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4)
―{Wooooooooooooooooo}
동굴 전체에 강력하게 울려 퍼지는 마력의 파동 탓에 정신이혼미해져갔다.
나는 온몸에 마력을 돌려, 체내에 마력 파장과 반대되는 파장을 형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생도회 임원에게 다가가 빠르게 말했다.
“내균열 같아. 조짐이 너무 안 좋아.”
“정말?! 확실해? 나도 긴가민가한데.”
생도회원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균열 속에서 또 다시 균열이 발생해 던전이 완전 재구성 되는 것을 내균열內龜裂이라 한다. 이 경우, 랭크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 최우선 사항이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 상황을 더 지켜볼 시간이 없어. 아니라면 그냥 웃기는 헤프닝이지만, 맞으면 대참사야.”
“하아… 씨팔……. 어떡하지.”
생도회원 간부 완장을 차고 있는 남자가 크게 고심했다. 설득은 내가 하고 있지만, 전체 대피를 지시한 후 벌어진 책임은 이 친구가 져야하기 때문이다.
“…던전 최심처에 있는 사무소 협력만 구하면 바로 빠지자. 나도 감이 안 좋아. 시뮬레이션 실습 때보다 세로 파장이 너무 강해.”
“동의해.”
그가 황급히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던전 내 인원 대피 권고가 내려왔다.
그리고이 상황에서조차 우리를 감싼 마력의 파동은 주기적으로 이어졌다.
―{Wooooooooooooooooo}
우리는 몹시 바빠졌다.
“전 신입생도는 이열종대가 아닌 삼열종대로 빠르게 이동합니다.”
“신체등급 C급 이상의 생도들은 민간인 출입자들을 업고 먼저 이동합니다. 삼열 종대의 아카데미 생도들은 밧줄 근처로 붙어서 이 친구들이 먼저 나갈 수 있게배려해주세요!”
“신입생도 외 생도들도 던전 관리자분들의 지시를 최우선적으로 따라주세요! 명령 체계가 분산 되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5천 여 명의 사람들이 두 조로 나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입구 근처에 있던 인원들이 모두 빠지자 이동 속도가 빨라졌다. 뒤이어 약 천오백 명의 민간인들이 대거 먼저 탈출에 성공하자 우리는 한 시름 놨다.
“됐어! 이제 우리만 나가면 돼!”
“4열 종대 편성! 앞사람과 거리 1미터, 구보 속도 시속 8km! 서두르지 맙시다! 모두 나갈 수 있어요!”
나는 내가 맡은 1학생 생도들을 케어하며 빠르게 발을 놀렸다.
우리 조는 던전 가장 안 쪽인 최후미였던 탓에 아직도 1km는 더 가야만 탈출할 수 있었다.
“제이야! 큰일 났어!”
그때, 다니엘이 사색이 돼서 내게 붙었다. 그는 등에 60대 노인을 업고 있었다.
“왜. 앞쪽에 내균열이라도 터졌어?”
“그게 아니라… 육서윤이 사라졌대.”
이런 미친.
“아까 던전 공동空洞에서 사진 촬영할 때 있잖아. 그때부터 없었대.”
“아이웨이는?”
“걔 찾으러 간다고 지금 안쪽에 있기는 한데, 그쪽에서 트러블이 발생한 모양이야. 민간인도 몇 명 더 발견했대. 아이웨이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듯해. 지금 통화도 어려운가봐.”
“트러블이라니? 그리고 다른 생도는.”
“우리가 거의 맨 끝이잖아. 니가 좀 가줄 수 있겠냐? 나는 알다시피 이 모양이라 미안하다. 안쪽에 민간인만 발견했다고 못 들었어도 너한테 이런 부탁 안 하는데.”
다니엘이 곤혹스런 얼굴을 했다. 나보다 상위 랭크인 C급이지만 그는 버퍼다. 더구나 보유 마력량에 비해 근민체는 크게 떨어지는 타입. 그의 입장에서는 내게 이런 부탁을 하기 미안한 모양이었다.
“알았어. 우리 방 애들 잘 부탁해. 이따 보자.”
“미안하다. 조심하고.”
