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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21.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3) (21/145)



〈 21화 〉21.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3)


“저기요! 신입생도 분들!”

네 여자의 시선이 내게 몰린다.
나도 그녀들을 봤다.

‘뭐야 얘네.’

말투만 봤을 때는 골목길에서  좀 뱉는 센 언니들인가 싶었는데, 겉모양은 전혀 아니었다.
네 명 모두 대단히 부티 나는 미모. 그리고  외모에 걸맞는 부유한 차림의 소유자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혼자서  명의 여자를 상대하고 있던 여자의 외모는 정말 대단했다. 아이린이나 라라 교수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자칫 저렴해 보일 수 있는 밝은 금발 염색 머리는 환상적일 정도로 고급스럽게 셋팅 되어 있었고, 하얀 얼굴의 이목구비는 한국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뚜렷했다.
추위를 타지 않는 헌터라 그런지 옷차림은 얇았는데, 어깨가 우아하게 드러나는 흰 티셔츠와 스키니 청바지가 그녀의 폭력적일 정도로쎄끈한 몸매를 부각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이 무척 컸다.

‘아이린 보다 크겠는데. 저 정도면 낸시랑 비슷하겠다. 많이 불편하겠어.’

160cm 후반대로 보이는 그녀의 밸런스 잡힌 체형을 저 폭유가 왜곡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탐욕스럽게 컸던 것이다.

“육돼지 너 두고 봐.  미친년.”
“…가자. 서윤이 너, 후회하지나 마.”
“걸레가 무서워서 피하나.”

세 여자가 이죽거리며 흡연장을 나갔다. 나는 혼자 남아 담배를 태우는 여생도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싸움 난 건가 싶어서 와봤는데.”
“…….”
“…다행이네.”

대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담배만 피워댔다.

[씨발년 싸가지 더럽게 없네. '네'  마디가 그렇게 어렵냐? 가정교육 판타지로 받았구만. 존나 이세계물 주인공이세요?]

메리가 거나하게 욕설을 했다.
나는 내가 무시당한 것보다, 메리의 욕이 너무 찰진  웃겨서 그냥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때,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쪽. 이스트 블루 생도에요?”
“그런데요.”

나는 담배 연기 폴폴 나는 재떨이 근처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대답했다.
그 여자는 잠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담배를 끄고 내게 다가와 자신의 폰을 보여주었다.

“여기. 어떻게 가면 돼요?”

이 여자 뭐야.
나는 약간 짜증이 났지만 그냥 참았다. 아카데미에는 이딴 거지같은 성격을 가진 애들이 차고 넘쳐서, 이런 상황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줘봐요.”

그녀에게서 폰을 받아 메시지를 확인했다. 늦게 도착하는 생도를 위한 안내 문자 메시지였다.

‘1학년 전투분과마력전투보조전공 육서윤. 제주 더퀸 호텔 리조트 3관 1303호…. …이런 젠장.’
[운 더럽게 없네.]

얘는 우리 방이었다.
늦게 온다고 했던, 바로 걔.

“…따라오세요.”


**

육서윤인지 칠서윤인지의 더럽게 큰 캐리어를 질질 끌며 방까지 안내해준 후였다.

―무슨  있으면 저나 다른 2학년 생도들에게 연락하면 돼요. 연락처는 저기 보이죠?  벽에 메모로 붙어있으니까 확인하시구요. 모르는  여기 있는 동기 분들에게 여쭤보세요.
―수고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게서 캐리어를 받아들고, 여자 방에 처박혔다. 다른 생도들과 눈  번 마주치지 않은 채 말이다.

‘웃기는애네.’

그 여자는 나를 무슨, 돈 받고 일하는 용역 취급한 것이다. 아니지, 돈 주고 일 시킨 사람한테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진 않았을 거다.
결국, 메리가 폭발했다.

