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09. 제이의 이상한 친구들(3)
마트를 나오자 해가 아카데미를 감싸고 있는 한라산 국립공원 숲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쪼오오옥
내가 사준 –선우 카드로- 바나나 초코 스노우를 홀짝거리던 아이린이 생긋 웃으며 재차 그 건을 상기시켰다.
“오빠, 아셨죠? 타임캡슐이랑 관련된 소문을 들으시면, 저한테 꼭 말씀해주셔야 해요? 제가 교수님이랑 내기를 했거든요.”
“찾나 못 찾나?”
“네에. 알면서 당해드렸죠, 뭐.”
아이린이 말한 타임캡슐은 이런 거다.
모교 출신인 라라 교수가 친구들과 타임캡슐을 묻어놨었는데, 다시 파내려고 하니까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고.
그래서 직접 찾아보자니 요즘 라라 교수가 여유가 안 나, 전담 지도생도인 아이린에게 짬처리를 시킨 것.
“자, 여기요. 약속.”
아이린이 새끼손가락을 올렸다
나도 웃으며 그녀의 작고 귀여운 손가락에 내 것을 걸었다.
“꼭 찾아볼게. 조심해서 들어가.”
“아, 잠깐만요 오빠.”
―우우우웅
아이린이 마력으로 손에 쥐고 있던 음료를 공중에 띄운 뒤, 핸드백 주머니를 열었다. 그리고 작은 목함 하나를 내게 건넸다.
<백환단百還丹>.
마력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영약이었다. 그것도 꽤 상급의.
“이걸왜 나한테 주는 거야?”
“각성 기념 선물이에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오빠.”
…알고 있었구나.
“하리한테 들었니.”
아이린이 예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고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자,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사실 되게 서운했어요. 저한테는 톡 안 해주셔서.”
“아, 그건…….”
사실 아이린이랑 내 관계는 친하다기엔 미묘한 감이있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각성 같은 작은 일로 ―그녀에겐 그런 일일거라 생각했다― 생색을 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엄청 엄청 미안하시죠?”
“…어.”
“그럼 제가 드리는 각성 기념 선물은 꼭 받으셔야 돼요.이거,작년에 받은 건데 그때부터 계속 제 책상 서랍 안에만 있던 거였거든요.”
아이린이 노래하듯 나를 달랬다.
“그간 누굴 줄까, 어떻게 쓸까 고민해왔는데. 오늘 여기에 짠! 하고 오빠가 나타나셨네요. 제 고민을 해결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빠.”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재차 목곽을 건넸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그녀의 선의를 받을 수 없었다.
나는 백환단이 어떤 물건인지 안다.
이 영약은 매년 열리는 랭킹 쟁탈전의 최상위 입상자. 즉, 구룡칠봉九龍七鳳들에게 수여되는 부상이다.
하지만 웃기게도 구룡칠봉들에게 백환단은 거의 쓸모가 없다. 백환단의 효과를 보기에 그들은 너무 뛰어나니까.
‘…….’
그러나 백환단이 아이린에게 아무리 무가치한 물건이라 해도, 나는 이 선물을 받고 싶지 않았다.
“아이린, 정말 고마워. 근데… 마음만 받을게.”
“어떡해. 선물이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너무 마음에 들어. 그게 문제야.”
목곽을 쥔 그녀의 손을 천천히 그녀의 품에 돌려주며 말했다.
“작년에 예선 1회전에서 탈락하고나서 결심했어. 졸업 전까지 반드시 구룡칠봉이 돼서, 백환단을 먹겠다고.”
내 말이 끝난 순간이었다.
“아하.”
내내 포근한 솜사탕 같았던 아이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녀가 목곽을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제가 실수를 했네요. 기대할게요, 오빠. 안녕히 들어가세요.”
“아, 아니 실수가 아니라―”
아이린이 꼿꼿한 허리를 예의 바르게 숙였다 편 뒤, 몸을 돌렸다. 그리곤 평소와 같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보폭으로 걸어갔다.
나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작아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조졌다.’
**
이런 멍청이.
―화르륵
백치 머저리 얼간이.
―지글지글
멍게 해삼 삼엽충 암모나이트!
“후우…….”
요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아이린의 축 처진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가녀린 등, 슬픈 눈동자, 실망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
이런 제기랄,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네. 내가 대체 왜 쎈 척을 했던 걸까. 그냥 고맙다고 냉큼 받고 답례로 밥이라도 사준다고 할 걸!
‘씨발.’
홧김에 볶고 있던 김치참치볶음밥을 마구마구 돌려버렸다.
“뭐야, 뭐야! 오빠 불쇼해? 호우~!”
“형! 대단하세요! 요리 짱 잘하신다!”
