났다.
[▶8CP 사용: 정력31 -> 정력39]
[▶1CP 사용: 성감 고조 lv.1 -> 성감 고조 lv.2]
[▶2CP 사용: 성감 고조 lv.2 -> 성감 고조 lv.3]
[▶잔여CP: 0]
쥬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정력이야 나만의 유니크 스탯이니 그렇다 쳐도 성감 고조는 왜 이리 싸?”
[그야 당연히 니가 이미 정수를 확보했기 때문이지. CP가 봉인된 정수의 힘을 느슨하게 만든 것뿐이니까. 말했잖아, 실제계의 힘에 CP를 쓰면 효율이 영 꽝이라고.]
“오냐. 일단 나가자. 행사 늦겠다.”
나는 메리와 함께 향후의 일정을 조율하며 훈련장을 나섰다.
〓〓
[계약자: 김제이]
실제계 등급: E+ / 공상계 등급: F
[신체능력]
근력38 체력51 민첩40마력40 정력39
[고유능력]
공상 침식 lv.1
[보유권능]
no.16: 성감 고조 lv.3
no.69: 인드라이브 lv.1
[보유CP]
0
〓〓
**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마력결계 덕에 아카데미의 공기는 2월 중순임에도 봄 날씨와 같았다.
꽃이 만발한 가로수 길을 지나, 졸업식이 한창인 대극장으로 향했다.
“언니, 졸업 축하드려요!”
“꽃 사세요 꽃! 프레이야 산 파란장미도 있어요!”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아카데미는 축제와 졸업식 날이 아니라면 잘 볼 수 없는 외부 행상인, 생도의 친인척과 외부 인사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꽃을 팔고 있는 행상에게 다가갔다.
“이모, 이 꽃 얼마에요?”
“프레지아? 한 다발에 만 원.”
“꽃이 참 예쁘네요. 일단 이거 다섯 다발주시구요. 음….”
어떡할까.
그냥 프레지아를 한 다발 더 살까.
“헌터 학생.”
“네?”
사장 아주머니가 씩 웃었다.
“여자 줄 거 고르는 거야?”
“예.”
“여자친구는 아니지?”
“그렇죠. 그 전에 차였으니깐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주머니가되게 좋아했다.
“아휴우! 안타깝네, 어뜩하냐 그걸! 학생! 그럼 이걸로해! 잠시만 기둘려.”
말로는 안타깝다고 하면서 입가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던 꽃집 사장님. 그녀가 잠시 허리를 돌리더니 옆자리에 따로 놓아둔 분홍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게 무슨 꽃이에요?”
“라일락. 이쁘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꽃말도 참 좋고.”
“네. 이걸로 할게요.”
“요건 삼만 원.”
“…주세요.”
가격은 좀 쎘지만, 나는 사장님이 유독 신경을 써서 꽃꽂이를 해놓은 이 라일락 꽃다발이 마음에 들었다.
“많이 파세요.”
계산을 마친 뒤, 꽃다발 여섯 개를 안고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나는 먼저 지난 해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졸업자들을 찾아가 인사를 했고, 그 다음으로는 창술전공자들이 모인 곳을 찾았다.
‘동아리 사람들이… 아, 저기다.’
아는 얼굴이 보인다.
창술초식단련 심화반의 부회장 형.
아카데미 전체 창술전공자 중 유일한 비각성자였던 나에게 유독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이다.
“형, 졸업 축하드려요.”
“아이구, 이게 누구신가! 신아영의 피해자 제15호이신 김제이 군 아니신가? 졸라 오랜만이다 너.”
“하하.”
볼을 긁적이며 꽃다발을 건넸다.
겨울 방학 전에 함께 학식을 먹은 이후, 이 형님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부회장 형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동아리의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 축하의꽃다발을 건넸다.
“형, 근데… 아영 누나는 어디 계세요?”
“아영이? 걔 아까 가족들이랑 먼저 갔는데. 좀만 일찍 오지 그랬어.”
아….
“폰으로 연락해봐. 번호 알잖아.”
“그럴게요. 형, 졸업진짜 축하드려요.”
“벌써 가려고? 우리 전공 사람들끼리 회식하려고 했는데. 같이 가자. 내가 선배들 소개시켜줄게.”
“괜찮아요. 저 먼저 가볼게요.”
나는 창술전공자들이 모인 곳에서 자리를 떴다.
“하아….”
답답한 마음에 졸업식장에서 벗어나, 내가 한동안 가길 꺼렸었던 그곳으로 갔다.
아영 누나를 처음 만났었고, 자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벤치로.
[가보지 그랬냐, 창쟁이들 모임.]
가만히 앉아 하늘을 보고 있자, 메리가 말을 걸어왔다.
