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17. 제이의 이상한 친구들(11) (17/145)



〈 17화 〉17. 제이의 이상한 친구들(11)

“자니?”

구남친 트라우마라도 떠올린 걸까.
번쩍 눈을 뜬 발키리가 번개 같은 속도로 좌수를 휘둘렀다.

―스겅!

창강槍鋼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나는 라라 마르티넥의 모습을  발키리의 몸에서 손을 뗐다.

“또 네놈이었나.”

발키리의 눈에서 은빛 안광이 터져 나왔다. 나는 불과 지척거리에서 무방비 상태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공격을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이유도 없었으니까.

“안녕, 또 왔어.”
“냄새나는 악마에게 씌어 전사의 긍지도 없어진 줄 알았더니. 그 정도 얼간이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나한테 지금도 악마 냄새가 나?”
“…….”

발키리의 아름다운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리고 달콤한 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네놈의 몸에서 났던 더러운 악마의 악취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이 기괴한 공간을 감싸고 있는 기분 나쁜 공기는 여전하다. 여긴 대체 어디지?”

성공이다!
제파르의 좆찌를 아예 빼놓고 오길 잘했다. 인드라이브를 위해 데카라비아를 쓴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저번처럼 강한 악마 냄새가 나진 않는 모양.

“여긴 내 꿈속이야. 너랑 다시 만나고 싶어서 이곳으로 초대했어. 악마 냄새는 이해해줘. 놈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널 만날 수가 없었거든. 아, 나는 악마숭배자가 아니니까 걱정 마.”
“흐음.”

발키리의 눈매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눈과는 반대로 창을 쥔 그녀의 손에는 거센 힘이 감돌고 있었다.

“가진 바 용력은 미약해보이나 역시 전사는 전사로군. 저번에 나에게 진 것이 그리도 분했더냐.”
“…….”

뭔가 핀트가 어긋난  같긴 했지만 어쨌든 발키리가 나에 대한 혐오감을 덜어서 다행이었다.

“그럼, 간다.”

다행은 니미!

―스겅! 파가가가가강!

은색 네글리제와 검정 티팬티를 입은 발키리가 휘두른 강기에 내 몸에 불똥이 튀었다.
아까와 달리 충격이 느껴지는 상황에 우리는 크게 경악했다.

‘선우야! 반존재 상태에는 피해면역이라며, 어떻게 된 거야?!’
[저, 저도 모르겠어요!  이러지?!]

나의 동요를 눈치챈 것인지, 발키리가 잠시 창을 거두었다.

“같잖은 꾀가 통할 것이라 생각했나. 위대한 발키리 미스트Mist의 힘을 이은 나에게 그깟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미스트? …온다!]

몸을 오른쪽으로 날리며 바닥에 크게 굴렀다. 중국출신 헌터들이 종종 나려타곤이라 부르며 멸시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카가가가가가강!

꿀이 흘러촉촉한 바닥에 파란색 불똥이 튀었다. 그녀의 강기는 무자비할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게  주변을 초토화해나갔다.

‘이런 젠장!’

―Yyyyyy! Yyyyy!

하와와의 도움으로 반존재 상태가 된 덕분인지 내 몸놀림은 상상도 할 수 없을정도로 빨랐다. 의식이 가 있는 곳이 바로 몸이 따라오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발키리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쾌속이라, 나는 콤마몇 초 차이로 그녀의 창을 간신히 피할  있을뿐이었다. 존나 미치고 환장하겠는 죽음의 술래잡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재미있군.”
“니가 독일인이냐?!”

발키리가 창을 내리며 물침대 위에 섰다. 그녀가 창을 쥐지 않은 좌수左手를 들어 은색의 불꽃을 피웠다.
그녀의 입술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싹거렸다.

[미스트의 룬Runes 마법이다!]

메리가 찢어지는 경고음을 질렀다.


―{하늘의 아버지 오딘의 딸 미스트의 영靈을 개방하나니.}


발키리의 은색 머리가 불꽃을 피워 올리듯 위로 치솟았다.
그 광경은 참으로 신비롭고도 아름다웠으나,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해일과도 같은 마력에 절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첫 번째 영은 네 등을 물어뜯고.}

―{두 번째 영은 네 머리를 뽑고.}

―{세 번째 영은 네게 절망을 안겨줄 것이다.}


주문 영창이 끝난 순간이었다.
발키리가 피워낸 은색의 불꽃이 세 개로 분열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뭐지?”

―퍼억!

등으로부터 강력한 통증이 엄습했다.

“으으으!”

머리통을 부서트릴 듯 쥐어짜는 누군가의 거친 손길이 느껴졌다.

―사아아아아

눈에 보이지않는 무언가가 내 시야를 가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나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무언가에게 움직임을 완벽하게 봉쇄당한 채, 그녀에게 사로잡혔다.
메리가 황급히 경고했다.

