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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19.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1) (19/145)



〈 19화 〉19.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1)

“…네? 신입생도 OT요?”

2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넘어가는 봄방학을 보람차게 보내던 와중이었다.
힘들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자율훈련을 잠시 미뤄야 할 일정이 잡혔다.

“그래.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2박 3일 간 다녀오는 건 어떻겠니.”

커피향 가득한 이시카와의 연구실.
헌터 라이센스 발급 심사 건으로 얘기나 하고자 들른 이곳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만 것이다.

“저는 생도회도 아니고, 학급 임원도 아니고… 동아리도 탈퇴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가야 될까요?”
“그래줬으면 좋겠어.”

이시카와 교수가 커피를 마셨다. 짙은 퍼플 컬러의 스타킹에 감싸인 다리가 교차 되었고,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은은한 향수 냄새는 향긋했다.
하지만 내 기분은 더러웠다.

“저 각성한지 얼마  된 거 아시잖아요. 지금 하루가 다르게 신체능력이 좋아지는 걸 느끼는데….”
“그래서야.”

이시카와 레이가 날카로운 눈으로 내 몸을 훑어보았다.

“이제는 D급 정도 되겠구나. 놀라워. 불과 열흘 남짓한 시간동안 E-급 신체에서 D급에 가까운 신체를 만들다니. 제이 네 실기 센스도 좋은 편이니, 헌터로서의 실제 실력도 D급 이상이라고 봐야겠지. 축하해, 이제야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헌터가 됐구나.”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담임교수였던 나로서는 한편으로 걱정이 돼. 근력 체력 민첩 능력이 무섭게 향상되는  좋아. 하지만  원인이 마력에 의한 상승작용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마력의 증가 속도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빠르다는 뜻이겠지.”
“그게 왜…….”
“김제이.”
“네.”

그녀가 검지로 내 단전을 가리켰다.

“기록에 의하면 각성  네가 보유하고 있던 원초의 마력은 17이었어. 하지만 지금 네게서 느껴지는 마력보유량은 그것의   이상이야. 더구나 반선우와 엘리사의 증언에 따르면 어느  갑자기 그렇게 불어났다고 했지. 이게 과연 정상적인 상황이라 생각하니?”

CP를 써서 편법으로 올린 마력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이시카와 교수는 오해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변명을 했다.

“…글쎄요? 아직 측정기로 정밀테스트를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더 문제야. 너는 네 마력이 어느 수준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마력에 대한 재능이 범상하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보유 마력량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다? 그럼 원인은 하나일 수밖에 없어.바로, 고유능력.”

와… 귀신이다, 귀신.
은퇴는 했어도 S급은 S급이라 이건가.

“김제이. 너는 네가 어떤 고유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했어. 이른 바 불완전각성을 한 것 같다고 했지. 네 입으로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내 기억이 틀렸나?”
“…맞습니다, 교수님.”

교수님…. 근데, <공상 침식>이나 정력 스탯 같은 고유 능력 얘기를 해봐야 인간 모르모트 될 게 뻔한데 제가 그걸 어떻게 얘기해요?

“여유를 가져.”

이시카와 교수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내 손을 가볍게 감쌌다.

“치료술전공의 라라 마르티넥 교수님께 네 부탁을 드려놨어. 네 고유능력의 탐색과 개발에 힘써달라고. 교수님께서 흔쾌히 널 맡아주시겠다고 하셨어.”
“감사합니다.”

이건 잘 됐다. 다른 교수면 오히려 귀찮았을 텐데, 라라면 사정도 어느 정도 공유된 상태니 오히려 편할 거다.

“네 고유능력이 범상치 않을수록, 너는 신중해야 해. 네 동생인 김하리의 경우를 떠올려봐. 13살에 불완전각성을   줄곧 능력 개발을 못하다, 17살 때부터 지금까지 불과 3년 만에 SSS랭크 부럽지 않은 마력 보유량을 갖게 그녀를.”
“…네.”
“헌터에게 중요한 건 속력이 아니라 방향이야. 각성 후의 급진적인 신체능력 향상? 그런 것은 네가 후에 돌이켜보았을 때 별것 아닌 것으로 기억하게 될 거야. 장담하마. 나도 그랬으니까.”

이시카와 교수의 설득이 끝났다.

결론은, OT 가서 쉬다 오라는 것.

나는 내 손을 꼭 잡고 간곡히 말하는 이시카와 레이 교수님을 차마 외면할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잘 생각했어. 아이웨이에게 언질을 해놓았으니까, 연락해보렴.”

이시카와 교수가 보일  듯한 미소를 지었다.

“다녀와서  싸는 것도 잊지 말고.”

이렇게 나는, OT에 끌려가게 되었다.


