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08. 제이의 이상한 친구들(2) (8/145)



〈 8화 〉08. 제이의 이상한 친구들(2)

졸업식장을 떠나 제3 기숙사로 가는  내내, 나와 메리는 말싸움을 했다.
토론의 주제는 당연히 아영 누나. 그리고 인드라이브에 대한 것들이었다.

[맞다니까. 인드라이브는 자각몽인 상태로 자신의 꿈에 타자의 의식을 부르는 능력이야. 그러니까 신아영은 그 꿈에서 처음부터 니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을 거야. 너만 걔를 모른 척한 게 아니라, 걔도 널 모른 척 한 거라는 뜻이지.]
“말이 되는 소릴 해.”
[계속 들어! 그리고 걔가 무의식 중에 아공간 B 훈련장에서만 인드라이브를 쓴 이유도 간단해. 꿈속에서라도 너랑 만나기 위해서였어. 이건 100퍼센트 쎅쓰야.]
“아니라니까.”
[맞다고.]
“아니라고. 아영 누나는 세계최고 에스원에 스카웃된 A급 헌터야. 내가 각성한 것 정돈 쉽게 눈치챌  있어. 아까 ‘오빠’라고 부른 건, 그 꿈에 인상이 그렇게 남았던 거겠지. …뭐, 그 정도까진 나도 이해할  있어.”

근데 뭐? 누나가  만나고 싶은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그 훈련장에만 인드라이브를 행사했던 거라고?

말이 되나.

그럴 거였으면 내가  차였어!

―우우우웅!

주머니 속에서 놈이 우웅 떨었다.

[얼간이 아서보다 여자 마음을 더 모르는 놈일세. 너, 신아영 성벽이 뭐였는지 기억하냐.]
“아영 누나의 성벽?”

그야… 거칠고 강압적이고 더러운, 뭐 그런 강제적인 거 아닌가. 누나 성향이 M이라고 했었으니까.

[바로 그거야 멍청아! 닳고 닳은 초S 걸레남들이 취향이라고. 근데 신아영을 숙주로 삼은 데카라비아는 유독 숫총각만 노렸어. 그것도 아공간 B 훈련장에서. 왜 그랬겠냐? 어떤 이유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말문이 막혔다. 나도 사실은  점이 내내 미심쩍긴 했었으니까.

“…….”

기숙사 현관을 지나 계단을 오르며 조금 자신 없는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사실은 아영 누나도 나한테 미련이 남았으니까 인드라이브도 그런 방식으로 발현된 거라 이 말이야?’
[그야 이 몸도 모르지, 마음이란  복잡한 거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신아영은  미숙한 쎅쓰. 그리고 그리 강력하지 않은 성감 고조 lv.1로도 큰 오르가즘을 느꼈어. 비록 그게 자신의 섹스 취향이랑 100만 광년 동떨어졌음에도 말이야. 그리고 오늘만 해도―]
‘쉿! 잠깐만.’

나는 메리의 입을 막았다. 열변을 토하던 메리 역시 눈치를 챘다.

‘도둑인가.’
[후장을 따버리자.]

내 방문이 열려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딸깍 딸깍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소음을 통해, 미지의 침입자가 여전히 내  안에 있음을  수 있었다.

―끼이익

주먹에 마력을 돌리며 문을 열었다.

“흐앗!”

범인은 면식범이었다.

―툭, 투두둑

그는 카메라… 로 추정되는 작은렌즈들을 바닥에 떨어뜨린  떨고 있었다.

“…뭐하니 너.”
“자, 잠시만요! 형! 진정하세요! 제가, 제가―”

―툭, 투두둑

“…….”
“설명 드릴게요! 제가 다 말할게요!”

이 하프엘프를 대체 어떡하면 좋을까.
평소에도 호의가 과한 선우지만, 이번 일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하아…….”
“우읏…….”

나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선우에게 다가갔다.

“화 안 낼게. …왜 그랬냐.”
“그, 그게…….”

**


내 방에 몰카를 설치한 미모의 하프엘프(♂), 반선우의사정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3관에 거주하는 생도들 중에 누군가가 나를 핍박하거나 괴롭힐까봐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거지.”
“네에, 네에! 맞아요! 3관 생도 중에는 학폭자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 방은 2층이고 형 방은 5층이니까…. 어,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후우.”

반선우의 행동은 선을 넘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헌터 아카데미는 겉보기엔 평화로운 일반 학교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한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

학폭은 일상이요, 대형 클랜 및 기업체의 이권과 연관된 학생들 간의 암투. 그리고 심하게는 경쟁 생도나 싫어하는 생도를 남몰래 해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작년만 해도 살인 사건이 3건이나 일어났었고, 남자치고 지나치게 예쁘장하게 생긴 선우만 해도 성추행을 몇 번이나 겪어왔다.  모든 게, 덜 여문 머리에 초인적인 힘을 가진 어린 헌터들을 한 군데에 몰아넣어 생긴 부작용.

“…선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적어도 내 동의는 받았어야지.”
“그, 그치만! 형은 싫다고 하실 거 같아서…. 근데, 3관에는 형을 지켜줄 룸메이트도, 사감 선생님도  계시잖아요…….”