[그거야! 실제계에서 보이지 않고 물리력을 행사했던 영혼! 그게 바로 이 미스트의  마법이라고! 빨리 도망쳐! 그 분신령分神靈들에게 당하면 실제계에서도 같은 피해를 받고 말 거야!]

젠장, 할 수 있으면 진즉 했지!

[형! 제가 도와드릴게요!]
“참으로 가녀리나 다정한 마음을 가진 요정이로다. 조용히 잠들거라.”
[아아……!]

쿠루루의 모습을 한 선우가 날 도우려했지만, 할  있는  없었다. 이미 공상계에 진입해 하와와를 내게 바른 시점에서 선우는 자기 역량의 한계까지 끌어다 쓴 것이다.

“으으!”

나는 미스트의 분령들에게 붙잡혀, 찐득하고 달콤한 꿀이 흘러넘치는 물침대 위에 무릎 꿇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목숨을 구걸할 생각이다!”

―우우우웅!

발키리의 강기로 만들어진 창이  목덜미에 닿았다.

―치이이이이익!

“아아아악!!”

미칠 듯이 아팠다. 속으로 인드라이브의 해제 주문을 외워도 소용이 없었다.
선우가 정신을 잃었는지, 하와와가 내 몸에서 튕겨져 나간 탓에 나는 맨몸 상태로 발키리의 창을 받아내고 있었다.

“이대로 발할라에 보내줄까.”
[안 돼! 60년 만에 찾은 내 짝꿍!]

발키리가 최후통첩을 했다.
메리가 비통을 터트렸다.
어제 느낀 죽음의 공포보다 더한 절망감이 내 머리를 하얗게 물들였다.

‘이렇게… 죽는구나…….’

나는 삶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흠. 재미없어졌군.”

그런데, 발키리가 돌연.

“…시시하다.”

창을 거두었다.

**


발키리가 미스트의 힘을 빌려 소환한 영혼들이 사라진 뒤.
나와 그녀는 물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
“…….”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이겼다.”
“그래.”
“넌 나한테  거야.”
“맞아.”
“그것도  번이나.”
“…알았어, 임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자, 라라와 똑같이 생긴 얼굴이 날 돌아봤다.
멍하면서도 동시에 지적인 라라의 이중적인 매력과는 다른, 씩씩하고 의지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왜 그렇게 보지?”
“같은 얼굴인데 다른 느낌이 드는 게 신기해서.”
“영혼은 마음의 거울이다. 거울의 뒷면인 나의 색과 양지를 살아가는 그녀의 색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예쁜 건 똑같은데 뭐.”
“네놈 혀에도 악마가 사나보군.”

발키리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악마와는 어떻게 하다 계약하게 됐지?  그… 그곳에 깃든 신비한 정령의 힘은 무엇이냐.”

나는 깜짝 놀랐다. 발키리가 내 자지에 깃든 메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메리의 목소리가 들려?”
“아니. 다만 느껴진다. 무궁하고 깊은 영혼 속에 감추어진 선량하면서도 기이한… 힘을 느꼈다.”

주신 오딘의 딸인 미스트의 힘을 이었다더니. 역시 발키리는 대단했다.

“미스트. 아니다, 라라라고 불러야 하나?”
“…미스트가 좋다. 나는  분의 화신이니 틀린 것도 아니지. 오히려 영광된 호칭이다. 라라 마르티넥이라는 이름은 오롯이 그녀의 것이야.”
“좋아, 미스트.”
“……응.”
“내가 천천히 얘기해줄게.”

나는 그녀에게 마법검 캄비온. 즉, 메리의 악마 봉인의 건과 최근 학교에서 벌어진 소동 등에 대해 모두 설명했다.

“호오. 아주 재미있군. 계속 해봐라.”

자아는 달라도 미스트 역시 호기심이 많은 아이 같은 성품이 있어서, 내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그렇군. 72악마군주라. 이놈의 정체가 그것이었다니. 너는 이걸 봉인하기 위해 나를 부른 것이었어. 흐음… 갸륵하군.”
“…?”

얘가 지금 뭔 소릴 하나 싶던 참이었다. 미스트가 가녀린 손을 들어 은색의 불을 피웠다.

―화르륵!

그러자 아름다운 불길 속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Kaaaaaaaa……!!!!!!}


미스트의 불속에서 자글자글 구워지는 시커먼 놈을 본 메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악마 군주다! 이건… 44위 샥스야!]
‘샥스?’

그때, 시스템이 분석을 마쳤다.

〓〓
[악마 정보]
no. 44 샥스Seox (※제압 상태)

[숙주 정보]
라라 마르티텍 / 제4국제헌터아카데미 이스트 블루 치유술전공 정교수

[신체 스펙 (실제계)]
34세 / 비처녀
173cm / 93-60-93 (F컵)

[신체 스펙 (공상계)]
????세 / 처녀
173cm / 93-60-93 (F컵)

[공상 구현 분석 결과]
-숙주는 트라우마로 인해 타임캡슐에 대한 기억을 무의식 중에 외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성숙한 자아를 갖추게  뒤,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는 과정에서 타임캡슐을 향한 자신의 미련을 직시하게 되었다.

