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10. 제이의 이상한 친구들(4) (10/145)



〈 10화 〉10. 제이의 이상한 친구들(4)


얼굴에 느껴지는 말랑말랑하고 기분 좋은 감촉에 뇌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든다. 산뜻한 숲의 향기가 느껴지는 무언가에 코를 비비며 파고들었다.

―으흥

오른손 가득 만져지는 탄력적이고 쫀득쫀득한 뭔가는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무릎에 닿는 보드라운 무언가의 맨들맨들한 촉감도 어쩐지 재미있어서 나는 이대로 다시 잠이 들었으면 했다.

―하으응~

‘!’

찬물에 뒤집어 쓴 기분으로 황급히 눈을 떴다.

“…….”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라고는 침대 아래 바닥에서 이불을 덮고 색색 자고 있는 선우 뿐.

‘꿈이었나.’

분명히 뭔가 묘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잠결에 뭔가를 만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고.
잠깐, 그보다.

“아… 머리야.”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아팠다. 관자놀이를 누르며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많이도 마셨었지.’

어젯밤, 우리의 파티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하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만 나눴었는데, 하리가 각성 겸 집들이 선물이라며 안동 소주를 꺼내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아하하! 뭐야, 뭐야! 엘리사 술 디게 잘 맛씨네? 그치 제이 옵빠? 엘릿싸 한 개두 안 취해찌?

포도주를 제외하고 술을 난생 처음 마셔본 엘리사가 취하면서 분위기가 업 됐고.

―후후. 후후후! 후후후후후!

마찬가지로 스물 셋 나이에 술을 처음 마셔본다는 미아 파레스(전교 꼴찌)가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오빠 지금 장난쳐?  꺾어 마셔!
―형 쭉 들이키세요, 쭈욱.

업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자정쯤에 필름이 끊겨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였다는 거다.

‘내 방에서 하리랑 엘리사가 자게 돼서 선우가 나를 자기 방에 데려다 놓은 모양이구나. 하… 3관 진짜 개판이네.’

정규 기숙사인 1~2관에서도 방에서 이따금 술을 마시긴 했다. 하지만 사내에서 남녀가 섞여 음주가무를 벌이거나 다른 사람 방에서 자는 일은 상상도  수 없었다.

‘시간이… 5시 반. 30분 늦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서 자고 있던 선우를 안아들고 침대로 옮겼다.
외양만 보면 남자라고는 도저히 믿을  없는 선우의 얼굴은 숙취 때문인지 붉게 열이 올라와 있었다.

‘선우도 술을 많이 마셨나보구나. 귀가 아직도 빨갛네.’

―끼이익

방에서 나와 문을 닫고 내 방으로 갔다. 과연, 예상대로 내 방에는 엘리사와 하리가 쿨쿨 자고 있었다.

‘옷이랑 메리만 챙겨서 나가자.’

내가 그렇게생각하면서 가방에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기고 있을 때였다.

[야, 지금 훈련 갈 때가 아니야.]

―우우우웅

간밤 동안 자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메리가문밖에서부터 날아왔다.

‘왜.’
[악마 군주의 흔적을 발견했어.]

악마 군주의 흔적이라고?!

‘정말? 어디서.’
[1층으로 내려가 봐.  몸도 전혀 감지 못했다가 방금 직접 보고 알았어.]

나는 메리와 황급히 로비로 향했다.

“뭐야, 이거.”

기숙사 로비는 엉망진창이었다.
리모델링을 하며 새로 들어온 듯한 빌트인 신발장은 신발 도둑이 든 것처럼 마구 헤집어져 있었고.
어젯밤 파티를 벌였던 식당은 서랍, 냉장고 문, 오븐 뚜껑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죄다 열려 있었다. 흡사 지진이라도 났던 듯한 모습.

‘이건 좀 심한데.’

식당과 현관만이 아니었다. 홀로그램 형 최신 TV와 당구대등이 설치된 휴식 공간 역시 마찬가지였고, 선우가 어제 가져다놓은 화초들도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우드득

바닥에 깨진 화분 조각이 밟혔다.

“그냥 도둑이  건 아니겠지? 식기나 실내화 따위를 훔쳐가려고 이러진 않았을 거 아냐.”
[악마 군주야, 확실해. 그것도 꿈같은 공상계가 아니라, 실제계의 숙주에게 영향을 미치는 놈. 그러니 이 몸도 감지를  했던 거지.]
“근거는.”
[김하리. 그리고 반선우.]
“아하.”

만약 이 일이 마냥 인간이 벌인 일개 헤프닝이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사실은 S등급에 오른 지 반년이 넘었지만 명예졸업을 하기 싫어서 이를 숨기고 있는 김하리나. 재각성을 통해 최소A+ 랭크에 오른 반선우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반면 이 소동이 아영 누나의 인드라이브 때처럼 공상계의 초현실적인 힘만이 발휘된 케이스라 가정해보자.
 경우에는 공상계에 근원을 둔 메리가 곧바로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러니 범인은 실제계-공상계에 모두 발을 걸친 자.