[놔! 이거 놔! 저런 년은 어이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메주에 넣고 갈아버려야 돼!]
‘워워.’
[워워war war는 씨팔, 전쟁 무조건 전쟁이냐?! 아오, 제이야! 지금 당장 제파르 권능 졸라 올려서 저년 조져버리자. 아주 씹창내서 니 발가락 틈새까지 핥으면서 질질 싸게 만들어주자!]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당장 급한 건 그게 아니다. 우린 이미 마력 중심의 실제계 능력을 중점적으로 올리자는 데에 합의한 상태였으니까.
라라의 꿈속에서 발키리에게 속수무책으로 털린 게, 나나 메리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아우, 분해! 감히 순정인간 계집 주제에 이 위대한 몽마의 검령인 메리님의 계약자를 짐꾼 취급해? 두고 봐. 육시랄 너, 이 몸이 부셔버릴 거야.]

자원봉사자 숙소로돌아가는 내내 메리가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다.
덕분에 나는 화를 낼 타이밍을 잊어버려서, 그냥 메리나 달래주며 그 여자애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여어! 왔냐. 어디 갔다 왔어.”
“그냥, 정원에 좀. 다니엘은?”
“자. 많이 피곤했나봐.”

아이웨이처럼 나이롱 생도회원이 아닌 다니엘은 오늘 새벽 4시부터 일어나 OT를 준비했다고 한다. 오늘만이 아니라, 봄방학 내내 그랬다고. 그러니 피로가 얼마나 뭉쳤을지 짐작이 됐다.

“짠.”
“적셔.”

나와 아이웨이는 잠들기 전, 따뜻한 녹차를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마음 같아선 맥주라도 마시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OT 중엔 금주라 어쩔 수 없다.

“아참. 제이 너 그거 알아?”
“뭐.”
“내일 저녁 공연 때 아이돌 초대가수 오기로 한  있잖아. 엑스틴이랑 다이아로즈.”
“응.”
“걔들 지금 미리 와있대.”

아이웨이가 실눈을 더욱 가늘게 크게 뜨며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프리미엄관 보이지. 저기 최상층이랑 그 아래 두 층이  대여됐대.”
“진짜? 걔네 몸값 되게 비싸지 않냐.왜 하루 일찍 왔대.”
“야 이 바보야. 비싼 정도가 아니지. 걔네 정도면 30분짜리 행사도 억 댄데. 오늘 밤도 원래는 스케줄 꽉 찼었을 걸?”

엑스틴♂과 다이아로즈♀.
빌보드를 비롯한 세계 음악 차트를 모두 석권한 대단한 가수들이다. K-pop이 낳은 역대 최고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듣는 그룹들.
아이돌을 아예 모르는 나조차도 뉴스를 통해 이름은  정도니  다했지.

“그니까. 걔들이 왜 여기왔냐구.”
“너 비밀 지킬 수 있어?”
“아니. 그냥 말하지 마.”
“개스키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관심 없어 임마. 말해주지 마.”
“얄미운 놈. 넌 가끔 보면 진짜 로봇 같아. 훈련, 공부, 주변 사람 뒤치다꺼리 말고 명령어 입력이  된 로봇.”

아이웨이가 잠시  보며 혀를 차다가, 돌연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이랑 내일, 대한민국 재벌 3세 모임이 있대. 너도 알지? 얼마 전에 뉴스에서 떠들썩했잖아. 한국 대형 클랜의 재벌 3세 자녀들 마약 파티 어쩌고저쩌고.”
“아, 그거. 무혐의 아니었나.”
“멍청아. 넌 그걸 믿냐?”

 믿지. 근데 그러려니 하는 거지.
무죄추정의 원칙, 모르냐.

“아무튼, 느그 나라 부잣집 도련님 아가씨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노는데. 거기에 이번에 엑스틴이랑 다이아로즈를 불렀다는 거야. 아마 지금쯤 저 호텔방 스위트룸에서 난리도 아닐걸?”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 형.”

아이웨이가 씩 웃었다.
그의 형은 홍콩 삼합회 산하 대형 클랜인 흑사신黑死神 소속이다. 아이웨이의 집안 전체가 그쪽인 건 아니고, 그의 형만 가족 몰래 흑사신의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다만 문제는 아이웨이의 형이 장난기가 심해서, 놈에게 자주 뻥을 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구라 아니냐.”
“아냐. 이번엔 백프로야. 왜냐면 내가 그 부잣집 아가씨들 얼굴을 직접 봤거든. 개벽, 파이란, 신미래. 거기 딸들이었어. 완전 직계.”
“어디서 봤는데.”
“너 아까 못 봤냐? 대박이었어.”