다니엘이 생도회 완장을 벗어 건네주며 내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그의 고유능력인 <웅혼한 의지>의 힘이었다.
[▶신체능력 전반 일시 강화 감지]
[▶근력 체력 민첩 스탯 10 상승]
[▶강화 잔여 시간: 617 sec]
‘시스템 메시지가 이런 것도 표시해주는구나. 이건 정말 좋다.’
나는 다니엘이 준 완장을 찬 뒤, 줄을 벗어나 대피 행렬의 반대로 달렸다.
**
전력질주를 한지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완전 최후미 인원으로보이는 던전 사무소 직원들과 마주쳤다.
“학생! 어디로 가나! 그쪽은 위험해!”
“이스트 블루 생도회 지시입니다. 먼저 가세요. 누락 인원과 동반해서 곧바로 따라가겠습니다.”
“학생! 헌터 학생! 지금 거기에―”
나는 그들의 부름을 뒤로한 채 전력으로 달려 아까 그 대공동에 도달했다.
흰색 베이스에 무지갯빛 찬란한 광채가 감도는 종유석들이 환상적인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풍경 따위에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
‘어디 있는…. …이런 젠장. 저게 뭐야!’
나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거대한 종유석들이 치솟은 돌들의 숲을 지나자마자, 바닥으로 푹 꺼진 듯한 싱크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기 원래 연못이었는데?’
[쎅쓰. 아까는 평범한 연못이었어. 여기가 내균열의 진원이구나.]
나는 불길한 마력을 토해내는 검은색 구멍을 지나쳐, 더 안쪽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던전 사무소 간이건물 앞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아이웨이! 괜찮냐?”
“제하.”
땀에 흠뻑젖은 아이웨이가 반가운 눈빛을 한 채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이 씹새끼들 데리고 바로 나가자.”
아이웨이가 발로, 바닥에 기절한 남자 세 명을 툭툭 걷어찼다.
“얘네 누구야.”
“육서윤 강간하려다가 걔 찾으러온 나한테 들키니까 덤빈 좆밥 새끼들.”
뭐 이런 말종 새끼들이 다 있어!
“너 안 다쳤어?”
“보시다시피.”
“그럼 육서윤은 어디 갔는데.”
“저기.”
녀석이 아까 내가 발견했던 싱크홀을 가리켰다.
“내가 이 새끼들이랑 1대 3으로 맞짱 뜨는 동안에 민간인 관광객 몇 명이랑 같이 저기에 빠졌어. 육서윤 썅년, 사무소 대피 공지 나오니까 깜짝 놀라서 우르르 도망치다가 그 민간인들이랑 부딪혀서 한꺼번에 저 구멍이 확! 먹어버린 거지. 쌤통이다, 싸가지 없는 년.”
말할 필요도 없다.
육서윤과 그 민간인들은 포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빨리 나가자.”
나는 두 명의 남자를 양 어깨에 걸쳤다. 아이웨이 역시 한 놈을 업었다.
우리는 출구 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 너 오니까 살겠다. 나 마력 오링 나서 힘들어 뒤질 것 같았거든. 이 씹새끼들이 생각보다 존나 쎄더라고.”
아이웨이가 이를 갈며 남자들을 노려봤다. 아닌 게 아니라, 화려하게 꾸민 남자들의 신체는 대단히 단련되어 있었다. 대형 클랜 혹은 대기업 자식들아니랄까봐, 돈을 처들여 상당한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던 모양.
“두고 봐. 이 새끼들 깨어나면 목숨 값이랑 합의금 거하게 뜯어낼 테니까.”
“방법 있어?”
“저거.”
아이웨이가 눈짓을 했다. 특수 제작된 던전 CCTV가 눈에 들어왔다.
“잘 됐네.”
저건 대형 클랜 할애비라도 데이터를 못 지운다.
국제 규약에 따라 실시간으로 국제헌터연맹과 한국헌터협회에 모니터링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알력을 써서 데이터를 지우고 관계자 입을 막아도, 아이웨이의 형은 홍콩 삼합회다. 이 건수를 절대 호락호락하게 넘기진 않을 것이다.