즉, 악마 군주와 그의 숙주다.

[김하리를 깨워봐. 기감과 식견이 모두 뛰어난 자의 도움이 필요해.]
“하리? 차라리 선우는 어때. 정령술도 흔적 찾는 데에는 일가견 있잖아.”
[단서가 없는 사건에는 말  듣는 사냥개보다 미친 무당이 쓸모 있는 법.]
“뭔 뜻인지 알겠다.”

당장 5층으로 올라가 하리를 깨웠다.

“하리야, 일어나 봐.”
“으응… 시러어…….”

하리가 몸을 돌리며 엘리사를 끌어안았다. 녀석의 입에서 나는  냄새 때문인지, 꿀잠을 자던 엘리사의 눈살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탱크탑이 말려 올라가 분홍색 유륜이 살짝 보이는 하리의 옷을 정돈해준 뒤, 재차 녀석의 어깨를 흔들었다.

“야단났어. 빨리, 나 좀 도와줘.”
“아아! 시러어! 더  거라고….”

김하리는 아침에 대단히 약하다. 태생이 저혈압에, 보유 마력회로의 최적 활성화 시간이 동틀 무렵의 아침과 정반대인 석양무렵의 저녁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하리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늘 그랬던 것처럼, 녀석을 깨우기 위해 한참을 어르고 달래야만 했다.

“아이 씨…….”

결국 잔뜩 골이 난 하리가 어마무시한 짜증이 섞인 얼굴로 두 팔을 내밀었고, 나는 순순히 등을 내주었다.

“별  아니기만 해.”

등에 업힌 하리가 내 귀를 잘근잘근 씹었지만, 을의 입장인 내가 항의를 할  없었다.
오랜만에 업어본 하리의 몸은 여전히 가볍고 부드러웠다. 또한 손바닥과 팔에 닿는 그녀의 하얀 허벅지는 무척 뜨거웠다.

‘…….’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자식 아직도 술 덜 깼잖아?!’

**


“이건 고대 노르드 계열 마법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노르드Nord 마법? 북유럽이랑 게르만, 그쪽?”
“응.”

하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내 허벅지를 찼다. 나는 그제야 녀석을 내려줄 수 있게 되었다.
맨발인 채 바닥에 내려선 하리에게 슬리퍼를 갖다 주자, 녀석이 신발을 구겨 신으며 하품을 했다.

“문헌에서 본 적 있어.지금은 거의 실전됐지만 고대 노르드 지역에는 이런 독특한 마법을 써서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마법사가 있었다고.”
“어떤 마법이길래?”
“폴터가이스트 현상 비슷한 걸 일으키는 건데 좀 복잡해. 비유를 들어줄게.”

『헌터의 사랑과 영혼』
『S급 아기유령 캐스퍼』

이 두 고전영화의 공통점은 하나다.

<영혼이 물리력을 행사한다>는 것.

“영혼? 범인은 영혼이라는 거지.”
“내 생각은 그래. 범인은 육체를 가진 사람도, 그렇다고 정령이나 환수는 더더욱 아니고, ‘영혼’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거.”
[쎅쓰!!]

하리의 추리에 메리가 유레카를외쳤다.

[킹능성이 있다. 영혼은 실제계에 존재하면서도공상계에 가까운 존재야. 만약 영혼을 신체에서끄집어내 자유롭게 활용하는 마법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가 악마의 숙주라면  상황도 이해가 되지.]
‘그렇군.’
[오이오이, 진짜냐! 네놈 여동생 꽤 하잖아! 우효~ 어쩌면 도내제일 마법사일지도? 짝짝짝!]

메리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하리를 칭찬했다. 물론 제주도내 제일 마법사님께서는 그걸 들을 수 없겠지만.

“오빠, 잡을거야?”
“음?”

하리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엎어진 냄비 안에 남은 떡들을 건져 먹으며 물었다.

“잡을 거냐고.  떡볶이 건든 새끼.”
“…잡아야 하지 않겠냐. 손해배상 청구해야지. 깨진 물건도 많은데.”
[도와달라고 해. 이번 봉인 임무는 실제계에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나는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하리야, 같이 잡을까? 너 요즘 한가하잖아.”

하리가고개를 저었다.

“어제까진 그랬지.”
“오늘부턴 왜.”
“나 이따 프레이야 가잖아.”
“…아 맞다.”

그러고 보니 하리가 어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프레이야에 있는 게하르 왕국의 마탑으로 세미나를 간다고.
프레이야는 지구와 이어진 이세계지만, 엄연한 다른 세상이라 카톡 따윈 할 수가 없다.

즉, 김하리의 도움은 이걸로 완전 끝.

‘누구한테 부탁하지.’