“제이 오빠! 더 해 봐~ 멋있다! 인스타 올려도 되지?”
뒤에서 놀고 있는 손님들의 호응을 무시한 채, 빠른 속도로 식사 준비를 마무리했다.
‘내가 이걸 언제 다 했지.’
아이린 생각에 정신을 팔려 있어 몰랐는데, 나는 짧은 시간동안 꽤나 많은 요리를 해치웠다.
메인 요리인 양념갈비.
치즈를 올린 김치참치볶음밥
토마토 미트 스파게티
오뎅을 엄청 많이 넣은 떡볶이
마지막으로 맵고 짠 맛을 달래줄 고르곤졸라 피자 두 판. (이건 배달)
메뉴 구성이 완전 무근본 잡탕이다.
근데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중에서 리퀘스트를 받아 만든 거였으니까.
“형, 요리하시느라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저도 도왔어야 되는데….”
“나두 미안해 오빠. 내가 오빠 각성 선물로 타코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선우와 엘리사가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지만, 나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리대가 생각보다 작아서 쟤들이 날 도와줄 공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말라니까. 선우야, 근데 다른 사람들은?”
“이제 곧 오실 거 같아요.”
“총 세 명 맞지?”
“네. 거절하신 분이 다섯 분, 선약 있으신 분이 세 분이니까 딱 맞아요.”
이번 학기 3관 입주자는 나와 선우를 포함해서 총 13명이다.
그 중에 선우의 석식 초대를 수락한 사람은 불과 3명이었다.
집들이를 겸해서 온김하리랑 엘리사를 포함하면, 파티는 총 여섯 명이서 하게 된 셈이다.
“누가 유배지 죄수들 아니랄까봐 사회성 더럽게들 없네. 요리를 해다 바쳐도 안 처먹는데. 돈이 그렇게들 많나.”
김하리가 고르곤졸라 피자를 뜯으며 투덜거렸다.
“야, 손 떼. 미쳤냐? 사람들 다 안 왔잖아. …엘리사 넌 또 왜 그래. 너까지 얘한테 오염되지 마.”
“오빠앙~ 한 입만 먹을게.”
하리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피자를 꿀에 듬뿍 찍어 입으로 구겨 넣기 시작했다. 놈의 아무렇게나 빗겨진 갈색머리의 끝이 떡볶이 국물에 빠져 빨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꼴이 어이가 없었지만, 그보다 더 얼척 없는 건 이 자식의 복장이었다.
“너 근데 꼬라지가 왜 그러냐.”
“모가.”
“너 그걸 옷이라고 입고 왔냐?”
김하리는 현재 밑 가슴이 살짝 보일 정도로 짧은 흰색 탱크탑과 찢어진 청핫팬츠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아카데미 내부가 1년 365일 따스한 봄 날씨라지만, 이건 너무 추악했다.
“아, 왜애. 뭐 어때서. 편하잖아.”
“너 졸라 가난하냐? 돈 없어? 왜 옷을 안 입고 다녀. 나 몰래 보증 섰어?”
“아핳핳핳! 보증섰녴! 개욱겨!”
음식물을 튀기며 웃던 하리가 손가락에 묻은 꿀을 빨아먹으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어차피 오늘 자고 갈건데 거적때기면 어때. 내일 아침에는 오빠 점퍼 입고 가면 되잖아. 나 이미 외출증 끊었어.”
“이 새끼 또 짖네.”
“멍! 멍멍!”
객관적으로 몹시 청순한 마스크의 소유자인 김하리의 개짓는 소리가 3기숙사 1층 대식당에 울려 퍼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하얀 중앙 계단을 타고 세 명의 입주자들이 홀로 내려왔다. 그들은 남자 둘, 여자 하나였다.
“아, 안녕… 하세요…….”
“아오! 마늘 냄새. 매운내가 진동을 하네.”
“…….”
천성이 밝고 명랑한 엘리사가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여기! 이쪽으로 앉으세요. 제이 오빠와 선우의 축하 파티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어, 안녕.”
엘리사에게 인사를 한 남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이었다. 다른 두 명은 고개만 살짝숙였다.
“꼬마, 넌 쫌 비켜 봐.”
“어, 어…?”
백인 남자가 엘리사를 옆으로 밀친 뒤,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코를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야, 니들은 매너도 없냐? 이렇게 마늘 냄새가 좆같이 심한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겠어. 니들 인성 문제 있어?”
“!”
“!”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됐고, 그냥 내가 요청한 피자만 줘. 돈은 계좌로 부칠 테니까. …아, 씨팔 근데 왜 하필 고르곤졸라야. 이거 주문한 새끼 누구야. 앞치마, 너야?”
나타나자마자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이 남자의 등급은 SSS급일 것 같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분위기를 수습하려 할 때였다.