**

‘시간이 없다. 더 빡쎄게 해야 돼.’

―우우우우웅!
―콰광! 콰광!

나는 이시카와 교수의 연구실을 나온 뒤부터 어제 밤늦게까지 훈련장에서살았다. 문자 그대로, 머물렀다.
그리하여 OT 전까지 내가 만든 노력의 결과는 이랬다.

〓〓
[계약자: 김제이]
실제계 등급: D- / 공상계 등급: F

[신체능력]
근력44 체력53 민첩47 마력43 정력39

[고유능력]
공상 침식 lv.1

[보유권능]
no.16: 성감 고조 lv.3
no.44: 보물찾기 lv.1
no.69: 인드라이브 lv.1

[보유CP]
20
〓〓

샥스의 정수를 얻기 전과 비교했을 때, 근력6 체력2 민첩7 마력3으로  18의 등급 점수가 오른 상태.
내가 봐도 미친 성장속도이긴 했다.

[주변인들이 비정상적이라고 여길 만도 하다. 아서는 너무 외부적인 힘에 의존해서 탈이었는데, 네놈은 반대로  스스로의 힘만 믿으려 하는구나.]

자식이 말이면 단  아나.

“그럼 각성하자마자 B급 마력에서 시작한 하리나, 무려 A급에서 2차 각성을 한 선우랑 내가 같냐. 태생E급인 내가 걔들 따라가려면 훈련 말고 더 있어?”
[누가 뭐래. 좆같다고 한 적 없다. 다만 네놈은 강해지는 수단을 너무 훈련에 한정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없이 자라서 그래.”

나는 메리의 말을 대충 흘려들었다. D급 헌터인 내 주제에 그딴 걸 신경  여유가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건 최소 B등급은 오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세간에서 1류로 분류되는 B등급 헌터. 그게 일단 내 1차 목표다.’

나는 OT참가가 결정된 이후 내내 신경질적인 상태였다. 어쩔 수 없었다.

그토록 강해지길 원했고.
그 기회가 비로소 찾아왔는데.
시간을 낭비한다?

그건 너무 사치였으니까.

“젠장, 양말은 또 어디 갔어.”
[발정기의 고양이처럼 짜증이 골수에 뻗혔구나. 릴렉스~ 릴렉스~.]

어찌됐건, 신입생도 오리엔테이션 당일의 아침은 밝았다.

202X년 2월 21일 금요일 아침.

나는 트레이닝복을 대충 끼어 입고짐을 싼 뒤, 본관 앞으로 향했다. 그곳이 OT 수행인원의 집합장소였으니까.

“2학년 자원봉사자들은 이쪽입니다!”
“일반 생도회원들은 1층 3강당에 모여주세요! 생도회장님 지시입니다!”
“3학년 자원봉사자 선배님들은 지금 바로 대운동장 단상 아래로 가셔도 됩니다! 인원이 적으셔서 바로 이동하셔도 괜찮아요!”

본관 앞은 완전 시장 바닥이었다.
각 분과와 전공을 나타내는 겨울 점퍼를 입은 수행인원들이 색깔 별로 모여 있었다.
본의 아니게 그들과 구별되는 검은 패딩을 입은 나는 사람들을 지나쳐 빠르게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제하~!”

본관 계단 옆에서 아이웨이의 모습이 보인다.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주며 그에게 다가갔다.

“밥 먹었냐.”
“아니이. 자다가  싸고 바로 왔어. …하아암!”

오전 10시가 넘었는데도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한다. 녀석의 검은색 더벅머리 아래 얇게 찢어진 눈에는 눈곱이 맺혀있다.

이 녀석은 아이웨이艾威.

홍콩에서 온 24살의 남자 생도로, 1학년  나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다. 전공은 근접격투술이고, 헌터 랭크는 B-.

“제이 넌. 밥 먹었냐? 보니까 또 훈련장에서   같은데.”
“오늘은 안 갔어. 어제 밤부터 아침까지 그냥  잤다.”
“아아, 이시카와랑 면담한 그날부터 훈련장에서 살았구나, 너.”
“어.”

내가 따분한 얼굴로 대답하자, 아이웨이가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나도 고딩  처음 각성하고 너처럼 흥분해서 미쳤었지. 다 추억이다.”
“닥쳐. 난 스물세 살에  짓을 실시간으로 하고 있는 중이니까.”
“큭큭큭큭! 이 쉐키 무슨, 게임하다가 예비군 훈련 끌려가는 얼굴을 하고 있어. 엄청 빡쳤네?”

내가 대답하지 않고 폰만 바라보자, 아이웨이가 어깨동무를 해왔다.