내가 다른 조력자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을 때, 하리가 나를 불렀다.

“오빠, 범인 잡으면 경찰이나 사무소에 연락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줘.”
“왜.  사람 때리게?”
“그럴 수도 있고.”

그녀가  식은떡볶이를 건져먹으며 씨익 웃었다.

“그 인간 왠지 재밌을  같애서.”


**


하리는 프레이야에 가기 위한 준비를 위해 먼저 3관을 나섰다.
나는 뒤늦게 일어난 기숙사생들과 함께 1층을 정리했다.
엉망진창이 된 1층이었지만, 우리 모두가 육체능력이 뛰어난 헌터들이라 빠른 시간 안에 청소를 마칠 수 있었다.

“…누, 누구… 짓… 일까?”

청소 후, 미아 파레스가 준비한 아침을 먹으며 3관 기숙사생들은 범인의 정체를 추론했다.
참고로 나와 동갑인 3학년 미아 파레스는 현재 아카데미의 유일한 미각성자다. 각성을 못한 탓에 졸업도 못해서, 학교를 벌써 6년째 다니게 됐다고.

“글쎄.하리 말로는 학교 내 마법사가 아닌, 외부인일 가능성이 크다던데.”
“제, 제이야, 외부인… 이라니…?”

미아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전신을 가린 니캅 때문에 눈밖에 안 보인다― 물었다.
나는 토마토와 치즈를 썰어먹으며 아까 하리가 했던 설득력 있는 추론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다.

“아무튼 그래서, 외부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어. 현재 학내에는 전투분과든 비전투분과든 가릴  없이 고대 노르드 마법을 할  아는 마법사는 없다고 했거든.”
“영혼은 무슨. 그냥 죽고 못 사는 오빠 앞이라고 아는 척한 거겠지. 브라더 콤플렉스,  그런 건가? 우웩!”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제 하리에게 줘터진 백인 남자가 구시렁거렸다.
왼쪽 가슴과 목에 붕대를 감은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백발의 남자가 침착한 말투로 그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가능성 있다고 보는데.”
“알렉세이, 넌 그 미친년 말을 믿어?”
“브랜드. 김하리는 호전성이 강하지만 영리한 마법사야. 나이에 비해 가진 바 지식도 대단하지. 공적인 목표를설정했으면 사적 감정은 배제하도록 하자.”
“…쳇.”
“김제이라고 했나. 그래서, 김하리는 어느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

알렉세이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데.”
“거 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툭 던져놓고 나 몰라라.”
“브랜드. 모처럼의 귀중한 아침 식사를 네 방에서 혼자하고 싶나.”
“알겠어, 젠장! 알겠다고!”

알렉세이의 쿠사리에 줘터남 브랜드가 고개를 숙이고 밥만먹었다.
그때, 말없이 식사를 하던 여자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커다란 검정 뿔테 안경과 엄청난 크기의 가슴이 인상적인 동양 미인이었다.

“남은 써니사이드업 하나는 내가 먹어도 되나.”
“여, 여기…….”

미아가 식탁 가운데에 놓인 프라이팬에서 계란을 덜어주었다.

“고맙다, 미아.”
“낸시는… 머, 뭐 떠오르는 거… 있어? 범인…….”
“범인에 대해서? 음.”

모두의 시선이 ‘낸시’라는 이름의 여자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위로 뜨며 골똘히생각하다 입술을 뗐다.

“동기가 뭘까.”
“범행 동기를 말씀하는 건가요?”

엘리사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장난이나 폴터가이스트 현상처럼 개연성 없는 행동이 아니라면. 그 행동엔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
“도, 도둑… 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행동을 취하기 용이하다. 그리고 만약 도둑이라고 해도 나는 범인이 평범한 귀중품을 노리는 도둑은 아닐 거라고 본다.”

낸시가 말을 이었다.

“범인이 좀도둑이라면훔쳐간 것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라진 물건은 없다.”

“도둑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차피 그의 동기를 추측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유리한 경우의 수는 하나다.”

“<특별한 물건을 찾고 있는 도둑>.”

“이 경우라면 그의 행동은 납득이 가고 범인의 정체를 조사하기도 쉬워진다. 그리고 내 추측이 맞다면,  3기숙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피해가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상이다.”

낸시의 논리적인 주장이 끝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형, 이것 좀 보세요.”

선우가 스마트폰을 들어보였다.

[아이웨이: 아 씨바, 기숙사에 귀신 들었어ㅠㅠ 이게뭐냐고오!]

[아이웨이: 첨부 동영상 파일 <1기숙사_귀신영상_ㄷㄷ.avi>]

아이웨이가 보낸 첨부영상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물건들이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서랍과 상자들이 제멋대로 열리는 광경이 담겨있었다.

‘하리와 낸시의 말이 맞았어.’

지금 아카데미에.

무언가를 간절히 찾는.

영혼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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