“야.”
남자를 등지고 앉아있던 김하리가 고개를 수직으로 들었다.
“너 죽고 싶어?”
“넌 뭐야 이 씨ㅂ―”
―퍼벙!
남자의 대가리가 뒤로 심하게 꺾였다.
뿌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기이하게 꺾였다.
“너 이리 와봐.”
하리가 포크를 쥐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녀석이 쥔 포크가 새빨갛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우우우우우웅
하지만 A++급 헌터이자 구룡칠봉중 마봉魔鳳의 칭호를 가진 김하리의 마력은 나 같은 놈보다 훨씬 빨랐다.
“으가가… 으가가가각!!”
남자의 심각하게 꺾여 있던 목 척추뼈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감과 동시에, 뒤로 젖혀진 그의 몸이 바로 돌아왔다.
김하리는 놈의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오자마자포크를 그의 왼쪽 가슴에 꽂아버렸다.
―치이이이이이이익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단백질 타는 냄새가 홀에 퍼졌다.
하리가 행사하는 폭력의 위압감과 그보다 더 빠른 행동력. 그리고 무엇보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그녀의 강대한 마력 때문에 홀 내의 그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하리의 마력은 무려 96이다.
―치이이이이익
“으으… 으으으…… 으으…….”
남자의 눈에 다시 초점이 사라졌다. 입에서는 거품이 나왔고 눈에는 흰자만이 보일 뿐이었다.
씨뻘겋게 달궈진 포크로 남자의 살갗을 녹이고뼈를 녹이며 심장을 위협하던 김하리가 아주 조용히 입술을 뗐다.
“아직도 마늘 냄새 나냐.”
“으… 으으으…… 아으…….”
위험하다.
“하리야, 그만해! 너무 심하잖아.”
―우우우우웅…
하리가 마력을 거둬들였다.
그녀의 부풀어올라가 있던 갈색머리가 천천히 가라앉으며 주인의 가느다란 허리를 가려주었다.
녀석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멍멍.”
**
소란이 지나간 뒤.
하리가 뿜어냈던 마력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었던 엘리사가 물꼬를 텄다.
―짝! 짝!
“흠흠! 어… 우리, 자기소개 할까요?”
“좋은 생각이야.”
평소와 마찬가지로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선우가 동의하자, 엘리사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럼 나부터! 안녕하세요, 저는 토론토에서 온 엘리사 비티에요. 나이는 17살이구요, 전공은 마법. 올해 2학년이 됐고, 이번에 3관에 새로 온 제이 오빠랑 선우랑 친구에요. 앞으로 종종 놀러올 테니까 친하게 지내요!”
“자, 자주 놀러… 오세요…….”
베이지색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엘리사의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선우와 나와 하리가 소개를 마쳤다. 이번에는 3관 기존 입주민인 남녀의 차례.
전신을 검은 색 니캅niqab으로 가리고 있어, 눈밖에 보이지 않는 여자 쪽에서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저, 저는, 미아 파레스 라고 해요. 마력전투보조 중에서, 오퍼레이팅을 세부전공… 하고 있고, 3학년입니다…. 자, 잘 부탁해요…….”
“아, 그 분이시구나.”
선우가 미아 파레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사실 나도 그녀를 알고 있다.
“…저, 절 아세요?”
“랭킹표에서 이름을본 적 있어요. 저는 10025등이거든요, 아하하.”
“…….”
“…….”
실제로는 A랭크면서 사정 때문에 꼴찌가 된 기만자의 말에, 진짜 꼴찌와 2등 꼴찌의 심사가 무척 불편해졌다.
“그쪽 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눈치 빠른 엘리사가 화살을 돌렸다.
타깃은 키가 190cm도 넘을 것 같은 대머리 흑인 남성이었다. 참고로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음… 저기요?”
엘리사가 그를 다그쳤으나,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
그때, 하리가 그를 알아봤다.
“아저씨 그 사람이구나.”
“너 이 분 알아?”
“이 아저씨 꽤 유명해. …아, 오빠는 2학년이니까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녀석이 자신의 리퀘스트 메뉴였던 떡볶이를 먹으며 대답했다.
“이 아저씨, 언령술사言令術士래.”
“언령술사가 뭔데.”
“몰라.”
“뭔 소리야.”
“언령술사가 뭔지는 아무도 몰라. 이 아저씨가 새로 만든 직업이래. 암튼 이 아저씨 3학년이야. 전공은 마법이고. 참고로 이 아저씨 목소리 들어본 사람 아카데미에 아무도 없어.”
남자를 바라봤다.
―끄덕
“…….”
왠지 깊이 들어가면 지는 것 같아서 그냥 말을 삼켰다.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