아이웨이의 눈이 몽롱해졌다.

“친구 만나러 왔다고 아까 우리 리조트 쪽으로 왔길래, 내가 안내해줬거든. 세 명이었는데 존나 예뻤어. 옷도 개비싼거더라. 셋이 입은 옷만 팔아도 A급 헌터 장비 풀세트 그냥 맞추겠던데.”
“세 명?”

설마.

“걔네 혹시 한 명은 가벼운 모피에 캐쥬얼한 의상이고, 두 명은 짧은 원피스에 정장 마이 입지 않았냐.”
“헐! 너도 봤냐? 개이쁘지.”

맞구나. 근데 걔들은 아카데미 생도가 아니었네. 내가 잘못 알았어.

“응. 다들 연예인 같더라.”
“엑스틴 씹새들, 걔들이랑 존나 뒹굴고 있겠지? 개부럽다.”

이 부분은 동의할 수 없었다. 걔들은 흙수저 D급 헌터인 내가 관심 가질 사이즈가 아니라서, 엄두도  났던 것.

참고로 여자의 배경을 볼   심리적 마지노선은 고향인 북경에서 부모님이 작은 어린이집을 운영하신다는 아이린이나, 의사 겸 교수지만 나처럼 시설에서 자란 라라 정도다.

그 이상의 유복한 가정환경을 가진 여자는 뭔가 벽이 느껴져서 도무지 욕심을 내기 어려웠다.

“근데 더 대박인 건 뭔지 아냐.”
“그냥 말해.뜸들이지 말고.”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차를 들이키자, 아이웨이가 본론을 꺼냈다.

“육서윤. 걔, 아카데미 입학했대.”
“…걔가 누군데. 유명해?”
[그 육시랄 년?]
“당연하지, 멍청아! H컵 재벌녀 몰라? 인터넷에서 존나 유명해.  새끼는 한국 놈이면서 한국 유명인을 나보다 몰라. 얘 홍콩이랑 대륙은 물론이고 코쟁이들한테도 인기 좆 돼. 보여주까?”

아이웨이가 폰 검색창에 ‘H컵 재벌녀’를 입력했다. 그러자 무수한 연관검색어와 함께 이미지들이 표시되었다.


-연관 검색어: 한성사립국제고 육서윤, 육서윤 소속사, 육서윤 SNS, 육서윤 삼원, 육서윤 재산, 육서윤 가방…

사진은 역시나 아까 봤던 그 육서윤이었다.

야구장에서 가족과 치킨먹는 사진.
고등학교 소풍 때 도촬 당한 사진.
개인 SNS에 자신이 올린 사진.
최고급 속옷 매장에서 쇼핑하는 사진.
친구들과 수영장 놀러간 사진 등.

고작 갓 스물이 된 일반인임에도 유명 연예인 뺨치는 인기에, 나는 살짝 질려버렸다.

“뭐가 이리 많아. 원래 재벌 가족들은 신상 공개 싫어해서 일반인들이 얼굴도 잘 모르지 않냐.”
“처음엔 막았대. 근데 회사 이미지랑 매출이 얘 때문에 많이 좋아져서, 그룹 차원에서 허용하기로 했대. 너무 노골적인  아니면 적당히 놔두나봐.”
“얘 뭐하는 집 딸내민데.”

아이웨이가 탁자 위에 수북하게 쌓인 크림빵을 가리켰다.

“갓갓갓! 세계인의 삼원빵!”

**

주식회사 삼원 식품. 영문명 Samwon Food.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식품 회사 중 하나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30위 정도인 이 회사의 주력 사업은 크게 셋이다.

빵을 위시한 밀가루 제품.
우유 및 유제품.
그리고 카페 체인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어보고 알고 있는 국민 브랜드가 바로 삼원 빵, 삼원 우유라고 할  있다.
최근에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와 해외까지 활발하게 수출하고 있다고.

“이번OT가 왜 이리 먹을 많나 했더니, 육서윤 때문에 협찬이 들어왔던 거구나. 하긴, 딸내미 다닐 학굔데 어련하시겠어.”

아침 스트레칭을 마친 뒤, 방 안에 박스째로 굴러다니는 삼원 호빵을 먹었다. 물론, 함께 지급된 우유도 같이.