“돈 받으면 내가 거하게 쏠게. 너 여자 안 사 먹어봤지. 그것도 재미다, 너? 이 대형이 너한테 운우지락을 알려주마. 마카오에 죽이는 데가 있거든.”
“됐으니까, 앞이나 보고 걸어. cctv가 어디 도망가기라도 하….”
그때였다.
―{Woooooo}
우리 뒤쪽 천장에 달린 던전 CCTV 근처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이것은 명백한 내균열에 의한 침식.
“아이웨이!”
“나도 봤어, 씨발!”
우리는 꼬리에 불 붙은 개새끼들처럼 미친 듯이 달렸다. 다른 인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던전은 그야말로 고속도로라, 우리의 속도는 박쥐처럼 빨랐다.
하지만 내균열의 진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커먼 그림자는 그런 우리보다 더 빨랐다.
―{Wooooooooooooooooo}
기이한 마력 파장을 토해내며 순식간에 동굴 외벽을 검게 물들이는 내균열의 모습에, 나와 아이웨이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야! 나 쥐 났다…!”
결국 아이웨이에게 한계가 찾아왔다. B급 근접전투계열 헌터의 육체도 피로와 긴장, 마력 탈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씨팔, 짜증나!”
나는, 데이트해야 되는데. 빨리 향수를 사러 가야 되는데. 그래야 아이린에게 잘 보이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웨이를 업었다.
“아오 편안해. 너 등 졸라 넓다.”
“울고 싶으니까 닥쳐!”
나는 양 팔에 두 성인 남성을 끼고, 등에는 마찬가지로 성인 남자를 업은 아이웨이를 업은 상태로 달렸다.
30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의 압박에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다행히 버틸 수는 있었다. 다니엘이 걸어준 버프 덕분이었다.
[▶신체능력 전반 일시 강화 감지]
[▶근력 체력 민첩 스탯 10 상승]
[▶강화 잔여 시간: 62 sec]
나는 온 몸의 마력을 모조리 격발시켰다. 53에 달하는 마력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일시적으로 C등급에 달하게 된 육체가 0.3톤의 무게를 견디며 쾌속으로 앞을 향해 쏘아져갔다.
‘더, 더, 더!’
빛이 보인다. 얇은 마력 결계가 쳐진 던전 입구 너머로, 사람들의 희미한 실루엣이 보인다.
“제이야!”
아이웨이의 부름에,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던전 입구에 다다랐다. 등에 업힌 아이웨이가 크게 소리 질렀다.
“던져! 그 새끼들 던져!”
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등 뒤, 다리 아래, 정수리 위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의 진동이 내 몸을 흔들어왔다.
내 발은 모종의 힘에 의해 멈춰졌고, 그 반동에 의해 내 허리와 허벅지는 부러질 듯 당겨왔다.
‘…젠장! 발목이… 먹혔어.’
불과 출구가 두 걸음 앞인데.
마력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Wooooooooooooooooo}
이를 악물었다. 양 팔에 낀 남자들을 출구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등에 업은 아이웨이와, 그에게 업힌 남성을 회전력을 가한 허리 반동으로 함께날려버렸다.
“김제이, 이 빵쯔새끼야!!”
아이웨이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뒤집어지는 시야 속에서.
“제이야, 안 돼!!!!!!!”
나는 어둠에 잡아먹혔다.
**
톡, 톡, 톡.
차가운 물방울이 의식을 깨운다. 등 아래 느껴지는 까끌까끌한 돌맹이의 감촉을 참기가 어렵다.
[깼냐.]
메리는… 무사한 것 같다.
눈을 뜨자 들어오는 풍경은, 새까만 동굴이었다. 그것도, 내균열 이전과 비교해 미칠 듯이 커진.
“워어.”
상체를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굴의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다. 광장처럼 넓은 동공洞空 지점도 아니면서, 그냥 통로에 불과한 이 지점의 크기만도 대단했다.
“이 정도 폭이면 비행기도 날아다닐 수 있겠는데.”
―웅 웅
메리가 동굴 안을 탐색하듯 날아다니다 내게 돌아왔다.