“야, 너  형님한테 고마워해라.”
“왜 임마.”
“일단 나한테 대형大兄이라고 해.”
“너 미쳤어?”
“빨리.”

이  새끼가 뭐 잘못 먹었나.

“…따꺼.”
“큭큭큭큭!”

미친 게 맞는 거 같다.
오늘 왜 이래?

“일단 옷이나 갈아입자. 내가 받아왔어. 출첵도 했고 명찰이랑 완장도 받았으니까 걍 나만 따라다니면 돼.”
“너 생도회원들이랑 같이 안 다녀?”

아이웨이는 생도회生徒會. 즉, 아카데미 학생자치단체의 회원이다.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참가한 나랑 같이 다니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어. 나는 명목상만 생도회 인원으로 참가한 거야. 걍 너랑 놀려고 왔어.”
“잘하는 짓이다.  좋아하는 게임이나 실컷 하지 뭐 하러 왔냐.”
“두고 보면 알아.”

나는 속으로 할 짓 드럽게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놈이 하자는 대로 했다.
일견 허술해보여도 아이웨이는 B급의 헌터에다 생도회원인 만큼, 단체 과업 수행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쪼개지. 저 정도로 의기양양한 거 보니까 뭐가 있긴 있는데.’

나는 실실거리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웨이를 따라 셔틀버스와 1학년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 조가 탑승해야 할 버스 입구에서.

“어? 제이 오빠. 안녕하세요!”

여신님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당연히아이린艾林.

생도회에서 만든 싸구려 야구 점퍼를 걸쳤어도 가려지지 않는 빛나는 미모를 가진, 나의 아이돌.

“…아, 안녕.”
“아.하! 이건 아이린 하이라는 뜻!”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네요.”

아이린에게 인사를 건넨 아이웨이가 고개를 돌리며 속삭였다.

―내가 누구?

마음속 깊이 그에게 충성맹세를 했다.


**

“오빠가 오실 줄은 몰랐는데. 오전에 일이 있어서 저도 명단을 못 봤거든요. 진짜 반갑다.”
“그러게. 되게 오랜만이다. 그때 마트에서 보고 지금 보는 거잖아, 그치.”
“네, 후흣.”

옆자리에 앉은 아이린이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아이린, 과자 좀 먹어. 아이웨이랑 같이 먹고 있는데 양이 많다.”
“응! 안나 고마워. 아이웨이,  먹을게요.”
“많이, 마아니 먹어! 제이도 주고!”

맞은편의 안나 살라예바가 웃는다.
창가에 앉은 아이웨이가 따라 웃는다.

‘완벽하다 정말.’

그렇다.

아이린에게 관심이 있는 나와.
안나에게 관심이 있는 아이웨이.

두 사람의 꿈의 무대가 지금 이 버스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오빠, 여기요. 같이 먹어요.”

아이린이 안나에게 받은 새우 과자를 양손으로 받아 내게 건넸다. 내가 과자를 덜어가려 하자, 그녀가 예쁘게 고개를 저었다.

“오빠 손바닥에 가루 묻잖아요. 제가 받치고 있을게요.”
“그럼  어떻게 먹으려고?”

아이린의 백옥 같은 볼에 희미한 홍조가 피어올랐다.
찰나의 시간 동안 내가 신성모독적인 발상을 떠올렸을 때, 아이린의몸에서 정밀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아아~ 음!”

마력으로 띄운 새우과자를 입에 깜찍하게 집어넣은 아이린이 쑥스러움을 타며 눈을 깔았다.

“사실 혼자 있을 때, 심심하면 이렇게과자를 먹곤 하거든요. 창피하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씀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그럴게. 고마워, 아이린.”

창피한 모습을 절친한 관계인 나에게는 보여준다, 뭐 그런 건가.
머릿속으로 연애-결혼-출산-육아-노인대학 베스트커플상 수상을 잇는 테크트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좀 전까지 울상이던 놈이 발정 나서 실실대는 꼬라지라니. 시스템 캄비온에어울리는 발기  자세다, 파트너.]

그때, 천장 카스피커에서 우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아. 마이크 췍, 원 투 뜨리.

우리 5-B조의 책임자인 2학년 생도가 주의를 환기한 것이다.
그가 나와 안나 살라예바 사이의 통로에 선 채 레크레이션을 했다.

―안녕! 하셨습니까, 여러분!

으레 그렇듯 반응은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당황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호응을 이끌어냈다.

―어? 이거 보게. 우리 자랑스러운 대大 이스트 블루 생도들이 이렇게 부끄러움을 타면 쓰나. 자, 다시  번.

―안녕! 하셨습니까, 여러분!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버스가 떠나가라 들려온 1학년 생도들의 인사와 함께, 나와 아이린의 행복한 OT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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