“아으! 제이 넌 벌써 일어났냐…?”
“제이, 좋은 아침.”
“다니엘 좋은 아침. 아이웨이도 빨리 일어나. 신입생들  먹여야지.”
“어어…….”

어제 늦게까지  게임을 하더니, 아이웨이는 결국 날을 샌 모양이다. 아무리 육체가 강건한 헌터라도 밤샘은 힘들기 마련.
하지만 나는 마법의 주문을 알고 있다.

“육서윤 안 보러 가냐?”
“!”

아이웨이가 벌떡,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이 다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내 다리를 붙잡았다.

“지, 진짜 바꿔줄 거야?!”
“그런다고 했잖아. 니가 내 방 해.”

다시 바꿔달라고나 하지 마라.

“대형!”
“빨리 씻어.”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오늘 일정을 시작했다.
물론 OT 이틀 차인 오늘, 갑작스럽게 담당 선배가 바뀐 것을 아쉬워한 1학년 생도들도 있었다.

“아이웨이 형은 그럼  와요?”
“아쉽다. 번호도 달라고  했는데.”
“지금 달라고 해요. 저기 옆에 있네.”

내가 턱짓으로 옆줄을 가리키자, 육서윤 옆에서 시종처럼 붙어 있는 아이웨이가 활짝 웃었다.
…근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 탓이겠지.  알아서 해라.

“밥 먹고 자유 시간 가지시고, 10시까지 리조트 1층 현관으로 오시면 됩니다. 오늘은 관광형 균열 던전 견학이 있어요. 모두 알고 계시죠?”
“네에~!”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침을 먹고, 우리는 오전 일정인 제주 서귀포시 인근 던전으로 이동했다.

<서귀포 F급 균열 던전 – k282>

이 던전은 몬스터 퇴치와 마석 회수가 모두 끝났는데도 닫히지 않은 희귀 던전이다.
타입은 출구가 하나 뿐인 폐쇄형이고, 깊이는 편도  3km인 동굴 형태의 관광목적 균열 던전.

“자, 이제 아까 짝지은 동기 분이랑 같이 이열 종대로 이동하세요. 여기서부터는 저 말고, 던전 안내인 분들의 말씀을 따라주시면 됩니다.”

신입생도 약 3천여 명과 그들을 인솔할 수백 명의 생도, 그리고 일반인 관광객과 던전 직원들까지 총 5천 명이 넘는 인원이 던전에 가득 찼다.

―아하하하! 그래서 그때 내가…
―야, 저거 봐! 종유석도 아닌데 되게 특이해. 던전이라 그런가?
―찍는다. 하나  셋! 치이즈!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동굴 외벽을 울렸다. 몬스터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관광지 내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모두를 감쌌다.

‘좋네. 이제야 좀 쉬는 것 같다.’

나 또한 시원한 공기 감도는 이 아름다운 던전의 모습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야 그럴 수밖에.

[→아이린: 오빠, 저녁 공연 시작하기 전에 공연장 현관에서 봐요! 자원봉사 힘내시고, 이따 재밌게 놀아요 :D]

오후에 아이린과 데이트 약속이 잡혔는데,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고 배길까.

‘몇 시간을 대체 어떻게 기다리냐. 가만, 향수 안 가져왔는데. 하나 살까?’

내가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으며 동굴 진입로를 따라걷고 있을 때였다.


―{Wooooooooooooooooo}

동굴 외벽에서부터 온 몸의 솜털까지 모조리 치솟게 만드는 무서운 마력의 파동이 전해져왔다.

“지, 지진이야?! 꺄아아아악!”
“고개 숙여! 밧줄 잡고 기다려!”
“일단 대기해! 영맥에서 올라온 자연 발생 마력일 수도 있어!”

던전에 대해 잘 아는 몇몇 생도들과 던전 안내원들이 침착하게 상황을 주시했다. 하지만 나는 감이 좋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이런 종류의 길고 진한. 더구나 진원을 알 수 없는 전체 규모의 무차별 진동은 분명…….

[맞아! 내균열이다! 빨라!]
“젠장…….”

온 가족 모두 모여 손잡고 체험할 제주의 관광 명소 서귀포 F급 균열 던전.

―{Wooooooooooooooooo}

이곳이 지금, 진화를 시작했다.

컵 재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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