좀 더 세게 말해야 알아들으려나.

“니가 아직은 많이 약한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잘 알겠고, 너무 고마워. 하지만 네가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면 나 부담스러워서 너랑 같이 못 다녀.”

―히끅

선우가 딸꾹질을 했다.
내일 모레 19살 성인임에도 여전히 아담스 애플이 나오지 않은 녀석의 희고 가는 목이 크게 움직였다.

“죄, 죄송… 해요…… 혀엉, 흑…….”

결국, 녀석이 눈물을 보였다.
선우의 아름다운 녹색 머리칼이 새하얀 볼을 타고 흘렀고, 거기에 투명한 눈물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흐윽, 흑….”

눈을 감으면 여자임이 분명하다고 믿을 미성에 잔뜩 물기가 어려 있었다.
더 혼을 내려고 해도,  안 낸다고 말한 게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우는 것도 기집애 같네. …왠지 요즘 들어 더 여성스러워진 것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이 어린 하프엘프의 우는 모습을 보면 어릴 때 자주 울던 하리 생각이 나서 화 낼 기운도 나질 않았다.
나는 그냥 이 건을 덮기로 했다.

“…멍청아. 너 근데 카메라는 왜 갑자기 뺀 거야.”
“다, 다시… 흑! 설치할까요…?”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기가 차서 웃음이 다 나왔다.
내 헛웃음을 본 선우는 잽싸게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돌연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사실 처음에는요, 형이 새로 얻으신 에고 소드가 혹여나 마검魔劍이어서 형이 피해를 받으실까봐 보호 차원에서 cctv를 달았던 거였어요. 정말정말 죄송해요…….”
“……뭐?!”
[……What?!]

나는 물론, 메리 또한 경악했다.
선우가 얼굴을 들어 눈물기가 살짝 남은 맑은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내 눈을 응시했다.
녀석의 맑은 동공은 평소와 같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검을 얻으시자마자 각성을 하시고! 이틀 만에 급격히 강해시지고! 신아영 선배님에 대해서도 말끔히 털어내시는 늠름한 모습을 보고 나서! 저, 확신했어요! <메리>라는 이름의 그 에고 소드는 형의 좋은 친구라는 걸요!”

…이건 숨기고 말고 할 단계가 이미 지난 거 같은데.

“선우야, 대체 어떻게 알았냐.”
[어케 했누, 반쪽이요정년아.]
“헤헤.”

선우의 긴 귀가 붉어졌다.
녀석이 천천히 왼손을 들어 나지막이 뭔가를 – 엘프어로 추정되는 - 속삭였다. 그러자 나와 그의 사이에 뭔가가 나타났다.

―Ooooooooooo

눈만 달린 몽글몽글한 까만색 솜인형 같은 외양의, 정령精靈이었다.

“쿠루루, 인사해. 이 형이 내가 말했었던 그 분이셔.”

선우가 그리 말하자, <쿠루루>라는 이름의 정령이 천천히 날아와  뺨을 간지럽혔다.

―Ooooo! Ooooooo!

애교를 부리는 쿠루루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못 보던 정령이네…. 되게 귀엽다. 새로 계약한 거야? 속성은.”
[이놈은 암暗속성 정령이다.]

선우의 답변보다 메리가 먼저 쿠루루의 정체를 읽어냈다.

“암속성 정령? 그런 타입도 있냐.”
[쎅쓰. 프레이야나 정령계에서도 극히 희소한 건 물론이고, 지구에서는 완전히 씨가 말라버린 고대 정령이야. 쿠루루Cururu는 요정어로 ‘검은 눈’라는 뜻이지.]
“그래, 맞아. 메리는 참 똑똑하구나.”

선우가 빙그레 웃자, 메리가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허공을 둥실 날았다.
녀석 또한 쿠루루가 내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선우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랬군, 그랬어. 네년이 상급의 암속성 정령을 사역할 정도로 귀가 밝았기 때문에 이 몸의 목소리를 들을  있었던 거야.]
“응. 그동안 모른 척해서 미안해.”
[흥. 반인반마에게서 태어난 검령인 이 몸이나, 반쪽이 주제에 호수의 귀부인보다 정령친화력이 높은 엘프 계집이나 별종이긴 매한가지지. 예의 차릴 필요 없어.]
“고마워.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쎅쓰.]

나는 이 녀석들의 대화를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멀뚱멀뚱 두 놈을 바라보고 있자, 선우가 분홍 혀를 살짝 내밀며 한 줄 요약을 했다.

“형… 저, 지난겨울에 2차 각성을 했어요. 그 덕에 메리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됐구요. 그동안 숨겨서 죄송해요.”
“아……. 그랬구나.”

<2차 각성>. 쉽게 말해 내가 겪은 각성 같은 드라마틱한 성장 절차를 두 번째 겪는 걸 말한다.
선우는 아마도 그저께까지 1차 각성도 못해 허우적거렸던  배려해 2차 각성 사실을 숨긴 모양이었다.