[전체 규모가 얼마나 될지 짐작이 안 되는군. 내균열로 던전이 완전히 재구성 됐어. 좀 특별한 석회 동굴에 불과했던 던전이 구성 물질부터 크기, 형태, 마력파장까지 완전히 바뀌었다.]
메리는 내가 잠든 사이, 날 지키기 위해 본래의 장검 크리로 변한 듯했다.
나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로 예뻐진 메리. 즉, 마법검 캄비온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탐색해봤어?”
[현재 위치에서 좌우 통로 방향으로 약 2km. 그 이상은 네놈 보호 때문에 가지 못했다. 생명체는 발견 못했어. 그 흔한 레드뱃Redbat조차 안 보인다.]
“바람 길이나 수원水原 방향은?”
[저쪽. 물길이 있다. 소리를 들었어.]
메리와 함께 녀석이 말한 물길을 찾아 움직였다.
동굴은 아주 어두웠다.
내가 마력으로 안력眼力을 강화할 수 있는 헌터라지만, 마력 공급을 끊는 즉시 바위 같은 큰 장애물조차 피하기 어려울정도로 지극히 컴컴했다.
―파앗
마력은 아껴야 한다. 시야 확보를 위해 스마트폰 라이트를 켰다.
나는 아직 헌터 라이센스가 없어 특수제작 폰은 구입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 폰은 이스트 블루 생도용 기본 지급 물품이라, 넉넉한 배터리 용량과 저주파 구조 신호 전송 등의 서바이벌 기능이 훌륭했다.
[→아이린: 오빠, 연락 받았어요. 잘 빠져나오고 계시죠? 던전에서 나오시면 바로 전화주세요. 꼭 조심하셔야 해요!]
[→김하리: 오빠 지그ㅁ 어디?]
[→반선우: 형… 거기 별 일 없어요?ㅠㅠ 괜찮으시죠?ㅠㅠ]
[→라라 마르티넥: 제이야, 오늘 제주 날씨는 어떠니? 여기 볼티모어는 따뜻해. 행복한 주말 오후 되렴. (아주 아주 작은 하트 이모티콘)]
[→엘리사: 오빠! 엘리사 오늘 싱기한 마법 배웠다ㅋㅋ 이거 봐봐^^* (동영상 첨부 파일)]
지인들이 보냈던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발신시간은 2, 3시간 전. 메리가 말해준 내 기절 시간과 비슷하다.
혹시나 해서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전송은 당연히 실패.
“완전 밀폐됐어. 낮은 전자기파도 못 빠져나갈 정도의 폐쇄 공간이야. …이거 난리 났는데.”
[구조대 파견까지 오래 걸리겠군. 분석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할 테니.]
균열.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일종의 이異차원 공간이다. 헌터라는 직업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 원인.
하지만 아무리 타차원 아공간이라고 해도, 공간 왜곡 정도가 얕으면 스마트폰도 터지곤 한다.
즉, 나와 메리가 있는 이 공간은 왜곡 정도가 심한 험지라는 뜻.
“괜히 탈출한다고 나대지 말고, 물 있는 곳에짱박혀서 기다리자. 여기가 B급 이상의 던전이면 어차피 자력 탈출은 불가능해.”
[쎅쓰.]
D급 헌터와 섹무새 마법검의 행동방침이 정해졌다.
나와 메리는 약 4km 떨어진 물길까지 빠르게 이동했다. 동굴에는 쥐새끼 한 마리 없고, 바람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긴장은 점차 고조되어 갔다.
―쏴아아아아
‘저기구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 있다니.
나는 라이트를 최대한 켠 상태로 콸콸 흐르는지하수를 비추었다. 그리고 생도용 스마트폰에 부착된 센서를 갖다 대고, 손으로는 흐르는 물을 가둬두기 위해 센서 주변을 감쌌다.
“…….”
[좆됐군.]
그리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
[수질 분석 Data]
일반세균 1mL 중 0
총대장균군 100mL 중 0
비소 0.23mg/L
페놀 0.035mg/L
불소 5.5mg/L
수은 0.04mg/L
……
…
[분석 결과: 오염도 上中 (독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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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선, 나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