[같은 무기를 쓰는 자들과의 교류는 전사에게 각별한 거야.]
“아직은 괜찮아. 상황도 좀 그렇고.”
전공자들 모임이라고 해봐야학년 별로 반이 구성되는 1,2학년에게는 큰 감흥이 없다.
반의 제약 없이, 자신의 세부 전공에만 몰두하게 되는 3학년이 되어야 비로소 전공자들끼리의 뭔가가 생긴다.
내가 저 자리에 끼었어도 동아리 아는 사람들 몇 말고는 면식이 없었을 거다.
더구나 현재로서는 거의 탈퇴한 거나 다름없는 유령회원이니, 가봐야 민폐밖에 더 될까.
[자기 합리화 하기는. 그 여자 때문에 기분 다운 되서 그런 거겠지.]
“그래, 니 말이 맞다.”
“니 말이 맞다니. 모가, 모가?”
“헉!”
너무 놀라 몸이 크게 들썩였다.
뻣뻣해진 고개를 돌리자.
벤치 옆,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는.
진녹색 교복 위에, 졸업자의 상징인 검은색 미니 망토를 걸친 신아영. 그녀가 있었다.
“제이야, 잘 지냈니.”
내 첫사랑이자.
그저께 새벽, 꿈에서 만났던 그녀가.
“…누나, 안녕하세요.”
“그래. 엄청 오랜만이네.”
누나가 내게 다가오며 결 좋은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그녀에게서 나는 좋은 향기에, 이른 봄이 느껴졌다.
나는 들고있던 꽃다발을 숨겼다.
“누나, 이미 가족 분들이랑 가셨다고 들었는데….”
“동방에 놓고 온 게 있어서. 이거 가질러 갔었~ 지!”
아영 누나가 벤치에 앉아 생도복 마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작년 봄, 동아리 MT 때 찍었었던.
“이때 되게 재밌었는데. 그치?”
“그러게요.”
“벌써부터 그립다. 내가 졸업이라니.”
아영 누나가 기지개를 폈다. 늘씬한 사지가 예쁘게 뻗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제이 너, 아이린이랑 자주 같이 다니더라? 사이 되게 좋아 보이던데. 걔 구룡칠봉 중에 백봉白鳳 걔 맞지?”
“네. …그게, 하리랑 아이린이 워낙 친해서요. 저는 그냥 덤처럼 어울리는 거라서. 아이린은 그 왜, 아시잖아요. 아카데미의 아이돌 같은 애라는 거….”
너무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
그 모습에 아영 누나가 날 놀렸다.
“큭큭, 너 걔 좋아하지.”
“…….”
맞다. 나는 아이린을 좋아한다.
작년 봄 여름 가을, 세 계절 동안 아영 누나를 좋아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동경하고 있다.
첫사랑인 아영 누나에게 차인 후유증을 아이린을 향한 팬심 덕에 잊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관심이야 많죠. 어느 남자가 아이린을 싫어하겠어요.”
“그런 거 같더라. 진짜 이쁘던데. 가슴도 나보다 크고. 에잉, 존심 상해!”
순간, 꿈에서 봤던 그녀의 E컵 가슴이 떠올라서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누나는 잘 지내셨어요? 동아리 현수막 보니까 에스원들어가셨다던데. 진짜 축하드려요.”
“어차피 단기 계약인데 뭘. 아 참―”
나와 아영 누나는 밀렸던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취업.내가 3관에 가게 된 사연. 창술전공 학과장이 여전히 변태라는 뒷담화. 동방에서 여전히 땀내가 안 빠진다는 투덜거림 등.
반년 전. 우리가 일상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러나 이별은 불현 듯 찾아왔다.
“아영아, 밥 먹으러 가자! 더 늦으면 차 막혀!”
“언니, 빨리 가자! 배고파 죽겠어.”
“알았어! 지금 갈게!”
길 건너편의 어머니와 동생을 향해 손을 흔든 그녀가, 작별 인사를 했다.
“제이야, 미안해. 다음에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중에 보자?”
“…누나. 이거요.”
더 늦을 수는 없었다.
등 뒤에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
“…오올~! 라일락이네? 디게 이쁘다. 고마워, 제이야. 센스 좀 있는데?”
“졸업 축하드립니다, 신아영 선배님.”
“감사합니다, 후배님! 늘 건강하세요!”
내 인사에 누나가 구김살 하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나는 3년의 아카데미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마음으로 응원했다.
“…아참!”
그때.
누나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오빠! 각성한 거, 진짜 진짜 축하해!”
그렇게 말했다.
“…오빠요?”
“아하하! 그냥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어, 막 이래. …아무튼 나 갈게! 나중에 밥 먹자, 꼭 연락해!”
“네, 고마워요 누나!”
얼떨떨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각성했다는말을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었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