-샥스는 그녀의 강력한 지적호기심과 회한의 감정에 이끌려 약 4년 전 실제계의 숙주에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샥스가숙주에게 깃들자마자, 숙주의 영혼에 잠재되어있던 발키리의 힘에 의해 오히려 제압당해버렸다.

-발키리에게서 이미 제압당한 상태인샥스를 회수하여 봉인하라.

[공략 tip]
강대한 항마력의 영향과 이미 제압된 샥스의 상태로 인해 파악 불가

[보상]
-no.44: 보물찾기 lv.1
-20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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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미 제압당해 있다고?
그럼 현실에서 벌어졌던 유령 소동은 뭔데?

“……미스트 너 설마.”
[……이 여자 설마.]

나와 메리가 어안이 벙벙해 미스트를 바라보자, 그녀가 먼 산을 봤다.

“그녀와 달리 나는 한가하다. 그래서 그녀를 도와주고자 미스트님의 분신령을 활용했지.사소한 운용 실수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맙소사!

‘학내 영혼 난장판 사건’의 진실은 도둑도, 귀신도, 악마 군주에게 조종당한 인간의 소행도 아닌.

그저 발키리의 변덕에 의한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박이다 너.”
“어쩔 수 없었다.”

미스트가 눈살을 찌푸리며 항변했다.

“바쁘기 짝이 없는 제자에게 타임캡슐을 찾아보라는 민폐 부탁을 하지 않나,  밤에 숲에 들어가 괭이질을 하질 않나. 원래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최근 들어 그 물건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었다. 그래서 내가 더 빨리 찾을  있도록 도와주려 했을 뿐이다.”
“악마 군주의 영향 때문에 요즘 들어 그렇게 집착을 보이신 거야?”
“그럴 리가. 악마는 내게 처음부터 제압된 상태였다. 원인 제공자를 찾자면 오히려 네놈이 가깝지.”
“나?”

내가 교수님의 행동에 영향을 끼쳤다니, 이게 대체 소리지.


“그래, 너. 정확하게는 <정욕>.”


갑자기 미스트가 정색을 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미스트의 화신인 나의 영혼과는 달리 그녀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정욕을 가질 수밖에없지. 하지만 마력회로에 잠재된 신혈의 영향과 성격적인 문제로 그녀는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성장했다.”
“그래서?”
“달이 차면 기울 듯, 그녀도 이미 뜨거워진 몸을 식힐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방법도, 그럴 필요도 자각하지 못했지. 대신, 그녀는 다른 일에 보다 더 집중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욕을 분출했다. 그 일이 바로 타임캡슐 찾기였다는 뜻이다.”

아아… 이해가 간다.
여러  느꼈지만 라라교수는 지적 호기심 외의 욕구에는 많이 둔감했다.
뭔가를 원해도, 자신이 그걸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스타일.
아마도 라라는 자신 안의 끓어오르는 감정이 성욕이나 애정욕이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네놈이 그녀의 잠재된 욕구에 자꾸 불을 지핀 것이다.”

이건  소리야.

“내가? 설마 어제 상담 요청한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런 거라면 납득이 되긴 해. 제파르의 권능을 썼으니 교수님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었을 테고.”

내 질문에 미스트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둔감한 놈.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군. 자, 이걸 가지고 떠나라.”

{Kaaaaaa……}

미스트가 내게 샥스의 정수를 던졌다.
그러나 나는 정수를 이토록 쉽게 얻었다는 기쁨보다, 수수께끼 같은 그녀의 말이 더 신경 쓰였다.

“잠깐만! 얘기  하자.”
“나는 자격이 없다. …그리고 뭐? 악마 놈의권능?”

―파아아앗!

미스트의 눈에 은색 안광이 터졌다.

“이런 둔해빠진 전사 놈. 미스트의 화신인 이 몸이 임해 있는 그녀에게 그딴 것이 통했을 것이라 생각하나?”
“!”
[!]

뿅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가라. 너와의 인연은 그녀의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준 것에 감사한다.”

―쿠과광!

공간이, 속절없이 허물어진다.
꿈속의 이미지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보아도 막을 수 없다.

“미스트!”

나는 이 순간 깨달았다.
그녀가 원하지 않았다면, 나의 조악한 인드라이브 lv.1로는 절대 그녀를 내 꿈속으로 초대할 수 없었을 거란 걸.

[▶<44번째 악마 군주 샥스> 봉인 완료]

[▶샥스의 권능 회수 완료]

[▶보상 20 CP 지급 완료]

[▶올 클리어까지 앞으로: 69/72]

―쿠궁! 쿵 쿠과광!

무너지는 꿈의 끝자락에서.
그녀가 아련한 눈길로 작별을 고했다.

“안녕, 나만의 시바르드Sivard.”


보물찾기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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