“숨길 수도 있지. 축하한다.”
“형도요! 진짜, 지인짜 진짜 축하드려요!  사실, 형 각성하신 거 보고 감동 받아서 울었잖아요, 헤헤…….”
“고마워.”

선우가 여전히 상기되어 있는 얼굴로 조금 늦은 축하를 해주었다.
진심 어린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는 이제 카메라 건이나 메리를 들킨 것 따위야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 됐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가 뭔가를 좀… 놓치고 있는 기분이긴 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하면 좋을지는 알고 있다.

“선우야.”
“네?”
“우리 파티하자.”


**


나의 각성. 그리고 선우의 2차 각성  제3기숙사 전입 파티가 결정됐다.
파티라고 함은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음식이 가장 중요한 법.
나는 서둘러 아카데미 내에 위치한 생도할인마트로 향했다.

―크크큭! 근데 제이야, 너 근데 그거 알고 있었냐?  요망한 반편이요정계집, 알고 보니까 2차 각성 말고도 예전부터  속ㅇ…! 읍! 읍읍!

―…아하하……. 혀, 형! 제가 메리랑 쿠루루 관련해서 긴히  얘기가 좀 있는데, 혹시 형 혼자  봐주실 수 있으세요? 대신에 비용은 제 카드로 결제하시면 되는데. 죄송해요…….


나는 메리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는 선우의 말을 기쁘게 허락했다.
마침 메리와 24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던 참이었으니까.
메리를 만나고 사흘 만에 혼자가 되니,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이 참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해놓자. 너무 늦으면 서운해할거야.’

나는 하리, 아이웨이, 엘리사, 이시카와 교수  가까운 이들에게 전부 톡을 보냈다.
여러분들의 응원 덕에 각성을 했다고.

[→아이웨이: (따봉 스티커)]

[→엘리사: LOL!! 진짜루? @[email protected]!! 오빠 너무 너무 축하해! 우리 언제 파티해야 되는 거 아냐?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D 뭐 먹고 싶어? 엘리사가 타코를 디게 잘 만드는데― (중략) ]

[→이시카와 레이: 정말 축하한다. 진로 상담이나 기숙사 이전 관련 문의를 하고 싶다면 언제든 연구실로 오렴.]

다들 내 각성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시기나 질투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아카데미 전체에 미각성 생도라고는 나 포함 두 명 뿐이었으니까.’

―까톡!

[→김하리: 밤에 집들이 갈게ㅋㅋ 올만에 떡볶이 해줰ㅋㅋ]

김하리 얜 진짜 먹을 복 하나는 타고난 놈이었다.

‘이놈은 파티하는  어디서 귀신 같이 알아가지고. 하아, 일 또 늘었네.’

서둘러 생도할인마트로 향했다.
봄 방학이 한창인 아카데미라서, 마트는 무척 한산했다.

‘3관 근처에는 편의점도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많이 사놔야겠다. 음, 계란 되게 싸네. 이것도 두  사자.’

내가 한창 장을 보고 있을 때였다.
마트 고기 코너 근처에서 행운과 맞닥뜨렸다.

“제이 오빠. 안녕하셨어요.”
“…안녕. 방학 잘 보내고 있니?”
“후흣. 덕분에요.”

아이린.
나의 아이돌과 조우한 것이다.
평소의 생도복이 아니라 하늘하늘한 흰색 원피스에 갈색 가디건을 걸친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신 같았다.

“오빠. 장 보러 오셨나 봐요?”
“응. 오늘 3관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하려고 해서.”
“정말요? 좋겠다. 하리가 오빠 요리 칭찬을 많이 했었는데. 부러워요.”

찬스다.

“너도 시간 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3관으로 올래? 하리도 집들이  해서 오기로 했는데.”
“아, 죄송해요. 오늘 총생도회에서 졸업식 뒤풀이 행사가 있거든요. 아쉬워서 어쩌죠.”

아이린이 오똑한 코를 살짝 찡긋하며 감정을 드러냈다. 그녀의 검고 긴 생머리 사이에 드러난 이마도 함께 찌푸려졌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1년이 다 지나가는데도 얘 얼굴이랑 분위기에는 적응이 안 되네.’

애초에 아이린이랑  만 있을 기회가 적었던 터라 더 긴장하는 것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뭐. 근데 고기 코너는 무슨 일이야. 송별회  바비큐라도구워먹기로 했어?”
“아니요. 지금은 라라 교수님 개인 부탁으로 조사를 나온 참이에요.”
“아, 그래….”

아쉬웠다. 만약 아이린이 고기를 사러 온 거라면 고잘알인 내가 뭔가 점수를 딸 수도 있었을 텐데.

“제이 오빠. 잠시만,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어? 으, 응…….”

허리를 낮추고 귀를 대주었다.
가슴이 콩콩거렸다.

“오빠, 혹시이.”

155cm의 깜찍한. 그러나 작은 얼굴과 이기적인 긴 다리. 그리고 폭발적인 글래머러스 몸매 덕에 작은 키라고 느껴지지 않는 아이린님께서는 황송하게도 친히 발뒤꿈치를 드시고  귓가에.

“타임캡슐 같은 거. 본  없으세요?”

그렇게 속삭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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